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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ผู้เขียน: 정대천
"작은 마님, 작은 마님..."

귀에 익은 여인의 목소리가 신수빈의 귀를 뚫고 들어왔다.

‘어머님을 모시던 이의 목소리였던 것 같은데...'

"다들 작은 마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큰 마님 측에서 이미 여러 번 재촉을 해오셔서 서둘러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큰 마님께서 이 혼사는 폐하께서 친히 내리신 혼사이니 작은 마님께서 마음이 편치 않으시더라도 오늘만큼은 부디 후부의 체면을 위해 첩실차(妾室茶:새로 들어온 첩이 올리는 차)를 들라 하십니다."

내실에 들어선 오상댁은 아직 꾸미지 않은 신수빈의 모습에 몸종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뭣들 하는 게냐? 어서 작은 마님의 치장을 돕지 않고! 나리께서 새 부인을 맞이하는 길시를 놓친다면, 네들 명줄을 내놓아야 할 것이야!"

그렇게 얼떨결에 신수빈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하인들에 둘러싸여 꾸며졌다. 능화경(菱花鏡:일종의 거울)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는 한없이 맑았다. 의아함에 신수빈은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매만져봤으나 불에 그을린 흉은커녕 오히려 살결이 부드러웠다.

'설마... 환생이라도 한 거야? 윤서원이 첩을 들인 그날로?'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신수빈은 어느새 끌려가다시피 전청(前廳:현관홀)에 당도해 있었고 밖에서 터지는 폭죽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화려한 등불 사이로 남녀가 붉은 비단을 손에 잡은 채 서서히 전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다.

모든 액운의 시작은 이날부터였다.

혼인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이재민을 구하러 나간 윤서원은 태후의 손에서 자란 서화 군주와 대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서로 진심으로 사모한다고 말했었다.

그야말로 일파만파였다.

갓 혼인한 정실 신수빈은 권세 있는 가문 출신은 아니었지만, 신씨 가문은 전조(前朝:전대의 왕조) 때부터 이미 나라를 대적할 만큼 부유했고, 지금의 신조에 돈과 식량을 줄곧 제공해 온 집안이었다. 비록 봉작은 얻지 못 했지만 조정에서 해금을 해제한 뒤 바다로 나가는 특권을 신씨 가문에게 내린 덕에 남쪽의 관원들조차 그들에게 아부를 떨어야 했다.

그랬기에 신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런 모욕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윤서원은 신수빈을 부인으로 맞이하기 위해, 신씨 가문 저택 앞에 무릎을 꿇고, 이번 생은 오직 그녀만을 사랑하겠노라 하늘에 맹세한 바 있었다. 그 맹세에 신씨 가문 사람들은 독녀인 신수빈과의 혼인을 허락한 것이다.

그러나 혼인한 지 고작 석 달 만에 윤서원이 다른 여인과 함께 조정의 대전 앞에서 서화 군주를 사모한다고 말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어린 황제는 아직 세상 이치를 알지 못했다. 그의 귀에 맴도는 소리는 오직 노발대발하는 태후의 목소리와 신하들의 의논 소리뿐이었다.

주서화를 아꼈던 태후는 그녀를 평처(平妻:정실은 아니지만 정실에 준하는 부인)로 올려, 정실부인인 신수빈과 나란히 하길 바랐으나 대신들과 백성들의 항의에 결국 주서화의 군주 칭호를 박탈하고 평양후 세자의 귀첩(贵妾:일반 첩보다 귀한 신분)으로 혼인을 하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칭호를 박탈한다고 한들, 혼례는 여전히 예부가 나서서 주관하였기에 공주의 혼례와 다를 게 없었다.

이는 태후의 뜻을 고스란히 보여줬고 감히 그런 귀첩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문득 전생에 혼령으로 지낼 당시, 주서화가 털어놓던 혼인날 합방의 진실과 그녀가 집으로 들어온 후 저지른 일들이 떠오른 신수빈의 눈에는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악귀가 되더라도, 이번 생은 내 반드시 이 가문 사람들과 함께 지옥으로 가겠어!'

