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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2 09:48:29

여자는 명함을 다시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앞면이 위로 향해 있었다.

이름과 직함이 또렷하게 보였다.

컨설팅 회사 소속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이수는 명함을 집어 들었다.

종이 질감은 평범했지만, 인쇄 상태는 지나치게 깔끔했다.

하빈이 다가왔다.

“어때.”

“조금 더 확실해졌어.”

“뭐가.”

“이 사람은 자기 얘기보다 내 반응을 보러 와.”

하빈은 명함을 받아 들여 천천히 읽었다.

“컨설팅?”

“사람을 분석하는 직업이네.”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질문이 그런 식이었어.”

하빈은 잠시 생각했다.

“누군가가 보낸 걸 가능성은.”

이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성급하게 이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직 연결고리는 없었다.

다만, 질문의 방향이 지나치게 정확하다는 느낌만이 남아 있었다.

“있지.”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근데 지금은 확정 못 해.”

저녁이 되어 미용실 문을 닫았을 때, 공기는 낮보다 더 차가워져 있었다.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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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177. 말을 줄이고 반응을 줄일 거야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조건을 바꾸는 쪽을 선택했다. 사소한 차이지만, 주도권의 감각은 중요했다.저녁이 되어 둘은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이수는 여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표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여자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이수 맞은편에 앉았다.“공간이 바뀌었네요.”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오늘은 여기가 편할 것 같아서요.”이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여자는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상대가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혼을 결심할 수 있을까요.”질문은 더 직접적이었다. 이수는 손을 모은 채 천천히 답했다.“결심은 할 수 있죠. 다만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는 알아야겠죠.”“사랑이 식은 것도 이유가 되나요.”“그게 제일 솔직한 이유일 수 있어요.”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빛은 여전히 계산적이었다.“상대가 억울해해도요.”이수는 잠시 시선을 낮췄다가 다시 올렸다.“그 억울함까지 감당할 자신이 있어야겠죠.”대화는 겉으로는 평범한 상담처럼 흘러갔지만, 이수는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질문의 방향이 자신의 과거와 묘하게 겹친다는 것을. 상대가 무너질 걸 알면서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었다.여자는 말을 마치며 덧붙였다.“원장님은 그런 선택, 해본 적 있나요.”카페의 소음이 순간 멀어지는 듯했다. 이수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제가 상담자가 되면 안 되겠네요.”가볍게 웃으며 넘겼지만, 속은 조금 식어 있었다. 여자는 그 반응을 오래 기억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상담이 끝난 뒤, 여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하빈은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가 카페 문을 나서는 순간,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수에게 다가왔다.“어땠어.”“이번엔 더 선명했어.”“뭐가.”“내 얘기를 끌어내려고 해.”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의뢰라기보단 조사 같지.”이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응. 감정 상담을 빌미로.”그녀는 커피잔을

  • 불륜해드립니다.   176.

    여자는 명함을 다시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앞면이 위로 향해 있었다. 이름과 직함이 또렷하게 보였다. 컨설팅 회사 소속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이수는 명함을 집어 들었다. 종이 질감은 평범했지만, 인쇄 상태는 지나치게 깔끔했다.하빈이 다가왔다.“어때.”“조금 더 확실해졌어.”“뭐가.”“이 사람은 자기 얘기보다 내 반응을 보러 와.”하빈은 명함을 받아 들여 천천히 읽었다.“컨설팅?”“사람을 분석하는 직업이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질문이 그런 식이었어.”하빈은 잠시 생각했다.“누군가가 보낸 걸 가능성은.”이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성급하게 이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직 연결고리는 없었다. 다만, 질문의 방향이 지나치게 정확하다는 느낌만이 남아 있었다.“있지.”그녀가 조용히 말했다.“근데 지금은 확정 못 해.”저녁이 되어 미용실 문을 닫았을 때, 공기는 낮보다 더 차가워져 있었다. 이수는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 법적인 문제인지, 감정적인 흔들림인지, 아니면 단순한 정보 수집인지.하빈이 옆에서 말했다.“너 혼자서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마.”“안 그래.”“지금도 그러고 있어.”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이번엔 같이 생각하고 있어.”그 말은 사실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혼자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판단을 미루고 있었다. 그게 더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집에 도착한 뒤, 이수는 명함을 다시 꺼냈다. 회사 이름을 검색해보니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홈페이지도, 사업자 등록도 정상적으로 보였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그 평범함이 다시 한 번 마음을 건드렸다.“너무 정상이야.”그녀가 중얼거렸다.“그게 왜 문제야.”“준비된 느낌이야.”하빈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그럼 준비된 사람을 상대하면 되지.”이수는 웃지 않았다.“상대가 누군지부터 알아

