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Author: 어우야

1

Author: 어우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4 11:04:16

몽롱한 의식 속으로 톡토톡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성아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가슴을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이 맨살을 타고 흘러내렸다. 조금은 서늘한 공기가 맨 가슴에 와닿자, 어깨를 움츠리며 부르르 떨었다. 손을 들어 이마를 짚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가구나 소품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며 찌그러진 맥주 캔들이 눈에 거슬렸다. 낯선 풍경에 지난 밤의 기억을 더듬는데, 옆에서 팔 하나가 성아의 허리를 감아왔다.

“뭐야, 벌써 깬 거야?”

잠이 덜 깬 듯한 허스키한 남자 목소리, 성아는 인상을 쓰며 그 팔을 풀어냈다.

“여기 어디야?”

“기억 안 나? 내 집.”

남자는 가볍게 그녀의 손을 밀치고 그녀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남자의 힘에 이끌려 그 팔에 안긴 성아는 잠시 몸부림을 쳐 보았지만, 맨살에 와 닿는 타인의 피부가 묘한 기분을 불러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간밤에 너 정말 굉장했거든. 나, 사랑에 빠질 것 같아.”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웅얼대듯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광란의 클럽, 뜨거운 열기, 친구들과 지나치게 마신 술. 그리고 옆의 이 남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자고 술을 그렇게 마신 거야, 김성아! 자책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목덜미에 닿는 남자의 입김이 간지러워 몸을 움찔거렸더니, 남자가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느껴지는 말캉하고 따뜻하며 축축한 것.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이러지 마, 아침에 이러는 거 싫어.”

남자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의 혀는 집요하게 그녀의 민감한 곳을 자극했다. 어느새 숨소리에 묘한 콧소리가 섞이고, 남자의 머리를 밀어내던 손은 그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맨살을 천천히 쓸어 올리며 그녀의 가슴을 살짝 움켜쥐었다. 이에 반응하듯 살짝 열린 입술에서 신음소리가 흘렀다. 남자의 입술이 천천히 내려와 가슴을 머금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성아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그녀의 손이 남자의 뒷목을 쓸어내렸다. 탄탄한 어깨도 쓸고 너른 등도 스치듯 쓸었다. 그 손길에 남자는 고개를 들어 여자의 입술을 덮었다. 말랑한 입술을 물고 빨고 핥는 걸로도 성이 안 차, 살짝 벌린 입술 안을 파고들었다.

남자의 부드럽지만 힘 있게 움직이는 혀를 마음껏 맛보던 성아가 등을 어루만지던 손을 더 아래로 내려 남자의 단단한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맞댄 입술 사이로 남자의 신음이 흘렀다. 성아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지며 손을 더 아래로 내렸다. 드디어 만져지는 단단하고 뜨거운 그것. 손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묵직했다.

제법이잖아? 성아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민감한 움직임에 남자의 신음소리가 길어졌다. 길게 숨을 뱉어낸 남자가 성아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하아, 너 정말 마음에 들어.”

남자의 말에 성아는 다시 웃었다.

“나도. 나도 이거, 마음에 들어.”

남자가 급하게 성아의 입술을 삼켰다. 잔뜩 성을 낸 그것도 까딱까딱 보채기 시작했다. 손 안에 가득 찬 남성을 느끼며 성아는 눈을 감았다.

그래, 즐기는 거야.

****

5월의 햇빛이 따사로운 호후, 성아는 한산한 화요일 오후를 맞아 창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며칠 비가 왔던 터라 얼굴을 간질이는 햇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돌아온 터라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낮은 창문 앞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은 자세가 아슬아슬했다. 의자에 엉덩이를 살짝 걸친 채 두 다리를 창턱에 걸치고 있어 짧은 스커트 아래로 속옷이 보일 듯 말듯했다. 병원 대기실 안에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한 자세였다. 배도 부르고, 햇빛도 따뜻하고, 자세도 편안하니 살금살금 졸음이란 것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되는데, 선생님 오시기 전에 환자라도 오면 이상하게 볼 텐데. 머리로는 일어나야 한다고 했지만 노곤해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뭐, 문소리 들리면 일어나지 뭐. 조금은 귀찮아진 성아는 10분만 자자 하고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엘리베이터 문 열리는 소리가 잠든 그녀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 남자들의 말소리. 일어나야 하는데…….

