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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름

Penulis: 데이지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31 14:21:42

법원 앞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소란스러울 거라 예상했던 마음과 달리,

건물은 무심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드나들 뿐이었다.

이수는 계단 아래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곳에 서 있는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느껴졌다.

하빈이 몇 걸음 앞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두툼하지 않은 파일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무게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들어 있는 결정들이었다.

“곧 끝나.”

그가 말했다. 확신에 찬 말투였다.

위로도 격려도 아니었다. 사실 전달에 가까웠다.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이 호흡이 이 일의 마지막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대기실의 의자는 딱딱했고, 벽에 걸린 시계는 초침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시간은 이곳에서 유난히 솔직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이름이 불렸다.

최진상이라는 이름. 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이름은 이제 그녀가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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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33. 잔향

    미용실 문을 닫고 나서도 공기는 한동안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방금 전까지 서 있던 사람의 온도가 의자와 거울에 얇게 남아 있었다.남자는 떠났지만, 시선은 아직 접히지 않았다.여자는 거울을 내려놓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손바닥에 남은 차가움이 현실보다 먼저 몸에 남아 있었다.“괜찮아요?”이수의 질문은 확인이 아니었다.지금은 괜찮지 않다는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도 아니었다.그저, 다음 말을 꺼낼 수 있는 상태인지 가늠하는 말이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늦게, 그러나 분명하게.“아까요.”여자가 말했다.“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처음엔 저를 보지 않았어요.”이수는 의자를 끌어, 여자 맞은편에 앉았다.이번에는 같은 높이였다.“그건,”이수가 말했다.“이미 시선이 바깥으로 나갔다는 뜻이에요.”“바깥이요?”“집 밖.”“관계 밖.”여자는 그 말을 곱씹었다.밖이라는 단어는, 항상 자유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추방에 가깝다.“근데,”여자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선생님을 보는 눈이… 이상했어요.”이수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여자가 표현을 찾을 시간을 줬다.“경계하는 눈도 아니고,”“무시하는 눈도 아니고.”여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마치… 계산하는 것 같았어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표현은 정확했다.“그 사람은,”이수가 말했다.“지금 상황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지 따지는 중이에요.”여자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아까보다 손이 덜 떨렸다.두려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를 바꾼 탓이었다.“그럼 이제,”여자가 물었다.“저는 뭘 하게 되나요.”이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하게 된다’는 말 속에는 이미 각오가 들어 있었다.“아직,”이수가 말했다.“아무것도 하지 마세요.”“아까는 다르게 움직이라고 하셨잖아요.”“그건,”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집 안에서요.”여자의 시선이 올라왔다.“밖에서는,”이수가 말을 이었다.“당분간 그대로예요.”“그대로요?”“네.”“

  • 불륜해드립니다.   32. 변수

    이수는 컵을 씻고 있었다.물은 따뜻했고, 거품은 금방 꺼졌다.손에 남은 감각은 물의 온도보다 오래 남았다.어제의 조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미용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그렇다고 조용하지도 않았다.밖에서 지나가는 발소리, 멀리서 들리는 차 소리,그 모든 것들이 유난히 또렷했다.기다림은 소리를 키운다.이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시간을 세는 순간,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지금은 마음이 아니라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전화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벨소리가 한 번 울리고, 두 번째 울리기 전에 이수는 받았다.“네.”여자의 숨이 먼저 들렸다.말보다 숨이 먼저 나오는 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이수 씨.”여자가 말했다.“조금… 달라졌어요.”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말을 더 하게 두었다.“어제,”여자가 천천히 말을 골랐다.“집에 늦게 갔는데요.”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자가 보지 못해도, 그 반응은 필요했다.“문 열자마자,”여자가 말을 이었다.“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 사람이.”“그리고요.”“식탁에 앉아 있었어요.”“제가 가방을 내려놓을 때까지, 고개도 안 들고.”이수는 컵을 내려놓았다.손끝에 힘이 들어갔다.침묵은 종종 준비 동작이다.“그 다음에,”여자가 잠시 멈췄다.“핸드폰을 봤어요.”“뭐라고 했어요.”“아무 말도요.”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그냥… 화면만.”이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그건,”“확인입니다.”여자는 잠깐 말을 잃었다.이수는 이어서 말했다.“아직은요.”“아직은 질문 단계예요.”“근데,”여자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오늘 아침에, 출근 안 했어요.”이수의 눈이 잠깐 가늘어졌다.예상보다 빠른 반응. 이건 계획에 없던 속도였다.“집에 있었어요?”이수가 물었다.“네.”“제가 나올 때까지.”이수는 잠시 침묵했다.이건 작은 변화가 아니었다.통제의 방식이 한 단계 올라간 신호였다.“지금은 어디세요.”“미용실 근처예요.”여자가 말했다.“그

