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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2화

Author: 송진
“사모님도 오셨네요?”

“이 유치원도 참, 이틀에 한 번 활동을 계속하네요. 저는 매일 바빠서 눈코 뜰 새도 없는데 안 오면 제 아이가 안 된다고 하네요. 다른 아이들 엄마는 다 오는데 자기만 안 오면 부끄러워서 죽겠대요.”

활동 교실에서는 부모들이 몇 명씩 모여서 얘기하고 있었다.

오늘은 유치원 대반의 그림 그리기 활동이었는데 주제는 바로 <우리 엄마>였다.

선생님은 부모들에게 시간 날 때 오라고 공지를 했지만 강요는 아니었다.

사실 그 말이 없어도 오늘은 부모들이 다 참석할 거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박한빈 덕분에 성유리는 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다 같은 반 친구들이고 수업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성유리는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 선생님이 들어왔고 선생님은 성유리를 보고 먼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각자의 자리에 앉으라고 안내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머니, 여기 앉으세요.”

성유리는 이미 자리를 선택했지만 선생님은 또 다가와서 직접 말을 건넸고 하는 수 없이 그녀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성유리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았다.

“강지연 씨는 안 왔나요?”

그 말에 선생님은 잠시 당황했지만 금방 대답했다.

“추도윤 어머니 말씀이신가요? 그... 그분은 아마 오지 않으신 것 같아요.”

사실 이것은 성유리와 큰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 성유리는 아이들의 자리에 부모들이 다 앉아 있는 것을 보다 유독 추도윤 자리만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게 되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인도로 교실에 들어왔다.

집에서 매일 엄마를 봐도 학교에서 엄마를 만나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오늘 활동에 대해 선생님과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미리 비밀로 해두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가 교실에 나타나자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추도윤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는데 표정이 어딘가 어리둥절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성유리는 자신이 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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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049화

