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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같은 향, 다른 시대

Penulis: 쭈의잔상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9 20:17:54

향 냄새가 장례식장 안을 침울하게 메웠다. 부모 곁에서 조문객을 맞던 우성은 친구들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초겨울이 스며든 검은 코트를 입고 나타난 천호가 그대로 멈추어 우성의 눈을 마주했다. 단정하고 깔끔한 코트 차림의 예진도 토트백을 두 손으로 가만히 쥐고서 그의 옆에 멈추어 섰다.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천호가 조심스럽게 우성에게로 걸어갔다. 그동안의 공백을 서둘러 채우려는 듯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안았다. 우성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삼키고 입을 열었다.

“...와 줘서 고맙다.”

초췌한 우성의 모습을 본 예진은 눈물이 났지만, 괜스레 퉁명스러운 말부터 꺼냈다.

“연락하고 사는 게 어렵냐? 이럴 때만 부르고 있어...”

“그러지 마. 이럴 때라도 부른 게 어디야. 난 얘 어떻게 된 줄 알았어.”

천호와 예진의 타박에 우성이 미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정희가 손님들과 대화를 끝내고 천호와 예진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 꾸벅 목례하며 말했다.

“많이 힘드시죠?”

천호의 다정한 말에 정희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이니?”

그녀가 우성의 팔을 슬쩍 잡으며 물었다. 우성이 그녀에게 친구들을 소개했다.

“아, 여기는 제가 다니던 병원의 원장 옥천호, 그리고 여기는 그 앞에서 카페를 하는 도예진이에요. 둘 다 대학교 때부터 친구예요.”

“그렇군요, 늘 얘기만 듣다가 이제야 보네요. 먼 길 와 줘서 고마워요. 식사는 했어요? 얼른 저기 가서 식사부터 해요.”

정희가 우성과 친구들을 살갑게 챙기며 말했다. 천호와 예진은 얼떨결에 정희의 손에 끌려가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성이 너도 얼른 와서 같이 밥 먹어. 계속 서 있었잖아.”

정희의 말에 우성도 그들 뒤를 따라갔다. 세 사람은 어쩐지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쳤다. 천호가 테이블 위에 수저를 나누어 놓으며 우성에게 물었다.

“그... 물어봐도 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천호에게 우성이 되물었다.

“뭘?”

“아니... 병원 다시 나오긴 할 거지? ...네 자리 아직 그대로 있어.”

조심스러운 말투에도 우성은 천호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괜스레 젓가락을 들어 아무 반찬이나 입에 넣었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던 예진이 답답하다는 듯 우성에게 말했다.

“그냥 나와 이제 좀. 내가 소연이한테 카페에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할게.”

“그, 그래. 소연 씨랑 한 계약도 손해 좀 보고 파기하든지 할게.”

갑작스레 나온 소연의 이름에 우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천호가 예진을 팔꿈치로 툭툭 치며 눈치를 보냈지만 예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얘도 계속 수의사 구해 봤는데, 진짜 솔직하게 너만 한 사람이 없어. 지분도 없으면서 자꾸 공동 운영하는 거 아니냐고 돈 더 달라고 따지는 아저씨도 있었어.”

“...”

“그리고 소연이 걔가 나쁜 년인 거 내가 인정할게. 걔가 아주 얼씬도 못 하게 할 테니까 제발 복귀해서 다시 좀 열심히 살아.”

예진이 우성의 손목을 잡으며 그를 설득했다. 그 모습을 본 천호가 슬쩍 예진의 손을 치우고 자신의 손을 우성의 손 위에 올리며 말했다.

“그래, 제발. 내가 걔 잊으라고는 안 할게. 그래도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잖아.”

우성은 천호에게서 손을 슬쩍 빼며 대답했다.

“고마워... 생각해 볼게. 근데 지금은 정신이 좀 없네.”

“...”

우성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예진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

“아휴, 정신이 하나도 없네... 다녀왔어요!”