  • 불륜해드립니다.   175. 보통은 너무 솔직하려고 해요

    시술이 끝난 뒤, 여자는 계산을 하며 말했다.“원장님은 사람을 많이 보셨으니까, 거짓말도 잘 보이겠네요.”이수는 자연스럽게 웃었다.“직업병이죠.”“그럼, 거짓말하는 사람은 어떤 표정이에요?”“보통은 너무 솔직하려고 해요.”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여자의 눈빛이 아주 잠깐 멈췄다. 아주 짧은 정지였다. 그 찰나를 이수는 놓치지 않았다.여자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다음에 또 뵐게요.”문이 닫히고,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하빈이 다가왔다.“어때.”이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이번엔 확실히 이상해.”“어디가.”“질문이 점점 구체적이야. 그리고 내 대답을 기록하는 느낌이 들어.”“녹음?”“아니. 머릿속에.”이수는 거울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의자에는 여자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누굴 겨냥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시험하고 있어.”하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럼 우리도 지켜보자.”“어떻게.”“너는 평소처럼. 나는 주변부터.”이수는 그를 바라봤다.“무리하지 마.”“무리 안 해.”그는 차분하게 덧붙였다.“지금은 우리 쪽이 더 조용해.”이수는 그 말에 동의했다. 급하게 움직일수록 상대에게 실마리를 줄 수 있었다. 아직은 확실한 패턴이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얇은 균열선이 생겼다는 감각만이 분명했다.그날 밤, 이수는 창가에 서서 골목을 오래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차도, 그림자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자신을 향해 시선이 닿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어제의 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통화 기록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하빈이 뒤에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혼자 상상하지 마.”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상상은 안 할게.”그녀는 커튼을 닫으며 속으로 생각했다.‘이번엔 내가 먼저 흔들리지 않을 거야.’보이지 않는 기류가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 불륜해드립니다.   174. 균열선

    비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밤새 이어진 빗소리가 새벽까지 미묘한 긴장을 남겼고, 아침이 되었을 때도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수는 미용실 셔터를 올리면서 어제 만났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질문을 던질 때의 눈빛이 계속 걸렸다.“누가 먼저 끝내야 하는지.”그 말은 단순한 상담 질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수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질문은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이미 방향을 정해둔 사람의 질문에 가까웠다.하빈은 안쪽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수의 표정을 한 번 훑어보고는 아무 말 없이 컵을 건넸다. 억지로 분위기를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오늘 또 올 것 같아?”그가 조용히 물었다.이수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모르겠어. 근데 다시 올 거야.”“왜 그렇게 생각해.”“정리할 게 있다면서, 머리를 잘랐잖아. 그 정도 말투였으면 한 번으로 안 끝나.”그녀의 말에는 확신이라기보다 감각이 담겨 있었다. 사람의 눈을 오래 봐온 직업이 만들어낸 직관이었다.오전 예약이 한 차례 밀려들었다. 이수는 손님을 맞으며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머릿속 한쪽에서는 어제의 대화를 계속 복기하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고, 답을 확인하는 식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것이 이상했다. 보통 상담을 빌미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감정을 먼저 쏟아낸다. 그런데 어제의 여자는 마치 상대의 반응을 점검하듯 움직였다.점심 무렵, 이수는 잠시 손을 멈추고 하빈에게 말했다.“그 사람, 나를 보러 온 느낌이었어.”하빈은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췄다.“손님이 아니라?”“응. 머리 자르러 온 사람 같진 않았어.”“그럼 뭐 하러.”이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확인.”그녀의 말은 조심스러웠다.“뭘 확인해.”“내가 어떤 사람인지.”하빈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아직 확정된 위험은 없었지만, 이수가 허

  • 불륜해드립니다.   173. 누가 먼저 끝내야 하는가

    비는 밤새 내렸다.아침이 되었을 때도 공기는 축축했고, 골목 바닥에는 물이 얇게 고여 있었다. 이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미용실 문을 열었다. 비 오는 날은 이상하게 손님이 많았다. 머리를 정리하고 나면 기분도 정리된다고들 말했다.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특유의 샴푸 향과 따뜻한 공기가 맞았다. 이수는 불을 켜고, 기계 전원을 올리고, 커피를 내렸다.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그 리듬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그녀는 문 쪽을 한 번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골목도 한산했다.‘괜한 생각이었나.’어젯밤의 번호가 머릿속을 스쳤다.평범한 예약 문자. 하지만 그 짧은 교환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아 있었다.하빈이 조금 늦게 들어왔다. 우산을 접으며 말했다.“비 오니까 공기 좋네.”“응.”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건넸다.“어제 그 예약, 오늘 오지?”“응. 오후 네 시.”하빈은 별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그저 새로운 손님일 뿐이었다.오전은 분주하게 흘러갔다. 손님이 겹쳤고, 드라이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이수는 가위를 움직이며 평소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손은 안정적이었고, 말투도 부드러웠다.그런데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다는 걸 느꼈다. 이유를 찾으려 하자 더 어색해졌다. 손님을 보내고 나서야 숨이 조금 내려왔다.“괜찮아?”하빈이 물었다.“응. 그냥 좀 피곤해서.”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피로와는 다른 종류의 긴장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선이 닿는 느낌, 누군가가 한 발짝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기분이 스며들었다.오후 세 시 반이 조금 넘었을 무렵, 문 위의 종이 울렸다.이수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단정한 코트 차림에, 화장도 과하지 않았다. 나이는 서른 중반쯤으로 보였다.“예약하신 분 맞죠.”이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갑자기 연락드렸는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목소