곧 천지 신령님께 절을 올린 윤서원과 주서화가 신수빈의 앞으로 다가왔다.

윤서원의 무정함과 득의양양해하던 주서화의 표정, 그리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살려달라는 애원하던 어린 자식의 모습.

그 모든 게 눈앞에 아른거리자 신수빈의 두 눈은 점차 핏기가 서리고 가슴에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신수빈은 차오르는 역겨움에 순간 목구멍에서부터 비릿한 냄새와 함께 피가 솓구쳤지만 그녀는 애써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가문의 어두운 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녀는 오늘 같은 날 그 어떤 흠 잡힐 일도 하면 안 되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광증으로 몰려 갇힐 게 뻔했고 이를 빌미로 신씨 가문을 착취할 것도 뻔했다.

윤서원은 재해 구역에서 돌아온 뒤, 주서화와의 혼인으로 바삐 돌아쳤기에 오늘 신수빈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화청(花廳:화원 등에 설치된 비교적 크고, 아름답게 장식된 응접실)에 앉은 그녀는 얼굴에 엷은 분칠을 했음에도 기품이 화려해 봄빛처럼 밝게 빛났고, 고개를 살짝 숙여 내려트린 눈매마저 청초해 보였다.

화려한 옷차림의 주서화도 그런 그녀에게 반도 못 미칠 정도였으니, 신수빈의 미모는 실로 아름다웠다.

천하 으뜸 가는 미녀라는 칭호는 역시 괜히 붙은 별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혼 첫날밤을 떠올린 윤서원은 이내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눈에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반면, 무릎을 꿇은 채 하인에게서 차를 받아 든 주서화는 버들개지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언니, 차를 올리겠습니다."

전생의 신수빈은 질투와 억울함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차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를 본 윤서원은 여린 몸의 주서화가 무릎을 오래 꿇고 있지 못한다며, 난처하게 굴지 말라 했었다.

그 한마디에 경중에 소문이 무성해졌다. 신수빈이 질투심에 태후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고, 공공연히 서화 군주를 괴롭힌다고.

환생한 지금의 신수빈은 여전히 차를 주서화의 얼굴에 들이붓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의 끈이 그녀를 말렸고, 그녀는 한 손으로 찻잔을 든 채 주서화를 일으켜 세우며 웃는 얼굴로 응했다.

"앞으로 한 집식구이니, 이리 예를 차릴 필요 없다. 회임한 지 두 달이나 된 몸으로 무리하지 말고 어서 일어나거라. 복중에 태아가 더 중요한 법이지 않느냐."

얼굴이 삽시에 창백해진 주서화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그러다 이내, 실언했음을 깨닫고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언니, 그런 말을 어찌 함부로 하십니까? 전 결백한 몸으로 이 집안에 시집온 것입니다. 근데 어찌 절 이리 욕보이시는 겁니까?"

말을 마친 주서화가 눈물을 훔치며 다시 울먹였다.

"저도 압니다. 언니께서 태후마마가 하사하신 이 혼사를 아니꼽게 여긴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와 오라버니는 진심으로 서로 연모하고 있습니다. 제가 군주라는 칭호를 마다하고, 첩실로 들어왔는데도 정녕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그래서 이리 절 욕보이시는 겁니까?"

전생에 주서화와 함께 지낸 몇 해 동안 신수빈은 그녀의 얕은수를 진작에 파악해 왔었다. 주서화는 늘 이런 수단으로 사람들의 동정을 사곤 했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구시렁거리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하나둘씩 들리기 시작했다.

"회임한 지 벌써 두 달이라니. 그때는 정실부인과 혼인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지 않소?"

"어디 그뿐이오? 그때는 나리가 남쪽에서 수해복구를 하고 있을 때고, 백성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잖소. 그런데 어찌 저런 망측한 짓을..."

"서화 군주는 정원왕의 자손인 데다 태후마마의 손에서 자란 귀한 분이신데,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진 않소."