연서가 약초가 한가득 담긴 바구니를 반들반들한 툇마루에 올려놓았다. 어진은 곧장 마당을 지나 안방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도 큰 소리로 금선을 향해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잠시 후, 안방 문이 끼익 열리며 금선이 얼굴을 내보였다. 그녀가 아직 평상복 차림인 것을 본 연서가 안방을 향해 걸어갔다. 달여 놓은 약재 냄새가 방 안에서 옅게 풍겨 나왔다.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본 금선이 물었다.

“무슨 일이 난 게냐? ...아까 바깥에서 소리가 많이 나던데.”

“네, 큰일이 났지요. 전하께서 이틀 전에 승하하셔서, 오늘부터 국상이에요. 마땅한 상복이 있으세요?”

이에 금선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그간 전쟁 나고 상복 벗을 날이 없었는데 그 무슨 우스운 질문이냐?”

그녀의 말에 연서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치... 걱정을 해 드려도 뭐라셔요? ...곧 저녁밥 지을 테니 상 놓을 자리 만들어 놓으세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연서의 뒤를 어진이 따라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 금선은 상복을 꺼내기 위해 몸을 일으켜 낡은 농으로 다가갔다.

이리저리 옷을 찾던 그녀는 남자 옷을 발견하고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단정하게 개어져 조금 눅눅한 냄새를 풍기는 그 옷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옆으로 치워 놓고 계속해서 자신의 상복을 찾았다.

한편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던 연서와 어진은 남겨 둔 고기를 지금 먹어도 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국휼에는 고기 금지라면서요. 지금 국에 넣으려는 이거, 이거 고기 아니에요?”

“거, 건들지 말어. 손모가지 날아간다?”

연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어진이 낚아챈 고깃덩이를 가리켰다. 어진이 짚으로 묶인 고기를 더욱 흔들어 대며 말했다.

“지금 이거를 국에다 넣어서 한 번에 처리하겠다, 이럴 작정이 아니냐고요.”

“사설이 길구나, 우리 어진이가. 국상에서 금지된 건 도축이지, 육식이 아니잖아.”

이에 어진이 연서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그 말이 그 말이죠. 동기들한테도 고기 먹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하아... 너 그럼 이걸 버리니? 아깝게. 왜란 때 굶어 죽을 뻔한 걸 다 잊어버렸어? 그리고 우리가 고기를 먹는지 안 먹는지 누가 안다고 갑자기 난리야?”

“하늘이 알죠, 하늘이.”

연서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구수한 밥 냄새가 퍼지고 국 끓는 소리만 이어지며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연서가 포기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얇게 썰어서 소금으로 절이고 말려서 졸곡 이후에 먹자. 그건 괜찮지?”

“괜찮고 말고요. 그때 먹기로 하죠.”

“에휴... 그 고기를 어떻게 구한 건데... 너는 아무래도 고생을 덜 한 거 같아, 내 생각에는.”

연서의 비난에도 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를 꺼내 썰기 시작했다.

---

“너는 담배도 안 피는 애가 여긴 왜 왔어?”

예진이 의외라는 듯 우성에게 물었다. 그 말에 우성이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그냥... 맑은 공기 좀 마시고 싶어서.”

그의 엉뚱한 말에 예진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무슨 흡연장에 와서 맑은 공기 타령이야.”

“...”

우성이 오돌토돌한 벽에 몸을 툭 기댔다. 그의 시선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허공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또각거림이 낯선 뚜벅거림과 함께 들려왔다. 우성과 예진은 본능적으로 발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검은 울 코트에 딱 붙는 니트 원피스를 입은 소연이 정장 차림의 남자와 팔짱을 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우성과 예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당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두 사람의 불쾌한 구두 굽 소리가 우성과 예진의 앞에서 멈추었다.

“...나는 왜 안 불렀어?”