  • 불륜해드립니다.   172. 기류

    며칠이 그렇게 흘렀다.특별한 사건은 없었고, 태훈 쪽에서도 더 이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미정은 상담을 이어가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고, 서연과 재호 역시 연락을 끊지 않은 채 관계를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사건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자, 미용실의 공기도 예전보다 느긋해졌다.이수는 오전 예약을 마치고 잠시 거울 앞에 섰다. 가위를 내려놓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거울 속 표정을 오래 보지 못했다. 눈이 마주치면 스스로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줄어든 덕분이었다.“왜 그렇게 봐.”하빈이 카운터 쪽에서 물었다.“나 좀 달라졌나 싶어서.”그녀가 대답했다.“응, 달라졌지.”“어디가.”“눈.”이수는 피식 웃었다.“그게 뭐야.”“전에는 늘 계산하고 있었어. 지금은 그냥 보고 있어.”그 말은 가볍게 던진 농담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계산하지 않는다는 건, 즉각적으로 방어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수는 자신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점심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이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받지 않았다. 벨소리는 곧 멈췄고, 이어서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예약 문의드립니다.]짧은 내용이었다. 이상할 것 없는 문자였다. 이수는 대수롭지 않게 답장을 보냈다. 예약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는 몇 마디의 메시지가 오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그런데 문자를 정리하고 나서도 묘하게 손끝이 차가웠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가 한 발짝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스쳤다.“뭐야.”하빈이 물었다.“예약 하나 잡혔어.”“왜 표정이 그래.”“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방금 전까지의 평온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 건 사실이었다.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미용실은 다시 바빠졌다. 이수는 손님의 머리를 자르며 대

  • 불륜해드립니다.   6. 오늘은 안 돼

    비는 새벽에 그쳤다가, 아침에 다시 내렸다.내리는 방식이 비슷해서 더 지쳤다.젖는 게 새롭지 않은 날이었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안쪽 공기는 눅눅했다.커피 냄새가 평소보다 무거운 건, 아마 습기 때문일 것이다.습기는 냄새를 붙잡고 오래 놓아주지 않았다.진상은 이미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오늘은 기계를 닦고 있었고, 천천히 닦는 손이 어딘가 과했다.바쁘지 않은데도 서두르는 사람처럼. 그런 날은 보통,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쉰다더니, 어떻게 왔어요?.”그가 말했다.물음이 아니라 확인이

  • 불륜해드립니다.   5. 흔들림

    아침 공기는 전날보다 무거웠다.비가 그쳤다는 사실보다, 언제든 다시 내릴 수 있다는 기척이 먼저 느껴졌다.습기는 벽에 남아 있었고, 냄새는 아직 빠지지 않았다.이수는 카페 문을 열며 잠시 멈췄다.안쪽에서 나는 소리가 어제와 달랐다.머신이 돌아가는 소리,컵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사람의 움직임이 섞여 있었다.진상은 이미 나와 있었다.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오늘은 왜이렇게 일찍 왔어요?”이수가 말했다.말끝은 가볍게 올렸지만 의미를 묻지는 않았다.“잠이 안 와서요.”그는 그렇게 답했다.변명처럼 들리지 않게,

  • 불륜해드립니다.   4. 닿은 손등

    비는 밤새 그쳤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아침이 되자 길 위엔 물기가 남았고,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다.무언가 씻겨 내려간 뒤의 냄새였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어제와 같은 말이었다.하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른 눈빛이었다.말보다 먼저 인식하는 방식.그건 습관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손이 앞치마 끈을 묶는 동안,진상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을 따라갔다.손목, 손가락, 매듭.이수는 그 시

  • 불륜해드립니다.   3. 틈

    카페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랐다.문을 열기도 전에 커피 향이 먼저 퍼졌고,기계가 예열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진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셔터를 올렸다.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였고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는 동작들이었다.이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자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계는 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네.”이수는 짧게 답했다.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온도는 없었다.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그녀는 카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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