    하유림은 휴대폰을 성유리에게 건네며 화면을 가리켰다.화면에는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임태경]성유리는 사실 그 남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그냥 하유림이 갑자기 물어봐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것뿐이었다.하지만 하유림이 휴대폰을 건네주자 성유리는 진지하게 화면을 들여다보았다.그렇게 보니 임태경은 온라인과 현실에서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많은 스트리머들이 필터를 너무 많이 써서 실제 모습과 차이가 나는 것과 비교하면 임태경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그런데 성유리가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던 건지 원래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던 임태경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성유리와 시선이 맞았다.성유리는 조금 당황했지만 임태경은 곧바로 웃으며 작은 토끼 이빨을 드러냈다.그렇지만 그것도 단 2초 정도였다.2초가 지나자 임태경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성유리에게 그건 그저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그런데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저녁을 먹은 후, 민박집에서 임태경과 다시 마주친 것이었다.“어? 임태경 씨?”하유림이 가장 먼저 반응하며 반갑게 말을 건넸다.임태경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안녕하세요.”“저희 아까도 봤어요! 바로 그 식당에서!”“알아요. 저도 여러분을 봤습니다.”임태경은 하유림의 말을 끊고 그녀의 뒤로 고개를 돌려 성유리에게 손을 흔들었다.“안녕하세요. 누나.”그의 목소리는 정말 달콤했고 작은 토끼 이빨을 드러내며 ‘누나’라고 부르는 바람에 하유림의 얼굴은 금세 빨개졌다.그러자 임태경은 냉장고에서 술 한 병을 꺼내며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에도 계속 여기서 라이브 방송하면서 노래할 거예요. 시간 괜찮으면 오셔서 응원해 주세요.”“좋아요! 꼭 갈게요!”하유림은 곧바로 대답했다.성유리는 하유림이 그냥 인사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 줄 알았는데 세면을 마친 후, 하유림이 정말로 그녀를 데리고 내려가려고 했다.“전 안 갈래요. 이제 딸하고 영상 통화해야 돼요.”“아, 밑에서도 영상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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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유리는 결국 팔찌 하나랑 반지 한 쌍을 선물로 골랐다.카페에 도착했을 때, 나다빈은 그녀가 들고 온 쇼핑백을 몇 번 힐끔거리더니 하유림을 보며 말했다.“유림 씨도 저번에 판 저작권으로 꽤 벌었죠?”하유림은 그녀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낼 줄 몰랐는지 조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많지는 않았어요. 나눠서 들어오니까 제 손에 들어온 건 몇만 원 정도?”“음, 첫 작품치고는 그 정도면 잘한 거죠.”나다빈은 마치 인생 선배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 이어 말했다.“근데 그 돈은 아껴둬야 해요. 여자들은 어느 나이쯤 되면 몸에 명품 몇 개쯤은 있어야 한다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보상이랄까? 그리고 유림 씨도 지금 큰 도시로 나가잖아요? 거기 사람들은 명품 없는 사람 없어요.”성유리는 원래 휴대폰을 들고 박한빈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참이었다.아침 이후로 그가 답장을 하지 않아서였다.하지만 무슨 말을 보내야 할지 망설이던 중, 나다빈의 시선이 자기 쪽을 몇 번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러세요?”“아니에요.”나다빈은 곧 웃으며 넘겼고 다시 하유림 쪽을 보았다.하유림도 뭐라 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나다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기 가방을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다.성유리는 그런 그녀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고 박한빈에게 다시 몇 번 메시지를 보냈다.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었다.성유리는 살짝 풀이 죽은 채 돌아가는 비행기표까지 검색하기 시작했다.그렇지만 그때 옆에서 하유림이 내일 일정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서 성유리는 할 수 없이 휴대폰을 꺼두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저녁은 근처의 찻집에서 먹었다.이 지역은 강에서 잡은 생선이 풍부하고 맛도 매콤하고 새콤한 게 많아 성유리 입맛엔 딱 맞았다.하유림도 꽤 좋아했지만 나다빈은 조금 적응하지 못하는 듯했다.그래도 그녀는 불평하지 않고 그냥 직원에게 물을 달라고 한 뒤, 음식을 하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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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박한빈 씨는 아직도 가끔 에릭 씨랑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에릭 씨는 여전히 똑같아요. 매주 파티하면서 아주 화려하게 살고 있어요.”성유리는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아라 씨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그래요?”성유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라는 한숨 돌린 듯 살짝 웃어 보였다.“사실 저도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별로 신경 안 써요. 저도 잘 알거든요. 에릭 씨는 절대 저 하나만 바라볼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는 거.”“전 그냥... 제 일 때문에 박 대표님까지 곤란해질까 봐 걱정했을 뿐이에요.”성유리는 깜짝 놀라 물었다.“그 사람한테까지 피해를요?”“네. 처음에 제가 결혼식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박 대표님 덕분이었어요. 박 대표님이 사람을 보내서 절 금성에서 빼줬고 제 부모님도 대표님이 설득해 줬죠.”“근데 박 대표님은 에릭 씨랑도 미묘한 관계라... 제 일 때문에 괜히 그쪽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했어요. 근데 유리 씨 얘기 들으니까 안심이 되네요.”아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심결에 약간 오해 살 만한 뉘앙스를 풍겼다.그걸 스스로 깨달은 그녀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유리 씨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저랑 박 대표님은 그런 사이는 절대 아니에요!”성유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알아요. 저도 그런 생각 안 했어요.”“네.”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러니까... 유리 씨도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그 사람이 그런 일까지 해준 건 결국 유리 씨 덕분이에요.”...“유리 언니?”하유림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니서야 성유리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언니, 저 사진 좀 찍어줄래요?”하유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자 성유리는 얼른 대답하며 그녀의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하유림은 금세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사진을 다 찍고 나서 하유림이 물었다.“언니도 두 장 찍어드릴까요?”“괜찮아요.”“근데 언니, 왜 이렇게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하세요? 신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046화