그녀의 목소리에 우성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그녀를 마주하기 힘들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예진이 연기를 후- 길게 내뱉으며 소연이 하는 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소연은 예진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우성만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나 할머님하고 아는 사이잖아. 이러면 내가 서운하지...”

“...대체 어떻게 알고 왔어?”

참다 못한 우성이 고개를 들며 따져 물었다.

“할머님 카톡 프로필에 부고장이 올라왔던데.”

어색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갔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 이제 괜찮다고.”

“...”

소연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진은 돌아가는 상황이 어이가 없어 두 사람을 계속 번갈아 쳐다보았다. 뭔가를 생각하던 소연이 옆의 남자의 팔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여기는 내 남자 친구. 여기까지 태워 준다길래 같이 왔는데, 괜찮지? 전 남친 조부모님 장례라고 했는데도 엄청 쿨하게 태워 줬어.”

“어휴... 미친년.”

예진이 참다 못해 욕을 뱉었다. 이에 소연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데 욕이나 하고 너무하네. 그리고 너는 ‘내’ 친구잖아... 왜 오빠가 아니라 나한테 그래?”

“친구니까 하는 말이야, 이 정신 나간 년아. 대체 뭐 하는 건데, 이게?”

예진이 화가 난 표정으로 꽁초를 재떨이에 던졌다. 소연도 기분이 나쁜지 웃음기가 사라진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앞선 소연의 소개와는 다르게, 그녀의 ‘남자 친구’는 마냥 쿨하지는 않은지 우성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우성은 이 불쾌한 자리를 빨리 뜨고 싶어서 소연에게 말했다.

“가.”

“...진짜 너무한다, 오빠. 여기 왕복 여섯 시간이란 말이야. 차 막히면 일곱 시간이고.”

소연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는 예진과 우성을 보며 소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애써 미소 지으며 우성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연락할게. 부의도 많이 했으니까 나중에 답례품도 줘야 돼, 알았지?”

소연의 말에 예진은 화가 나는지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우성은 걸어가는 소연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수세미를 널고 솥에 기름칠까지 한 연서는 마침내 길고 긴 하루 일과가 끝났음에 마음이 기뻤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곧장 걸어가기 시작했다. 처마 밑의 약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바스락거렸다. 맑은 밤공기가 연서의 마음도 한결 가볍게 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자, 따뜻한 종이 냄새가 흙 냄새와 뒤섞여 나고 있었다. 서둘러 아랫목에 요와 이불을 깐 그녀는 베개를 목 뒤에 받치고 누웠다. 연서가 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하아...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국휼 선포로 일정에 여유가 생긴 연서는 은근히 설레었다. 국상이 정기적으로 생기면 좋겠다는 굉장히 불충한 생각마저 잠깐 했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의인왕후의 국상 때 그녀는 꽃다운 열여덟이었다. 기생으로서 정진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는 어느새 스물여섯의 어엿한 사기가 되어 있었다.

‘그땐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더 일하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쉬는 게 더 좋아.’

점점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불충을 합리화하던 연서는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휩쓸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에 뒤척이던 우성은 몸을 일으켜 유족 휴게실 안을 둘러보았다. 기껏해야 네 명 남짓 누울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우성은 왠지 넓은 자신의 집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잠 못 드는 우성을 발견한 예성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안 자고 뭐해?”

“어? 아... 잠이 잘 안 오네.”

우성이 멋쩍은 말투로 대답했다. 예성은 하품을 크게 하고는 우성에게 말했다.

“잠이 안 오면... 가서 지키고 서 있든가.”

“...”

예성의 무심한 말에 우성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우성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가만히 앉아 오래된 냉장고가 내는 소리를 듣던 우성은 본의 아니게 소연이 했던 이상한 행동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부터 이상했었는데 이제야 발견한 걸 지도.

