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로하 공주는 지하실에서 오랜 시간 블러드에 관한 것들을 설명했다. 나 또한 그 내용들이 흥미로워 여러가지 질문들을 해가며 경청했다. 그녀는 내 반응에 내심 기뻐보였다. 오랜만에 코드가 맞는 친구를 만나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 처럼 조금도 입을 쉬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선 안된다. 눈처럼 하얀빛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저런 검붉은 피를 뒤집어쓰며 인체실험을 한다니. 공주는 이 실험실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이 처음 이 실험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다른 장군들과 장로들이 그런 비윤리적인 짓을 했다간 신께 미움을 받을거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말은 신의 미움 어쩌구하면서 반대한거지만… 사실 여왕식을 미루는 것을 못마땅하다 생각한거겠죠. 하지만, 이 실험들은 실제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신께 노여움을 사지도 않았고. 반대하던 이들이 제일 많은 블러드를 잡아오곤 한답니다.“ 여왕식이 정확히 무엇이냐 묻자, 공주는 짧게 ‘결혼식.‘ 이라 답했다. 이내 산처럼 쌓여 있는 블러드 사체 더미에 다가가 한 쪽 발로 그것의 머리를 즈려밟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것들은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요. 목이 잘려도, 몸이 두동강나도 쉽게 죽지 않죠. 어떻게든 제 몸을 찾아 재생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칼이나 창 같은 중금속 속에 나무 뼈대를 심어 만든 무기로 베면 재생할 수 없다는 것, 저주가 시작될 무렵 우리와 똑같은 형태로 교배를 시작해 아이를 만들어 번식한다는 것 등등.“ 이 공주는 나름 깨어있는 인재란건가. “그럼 이제 정확히 알려주시죠. 제가 뭘해야 하는지. 기도터가서 같이 기도하자는 건 아닐거 아니예요?“ 공주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 꽤나 마음에 드네요. 당돌한 것이 특히나. 좋아요. 원래는 좀 더 시간 끌다가 알려주려고 했지만-.“ 공주가 무엇인가 말하려는 찰나,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며 말했다. “제느 로하를 뵙습니다. 공주님. 곧 기도하
그딴 게 신의 배려라니. 차라리 저주를 없애주는 게 맞지 않나? 나는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를 간신히 참아냈다. “저주로 인해 세상에 균열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 그 미세한 틈 사이로 당신들 같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던 인간들이 간혹 흘러들어온다고 하죠. 실제로 저주가 시작될 때 마다 당신같은 인간들이 저주의 호수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그 쪽이 생각하시는 것과 같아요. 여긴 우리와 다름을 두려워하고 경멸하죠. ‘블러드’ 들 또한 당신들과 같은 색을 하고 있기도 하고… 우리의 안전이 우선이니까요.” 전부 죽였다는 뜻이군. 500년 전부터 저주 때 마다 이 곳으로 흘러온 나같은 사람들을… “블러드 저주가 뭐죠?” “블러드는 괴물의 이름이에요. 저주가 끝난지 얼마 안된터라 살아있는 건 볼 수 없지만, 죽은 사체는 왕궁 지하에 있습니다. 늘 사체를 몇 개 거두거든요.“ 나는 그것의 실제 모습이 궁금하다 말했고, 로하 공주는 흔쾌히 지하로 안내했다. 가는 길 동안 호위와 하녀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 뒤를 따라 붙으려 했으나 공주는 한사코 하지말라며 매섭게 거부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걱정이 한아름 고여있었다. “위험하니까 걱정해주는데 왜 그렇게 까칠해요?“ 나를 위험인물로 생각하는 건 어이없었지만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쓸데없는 인력낭비를 하려고 하니까요. 시키는 일이나 잘하지.” “공주님 걱정을 하는거잖아요.” “그게 쓸데없단 거죠. 여긴 내 왕궁이고, 당신은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은데 왜 걱정을 하냐고. 내 손짓 하나에 모든 게 끝나는네.” 진짜 말뽄새하고는.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난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녀는 아까 하던 메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기 시작했다. 블러드의 저주가 생겨날 땐 하늘이 붉게 물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주기는 보통 10년이라 했다. 짧은 저주의