"옳소. 저 정실부인이 탐탁지 않은 마음에 거짓 발언으로 군주의 명성을 더럽히고 있을 줄도 모르잖소."

사람들의 의논에 따라 상황은 점점 뒤바뀌고 있었다.

"그러냐?"

신수빈이 짐짓 놀란 듯했고, 맑디맑은 눈망울에는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난 서방님께 들은 얘기를 그대로 했을 뿐인데 거짓일 리가? 나와 혼례를 올린 뒤로 서방님께서는 재해 구역으로 바로 떠나셨다. 서방님께서는 너의 애틋한 마음을 헤아려, 천리를 달려 널 만나러 갔다가 아이가 생겼다고 하던데... 날짜를 따져보면 지금쯤 아마 두 달 하고 보름은 되었겠구나."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이젠 한 집 식구인 마당에 내가 너희 모자를 잘 돌볼 테니."

주서화가 도움의 눈길로 윤서원을 바라봤다. 연약하고 무력한 그 눈빛은 마치 왜 연관 없는 사람에게 이 일을 알렸는지 그에게 캐묻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뜻을 알아챈 윤서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거냐?"

그 말에 모든 손님이 일제히 신수빈을 바라봤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 신수빈이 자책하듯 서서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전 관례대로 어머님께 문안드리려고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날이 더운 탓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몸종들에 의해 안방으로 옮겨진 뒤였고, 정신이 들 때쯤 우연히 서방님과 어머님의 대화를 듣게 된 것입니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진작에 서화를 데려와 돌봤을 텐데... 그럼, 저들 모자가 이 더운 날에 명분도 없이 서방님을 따라 돌아다니지도 않았을 테죠."

예상치 못한 답변에 윤서원을 포함한 윤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이 달라졌다. 자리에 있던 손님들도 어리석은 자들은 아니었기에, 단연 신수빈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온 집 식구가 이 사실을 알고도, 본처를 속였다는 말 아니요?"

"평소에 자애로워 보이던 평양후 큰 마님이 며느리를 이리 가혹하게 대할 줄이야."

"게다가 한 해 중 제일 더운 이 유월에 며느리를 마당에 저리도 오래 세우다니! 관례대로라고 하는 걸 보니 분명 하루이틀 아니었을 테죠."

"저 작은 마님도 참으로 가엽지... 혼례를 올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구박을 받고 살다니. 사람을 이리 대할 거였으면 애당초 떠들썩하게 구혼은 왜 한 것인지."

"그건 자네가 몰라서 그렇네. 저 작은 마님의 친정댁은 우리 대주 왕조에서 제일가는 부자일세. 섭정왕께서 남하하여 반란을 평정했을 당시, 신씨 가문에서 군자금과 기계, 병마, 식량은 물론 돈까지 전폭적으로 지지했다지."

"나도 그 얘기는 들은 적 있소. 섭정왕께서 천하를 평정한 뒤로 남쪽에서 장사를 더 크게 한다 들었소. 게다가 지금은 바다로 나가는 특권까지 쥐고 있어 국고를 능가하는 부를 갖고 있다 하오. 어쩌면 이 점을 노리고 혼례를 올린 것은 아닐지..."

사람들의 의논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고,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윤서원의 정곡을 찔러댔다.

애당초 신수빈과 혼인한 목적이 바로 돈이었으니.

반면 신수빈은 속으로 냉소를 터트릴 뿐이었다.

탓하려거든 전생에 사람을 잘못 본 저 자신을 탓해야 했다.

전생에 신수빈은 윤서원을 심성이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수많은 혼수를 들고 평양 후부로 시집왔었다.

그러나 이런 처지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윤서원은 어두워진 얼굴로 죽일 듯이 신수빈을 노려봤다.