‘이루어지리 비뇨기과’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리문이 열리며 달아놓은 작은 종이 땡그랑 울렸다. 감고 있던 성아의 눈이 반짝 떠졌다. 두 남자가 들어오다 성아의 모습을 보며 멈칫했다. 성아는 고개를 돌려 두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후 창턱에 올려놓은 다리를 천천히 내렸다. 나른한 그 움직임을 지켜보는 남자들의 울대가 꿀렁거렸다. 살짝 밀려 올라간 스커트를 끌어내리며 여자가 일어섰다. 뽀얀 허벅지살이 조금 가려지자 남자들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을 애써 허벅지에서 떼야 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쉬는 동안 풀어두었던 긴 머리카락을 한 가닥으로 모아 묶으며 성아가 물어왔다. 형민은 옆에서 입을 헤벌리고 있는 성훈을 한 번 흘겨보더니 팔꿈치로 옆구리를 푹 찔렀다.

“이 자식이랑 먹는 밥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여자의 자태에 넋이 나가있던 성훈은 형민의 말에 발끈했다. 걸신들린 놈처럼 잘만 퍼먹던 놈은 박형민이 아니고 빡형민이었냐?

“나 아니면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주제에, 지금 어따 대고 투정질이야?”

“됐거든?”

성훈은 옆구리를 문지르면서, 접수대로 걸음을 옮기는 성아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내밀었다.

“같이 먹었으면 밥맛이 더 좋았을 텐데요. 혼자 먹는 밥 지겹지 않습니까?”

“전 혼자 먹는 게 편해서 그래요. 커피 감사해요.”

생긋 웃는 얼굴로 커피를 받아들면서 ‘앞으로도 늬들이랑 밥 먹을 일은 없을 거다’를 못박아버린 성아 때문에 성훈의 표정이 가라앉아버렸다. 성훈이 추파를 던지는 꼴을 가만 지켜보던 형민은 실망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입가로 자꾸 배어나는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우리 김 간호사가 그렇게 쉬운 여자는 아니지. 네 놈이 백 번 찍어본들 눈 하나 깜짝 안할 거란다. 괜히 어깨가 으쓱거리는 걸 참으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 의자에 앉아 성훈이 당한 꼴에 고소해하며 히죽거리는데, 그가 형민을 따라 들어왔다. 문도 닫지 않은 채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더니,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성아의 뒷모습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우리 김 간호사는 말야, 앞태도 죽이지만 뒤태가 아주 예술이란 말야.”

성훈은 손가락으로 사각 프레임을 만들어 성아의 뒷모습을 부분부분 뜯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형민은 발을 높이 들어 성훈의 엉덩이를 밀어냈다. 간호사의 뒤태를 감상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한 성훈은 크게 한 번 휘청거리고는 꽈당,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성아가 뒤를 돌아보니, 킥킥거리는 형민의 앞에서 다리를 곧게 펴서 모아진 엉덩이를 맹렬한 기세로 문지르는 성훈이 보였다. 펄쩍펄쩍 뛰기까지 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김 간호사가 왜 너희 김 간호사냐? 우리 김 간호사지. 그리고 그렇게 속물처럼 굴 거면 너희 병원으로 그만 꺼져줄래?”

문지르던 엉덩이가 좀 나아졌는지 성훈은 양 손으로 형민이 앉아있는 책상을 꽝 내리쳤다.