그녀가 안내한 방은 다른 아까 있던 곳과는 반대로 휑한 공간이었다. 50평은 족히 넘어보이는 넓은 방에 있는 것이라곤 티타임을 즐기는 용도로 보이는 작은 탁상과 의자 몇 개 뿐이었다. “당신들은 하나같이 이 곳에 오면 자신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생각하는 ‘것‘ 같다고? ‘당신들은 하나같이’? ”그럼… 내가 죽은 게 아니라는거야?”“음… 네. 아마도요.” “지금 장난할 기분이 아니거든? 똑바로 설명해. 아마도는 뭐야?””제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저의 어머니들이 쓰신 이야기에 의하면 당신들은 죽은 게 아니에요. 저주로 인한 균열로 당신들이 이 곳에 흘러들어온 것이죠. 가장 신과 가깝게 소통했던 저의 어머니도 그렇게 기록해놨어요. 솔직히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로하공주는 아랫입술을 깨물곤 미간을 찌푸렸다. “미안한데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땀에 흠뻑 젖은 두 손을 무릎팍에 닦아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자세한 건 설명할 수 없지만, 이 곳 ‘메아리.’ 에 걸려 있는 저주… ’블러드’ 를 없애야만 당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확실해요.“ “그래서? 날 살려둔 이유가 그건가? 당신네들이 말하는 저주를 풀기 위해서?” “그거 외에는 딱히 없죠.” “내가 뭘해야 하지?” “조급해하지 마세요. 그건 차차 알려 드릴겁니다.”저 말을 신용할 수 없다. 방금 무언가 숨기는 것 같은 로하 공주의 뉘앙스도 찝찝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충 맥락을 보아하니 희한한 요술을 부리는 저 공주도 그렇고, 잘나셨다는 저 여자의 조상들도 저주를 못 풀어낸 듯 한데. 평범한 남성인 내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거절을 하겠다면?”“그럼 이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되겠죠. 당신이 죽어서 이 곳에 온건지. 여기에서 진짜 죽는 건지.” 공주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가녀린 작은 손. 자신에게 협조하라는 의미
“저거 달이야?” 끌려가던 몸을 멈추곤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물었다. 함께 움직이던 다른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내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 끝에는 붉은 달이 있었다. 이 곳에 오기 전 보았던, 피처럼 선명하고 새빨간. 하늘의 면적을 반쯤은 가린 것만큼 커다랗다. 저 색깔과 크기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더 말도 안되는 것은 달 옆에 처량하게 서있는, 10배는 아담한 사이즈의 태양이었다. 그래, 내가 알던 태양. 30년을 보고자랐던 눈부신 그 태양… 몇 번이나 눈을 씻고 확인해봐도 확실했다. 두 개의 행성이 같은 하늘에 공존하니 풍경색 또한 애매했다. 낮도, 밤도 아닌 초저녁의 하늘 같은. 주황빛을 내는 풍경. 아무리 규모있는 사이비 집단이라고 한들 하늘까지 조작할 수는 없다. “참나. 태양까지 있네. 이거 실화냐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더 놀란 눈으로 내게 물었다. “저주와 구원을 말하는 건가요?” “저주와 구원… 그건 또 뭔 이름이야?” 나는 되물었다. 이름의 의미 따위를 물은 것이 아니다. 왜 저것이 두 개가 동시에 떠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달은 왜 또 저런색인지. 내가 늪에 빠지기전에 보았던 달은 잘못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자연 이상 현상이란 건데,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온 지 고작 6개월. 그 사이에 우주의 공전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까? 심란한 내 마음을 약올리기라도 하는 듯 한 여자가 옆에서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신명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원래 이 메아리는 신의 구원만 있었어요. 신의 구원은 생명을 키우고 자라나게 하는, 우리가 살기 위해 가장 적합한 세상을 만들어주신 신의 선물이였죠. 몇 백 년 전에 마녀가 나타나 메아리에 블러드의 저주를 걸기 전까진 말이죠. 그 마녀가 걸은 저주가 당신이 가르키고 있는 저 붉은 것이랍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 의하면 원래는 신의 구원과 비슷한 크
