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ойти탕약은 쓰디썼다.그래도 임설희는 숨을 꾹 참고 한 번에 들이켰다.하지만 역한 뒷맛이 치밀어올라 급히 물을 찾았지만 사무실 어디에도 물 한 컵 보이지 않았다.오직 성준만이 조용히 컵을 들고 있었고 그녀는 망설일 틈도 없이 그의 손에서 컵을 낚아채더니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몇 모금 삼키고 나서야 속이 진정되었고 구역질도 간신히 가라앉았다.고개를 들자, 성준은 잔뜩 굳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임설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컵을 그의 손에 다시 쥐여주며 말했다.“다음부턴 약 줄 땐 물도 같이 준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애초 오늘은 오전 회의만 잡혀 있었지만 임설희가 가져온 제안서는 아직 완성된 수준은 아니었기에 세부적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도 많았다.하지만 성종 그룹 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관심을 보였고 임설희와 팀원들과 함께 열띤 토론을 이어가며 부족한 부분을 함께 다듬어나갔다.게다가 성준은 드물게 회의 내내 자리를 지켰다.회의 막바지, 성종 그룹은 현장에서 바로 협업을 확정했고 임설희와 팀은 벅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후 보름 동안, 임설희는 금원의 사무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성종 그룹에서 준 기한이 매우 촉박했기 때문에 팀은 밤낮없이 매달려야 했다.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15일이 지난 어느 날, 양측은 마침내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그 순간에야 임설희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처음엔 가능성조차 없어 보였던 계약이 이렇게 현실로 이어지자 금원 내부에서도 임설희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졌고 그녀를 대단히 존경하기 시작했다.“그때 임 팀장님이 들어가자고 했던 그 상가 있죠? 성종 그룹에서 입구 쪽 하나를 우리한테 떼어준 덕분에 지금 그 상가 가격이 무려 세 배 넘게 올랐어요.”서류를 정리하던 서준호가 감탄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다 같이 열심히 한 덕분이에요.”임설희는 겸손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러고는 살짝 생각에 잠기더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이렇게 된 김에, 오늘 저녁에 다 같이 회
“그럴 리가. 우린 친구잖아. 네가 임신한 몸으로 갈 곳도 없이 떠돌고 있는데 불쌍해서라도 받아줘야지. 내가 당연히, 불쌍해서 받아준 거지.”“불쌍해서?”“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그냥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회사 일도 그렇고...”“그만해.”박연우는 온몸을 잔뜩 긴장시킨 채, 방금 전까지의 온화했던 눈빛은 바스러지듯 사라지고 어느새 날카로운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나... 나 그냥 너희 집에 며칠만 있을 거야. 곧 누가 데리러 올 거니까.”임설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송가 사람들이 데리러 올 거라고 믿는 건가? 물론 데리러 오긴 하겠지.’하지만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뱃속의 아이였고 온몸을 바쳐 희생해도 그녀 자신은 그들에게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밤은 바람도 거셌고 비도 거침없이 쏟아졌지만 임설희는 오히려 꿀잠을 잤다.다음 날 아침, 요란한 고함에 놀라 잠에서 깼다.몽롱한 정신으로 창가로 다가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비명을 지르며 마당으로 달려가 정문을 열고 있는 박연우의 모습이었다.그리고 그 앞, 문이 열리자마자 비에 흠뻑 젖은 송시운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다 그대로 쓰러졌다.전날 식당에서 돌아온 이후, 밤새도록 이 집 앞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그녀를 기다렸던 것이다.“시운 씨! 정신 좀 차려봐요! 어휴, 열이 펄펄 끓네!”박연우의 다급한 외침에 맞은편 송가 저택의 문도 동시에 열렸다.가장 먼저 달려 나온 건 윤미정이었다. 그녀는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집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불렀고 잠시 후엔 최현숙이 허리를 짚으며 잰걸음으로 달려 나왔다.“아이고, 우리 아들! 이게 뭐야, 너 왜 바닥에 누워 있는 거야! 정신 좀 차려봐! 엄마 놀라게 하지마!”박연우가, 그가 밤새 비를 맞고 열이 나 쓰러졌다고 설명하자 최현숙은 단박에 무슨 일인지 눈치챘고 곧장 고개를 들고 2층 창문을 올려다보았다.그리고 그곳에 서 있던 임설희를 발견하자마자 눈이 뒤집힌 듯 고래고래 소리쳤다.“저 못된 년! 내 아들 잡아먹으려고