윤서원은 원래 신수빈이 쥐 죽은 듯 얌전히만 있으면 평양 후부의 작은 마님으로서 끼니 정도는 챙겨 줄 생각이었으나, 그녀가 만에 하나 후부의 체면에 먹칠이라도 할 심산이라면 그도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연회 준비가 끝났으니, 다들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연회는 태후마마의 명으로 내무부에서 직접 주관하셨고, 음식 또한 태후마마께서 직접 하사하신 것이니 다들 황은을 마음껏 누리십시오."

체면이 깎일 대로 깎인 윤서원은 태후를 내세워 화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평양 후부 대감마님과 큰 마님이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연민의 눈길로 신수빈을 바라봤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돈 많은 댁의 여식이면 뭐한담. 곧 있으면 저 아리따운 외모도 사라지고 이 집안을 먹여 살릴 처지가 될 터인데.'

*

신혼부부가 합방에 들어서자 화청에 있던 사람들도 뿔뿔이 훑어지고, 신수빈과 몸종밖에 남지 않았다.

신수빈은 여전히 핏기 서린 두 눈으로 붉게 장식된 저택 곳곳을 둘러봤다. 서쪽으로 지는 뜨거운 태양은 마치 그날의 뜨거웠던 온도처럼 세상 만물을 태울 것만 같았다.

두려움과 무력함과 절망이 교차하는 기색으로 말없이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몸종은 제 주인이 안쓰럽고 걱정됐다.

'나리께서 첩을 들인 일이 여간 충격이었나 보네.'

"아씨, 이만 돌아가시지요."

몸종의 부름에야 신수빈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내가 또 전생에 악몽 같은 그날로 빠져있었나 보군...'

그녀는 고개를 숙여 아직 평평한 아랫배와 가녀린 허리를 내려다봤다. 회임한 지 석 달 됐지만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는 혼인 첫날 밤에 회임 된 것이다.

전생에 주서화가 승자의 자태를 뽐내며 사실을 털어놓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주서화와 윤서원이 합동하여 죽인 아이가 실은 오늘날 나라를 군림하는 섭정왕 이도현의 아이라는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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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52화

