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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당근케익
“그렇게는 힘들 것 같아요.”

임설희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웃었다.

그 한마디에 송영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설마 며느리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기의 뜻을 거절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설희야, 아버지가 그러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그냥 아버지 뜻을 따르는 게 어때...”

송시운은 목소리를 낮추어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이유라, 그게 뭔데요?”

임설희의 되물음에 송시운은 순간 얼이 빠진 듯 멍해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녀는 묻지도 않고 그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혹시 많이 피곤해서 그래? 회사 일은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맞아, 많이 피곤해. 거래처랑 줄다리기하고 협상하고 끝내 계약까지 따낸 뒤에 또 비행기 타고 당신한테 서프라이즈 하겠다고 돌아왔으니까.”

“그럼...”

“그렇지만 말이죠, 그래도 아버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꼭 들어보고 싶네요.”

그녀는 여전히 부드럽게 말했지만 그 속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아버님, 저 이 프로젝트 준비한 지 반년이 넘어요. 한 달이면 스무날 넘게 외근 나가 있었고 새벽까지 야근하는 건 기본에, 아예 회사에서 밤새는 날도 많았죠. 그렇게 온몸 갈아 넣어서 이제 막 결과가 나오는 참인데 갑자기 다른 사람한테 넘기라니요. 설명은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너는 말이야 눈앞만 보지 말고 멀리 좀 내다봐야지!”

“멀리 본다는 게 뭔데요?”

“너는 우리 송씨 가문의 며느리야. 결국 이 회사, 이 집안 전부 너희 부부 몫이지. 고작 프로젝트 하나 갖고 왜 그래? 내가 이러는 건 다 너한테 사람들 마음 잡아주려는 배려야.”

임설희는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진우 그룹의 회장이 이 정도의 연기는 돼야지...’

“지금 웃음이 나와?”

최현숙은 그동안 꾹꾹 눌러 참던 분노가 터진 듯 책상을 내리쳤다.

“네가 우리 며느리가 아니었으면 너한테 일 얘기를 꺼내긴커녕 그냥 당장 잘랐지! 그깟 프로젝트? 네가 그만두겠다고 하면 누가 잡을 줄 알아?”

“엄마!”

송시운이 불쾌한 기색으로 어머니를 말렸지만 최현숙은 이성을 잃은 듯 말을 쏟아냈다.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어느 집 며느리가 맨날 집에 안 들어오고 시부모 챙길 생각도 없고 남편 뒷바라지도 안 하냐! 우리 집엔 너 같은 며느리는 필요 없어!”

임설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저,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어요? 작년에만 제가 따낸 계약이 두 건, 순이익이 100억은 넘었을 텐데요.”

“하, 네가 없으면 회사가 문 닫기라도 해? 그건 다 너 시아버지랑 시운이가 뒤에서 도와줬으니까 된 거야! 그런 주제에 보너스까지 많이 받아 갔으면 됐지, 뭘 더 바라? 진짜 분수도 몰라!”

“그만들 해! 밥상머리에서 무슨 짓이야!”

송영석이 무겁게 책상을 내리치며 중재에 나섰다.

“아버지, 어머니 진정하세요. 나중에 내가 설희를 잘 설득해서...”

송시운이 중간에서 수습하려 했지만 임설희가 그 말을 가로막았다.

“설득할 필요 없어. 좋아요, 전 그 프로젝트에서 손 뗄게요.”

그 말에 송시운은 안도한 듯 미소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역시 날 사랑하는 건 당신밖에 없어.”

임설희는 그의 팔을 밀쳐내고 냉소를 지었다.

“그래서 날 그렇게 속인 거야?”

송시운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뜻이야?”

“당신이 날 속였다는 말이야.”

“내가 언제...”

임설희는 입을 삐죽 내밀며 일부러 투정 부리는 말투로 말했다.

“결혼하던 날 당신 뭐라 했는지 기억나? 내게 꼭,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결혼식을 해주겠다고 했잖아. 근데 우리 벌써 결혼 3년째인데 그 약속 아직도 안 지켰잖아...”