  • 불륜해드립니다.   31. 조건

    이수는 예약장을 덮고 있었다.오늘은 비어 있는 칸이 많았다.비어 있다는 건, 기다린다는 뜻이 아니라 받을 준비를 끝냈다는 뜻에 더 가까웠다.문이 열렸을 때, 종소리는 길지 않았다.여자는 들어오자마자 의자를 끌어당겼다.이번에는 소파가 아니었다. 거울 앞이었다.“머리 할게요.”말이 짧았다. 결심한 사람의 말은 대개 그렇다.이수는 대답 대신 수건을 집었다.수건을 펼쳐 어깨에 두르는 동작이 느렸고, 그래서 더 분명했다.“어제,”여자가 말했다.“집에 갔는데…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이수는 빗으로 가르마를 나누었다.가위는 아직 들지 않았다.말이 어디까지 가는지 봐야 했다.“뭘 물었어요.”“어디 갔었냐고.”여자는 거울 속 자기 눈을 피했다.“왜 요즘 이렇게 늦냐고.”이수는 빗질을 멈추지 않았다.질문은 평범했다.문제는 질문의 순서였다.“예전에는,”여자가 말을 이었다.“그 다음에 꼭 덧붙였거든요. 괜찮냐고, 힘들었냐고.”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덧붙임이 사라진 시점이 이미 중요한 신호였다.“어제는,”여자가 낮게 말했다.“바로 핸드폰부터 봤어요.”이수의 손이 멈췄다.아주 잠깐.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이제는 가위를 들었다.“그래서,”이수가 말했다.“오늘은 여기 오신 거고요.”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엔 주저하지 않았다.“선생님.”여자가 말을 꺼냈다.“제가… 이혼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도망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이수는 가위를 내려놓았다.이 질문은, 머리 위에서 답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그건,”이수가 차분하게 말했다.“지금은 중요하지 않아요.”여자의 눈이 흔들렸다.“중요한 건,”이수는 말을 이어갔다.“어떤 선택이든, 지금처럼 중간에 멈출 수는 없다는 거예요.”이수는 의자를 한 칸 옮겨,여자와 같은 높이에 앉았다.거울을 사이에 두지 않았다.이제는 직접 마주 봐야 했다.“제가 이걸 받으면,”이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상담으로 끝나지 않아요.”여자

  • 불륜해드립니다.   30. 노출

    그는 그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었고, 급한 일도 없었다.그저 회사에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졌을 뿐이었다.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는 사실을 그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다.집에 도착했을 때, 집 안은 비어 있었다.불은 꺼져 있었고, TV도 켜지지 않았다.아침과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그래서 그는 안심하지 못했다.사람은 변화가 없을 때 가장 불안해진다.그는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던졌다.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아직 저녁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 아내가 돌아오기엔, 애매하게 비어 있는 시간이었다.그는 잠시 서 있다가, 부엌으로 갔다.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목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물을 한 컵 마셨다.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컸다.집이 조용할수록, 사람은 자기 소리에 예민해진다.그는 결국,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 봉투를 보았다.아침에는 없던 것이었다.얇고, 가볍고, 일부러 눈에 띄게 놓여 있었다.봉투 안에는 영수증 한 장이 들어 있었다.카드 결제 내역. 금액은 크지 않았고, 날짜는 오늘.상호명은 짧았다.‘장미 미용실.’그는 그 이름을 두 번 읽었다.소리 내지 않고, 입 안에서만 굴렸다. 낯설지 않았다.이미 머릿속에 여러 번 떠올랐던 단어였다.영수증을 다시 봉투에 넣으려다 말고, 그는 문득 손을 멈췄다.일부러 숨기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숨기지 않았다는 건, 보여도 괜찮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그는 봉투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두었다.그리고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기다린다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그를 조금 진정시켰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종소리는 없었고, 현관의 불이 켜졌다.아내가 들어오는 소리였다.“왔어?”그가 먼저 물었다.목소리는 최대한 평소와 비슷하게 냈다.아내는 신발을 벗으며 짧게 대답했다.“응.”그는 그 ‘응’이 아침의 ‘응’과 같다는 걸 알아챘다.같다는 건, 연습됐다는 뜻이다.아내는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테