    “후작께서 어젯밤 천향루에 가셔서 흥청망청 즐기시다가, 한 번에 일곱, 여덟 명의 아가씨를 불러 지나치게 노셨답니다. 결국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천향루 쪽에서는 후작을 저희 문 앞까지 실어다 놓고,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은 채 두었어요. 후작께서 부르신 아가씨들 값을 아직 치르지 않았다며, 돈을 갚아야 시신을 들여보내겠다고 합니다.”신수빈은 자신이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인지,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뭐라고요? 아버님께서… 어떻게 되셨다고요?”“후작께서 천향루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집 마담이 시신을 실어다 놓고 갔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신수빈의 머릿속이 번쩍 맑아졌다.방금 전까지 남아 있던 두통도, 어지러움도 말끔히 사라진 듯했다.“어서, 단장부터 하거라.”이렇게 기쁜 일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신수빈이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정월 열흘, 별다른 일 없는 날이라 소문을 들은 이들이 너나없이 몰려든 것이다.천향루의 마담이 이토록 대놓고 후작부 문 앞에 와서 돈을 요구하는 것도, 결국 윤 가를 만만히 본 까닭이었다.장안에서 이 정도 규모의 기루를 운영할 정도라면, 그곳의 명기들 뒤에는 하나같이 권세 있는 후원자가 붙어 있는 법이었다.그러니 그 마담의 눈높이도 자연히 높아져, 요즘처럼 집안에 사건이 끊이지 않고 남자들마저 실권이 없는 후작부 따위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신수빈은 문 앞에 서서 당당하게 떠드는 마담의 목소리를 들었다.“난 겁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 천향루에 드나드는 분들이 다 어떤 분들인데요. 자기 능력에 맞게 노는 법인데, 나이도 꽤 드신 분이 한 번에 일곱, 여덟 명을 부르더군요. 저는 분명 말렸습니다. 감당 못 하실 거라고, 둘쯤 줄이시라고요. 그런데요? 이 평양후라는 양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열 명이든 여덟 명이든 다 거뜬하다고 하더군요. 이 꼴 보세요. 몸이 버티질 못해서 쓰러지고, 우리 집 아가씨들만 놀라게 만들었잖아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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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수혁은 그녀가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곁에서 조심스레 팔꿈치를 받쳐 주었다.“괜찮으십니까?”신수빈은 그의 도움을 받아 옆에 놓인 의자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가느다란 숨을 힘겹게 고르고 있었다.“저는 괜찮아요. 그럼… 혹시 번거로우시겠지만, 아주버님께서 저 두 아이의 상태를 좀 봐주시겠습니까?”윤수혁은 흩어진 머리칼이 양 뺨으로 흘러내린 채, 이마를 괴고 힘없이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잠시 고개를 숙여 시선을 떨군 그는, 목울대를 크게 한 번 움직였다. 이내 약간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그는 곧 돌아섰다.신수빈은 탁자에 몸을 기대듯 엎드린 채, 약효가 가신 뒤에도 남아 있는 무력감과 어지러움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죽은 이는 평양후였다.윤수혁이 그와 아무리 멀어진 사이라 해도, 엄연히 그의 친부였다.그런데 지금 자신은 그에게서 받은 팔찌로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이 일은…얼마 지나지 않아 윤수혁이 다시 들어왔다.신수빈이 탁자에 엎드린 채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아직 약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것이라 여겼다.그는 급히 다가오며, 염려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우선 나가시지요.”몸을 굽혀 그녀를 안아 들려는 순간, 신수빈이 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주버님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윤수혁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미묘한 죄책감이 어려 있었다.“사실은…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헌데 저를 지킬 방법이 없어서… 그래서…”말을 끝맺기도 전에, 윤수혁의 낮고 무거운 음성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 사람은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신수빈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윤수혁의 얼굴에는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가운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저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기억이 생겼습니다. 세 살 되던 해, 어머니께서 갑자기 사라졌고…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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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신수빈은 힘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는 몸으로 침상 위에 그대로 내던져졌다.평양후는 침상 위에 무기력하게 누운 신 씨를 내려다보며, 옷깃에 달린 옥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담담했다.“서원에게 후사가 없다면, 나도 이런 짓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아이를 양자로 들이느니, 차라리 네가 직접 낳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그리하면 너도 친자를 얻게 되고, 내 혈맥 또한 끊기지 않을 테니.”신수빈은 눈을 크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이토록 파렴치한 생각을 품고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평양후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침상 곁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옷깃을 풀기 시작했다.“밖에서는 아무도 서원이 사내로서 구실을 못 한다는 걸 모른다. 네가 영리하다면, 이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시아버지와 며느리다. 집안의 권력은 네 손에 쥐여 주마. 밖에서는 내가 널 지극히 아끼고 보살피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신수빈의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그가 침상 위로 올라오고, 손을 뻗어 자신의 옷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 모아 팔찌의 장치를 눌렀다.그의 팔에 닿게 한 채, 장치가 열리며 독이 스며들게 했다.잠시 뒤, 평양후는 낮게 신음을 흘리며 눈을 크게 떴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신수빈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다행히도 이 팔찌 속 독은 정말로 피를 타고 즉시 목숨을 끊는 맹독이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침상 바깥쪽에 쓰러져 있었고, 그녀의 바로 곁에 있었다.그런데 자신은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만약 누군가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명예는 그대로 끝장나고 말 터였다.이 미약의 약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었다.‘제발, 제발… 내가 움직일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들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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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서원이 어떻게 마상풍 이후 반신불수가 되었는지는 금자와 은보 모두 잘 알고 있었다.그런 윤서원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에 평양후가 신수빈을 부르자, 금자와 은보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신수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보, 내 화장함 맨 아래 칸에 있는 팔찌를 가져와라.”평소 신수빈은 윤서원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다.평양후가 사람을 시켜 그를 별채로 옮겨둔 뒤로는, 찾아가도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 의원의 말이라 사람을 만나게 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지금 그가 정말로 호전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만약 그녀가 그를 만나러 갔다가 윤서원이 무언가를 입 밖에 낸다면, 그 팔찌 하나로 아무도 모르게 그를 죽일 수 있었다.그 팔찌는 윤수혁이 그녀에게 건네준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었다.윤수혁의 물건으로 윤서원을 죽인다라...그녀도 본래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은보가 물건을 가져오자, 신수빈은 그것을 손목에 끼며 말했다.“너희 둘 다 나와 함께 가자. 왕야께서 내 곁에 암위를 붙여두긴 했지만, 여긴 후작부 내택이다. 그들이 늘 곁에 붙어 있을 수도 없고, 무슨 일이 생겨도 곧장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할 거다.”두 사람은 짧게 대답하고,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채 그녀를 따랐다.윤서원이 머물고 있는 별채는 비교적 외진 곳에 있었고, 평소에는 평양후 쪽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 다른 이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신수빈이 도착하자 누군가가 안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금자와 은보가 함께 들어가려 하자,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그 모습을 본 신수빈은 막 내딛던 발을 거두었다.“이 아이들은 내 곁을 지키는 시녀들이다. 어째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냐?”“후작의 명입니다.”신수빈은 코웃음을 쳤다.“그렇다면 나도 들어가지 않겠다.”그녀가 그대로 돌아서려는 순간,안쪽에서 평양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여보내거라.”문지기들은 더 이상 금자와 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48화