정말 끔찍한 소리다. 머리 속에 뉴스에서나 보던 쇼킹한 내용들이 머리 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런식으로 나를 옭아메어 감금하려는 건 아닐까? 더 끔찍한 것은 여자가 사람들을 향해 이상한 손짓으로 무언가를 지휘하자 일제히 내 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제느에게 영광을!’ 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그 문구가 노래처럼 들려왔다.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멘탈이 깨지기 직전, 로하 공주는 내 팔과 다리 쪽을 향해 무언가를 읊조리며 손짓했다. 나를 단단하게 옭아매고 있던 포박의 압력이 순식간에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아까 봤던 나무줄기도 그렇고, 손도 대지 않고 포박이 풀린 것도 그렇고… 마법처럼 보이는 장치들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아 꽤나 정성스러운 사이비 집단임이 분명했다. “우선 제 핸드폰과 고양이를 좀 돌려주실 수는 없을까요? 휴대폰이 좀 그러면 고양이만이라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내가 아무리 잃을 것 없는 밑바닥 인생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이런 사이비 집단들 사이에서 세뇌나 당하고 살 수는 없었다. 지금은 최대한 이들의 심기를 맞추고 타이밍을 봐서 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휴대폰이라는 건 뭔지 모르겠고. 당신의 고양이는 제 방 침실에서 잘 자고 있으니 걱정 안해도 됩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이고, 제 개인 하인들도 여럿 붙였으니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고 있을겁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네로가 나보다 더 팔자가 좋군. 나는 한 끼도 못먹고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로 누워있었는데. “모두 들으세요. 여기 있는 이현오는 ‘검은 재앙의 잔여물.’이 아닙니다.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자제하고, 예우를 갖추세요. 이현오를 만난 오늘 우리는 천 년 째 이어오던 검은 재앙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된 날입니다.” 그 때, 누군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요란한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나 또한 마찬가지. 불쾌함을 적나라
꽤나 중요해 보이는 대화 속에서 산통을 깨는 행동이었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애초에 그 고양이를 찾기 위해 늪에 들어간 것이니 본전은 찾아야 않는가? 이 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대한민국 땅 안일테고,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굴에서 살아남는다 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인간 중 하나로써 충분히 해쳐나갈 수 있을거라 착각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 안에 있는 많은 하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하얀 머리털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느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특히 ‘공주님’ 이라고 칭하는 그 여자의 눈이 어찌나 날카롭던지. 순간 몸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검은 머리가 어딜 감히-!” 나와 가장 가깝게 있는 여자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달려올 기세로 소리쳤다. 이쯤되면 저들이 말하는 ‘검은 머리’ 라는 단어가 나를 칭하는 것 정돈 알 수 있고,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그 적대시의 정도가 살인에 가깝다는 것도. 움직이기 위해 상반신을 일으키자 내 팔다리가 포박되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순식간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순간 속에서 강렬한 생존본능이 일렁였다. 저들 눈에 서린 경멸과 분노 때문도, 손에 들려 있는 위협적인 창과 칼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포박되어 있는 내 몸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포스러운 상황이었으나 내게 강렬한 인상을 심은 것은 제느 로하 공주라는 여자와 마주치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과 눈동자 때문이었다. 비어있다고 하기엔 비집을 틈 없어 보이고, 사람의 눈이라고 하기엔 너무 차갑고 공허한. 저 인형같이 아름다운 눈동자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과연 교주를 할 정도의 포스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남자인 내가 쫀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더 쫄지 않은 척 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다소 건방한 표정으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