  • 불륜해드립니다.   29. 징후

    “이상한 게 있어요.”여자의 말은 문을 닫자마자 나왔다.인사도, 머리 얘기도 없었다.말이 먼저 튀어나온 날은 대개, 집 안에서 이미 무언가가 시작된 날이다.이수는 계산대에서 벗어나, 테이블 쪽으로 의자를 하나 끌어왔다.앉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오늘은 말이 서서 나와도 되는 날이었다.“어젯밤에요.”여자가 말을 이었다.“제가 씻고 나오니까, 핸드폰이 충전기에 꽂혀 있었어요.”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핸드폰이 충전기에 꽂혀 있었다는 말에는 배터리보다 손길이 먼저 떠오른다.“평소엔요,”여자가 덧붙였다.“제가 알아서 하거든요. 그 사람은 만진 적도 없고.”이수는 컵을 하나 꺼내, 이번에도 물을 따르지 않았다.말을 계속 이어가게 두는 게 먼저였다.“그냥… 사소한 건데,”여자가 웃으려다 말았다.“아침에 나가려는데, 가방이 달라져 있었어요.항상 메던 게 아니라, 예전에 쓰던 걸 꺼내놨더라고요.”가방. 동선을 바꾸는 가장 쉬운 장치. 이수는 그 단어에 짧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누가 바꿨다고 생각해요.”여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확신은 이미 있었다.“그리고요,”여자가 말을 이었다.“제가 여기 온다는 말, 어제는 안 했거든요.”이수의 시선이 여자를 향했다.처음으로였다.“그런데,”여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오늘 아침에, ‘미용실 다녀와’라고 하더라고요.”이수는 잠시 침묵했다.이건 확인이 아니라, 감시의 인사였다.“그 말,”이수가 천천히 말했다.“톤이 어땠어요.”여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다정하지도, 화내지도 않았어요. 그냥… 알고 있다는 말투였어요.”아는 척하는 말투.사람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방식이다.이수는 마음속에서 단어 하나를 정리했다.징후.“오늘부터는,”이수가 말했다.“기억해두세요. 누가 먼저, 무엇을 알고 있는지.”여자는 눈을 크게 뜨지 않았다.이미 몸이 먼저 긴장하고 있었다.“그 사람이,”이수가 말을 이었다.“지금 하고 있는 건 확인이 아니라 대비예요.”“대

  • 불륜해드립니다.   28. 선긋기

    “이혼이라는 말이요.”여자가 그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이수는 컵에 물을 따르고 있었다.물이 넘치지 않도록, 정확히 선에서 멈췄다.넘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선명했다.이 단어는 넘쳐야 하는 말이었다.여자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오늘도 머리는 하지 않았다.이제는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였다.이 미용실은 머리를 핑계로 들어오는 곳이었고,나갈 때는 언제나 다른 이유를 안고 나가게 되는 곳이었다.“집에서요.”여자가 말을 이었다.“어제는… 갑자기 그 말을 하게 됐어요.”이수는 컵을 내려놓고, 여자를 바라봤다.이번에는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아닌 이수는 여자를 직접 바라보았다..이 단어는 직접 받아야 했다.“어떻게요.”“그냥…”여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이제 와서 단어를 되돌리고 싶은 사람의 숨이었다.“갑자기 입에서 나왔어요. 저도 모르게.”이혼이라는 말은 준비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쌓여 있던 문장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때, 그 자리에 가장 짧은 말 하나가 남는다.이수는 그걸 알고 있었다.“그 사람은,”이수가 물었다.“뭐라고 했나요.”여자는 고개를 저었다.“아무 말도 안 했어요. 처음에는… 웃더니, 그 다음엔 제 핸드폰을 봤어요.”이수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낮아졌다.핸드폰을 본다는 건, 말이 아니라 증거를 찾겠다는 뜻이다.“그냥… 괜히 그런 말 하지 말라고.”여자가 덧붙였다.“요즘 예민해서 그렇다고.”예민하다는 말은 상대를 상황으로 만들기 가장 쉬운 단어다.이수는 그 단어를 마음속에서 선으로 그었다.“그래서,”이수가 조용히 말했다.“그 말은 없던 일이 됐나요.”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대답하지 못한다는 건 이미 없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그런데요.”여자가 고개를 들었다.“집에 돌아와서… 그 말이 계속 남아 있었어요.제가 잘못 말한 건지, 아니면… 이제 와서 말한 게 늦은 건지.”이수는 잠시 침묵했다.이 침묵은 기다림이 아니라, 선을 긋는 시간이었다.“그 말,”이수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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