    금자는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도대체 왜죠!”신수빈은 옅게 웃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신격처럼 떠받들어지는 절대적인 황권은 누구도 쉽게 흔들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기다려라. 그렇다면 하나씩, 차근차근 너희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 주겠다.’이도현에게 시간이 없는 것처럼, 신수빈에게도 여유는 없었다.지금의 윤 가는 이미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다.큰 마님은 세상을 떠났고, 서 씨는 광기에 빠졌으며, 둘째 마님은 내쫓긴 데다 친정까지 죄를 받아 몰락했다. 이제 셋째 마님마저 형옥에 끌려간 뒤 아무 소식도 없었다.삼방 쪽에서는 몇 차례나 사람을 보내왔고, 셋째 대감과 넷째 도련님 일가도 여러 번 창란원에 찾아와, 신수빈에게 호국부인의 이름으로 청을 넣어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신수빈은 단호히 모두 돌려보냈다.“숙부님, 도련님, 참 우스운 말씀을 하십니다. 제게 무슨 낯이 있어 호국부인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천자의 노여움을 산 사람을 구하겠습니까?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숙모님 곁에 있던 유모는 제가 아이를 낳던 날 부자를 들고 와 독을 쓰려 했고, 다른 이들과 짜고 저를 암살하려 했습니다. 제가 왜 그런 사람을 구해야 합니까?”“수빈아,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 아니냐. 이번 일을 겪었으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게다.”“제 목숨은 단 한 번뿐입니다. 누군가의 인성을 다시 시험해볼 만큼 가볍지 않아요. 숙부님, 도련님, 저는 산후라 몸이 좋지 않으니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신수빈의 거절은 더없이 분명했다.셋째 대감은 속으로 분노를 삼키면서도 감히 드러내지 못했고, 넷째 도련님은 어쩔 수 없이 윤수혁을 찾아갔다.윤수혁은 지금 금군에서 요직을 맡아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그의 말을 들은 윤수혁은 짧게 물었다.“둘째 제수씨는 뭐라 하더냐?”넷째 도련님이 신수빈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 윤수혁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네 형수가 말을 제대로 안 했느냐, 아니면 네가 사람 말을 못 알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447화