“이 자식이, 내 엉치뼈에 금이라도 가면 어떻게 책임질 건데, 앙?”

“무식한 놈! 의사란 놈이 엉치뼈가 뭐냐, 엉치뼈가.”

“그래, 미안하다. 유식하기 그지없는 비뇨기과 변태 의사 선생님께 저속한 단어 ‘엉치뼈’를 사용해서. 변태 의사 선생님, 제 천골에 문제가 생기면 그쪽이 보상하는 걸로 합시다.”

일그러트린 얼굴로 노려보는 성훈에게 형민은 콧방귀를 꼈다.

“그거 갖고 실금이나 가겠냐? 엄살 그만 떨고 얼른 가라.”

“이거 손님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이 병원 원장이 누군지 몰라도 배가 불렀구만?”

“손님? 누가?”

성훈이 하는 얘기를 못 알아들은 척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형민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왜? 너도 비뇨기과 진료가 필요하냐? 어디가 어떤데? 너도 함몰음경, 자라고추냐? 내가 끄집어 내 주리? 아니면, 아침마다 발딱발딱 일어서야 할 게 죽어 있어? 내가 진짜 한 번 봐줘?”

피식피식 비웃음까지 날려주며 던진 말에 성훈이 당황했다. 형민이 말한 것에 해당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열린 진료실 문 때문에 성아가 들었을까 걱정이 되어 자꾸 힐끔거리게 되었다. 비뇨기과 간호사로 근무하기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젠장. 성훈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성아가 고개를 살짝 돌린 채로 킥킥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 놈이 한 말을 믿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뭐라 변명을 해야 하는 건가? 아냐, 변명을 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일 거야.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만한 얘기가 아닌데! 형민이 던진 공격에 복잡해진 머리를 채 추스르기도 전인데 그의 손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성훈은 기겁을 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거 왜 이래, 변태 같은 의사 놈! 내 존슨은 아주 건강해! 어디다 손을?”

“그러니까 전문의한테 검증을 받아보라고.”

“내 소중한 존슨에게 손만 대 봐! 고소할 거야!”

반은 장난으로 시작된 손 싸움이 한참 이어졌다. 뻗고, 쳐내고, 밀고, 꼬집고 물어뜯기까지 하다보니 방금 먹은 점심이 다 소화된 듯했다. 마지막으로 성훈의 손을 탁 쳐내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형민이 격한 싸움에 얼얼한 손을 들여다보았다. 먼저 물러난 쪽이 지는 거라 여긴 성훈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너 같은 변태새끼한테 함부로 보여 줄 수 없는 내 존슨이야! 꿈도 꾸지 마!”

“의사란 놈 말본새 좀 보라지. 새끼가 뭐냐, 새끼가. 그리고 내가 왜 변태야?”

“남의 존슨을 들여다보고 조몰락거리니 변태지, 변태가 달리 변태냐?”

진료실 밖에서 성아의 숨죽인 웃음소리가 형민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냥 재미있어서 웃는 것일 게야. 절대 비웃음이나 공감한다는 의미는 아닐 거라고. 스스로에게 그리 다독이긴 했지만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빙긋빙긋 웃고 있는 성훈이 얄미웠다. 저 자식을 어떻게 깎아내리지?

“존슨이 뭐냐, 의사가!”

남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입에 담는 단어인 존슨은 성훈 자신이 생각해도 의사가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음경은 음란하게 들린단 말야.”

푸핫, 밖에서 터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내 웃음을 눌러오던 성아가 참지 못하고 터진 것이었다. 웃음이 터진 이유가 자신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던 성훈은 이만 가봐야겠다며 형민에게 인사를 건네는 둥 마는 둥하며 진료실을 나섰다. 성아는 성훈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가시게요?”