‘젠장, 이거 큰일 났네!’‘저 여자가 무식한 거야, 아니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감히 저분한테 덤비다니!’물론, 임설희라고 겁이 안 난 건 아니었다.그와 입술이 맞닿는 순간,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의 이빨에 부딪히고 말았다.성준의 얼굴이 더 차갑게 굳는 게 느껴졌고 임설희는 재빨리 부드럽게 입술을 맞대어 살살 달래듯 조심스레 키스를 이어갔다.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공간은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누구 하나 예외 없이, 그가 그녀를 당장 밀쳐내거나 심지어 손찌검이라도 할 줄 알았다.하지만 성준은 그저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움켜쥐더니 마치 고양이 새끼를 들어 올리듯 쓱 무릎에서 떼어냈다.“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목소리는 냉기 서린 칼날 같았다.그 말은 분명 임설희에게 한 것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동시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그런데도 임설희는 기죽기는커녕, 오히려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그래도 아까 약속한 건 지켜야죠. ‘나 안 화났어.’ 그렇게 말해주셔야죠.”성준의 눈매가 가늘게 좁아졌다.“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예요?”“게임 룰은 지켜야죠. 천하의 성 대표가 그 정도 배짱도 없을 줄은 몰랐는데요?”그의 턱선이 더 날카롭게 굳어갔고 얼굴 위엔 서서히 냉기가 내려앉았다.그러자 임설희는 재빨리 눈동자를 굴리더니 뭔가 떠오른 듯 능글맞은 웃음을 띠었다.“괜찮아요. 어차피 우리 남편이 한 손으로 당신 같은 남자쯤은 산산조각 내줄 테니까.”성준은 그 말에 간신히 터지려던 웃음을 꾹 참는 듯 입꼬리를 실룩였다.이런 정신 나간 여자, 처음이었다.“어때요, 겁나죠?”“그러네.”의외로 성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말해요.”“나 안 화났어.”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그제야 임설희는 슬그머니 옆으로 빠져나왔다.이 자리에서 그를 더 자극했다가는 월요일 회의에서 뼈도 못 추릴 게 뻔했다.밖은 어느새 비가 더 거세졌고 결국 그녀는 성준의 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그런
“지금 차로 대충 넘어가려는 거예요?”엄호철이 빈정거리듯 묻자 임설희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엄 대표님, 너무 성급하시네요.”차분한 말투와 함께 임설희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제가 이렇게 차를 내는 건 제 사정을 조금 이해해 주시길 바라서예요. 사실은 남편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거든요.”방금까지 담뱃재를 털던 성준의 손이 잠시 멈췄다.“어라? 결혼하셨다고요?”한 남자가 일부러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송시운과 6년을 같이 살았으니 당연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이 있었지만 누구하나 확인한 적은 없었다.임설희는 마치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얌전하게 웃어 보였다.“저희 남편, 좀 무서운 사람이에요. 태권도 검은 띠에 헬스 마니아라 온몸이 근육 덩어리예요. 주먹은 곰 발바닥만 해서 그냥 한 대만 툭 치면 뼈가 으스러질지도 몰라요.”그 말에 몇몇 남자들이 헛기침을 했다. 헛소리 같기도 했지만 왠지 진짜 같기도 해서 더 이상 농을 던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하!”강도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다 이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아, 남편분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네요!”임설희는 그 말에 시큰둥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게임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다 같이 즐기자고 하는 거잖아요? 혹시 저랑 입 맞추기 싫으신 분, 아니면 집에 아내가 계신 분은 앞에 있는 술잔 비워주세요. 그럼 저도 눈치껏 넘어가죠.”조금 전까지 기세 꺾였던 남자들은 허둥지둥 앞의 잔을 들고 단숨에 털어 넣었지만 엄호철을 중심으로 몇몇은 여전히 흥이 올라 테이블을 두드리며 분위기를 돋웠다.임설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강도진의 어깨를 톡 쳤다.그는 흠칫 놀라며 서둘러 잔을 들이켰다.“저기 몇 분은 정신 못 차렸네요. 아주 기대에 찬 눈빛이에요.”강도진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임설희는 그를 흘겨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겨 엄호철의 등 뒤에 멈췄다.“이왕 하는 거 게임에 재미를 좀 더해도 괜찮겠죠?”엄호철의 눈이 반짝
