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소린은 듣는 내내 거의 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유소린은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난 지금 가치관이 조금 삐뚤어졌고... 돈 앞에서 눈이 뒤집힌 거네.’만약 유소린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받았을 것이다.안 받으면 손해 그 자체였다.송지한이 다시 말했다.“만약 하지율 씨께서 끝까지 거절하신다면 손 대표님 지분은 5년 동안 동결됩니다. 동결 기간 하지율 씨는 언제든 마음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송지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다만 손씨 가문 상황이 특수하다 보니 실제로 5년을 온전히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건 손 대표님께서 최대한 확보해 두신 기간입니다.”다시 말해 하지율은 5년 안에 언제든 선택을 바꿀 수 있었다.주용화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혹은 급한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 손씨 가문의 지분을 받아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다만 손형원의 압박이 없는 상태에서 그 지분이 정말 5년 동안 온전히 동결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어쩌면 길어야 2, 3년일 수도 있었다.하지율이 그 시간을 놓친 뒤 후회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손형원이 하지율을 위해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송지한은 당장 하지율의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하지율 씨께서는 지금 바로 대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막 돌아오신 참이니 처리하실 일도 많으시겠죠. 아직 손 대표님 실종 기간이 길지 않기에 손씨 가문도 그렇게 빨리 수배령을 내리지는 못할 겁니다. 그동안 천천히 생각해 보셔도 됩니다.”말을 마친 송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몇 걸음 걷던 송지한은 무언가 떠올린 듯 다시 멈춰서 하지율을 바라봤다.“하지율 씨, 손 대표님께서 하지율 씨의 손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의사를 찾아 두셨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하지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송지한은 바로 알아차렸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소린이 배웅하려 했지
하지율은 유소린에게 말했다.“소린아, 송 비서를 서재로 안내해 줘. 나는 먼저 화야 씨의 상태를 좀 보고 올게.”유소린은 알겠다고 답한 뒤 송지한을 데리러 갔다.하지율이 다시 방으로 돌아가자 주용화는 여전히 깊게 잠들어 있었다.하지율은 처음에는 주용화를 깨우려 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편히 자는 모습을 보니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잠시 고민하던 하지율은 메모 한 장을 남긴 뒤,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왔다....하지율이 서재에서 잠시 기다리자 유소린이 송지한을 데리고 들어왔다.송지한을 보자 하지율도 곧 기억났다.예전에 병원에서 손형원을 마주쳤을 때 몇 번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다만 이름까지는 몰랐을 뿐이었다.하지율은 송지한에게 앉을 자리를 권한 뒤 물었다.“송 비서님이 굳이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뭔가요?”송지한은 서류봉투에서 몇 장의 문서를 꺼내 하지율의 앞으로 내밀었다.“이건 손 대표님께서 제게 맡겨 두셨던 지분 양도 계약서입니다. 먼저 확인해 보시죠.”‘지분 양도 계약서라고?’유소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하지율은 지분 양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아마 주용화가 함께 있어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유소린은 송지한이 건넨 서류를 받아 하지율에게 넘겼다.하지율은 서류를 펼쳐 훑어봤다.손형원이 섬에서 보여 줬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계약서였다.하지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송지한이 먼저 말했다.“며칠 전에 손 대표님의 헬기가 추락한 일은 이미 손씨 가문에서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송지한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현재 손씨 가문에서 계속 수색과 구조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만... 아직까지 손 대표님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아마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하지율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날 손형원은 총까지 맞은 상태였고 거기다 폭우와 거센 파도까지 몰아쳤다.설령 총상을 입지 않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바다에 추락해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송지한이 말을 이
