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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수산월
육명장은 조회가 끝난 후, 복흥 주점에 들러 반나절쯤 앉아 쉬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가 오기만 하면 2층은 그의 차지였다. 매일 오는 것은 아니었고, 사흘에 한 번꼴로 들렀다. 복흥 주점은 늘 미리 자리를 비워두고 그를 맞이했다.

그가 바깥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 편히 조용하게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흥취가 더욱 깊어졌다. 1층 객실의 웃음소리가 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보살이라.’

보살이라는 여인은 창가에 앉아 팔꿈치를 탁자 위에 괴고 있었다. 소매가 팔꿈치까지 걷어 올려져 희고 통통한 팔목이 드러났고, 팔목에는 투명한 옥 팔찌와 소박한 은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손바닥으로 턱을 받치고, 뾰족한 손가락 끝으로 뺨을 건드렸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비가 거세지자 바람을 타고 들이쳐 도포 자락이 젖었다.

아마도 호기심 때문인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을 크게 뜨고 그가 있는 쪽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를 보지 못했으나, 그녀의 그 움직임 때문에 그는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육명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앳된 계집아이였다.

그는 술잔을 들어 홀짝이며 정신을 빗속에 담갔다가 다시 비워냈다.

조용한 빗소리 속에서 다시 움직임이 있었다.

그녀는 치마를 여미고 쪼그리고 앉아 아낙에게 날씨를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느릿했으며, 외지 억양이 섞여 있어 다소 특별했다.

육명장은 문득, 저 음색으로는 화를 내도 거칠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비가 잦아들었다.

그는 층계를 내려와 주점 밖으로 나가 처마 아래에 서서 한참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진이 옆을 돌아보았을 때, 그와 시선과 마주쳤고, 순간 멈칫했다. 예의를 갖추면서 미소를 짓더니 그리고 치마를 여며 절을 올렸다.

맞은편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에 얕은 눈빛을 하고 있을 뿐, 고개를 숙이는 인사조차 없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진은 마주 선 문인이 붙임성이 없다고 여겼다. 냉정하고 인정없는 분위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도 차갑게 식혔다.

그녀는 규안에게 명했다.

“들어가서 밥값을 치르거라.”

규안은 대답하고 들어가 돈을 냈고, 잠시 후 나와 하진을 부축하여 마차에 태웠다.

그들이 사라진 후, 장안은 육명장에게 물었다.

“이제 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육명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하늘은 맑게 개어 푸른빛이 감돌았고, 태양이 걸려 아침 햇살이 희미했으나 이미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규안은 몸종 몇을 불러 하진이 일어나 씻는 것을 시중들게 했다.

집안은 유난히 분주했다. 청산사로 축원하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대만여 모녀는 머리 장식부터 옷차림까지 온통 정성껏 꾸몄다.

가주인 사백산은 처자식처럼 기쁨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마냥 평온하지도 않았다.

육명장을 한 번 뵙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만약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다면, 한두 마디라도 말을 섞게 된다면, 그를 바라보는 동료의 눈빛도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육씨 가문의 규수가 하진을 만나려 한다는 것도 중요했다.

다행히 하진은 주제 파악을 잘하기에, 이번에 아무 탈 없이 지나갈 것이다.

사씨 가문 일행은 저택 문을 나서 마차에 오르고 앞뒤로 하인들을 거느린 채 왁자지껄하게 성 밖으로 향했다.

하진은 마차 휘장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길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절에 향을 피우고 축원하러 가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솔솔 불었고, 바람 속에는 촉촉한 풀 향기와 약간의 흙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행인들과 마차들이 분주히 향 먼지를 밟고 지나갔다.

한참을 달려 청산사에 도착하자, 하진은 사미정과 함께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산기슭은 활기가 넘쳤다. 향초를 파는 이, 축원 물품을 파는 이, 점을 치고 괘를 풀어주는 이들이 있었다.

일행은 층계를 따라올라 먼저 사찰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축원했고, 하진은 따로 승려에게 경서 몇 권을 청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읽을 요량이었다.

사찰 문을 나섰을 때, 어디선가 비단옷을 입은 부인 몇이 다가와 사백산과 대만여에게 몸을 굽혀 인사했다.

“특별히 이 자리에서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나리와 마님을 뵙습니다. 저희 노부인께서 아침부터 이 댁의 아가씨를 뵙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낙은 말하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하진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단번에 사씨 가문의 외가 친척임을 알아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놀랐지만, 다시 보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상인 집안 출신이라 들었던 대하진은 자태만 보면 육씨 가문의 아가씨들과 견주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하진은 목이 가늘고 길며, 등이 얇고 피부는 보기 드물게 희었다.