“어머, 임설희 씨. 여긴 어쩐 일로...”“성 대표도 안에 있어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 다 아는 얼굴들이니까요.”거절할 틈조차 없이 강도진은 임설희를 꽤 적극적으로 룸 안으로 밀어 넣었다.모든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고 강도진은 능숙하게 그녀를 성준의 옆자리에 앉혔다.성준은 처음엔 느긋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지만 임설희가 자리에 앉는 순간, 그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버렸다.‘뭐야, 저 얼굴은...’잠시 머뭇거리던 임설희는 계속 앉아 있어야 할지, 다시 일어나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지난 연회 때도 성준의 옆자리에 앉았던 일이 있었기에 방 안의 몇몇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우와, 미인이 나타나니까 다들 갑자기 점잖아지네?”그 말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고 사람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썼다.대부분 임설희가 정확히 누군지는 몰랐지만 괜히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감지한 듯했다.하지만 늘 그런 자리에는 꼭 분위기를 못 읽는 인간이 한둘씩 있게 마련이었다.누군가 임설희가 어떤 배경인지도 모른 채,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또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이유로 슬슬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임설희 씨 맞죠? 인사 좀 하시죠. 저는 엄호철입니다. 안양 건설 들어보셨죠? 우리 집이 해요.”임설희는 그를 바라보았다.화려한 꽃무늬 셔츠에 팔에는 문신이 가득했고 머리는 눈에 띄게 연두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방 안 다른 이들이 정제된 엘리트 느낌이라면 그는 누가 봐도 싸구려 날라리 같은 인상이 강했다.“엄 대표님, 반갑습니다.”임설희의 인사는 그게 전부였고 엄호철은 그 짧은 대답에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꼈는지 이내 빈 잔을 들고 와 그녀의 앞에 가득 술을 따랐다.“자, 제가 먼저 한 잔 올릴게요.”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기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술이라면 임설희도 두려울 건 없었다.업무상 접대 자리에서 수십 번도 넘게 마셔온 그녀였고 잔을
“아니에요. 나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안에 다 모여 있는데 얼굴 정도는 비춰줘야죠. 한 잔이라도 하고 가요.”송시운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강 대표의 부탁인데, 내가 안 들어줄 수가 있나요...”그 말에 강도진의 눈이 잠시 동그래졌다.자신이 띄워준 한마디에 금세 으쓱하는 송시운을 보며 그는 그저 애매하게 입꼬리만 올렸을 뿐이었다.“그래요? 그럼 내가 제대로 감사해야겠는데요. 이렇게 체면 세워주셔서.”결국 송시운은 강도진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운정채는 고풍스러운 한옥을 개조한 고급 한정식 레스토랑으로 입구엔 장막이 쳐져 있어 안쪽이 보이지 않았고 긴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연못과 정자, 인공 폭포까지 갖춰진 공간이었다.송시운은 강도진을 따라 걸으며 연신 고개를 돌려 임설희를 찾으려 애썼다.하지만 방마다 두툼한 발이 드리워져 있어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을 걸어 가장 안쪽 별채에 다다르자 비로소 떠들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밖은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이 안마당은 고요하고 깊숙한 구조 덕에 웨이터조차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방 안에 들어선 순간, 송시운의 시선은 단번에 상석에 앉아 있는 성준에게로 향했다.곧장 그의 옆자리에 가서 인사를 나누고자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강도진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송 대표. 여기 앉으시죠.”강도진이 입구 근처의 자리를 가리키자 송시운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잠깐 성 대표께 인사만 드리고 올게요.”“우리 성 대표는 식사 중에 방해받는 걸 좋아하지 않으세요. 말씀 나누실 일이 있다면 따로 시간을 잡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강도진은 가볍게 웃으며 송시운의 어깨를 살짝 밀듯 자리에 앉히려 했다.“나... 나 정말 일이 있어서요. 오늘은 그냥 가보겠습니다.”그러자 강도진의 웃음이 사라지며 말투에도 살짝 날이 섰다.“아, 내가 괜히 나섰네요. 송 대표를 무리하게 모시려 한 건 제 잘못이죠.”그 미묘한 불쾌함을 감지했지만 송시운은 대수롭지 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