“네? 네. 수고하세요.”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 성훈이 문을 열고 사라지자 성아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재미있는 사람이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45

    차시트에 몸을 기대고 차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성아는 눈을 뜨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서울을 떠나 맑은 공기 속에서 내려놓았던 긴장이 다시 올라온 느낌이랄까. 민영이 제시하고 모두가 받아들인 '대놓고 양다리'는 성아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녀는 편하지가 않았다. 형민을 만날 때면 용규를 생각해 몸을 사리고, 용규와 있을 때는 형민 때문에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두 사람과의 데이트는 즐거웠지만, 그런 것들이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성아 씨, 이제 그만 일어나요."어깨를 가볍게 흔드는 용규의 손짓에 성아는 눈을 떴다. 어느 새 어둑해진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골목이 보였다. 출발할 때 그녀가 알려 준 그녀의 동네 어귀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저도 모르게 잠든 모양이었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지나 있었다. 예상했던 시각을 훨씬 지난 시간이라 성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용규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잠든 모습이 좀 예뻐야 말이죠. 도대체 뭘 믿고 코 고는 소리까지 예쁜 겁니까, 성아 씨는?"누가 선수 아니랄까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멀쩡한 낯빛으로 잘도 뱉어낸다 싶어 성아는 푸스스 웃었다. "어제 오늘 이래저래 고마웠으니까 그런 실없는 소리는 용서해 줄게요. 안녕히 가세요."용규는 팔을 뻗어 발치에 내려놨던 가방을 챙겨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굿바이 키스는 없어요?""오늘 제 입술이 좀 피곤하다네요. 며칠은 쉬게 해주고 싶어서요."부기도 다 빠졌구만.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 용규가 마지 못해 성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사진 뽑아서 월요일에 병원으로 갈게요.""네."본인은 아쉬워 죽겠는데, 조금의 미련도 없이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드는 성아의 모습을 보니 약이 올랐다. 차에서 내려 그녀를 잡고 밀어붙여 강제로 키스를 진하게……. 용규는 피식 웃었다. 강제로 뭘 해볼 생각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44

    늦은 아침을 먹고 용규는 성아와 함께 콘도 뒤쪽의 산책로를 걸었다. 당장이라도 콧노래를 흥얼거릴 것 같이 신난 표정의 용규와는 달리, 묵묵히 뒤를 따르는 성아의 표정은 뚱했다. 가벼운 걸음으로 앞서가는 용규의 뒤통수를 노려보기도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어 입안으로 구시렁거리기도 하는 모양이 뭔가 불만스러운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용규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길이 험해 힘들거나 그렇진 않죠?"표정을 정돈하거나 가다듬는 기색 없이 힐끔 쳐다보는 성아 때문에 용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성아 씨, 힘들어요?""네! 힘들어 죽겠네요!"불퉁스런 그녀의 목소리에 용규가 손을 내밀었다."그럼 얘길 하지 그랬어요. 출발할 때 손 잡자는 거 굳이 뿌리치더니. 좀 쉬었다 갈까요?""아뇨. 지금 힘든 건 다리가 아니라서요."성아의 대답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몸을 한 차례 훑어본 용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말 뜻을 이해한 것이다.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에 유난히 붉은 색을 띤 입술, 그 입술이 살짝 부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안쪽에는 그가 이로 물어 생긴 작은 상처도 있을 터였다. 키스 외에 아무 것도 못 하게 한 성아에 대한 심술로 아침부터 키스를 좀, 아니 과하게 했었다. 목덜미 쪽으로 손을 대는 것조차 못하게 하길래 입술을 깨물어 살짝 피맛을 봤더니 그 이후로는 키스도 못 하게 했다. 뭐, 그 이상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불만은 남았지만 키스는 원없이 했다는 생각에 그러자 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물러서는데도 성아는 가볍게 눈을 흘기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더랬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지금 툴툴대는 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아침의 '과한 키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거였다. 그녀의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귀여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냈다간 또 뭐라 꼬투리를 잡고 투덜댈 것 같아 짐짓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다리가 아니라면... 그럼 어떻게 해줄까요? 원하는 대로 해 줄게요.""됐네요.