관료 대신 집안의 여인들이 모여 앉아 서로 은근히 정성껏 가꾼 살결을 내보이면, 눈으로 보기엔 모두 비슷하게 희었으나, 대하진의 옆에 서자 귀부인들의 흰 피부가 누렇게 뜨고 광택을 잃었다.

대만여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몇 마디 대답하였고, 사씨 가문 일행은 육씨 가문의 아낙들을 따라 사찰 후원으로 향했다.

사찰 앞은 시끄러웠으나, 후원은 고요했다.

이따금 숲 사이로 새소리만 들려와 더욱 고요했다. 지나가는 승려들은 합장하고 길을 비켜주었다.

아낙들은 사람들을 넓은 선방 앞으로 안내했고, 안에서는 이미 누군가 소식을 전했는지 몸종이 휘장을 걷어 올렸다.

안채는 넓고 시원했으며, 중앙에는 여섯 폭의 휘장 병풍이 세워져 있어 희미하게 안쪽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백산과 사준영은 남자였기에 바깥쪽에 앉았고, 세 여인은 아낙들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서자 방 안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노부인, 사씨 가문의 나리와 마님께서 오셨습니다.”

아낙이 사람들을 안내한 후, 하인들에게 차와 다과를 올리도록 불렀다.

바깥의 사씨 가문 부자는 휘장을 향해 몸을 굽혀 인사했다.

“노부인, 안녕하시니까? 청정한 곳에 폐를 끼쳤습니다.”

육 노부인은 온화하게 말했다.

“격식 차리실 것 없네. 이 늙은이는 그런 것을 중히 여기지 않으니, 앉아서 이야기하게.”

이에 사씨 가문 부자는 바깥쪽에 앉았다.

대만여는 사미정과 하진을 이끌고 나아가 인사했고, 육 노부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미정을 불러 앞으로 오게 하여 손을 잡고 몇 번을 자세히 보았다.

“사씨 가문 마님께서는 복이 많으구려. 이리도 훌륭한 자식들을 길러 내다니.”

그러고는 옆을 보며 농담하듯 말했다.

“우리 손녀가 그 댁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 이유가 있었구려.”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미정은 육 노부인이 자기 손을 잡고 있었기에, 자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기쁜 나머지 우쭐해져 스스로를 더욱 높게 여겼다.

이때 옆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정이 아가씨와 저랑 나이가 비슷해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히 그리된 것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방 안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서, 서 있지 말고 사씨 마님을 자리로 모시거라.”

육 노부인이 말을 하자, 하인들이 대만여를 자리로 안내했다.

대만여는 거듭 감사를 표한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시종일관 하진은 목을 숙이고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한두 곳이 아니며 사방에서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육 노부인의 목소리가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저 아이가 바로…”

대만여가 재빨리 설명했다.

“이 아이는 제 친정 조카딸로, 평곡에서 왔습니다. 당분간 저희 집에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육 노부인은 사미정의 손을 놓고 하진을 앞으로 불렀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하진은 절을 하며 답했다.

“성은 대, 이름은 하진입니다. 나이는 열아홉이고, 집에서는 맏이입니다.”

“그렇구나, 고개를 들어라. 내 얼굴을 한번 보자꾸나.”

하진이 눈을 들었고, 그 순간 방 안의 모습을 대략이나마 볼 수 있었다.

상석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귀한 노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육 노부인이라 불렸으나 실제로는 그리 늙어 보이지 않았고, 귀밑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섞였으나 정신은 맑고 기운이 넘쳤다.

그녀의 뒤에는 비단옷을 입은 두 명의 아낙이 지키고 있었고, 양쪽에는 젊은 규수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시선이 유난히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육완아 말고는 그녀를 이렇게 볼 사람이 없었다.

육 노부인은 하진을 옆으로 끌어당겨 자세히 살펴보고는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웃었다.

“평곡의 물과 흙이 사람을 잘 기른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이 아이가 우리 집 아이들보다 나은 것 같구나.”

모두 웃으며 동조했다.

“평곡의 물과 흙이 아무리 사람을 잘 길러도, 노부인 곁에서 자라는 것만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은 육 노부인에게 아첨하는 동시에, 육완아와 육 노부인 곁에서 총애를 받는 규수들을 간접적으로 칭찬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육완아는 육 노부인의 옆구리에 기대어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할머니 눈에는 오직 하진 아가씨만 보이시고, 이 손녀들은 안 보이시나 봅니다.”

육 노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너를 칭찬한다고 서운해하는구나.”

모두가 웃고 떠드는 사이에, 육 노부인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또 다른 규수가 하진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어쩐지 노부인께서 이리 좋아하시더라니, 저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듭니다. 마치 눈으로 빚어낸 사람 같습니다.”