    황권이 절대적인 시대에, 천명이 깃드는 것은 곧 신앙과도 같았다.그것은 조정 대신들뿐 아니라 백성들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믿음이기도 했다.애초에 그들의 믿음 속에서 천명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었다.만약 백성들이 천자에 대한 공경을 잃게 된다면, 세상은 곧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다.전 왕조가 바로 그러했다.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권좌에 올랐기에,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공경이 사라져 있었다.만약 천자와 그 어머니가 신성한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고, 그 일이 세상에 퍼진다면 백성과 조정 대신들의 믿음은 흔들릴 것이다.이는 역대 왕조마다 이어져 온 규범이며, 누구도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따르고 지켜온 질서였다.또한 바로 그 때문에, 예언과 하늘의 경고는 백성들 마음속에서 황권보다 더 무겁게 받아들여졌다.그들은 예언 한마디에도 동요했고, 때로는 반란까지 꿈꾸게 되었다.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은 곧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이었다.이것이 바로 왕도였다.이도현은 어려서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황형이 세상을 떠난 뒤, 그에게 자식이 있음에도 자신이 왕위를 잇는다면 형이 죽고 아우가 뒤를 잇는 형국이 되어 명분이 서지 않았다. 아직 평정되지 않은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그는 어린 천자를 즉위시켰다.그래야만 이 강산을 더 확실히 장악하고, 끝내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기에 그는 태후를 단번에 죄로 다스릴 수 없었다.그저 ‘병이 들었다’고 하게 한 뒤, 훗날 ‘세상을 떠났다’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장월의 작위를 빼앗듯 정식으로 죄를 묻는 방식은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오직 ‘하늘’만이 ‘천자의 어머니’를 벌할 수 있을 뿐이었다.신수빈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했지만, 이도현은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눈앞의 혼란은 반드시 수습해야 했고, 더 이상 사태가 번져 백성들 사이로 퍼져 나가게 둘 수는 없었다.금군이 셋째 마님을 끌어낸 뒤, 내관이 천자의 조칙을 전했다.윤씨 셋째 마님 유씨는 어전에서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48화

    은보가 막 들어오려 하자 이도현이 손을 휘저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도현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내가 왕비를 모시는 건 어떠느냐?”신수빈은 그와 이렇게 가까워지는 것이 싫어 고개를 틀며 그의 은근한 접근을 피했다.“왕야께서는 하루 종일 소동을 피우셨습니다. 돌아가 쉬셔야지 왜 제 방에서 시간을 허비하시는 겁니까?”이도현은 그녀가 전처럼 온순하게 순응하지 않으며 몸을 빼는 모습에 곧장 그녀를 안아 들어 정실로 향하고자 했다. 이에 신수빈은 다급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47화

    태의가 떠난 뒤, 신수빈은 금자와 은보, 그리고 주서화의 두 시녀만 밖에 남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주서화는 침대의 다른 쪽에 있었는데 한 사람은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분노에 몸을 일으키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다.신수빈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윤서원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담담했다.“태의께서는 제때에 도착하셨고 원래는 서방님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침대에 마비된 상태로 누워 있을 필요는 없었단 말입니다.”윤서원은 그 말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52화

    “왕야, 저는 지금도 여전히 윤서원의 부인입니다. 그가 이렇게 된 마당에 계속 이곳에 둘 수는 없지요. 우선 그를 데리고 함께 장안으로 돌아가려 합니다.”이도현은 원래 신수빈을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곧 선황의 제향을 준비해야 했고 그녀를 돌볼 시간도 없었으며 호심도에서와 같은 일이 또 생길까 두려워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크게 놀랐으니 오늘은 편히 쉬거라. 내일 본왕이 사람을 보내 너를 데려가게 하겠다.”“왕야께서 정사에 바쁜데 굳이 마음을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금자와 은보만 함께하면 됩니다.”이도현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53화

    잠에서 깨어난 윤서령은 온몸에 멍 자국이 가득한 채 알몸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애써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희미하게 떠오르는 건 이도현이 사람들을 시켜 자신에게 억지로 약을 들이부었던 순간뿐, 그 뒤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몸을 조금 움직이자 하필 그곳에서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다. 윤서령의 뺨이 이내 붉게 달아올랐다.‘섭정왕께서 당시 꽤 화가 나 보였는데 결국은 나를 총애했단 말인가?’어제 입었던 옷은 이미 찢겨 입을 수 없게 되었고 곁에는 새 옷 한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윤서령은 아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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