  •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43

    한참동안 욕실에서 몸을 식힌 용규는 잠시 부시럭거리더니 어느 새 하나 뿐인 침대에서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들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성아는 작게 웃었다. 용규에게 관심 없는 척하려 눈도 돌리지 않고 있었지만 귀를 세워 그의 움직임을 모두 듣고 있던 그녀였다. 그가 잠들었다는 확신이 생기자 마음이 놓이며 저도 모르게 웃고 만 것이었다. 용규에게 말한 대로 성아는 지금 있는 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적막함, 방 안에서 새어나오는 스탠드 불빛과 별빛을 제외한다면 완벽하다 할 수 있을 어둠, 나무 냄새가 실린 청량한 바람 끝에 느껴지는 쌀쌀한 기운까지. 지쳐있던 성아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주었다. 민영의 권유로 시작한 '대놓고 양다리'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용규의 갑작스러운 스케줄 때문에 형민과는 연달아 세 번의 데이트를 했고, 그 세 번의 데이트를 한 번에 만회할 정도의 여행을 오게 된 것까지. 스코어를 매긴다면 1대 1이라 할 수 있었다. 민영은 마음 놓고 즐기라고 했지만, 성아는 이 상황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형민과 데이트를 할 때에는 용규가 신경 쓰였고, 이렇게 용규와 있다 보니 형민이 생각나서 무턱대고 즐길 수가 없었다. "양다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봐."피식 웃음과 함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어둠 속에 흩어졌다. 성아는 몸을 일으켰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차가운 산공기에 조금씩 몸이 떨려오는 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용규가 잠들어 있는 침대와 의자 사이를 몇 번 오갔다. 잠시의 망설임 후, 그녀는 침대로 가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스탠드 불빛에 비친 용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잘생긴 건 여전했다. 한 번 찔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잘못해서 그가 깨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겨우 달래놨는데 들쑤셔서 덤벼들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성아는 쿡쿡 웃으며 용규 옆에 누웠다. 두껍지 않은 이불을 통해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에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42

    욕실로 들어간 성아가 나오길 기다리다 용규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화장을 지우고 양치를 마친 성아가 욕실에서 나오다 피식 웃었다. 용규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럴 거면서 흑심은 뭐하러 내보였는지. 실랑이할 일은 없겠다 싶어서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성아는 창가로 갔다. 산속이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찼다. 잠시 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담요와 의자를 끌어와 창가에 자리 잡았다. 이 곳에서 보는 하늘과 서울에서 보는 하늘, 그게 그거고 거기서 거기일 텐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검은 융단같이 부드러운 검은 빛의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가끔 TV에서 그래픽으로 만들어놓은 많은 별들이 나올 때면 코웃음을 쳤더랬다. 아무리 별이 많다 하더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저렇게 많을 리가 있겠냐며, 어설프게 많이 만드느니 적당하게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고 비웃었더랬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인 밤하늘은 말 그대로 비현실적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흉내도 못 낼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성아는 그만 매료되어버렸다.어깨에 두른 담요를 가슴 앞에 모아 쥐고 하염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성아는 뒤에서 어깨를 안아오는 팔에 깜짝 놀랐다. 잠들어 있던 용규가 언제 일어났는지 뒤에서 그녀를 안고 목덜미 움푹 파인 곳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아, 일어났어요?""깜빡 잠들었네요. 깨우지 그랬어요.""많이 피곤해 보였어요. 가서 더 자요."용규는 어깨를 안은 팔을 풀어내려 하는 성아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 꼭 안았다. "성아 씨랑 같이 있는데 잠은 무슨. 다 깼어요."용규는 볼에 닿는 성아의 귓불에 부비적거리며 얼굴을 문질렀다. 보드라운 살결이 주는 감촉이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에게서 벗어나려 몇 번 버르적거리던 그녀가 가볍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포기한 듯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게 또 마음에 들어 슬며시 웃음지었다."별이 참 많죠?""그러네요