하진은 이 규수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전생에 하진은 사준영의 첩이 된 후 깊은 규방에 머물렀기에, 집 밖의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때, 육완아가 다가와 하진의 손을 잡고 물었다.

“저보다 몇 살 많으시니, 언니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하진은 육완아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순진하고 해맑은 얼굴을 마주하자, 차갑게 식었던 기억이 다시 타올랐고, 하진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그녀의 코를 잡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두피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주었고, 억지로 하늘을 바라본 채로, 손발은 꼼짝없이 붙잡혔다. 얼마후, 비릿하고 걸쭉한 검은 탕약이 코와 입안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저런 대우를 받지 않는다.

굴욕과 무력함이 그녀로 하여금, 그들의 눈에 자신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가축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첩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지킬 수 없었고, 뱃속의 아이도 지킬 수 없었다.

하진은 멀리 떨어진 기억에서 억지로 빠져나와 목구멍까지 차오른 한을 억누르고 미소를 지었다.

“당치 않습니다. 편히 낭자라고 불러주세요.”

육완아는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입꼬리까지 올린 채, 하진을 이끌어 육 노부인의 옆자리에 앉혔고, 사미정을 옆에 내버려 두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입을 열었다.

“하진 아가씨의 나이가 열아홉이라지요? 혹시 정혼은 하였습니까?”

하진은 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여겼다.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대만여가 말을 가로챘다.

“몇 해 전 제 오라비의 부인께서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이 아이는 삼 년 동안 상복을 입고 효도를 하느라 혼기를 놓쳤습니다. 아직 정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만여는 이 말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지만, 육씨 가문의 여인들은 오히려 미묘한 표정으로 각자 찻잔을 들어 유유히 차를 마셨다.

대만여는 불안해졌다.

사람들은 재미난 연극을 보는 듯,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 연극을 즐기는 것 같았다.

사미정은 눈치가 빠르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어머니 옆에 굳어 앉아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칸막이 너머의 사씨 가문 부자 역시 안쪽의 말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하진은 속으로 냉소했다.

‘육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데, 한두 마디 말로 속일 수 있겠는가? 혼약에 관한 일은 이미 샅샅이 알아보고 왔을 터, 당신의 말에 휘둘리겠어? 높은 가문의 초대를 받고 온 주제에 거짓말을 하려 들다니. 밖으로 내쫓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야.’

육완아는 육 노부인의 팔을 흔들었다.

“할머니.”

육 노부인은 한숨을 쉬었다. 노부인은 사실 사씨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전에 몇 가지 일 때문에, 게다가 사준영의 비범한 재능과 손녀의 센 고집에 이 일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육완아는 비록 혈연관계로 엮이지 않았지만, 노부인이 직접 키운 아이였다.

육 노부인은 고개를 돌려 하진을 바라보며 온화하게 물었다.

“네 고모가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니, 네가 말해보렴. 집에서 너의 혼사를 정했느냐?”

혼인 문제는 사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사씨 가문이 출세 때문에 혼약을 무시한다면, 육씨 가문은 그런 집안과는 결코 사돈을 맺을 수 없었다. 만일 혼사를 정했다면, 육완아는 단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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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어두워지자, 손씨 부인은 술상을 차리고 사람을 시켜 대만창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했다.“나리께서 바쁘신 줄 알지만, 오늘 좋은 술을 얻었는데 나리와 함께 맛보고 싶어 이리 청했습니다.”손씨 부인은 더 이상 젊지 않았다. 처음 몇 년은 그녀에게 신선함을 느꼈으나, 첩이 더 들어온 후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은 오랫동안 그를 따랐고, 그의 뜻에 잘 따라줬기에, 게다가 자영이라는 아이까지 낳았기에 대만창은 그녀에게 약간의 정이 남아있었다. 대만창은 차려진 술상을 훑어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손씨 부인은 황급히 앞으로 가서 시중을 들며 직접 접시에 음식을 놓아주고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술 향기가 방안에 가득 퍼졌다.대만창은 술 냄새를 맡고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라. 함께 들자.”손씨 부인은 그의 뜻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대만창이 술잔을 몇 번 기울이며 취기가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하진이가 돌아왔다고 하던데요?”대만창은 음식을 집으며 답했다.“네.”“어떻게 된 겁니까? 갑자기 돌아오다니요? 혹시 혼사에 변동이 생긴 것입니까?” 손씨 부인이 떠보듯 물었다.골치 아픈 일이 가득했던 대만창은 술을 마시자 답답함이 한숨으로 터져 나왔다.손씨 부인은 이 틈을 타 말했다. “나리,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진이가 나이는 좀 들었지만, 그 얼굴로 시집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평곡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겠습니까.”“하진이가 돌아왔으니, 하진이가 오 현령 댁 도령에게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대만창은 손을 흔들었다. “안 된다.”“왜 안 됩니까?” 손씨 부인이 다그쳤다.“이미 자영을 보내기로 했는데, 어떻게 하진으로 바꿀 수 있겠느냐? 게다가 그 댁 도령은 자영을 이미 보았다.”부인은 대만창에게 새 술을 따라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리, 그 댁 도령께서 우리 자영을 보긴 했으나, 하진은 그 댁 도령보다 몇 배는 훌륭합니다. 그리고 하진이 맏언니입니다. 언니가 출