여튼 이별 후에도 계속 찾아오는데다, 아무렇지 않게 새 남자 친구를 전 남친에게 데려오는 행동들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뭐, 전 남친을 보러 가겠다는 여친을 따라오는 그녀의 ‘쿨한 남자 친구’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말이다.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그녀와 평생 함께하고 싶었던 마음에도 처음으로 균열이 일었다. 이번에는 정말 그녀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우성은 밤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는 채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만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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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인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연서를 업은 우성이 집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무심코 마당으로 발길을 옮기다 대청에 앉아 있는 어진을 보고 기겁하며 뒤로 돌아섰다. 업혀 있던 연서는 우성이 재빨리 방향을 바꾸자, 금방 상황을 눈치채고 숨을 죽였다.하지만 너무 급하게 몸을 튼 나머지, 몸이 흙벽에 스치며 중심이 흔들렸다. 흙벽이 부스러지며 퍼석 소리가 났다. 담장이 낮았기 때문에 연서를 업은 채로 몸을 완벽히 숨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우성과 연서는 눈을 마주친 채 긴장감을 나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간절함을 배신하며 어진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 앞에 다다른 어진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아예 숨길 생각도 없네...”우성이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연서는 그에게 매달린 채 어진을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우성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그... 잠깐... 뒷간을 좀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연서가 입을 벌린 채 그를 쳐다보았다. 열받은 그녀가 우성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게 산책보다 더 큰 문제예요...”“흠... 분명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여전히 아녀자와 뒷간 얘기하시는 걸 좋아하시네요.”어진이 비아냥거리듯 그에게 말했다. 두 여자의 협공에 우성은 억울한 기분이 들어 대답했다.“아니 왜 나한테만...”“저야 늘 언니 편이니까 견우님한테만 말씀드린 거고요,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언니도 곧 혼날 거예요.”그녀가 얄밉게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연서도 곤란한 표정을 하며 우성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금선이 문을 벌컥 열며 방에서 나왔다.“그냥 아예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북이라도 치고 오지 그러냐? 그럼 이리 숨어 다닐 필요도 없을 텐데.”연서가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우성이 그녀를 다시 고쳐 업으며 금선에게 대답했다.“계속 누워만 있으면 회복이 더뎌지고 욕창이 생겨 다른

  • 봄 향기로 수놓다   1-17 아픔은 달빛에 흩어지고

    하루도 쉬지 않던 연서의 몸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점점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 일으키자니 팔꿈치와 어깨가 아팠고, 그렇다고 엎드리자니 허리와 목이 불편했다. 조금씩 옆으로 눕는 게 가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동 범위가 극히 좁아 답답했다.삼십 대를 굳이 맞아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지만, 이내 그녀의 자존심이 그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한계를 느끼고 독서를 포기했다. 연서는 책을 바닥에 던지듯 툭 내려놓으며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책이 바닥에 툭 쓰러지며 [詩經]이라고 쓰인 표지가 보였다.“흐아아-”연서가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는 했지만 바르지 않은 자세로 이미 수없이 읽은 책을 또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이 점차 고요해지는 듯싶었다.“아하하! 아이참, 다시 해 보세요. 왜 이렇게 못 하세요?”바깥에서 어진의 목소리가 창호지를 뚫고 들어왔다. 우성과 무엇을 하는지 마당에서는 자박자박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곧 우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이게 지금 무게 중심이 하나도 안 맞는 거 같아요.”“와 진짜 안 해 보셨나 보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사내가 되어서 이런 것도 안 해 보고 뭐 하셨어요?”연서는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이겨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조금 들어 올리고, 조심조심 팔꿈치를 짚어 기듯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방문 앞에 도착한 연서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끼익-연서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우성과 어진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에엥? 언니! 왜 일어났어요?”“...뒷간 가시게요?”우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스레 말했다. 무례한 우성의 말에 연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하... 아녀자한테 그런 거 묻지 마세요... 나 참, 숨 쉬듯 무례하네.”“...”우성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진도 그런 우성을 타박하며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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