눈앞의 주용화는 하지율도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하지율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허락했다.“좋아요.”하지율의 대답을 들은 주용화의 얼굴에는 마침내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하지율은 직접 주용화가 잘 자리를 깔아 주었다.불을 끄자 하지율은 곧 깊이 잠들었다.드디어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날 밤 하지율은 아주 깊게 잠들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바깥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하지율은 문득 무언가 떠올라 바닥 쪽을 바라봤다.주용화는 아직 자고 있었다.이렇게 늦게까지 잠든 주용화는 보기 드물었다.하지율은 조심조심 침대에서 내려와 씻었다.막 세수를 마쳤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하지율이 문을 열자 유소린이 문밖에 서 있었다.유소린의 표정이 어딘가 묘했다.그러자 하지율이 물었다.“소린아, 왜 그래? 표정이 왜 이래?”유소린은 방 안을 힐끗 들여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화야 씨는?”“아직 자고 있어.”유소린이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챈 하지율은 방 밖으로 나와 문을 조용히 닫았다.하지율이 물었다.“무슨 일 있어?”유소린이 말했다.“방금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어. 밖에 송지한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대. 너를 만나고 싶다고 했어.”하지율은 송지한이라는 이름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송지한 씨라고?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유소린이 대답했다.“손형원의 비서래. 이번에는 꼭 너를 만나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어.”손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하지율의 표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유소린은 하지율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지율아, 만날 거야?”하지율이 말했다.“들여보내.”유소린은 조금 놀란 듯했다.“정말 만날 거야? 화야 씨가 알면...”하지율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날 화야 씨가 손형원에게 총을 쏜 건 본 사람이 많을 거야. 아마 이미 소문도 퍼졌겠지. 손형원은 아무리 그래도 손씨 가문의 가주이니 함부로 죽여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하지율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손형원이 죽으면 손
손형원이 하지율을 좋아한다는 건, 적어도 하지율의 신변에는 큰 위험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런 극단적이고 위험한 사람에게 납치된 채, 외딴섬에 한 달 넘게 갇혀 있었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그래서인지 하지율이 무사히 돌아왔고 모두 한자리에 모였는데도 분위기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하지율에게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하지율 역시 모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굳이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하지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번에 저를 도와줘서 다들 고마워요. 다들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요. 오늘은 일단 푹 쉬어요. 내일 제가 밥이라도 한 끼 살게요.”하지율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정기석은 원래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지율 씨, 그럼 먼저 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하지율은 직접 정기석을 현관까지 배웅했고 주용화도 자연스럽게 하지율의 뒤를 따라왔다.원래 정기석은 하지율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주용화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걸 보고는 결국 인사만 남기고 떠났다.처음에는 하지율도 크게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했다.하지율이 어디를 가든 주용화가 따라왔다.심지어 하지율이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조차 주용화는 문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그제야 하지율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잠시 고민하던 하지율은 결국 주용화와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주용화에게만큼은 분명히 말해 줘야 했다.방 안으로 들어온 하지율은 자신과 주용화 앞에 각각 물 한 잔씩 내려놓았다.주용화는 하지율이 건넨 컵을 받아 들며 말했다.“고마워요.”하지율은 주용화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화야 씨, 사실 저랑 손
주용화는 조심스럽게 하지율의 손을 감쌌다.그러더니 낮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율 씨...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정말 미칠 것 같아요.”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맞닿았다.그러다가 하지율은 문득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마치 잘 자라는 인사라도 건네듯 하지율은 가볍게 주용화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화야 씨, 이제 자요.”주용화의 몸 상태는 이미 한계에 가까워져 있었다.결국 하지율이 곁에서 달래 주자 주용화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원래는 소파에서 자겠다고 했지만 하지율이 끝까지 말렸다.사실 하지율은 전혀 졸리지 않았고 오히려 정신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하지율은 잠들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주용화는 이번에도 오래 자지 못했다.하지만 눈을 떴을 때 하지율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 그제야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걸 믿게 됐다.정말 하지율이 돌아와 있었다....열여덟 시간의 비행 끝에 하지율은 마침내 M국으로 돌아왔다.공항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정기석, 고지후, 강병주, 그리고 함우민까지 모두 공항에 나와 있었다.