  • 봄 옷을 벗다   제96화

    대자영은 천천히 평상에서 몸을 일으켜 손씨 부인을 바라보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무슨 방법이 있어요? 아버지께서 저를 그 집에 보내기로 마음먹으셨는데, 제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아버지께서는 모르는 척하실 겁니다. 어머니께서도 전에 부탁하셨다가 면박만 당하지 않으셨습니까?”손씨 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어떻게 다릅니까?”“네 큰 언니가 돌아왔다.”대자영은 잠시 멍해 있다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큰 언니가 돌아왔다고요?”“그래, 방금 돌아왔다. 나도 막 알았다. 네 아버지 서재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구나.”대자영이 말했다. “큰 언니는 사촌 오라버니와 정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금 돌아왔답니까?”“얼마 전에 네 아버지를 모시는 하인에게 들었는데, 고모님 댁에서 보낸 서신 때문에 크게 노하셨다고 하더구나.”손씨 부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짐작건대 잘되지 않은 것 같다.”“잘 안됐다니요? 어머니 말씀은 큰 언니와 사촌 오라버니의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까? 하지만 두 집안 사이에 혼약이 있지 않았나요?”자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는 대만여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네 고모는 어린 시절부터 교만하고 오만했고, 기세가 하늘보다 높았지. 이 집안의 것을 먹고 입으면서도 이 집안의 모든 것을 무시했단다. 관아 부인의 초대에 한 번 갔다 온 것으로, 늘 그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지. 남의 똥까지 향기롭다고 여길 지경이었단다. 그 후로는 더욱 이 집안의 물건들을 깔봤다.”“그리고...”대자영은 어머니가 말을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숨기는 것이 있다고 여겨 다그쳤다. “빨리 말씀해 주세요, 또 뭔가요?”“이 일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가 하는 말을 마음에만 담아 두어라.”“네, 어서 말씀해 주세요.”부인은 눈을 굴려 문밖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고모부께서는 그분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단다.”손씨 부인은 예

  • 봄 옷을 벗다   제95화

    대만창은 분명 서신을 받았다. 하지만 반문하는 어조로 볼 때, 그녀가 제안했던 내용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애초에 답장을 해 줄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아버지 생각은 어떠세요?”하진의 질문에, 대만창은 질문으로 답했다. “혼인 단자를 파기했느냐?.”“알고 계셨군요?”아무래도 평곡으로 보내진 서신은 그녀가 보낸 것 외에, 대만여의 서신도 있는 것 같았다.“왜 파기했느냐?” 대만창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이미 고모님의 서신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대만창이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쳤다. “내가 너에게 묻고 있는데, 도리어 나에게 묻느냐?”“사씨 가문은 저희와 혼인을 맺을 생각이 없습니다.”하진이 성질을 누르고 말했다.“어찌 사씨 가문이 우리 가문과의 혼인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먼저 다른 사람 앞에서 혼약을 물리자고 해서, 네 고모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것이다.”사실 대만창은 그녀가 보낸 서신을 처음 받았을 때, 화가 나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하진도 화가 난 듯, 대만창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께서는 어찌 일의 전말을 알아보지도 않고 저를 탓하십니까? 사촌 오라버니는 제가 경성에 가기 전부터 이미 육부의 아가씨와 교제하며 다른 마음을 품었습니다.”“그것은 모두 너의 추측일 수 있다. 누군가 헛소문을 퍼뜨려 오해하게 한 것이다.” 대만창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돌아왔으니 며칠 집에 머물다가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거라. 서신을 써줄 테니 그것을 가져가거라. 네 고모는 네가 어려서 따지지 않을 것이다.”하진이 대만창의 말을 끊었다. “사촌 오라버니와 육부 아가씨가 이미 정혼했다는 것을 아십니까?”대만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조용히 생각하는 동안, 하진은 마음속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대만창이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씨 가문에게 분노하며, 욕설을 퍼붓고 위로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대만창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예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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