  •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41

    용규의 손이 멈췄다. 이거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는 품에서 성아를 살짝 떼어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희미하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 위에 보인 것은 웃음이었다."그렇게 예쁜 사진을 찍는 용규씨가 제일 좋아한다는 그 풍경, 보고 싶다고요."용규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성아는 몇 가지 조건을 걸고 난 후에야 강원도행을 받아들였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일단 가고 나서 생각하는 거지. 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랐다.부쩍 짧아진 해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춘 후에야 도착한 곳은 강원도의 팬션 단지에서 조금 더 들어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자리잡은 펜션이었다.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정원이 제법 넓었고, 불을 밝힌 건물 두 채는 통나무로 지은 2층집이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달라진 공기였다. 맑고 신선할 뿐 아니라 엷게 나무 내음과 풀내음까지 섞여있어 향기롭기까지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깊게 들이쉬는 성아를 보며 용규가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나쁘지 않죠? 지금은 어두워서 안 보이는데, 저기 뒤쪽에 산책로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곳이죠. 내일 날 밝으면 같이 가요.""네."이것저것 설명하는 용규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용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가벼운 욕설이 섞이는 걸 보니 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그는 성아에게도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어서 오세요, 제수씨. 강충식입니다. 이 자식 눈이 높은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정말 미인이십니다.""아, 안녕하세요, 김성아예요. 제수씨는 아니고요, 여기 굉장히 예쁘네요.""핫핫핫, 제수씨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언제든 놀러오세요. 제수씨 같은 미인이면 언제나 환영입니다."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성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 손을 마주잡았다. "제수씨 아니라 김성아예요.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한데 그 호칭은 다음에 받을게요.""다음에? 아, 아직 아닙니까? 너 이 자식 여태 뭐 한 거야?"조금

  •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40

    그럼 그렇지. 이까짓 거 필요 없어! 확 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바로 옆에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는 여자가 둘이었다. 속 좁게 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대범하게 하하 웃으며 받아들어야 했다. 하지만 고맙다는 소리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뭘 이런 걸 다."마지못해 열쇠고리를 받아든 형민을 향해 용규가 씩 웃었다. "뇌물 받으셨으니 청탁도 하나 받으시죠? 10분 일찍 퇴근시켜 주세요."가뜩이나 배알이 꼴린 상황인데 기름을 들이붓는 용규 덕에 형민은 당장 내 병원에서 나가 소리를 지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전에 영화 볼 때, 성아를 놓쳐선 안 되는 거였다. 그날 게임을 클리어 했다면 이 기분 나쁜 꼴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 터였다. 뿐이겠는가. 저 뺀질뺀질한 얼굴이 패배감에 물드는 통쾌한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게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서 무엇하겠냐마는, 치솟아 오르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형민은 성아를 돌아보았다. 여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 속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이를 뿌득 갈았다. "김 선생님 업무 마치시면 그리 하시던가요."성아에게 차트 더미를 떠안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심술이 일어 떠안긴 일거리라 좀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무려 10분이나 일찍 그녀를 보낼 뻔하지 않았는가. "일 많이 남았어요?" 형규가 접수대 위로 몸을 기대며 성아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민영에게서 나왔다."어우, 많이 남긴요. 끝났어요, 끝났어. 마무리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데려가요, 용규씨.""그렇다네요, 의사선생님?"용규의 웃는 얼굴이 너무너무 얄미워 한 대 치고 싶었으나, 형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속좁은 짓은 차트더미로도 넘치게 했으니, 이제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뵈어요.""데이트 잘 해요, 김 선생!""다음에 또 뵙겠습니다.""선물 잘 먹고 잘 쓸게요. 고마워요, 용규씨."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