하지율이 이미 주용화와 연인 관계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들 걱정은 했지만 최대한 절제하고 있었다.하지만 함우민만큼은 달랐다.좀처럼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급히 앞으로 다가오더니 숨이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지율 씨, 괜찮아요?”하지율은 이미 유소린에게서 이번 일에서 함우민 역시 거의 잠도 못 자며 꽤 많은 도움을 줬다는 걸 들었다.사람 마음은 결국 기울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함우민이 했던 과거의 행동들이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하지율을 직접 해친 적은 없었다.그래서인지 유소린도 예전만큼 함우민을 싫어하지는 않았다.하지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태도 역시 비교적 부드러웠다.“저는 괜찮아요. 이번 일을 도와줘서 고마워요.”그러자 함우민은 서둘러 말했다.“그렇게까지 말 안 해도 돼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오래 알던 사이잖아요. 당연히 도와
그러자 하지율이 물었다.“나머지 사람들은? 이 틈에 움직이지 않았어?”유소린이 대답했다.“연상진은 소아린한테 붙잡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이미 의욕도 다 잃은 상태라 너희가 실종된 일에도 별 관심이 없더라. 연상준도 딱히 움직임은 없었어.”유소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오히려 연재영이 계속 뭔가 하려는 것 같았어. 자기를 지지하는 주주들이랑 손잡고 일을 벌이려 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실패했더라.”“나중에는 방향을 바꿔서 단보현이랑 손잡고 네가 가진 주문을 빼앗으려 했는데... 그것도 왜인지 실패했어.”하지율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율은 주용화가 이렇게 오래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니 꽤 오래 잠들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한 시간 조금 지났을 무렵, 주용화는 갑자기 놀라 깨어났다.팔뚝의 힘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그러자 하지율은 주용화를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화야 씨, 악몽 꿨어요?”하지율의 목소리를 듣자 주용화가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하지율을 본 순간, 주용화는 그대로 하지율을 꽉 끌어안았다.호흡은 거칠게 흐트러져 있었고 눈동자에도 혼란스러운 빛이 떠올라 있었다.“지율 씨... 제가 꿈꾸고 있는 게 아니죠?”주용화의 목소리는 세차게 떨렸다.“제가 정말 지율 씨를 찾은 거죠?”하지율은 주용화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화야 씨, 꿈이 아니에요. 제가 정말 돌아왔어요.”그 말에 주용화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다.“몇 번이나 지율 씨가 돌아오는 꿈을 꿨어요. 그때마다 정말 돌아온 줄 알았어요.”주용화의 목소리는 낮고 쉬어 있었다.“그런데 지율 씨를 찾으러 나가 보면... 전부 꿈이었어요. 방금 있었던 일도 전부 꿈일까 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지율 씨에게 말을 걸지도 못했어요. 말을 거는 순간 꿈이 깰까 봐요.”그동안 주용화가 잠든 시간은 많지 않았다.그 몇 분도 안 되는 잠 속에서도 주용화는 늘 하지율을 찾는 꿈을 꾸었다.그만큼 주용화는 하지율을 찾고 싶었고
하지율 손목이 부어서, 당분간 바이올린은 어렵겠다.며칠 연습을 비워도 큰 타격은 없으니, 그 사이 유소린과 음악회 준비를 맞춰 보기로 했다.주용화는 하지율이 이틀쯤 연습을 못 한다는 말을 듣고, 눈에 띄게 속상해했다.유소린이 그걸 보고 웃었다.“지율이 바이올린 연주가 그렇게나 잠이 잘 와요? 하루만 못 들어도 밤새 뒤척이게?”농담이었는데, 주용화가 의외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지율 씨 연주는 몸과 마음을 풀어 주는 힘이 있어요. 하루만 못 들어도 밤새 잠이 오지 않아요.”유소린이 잠깐 멍해졌다가 감탄했다.“화야
“윤택아, 이모가 이따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 만들어 줄까?”임채아를 보자, 고윤택은 얌전히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채아 이모.” 그리고 옆에 서 있던 하지율을 흘깃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채아 이모, 저는 이따가 엄마랑 돌아가야 해요.”임채아는 그제야 하지율을 본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하지율 씨도 계시네요? 윤택아,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니?”고윤택이 대답했다.“외할아버지 보러 왔어요.”“외할아버지?” 임채아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러더니 놀란 듯 하지율을 바라봤다.“하지율 씨 아버지
고지후의 말뜻은 하지율을 선택하겠다는 것이었다.하지율은 약간 놀랐지만 또 고지후의 상황이 이해되기도 했다.고지후는 항상 이성적이고 차가운 사람이었다.하지율은 차갑고 표독스러운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개를 돌리자 임채아가 입술을 꽉 깨물고 붉어진 눈으로 하지율을 노려보았다.임채아는 고지후가 두 사람 중에서 하지율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분명 임채아를 위해서 하지율과 이혼했으면서 말이다.그런데 왜 하지율을 선택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지율은 차갑게 웃었다.임채아는 죽을병에 걸렸다고
유세진은 고민하는 듯싶더니 고개를 들고 웃으면서 얘기했다.“하지율, 당신은 정말 설득을 잘해.”하지율이 유세진을 보면서 물었다.“그럼 대답은?”유세진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총명한 사람과 대화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네. 솔직히... 죽이기 아까울 정도야.”하지율이 미소를 지었다.“내 사심도 있어. 고윤택은 그래도 내 아들이니까 살리고 싶어. 그리고 나도 살고 싶지. 당신을 돕는 건 나를 돕는 것과 같아.”유세진은 솔직한 하지율을 보면서 만족해했다.“하지율 씨처럼 총명한 사람은 정말 죽이기 아까워. 이렇게 하자. 고지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