“그럼 지금, 결혼식하고 싶단 거야?”

“그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야?”

“당연히 무리지!”

최현숙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미 혼인신고도 했잖아. 그것도 벌써 3년이나 됐는데, 결혼식은 무슨! 돈 낭비지!”

“그럼 결혼식도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제가 송씨 가문 며느리란 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누가 사칭이라도 하면 전 그냥 가만히 당하고 있어야 하겠네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임설희는 눈빛을 단단히 굳혔다.

“저 그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있어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결혼식은 반드시 성대하게 치러져야 해요. 운성 사람 모두가 알 정도로요. 그게 안 되면 전 이번 일 수락 못 합니다.”

“참나, 너 정말 건방지다 못해...”

최현숙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 순간 임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저를 쾅 내려놓았다.

그 날카로운 소리에 식탁 위 공기가 얼어붙었고 사람들 셋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예전엔 그녀가 너무 순진하게 굴어서 이 집안 사람들 마음대로 휘둘렀지만 이제 그럴 생각 전혀 없었다.

“갑자기 입맛 없네요. 올라가서 쉬겠습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예전 같으면 밥 다 먹고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식탁을 정리해 주고 가정부를 도와 과일도 깎고 피곤한 몸으로도 시부모와 마주 앉아 대화까지 나눴겠지만 이제 그런 호의는 없었다.

2층에 도착하자, 윤미정이 안방 문 앞에서 열쇠를 들고 뭔가 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임설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다가갔다.

“이모님, 뭘 하고 있어요?”

놀란 윤미정은 황급히 손에 든 열쇠를 뒤로 감추며 고개를 들었다.

“아, 안방 청소 좀 해드리려고요. 근데 문이 잠겼더라고요.”

“그거 제가 잠갔어요.”

“네?”

임설희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열쇠를 꺼내 직접 문을 열었다.

“작은 사모님, 제가 금방 청소하고 나갈게요. 잠깐만요...”

윤미정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녀가 먼저 안으로 들어선 뒤 문 앞을 막아섰다.

“오늘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자고 싶네요. 청소는 내일 하세요.”

그리고는 그녀가 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희미한 창밖 불빛에 기대 돌아선 그녀는 누군가 놀란 듯 다급히 옷방으로 숨는 실루엣을 목격했다.

‘정말 재밌네.’

‘혼인신고 하면 뭐해? 저렇게 쥐새끼처럼 옷장에 숨을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일부러 불을 켜지 않았다. 일부러 옷방을 오가며 발소리를 내고 옷장을 열 듯 말 듯하며 그 ‘쥐’가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고 심지어 샤워할 때도 일부러 문을 활짝 열어놓고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옷장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래, 쥐도 숨은 쉬어야 하니까.’

임설희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운 뒤, 조용히 그 옷장을 바라봤다.

그녀와 박연우는 고등학교 시절 짝꿍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고 대학도 같은 곳에 갔으며 어느새 모든 걸 공유하며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임설희는 진우 그룹에 인턴으로 들어갔고 그때 송시운을 처음 만났다.

평범한 사무직 동기인 줄 알았던 그는 사실 진우 그룹의 차기 후계자였지만 임설희는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팀에서 일하며 밤낮없이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그 사고가 일어났다.

그날도 두 사람은 택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앞 차량의 화물에서 튀어나온 철근이 유리창을 뚫고 그대로 날아들었을 때 임설희는 망설임 없이 송시운 앞을 가로막았다.

결국 그 쇳덩이는 그녀의 뱃속을 찔렀고 임설희는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임설희가 병원에 누워 회복하는 동안, 박연우는 그녀의 소개로 진우 그룹에 입사했다. 그리고 정확히 반년 뒤, 송시운과 혼인신고를 했다.

‘정말 눈물겨운 우정이야...’

쿵, 쿵, 쿵.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설희야, 문 좀 열어. 나야, 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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