    결국 그들은 동네 아이의 안내를 받아서야 겨우 민박집을 찾을 수 있었다.다행히도 말로만 듣던 81골목은 내려준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나다빈은 처음에 몇 마디 투덜거리긴 했지만 막상 민박집의 분위기를 보고는 조용해졌다.이 민박은 현지의 전통 가옥을 개조한 것 같았다.입구로 들어서면 널찍한 마당이 나오고 한쪽에는 원목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주인이 손수 가꾼 꽃들이 놓여 있었다.마당을 지나면 본채가 나오는데 왼쪽엔 계산대가 있고 오른쪽엔 기다란 식탁이 하나 놓여 있었다.그 식탁 너머엔 와인 진열장과 소형 무대도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무대 옆쪽에 위치해 있었다.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인 분위기에 청결하게 잘 관리된 느낌이 들었다.그때, 계단 쪽에서 누군가 다급히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죄송해요, 원래는 제가 마중 나가야 했는데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그 사람이 말을 하며 다가오다가 성유리를 보자 순간 멈칫했다.그리고 성유리도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물었다.“아라 씨?”나다빈이 먼저 반응했다.“두 사람, 아는 사이에요?”성유리는 대답도 못 했는데 아라는 바로 웃으며 말을 돌렸다.“제가 집안일 때문에 마중을 못 나갔어요. 그래도 다행히 잘 찾아오셨네요. 여기 길이 좀 복잡하죠?”“맞아요!”하유림이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길이 헷갈려서 힘들 뻔했는데 다행히 애기 한 명이 나타나서 길을 알려줬어요.”“남자아이였어요?”“네. 열 살쯤 됐나? 근데 오늘 월요일인데 학교 안 가도 되는지 몰라요.”“이 근처 학교들은 점심시간에 1시간 정도 쉬거든요. 아마 집에서 몰래 나왔나 봐요.”아라는 웃으며 말을 이어가며 체크인을 도와주었다.“세 분, 이틀 묵으시는 거죠?”“네.”하유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분증을 꺼냈다.성유리는 아라가 굳이 인사치레도 하지 않는 걸 느끼고는 조용히 자신의 신분증만 내밀었다.“방은 2층이에요.”아라가 그들을 데리고 올라갔다.“방 두 개고요. 하나는 더블베드, 하나는 트윈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045화

    성유리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저었다.“제가 어제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저 가방 거의 4000만 원하던데요?”생각보다 높은 가격이었지만 성유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옆 사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왜 안 놀라는 거지?’그제야 성유리는 뒤늦게 어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아마도 성유리의 반응이 너무 무덤덤했던 탓인지, 상대는 잠깐 말문이 막힌 듯했다.성유리는 귀 뒤를 긁적이며 말했다.“저는 이런 거 잘 몰라서요.”“그럴 줄 알았어요.”그러자 상대도 고개를 끄덕였다.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 성유리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저기... 혹시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어요?”“맞아요. 작년에 졸업했어요.”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근데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원래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생각이었는데,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요. 이번에 그 마을에 가서 마음에 들면 집 하나 구해서 장기로 살면서 작업하려고요.”성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던 찰나, 앞자리의 나다빈이 끼어들었다.“그 동네는 그냥 며칠만 살아보는 게 나아요. 진짜 장기적으로 살면 못 버틸걸요?”“왜요? 공기 맑고 풍경도 좋고... 살기 딱 좋은 것 같은데요?”“밥은 어떻게 먹게요? 거긴 배달도 안 되고 밤엔 가로등 하나 없어요. 게다가 여자 혼자 살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무도 모를걸요?”나다빈의 말투는 살짝 귀찮은 듯했지만, 말 자체는 나름 일리가 있었다.그래서 성유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던 여자는 결국 입술을 움찔거리며 작게 말했다.“그냥 생각만 해봤어요.”“생각해도 현실적으로 해야죠.”결국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알겠어요.”“사실 진짜 살기 좋은 동네 찾으려면 선택지는 꽤 많아요.”성유리가 나서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그리고 저희도 오늘은 그냥 한번 가서 둘러만 보고 오는 거잖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044화

    “박한빈 씨.”영상 통화 너머로 성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민박집 1층 거실에 있었는데 마침 외출 준비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머리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드디어 나한테 영상 통화할 생각이 난 거야?’불만 섞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박한빈은 결국 그것을 꾹 참고 그저 가볍게 고개만 끄덕거렸다.“하늘이는요?”성유리가 박한빈에게 묻자 그는 잠시 멈칫한 후, 조용히 상기시켰다.“오늘 월요일이야.”“아, 맞다. 제가 깜빡했네요.”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박한빈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너 오늘 비행기 아니었어?”“아 맞다.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려고 했어요.”성유리는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좀 더 조용한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그 모습에 박한빈은 이미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영상 속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그게... 저희 지금 어디 좀 보러 가려고요.”성유리는 계속 말했다.“여기서 알게 된 친구들 몇 명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쪽 풍경이 너무 좋대요. 영감 얻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하길래... 저도 같이 가보려고 해요.”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니까... 아마 한 모레쯤 돌아갈 것 같아요.”성유리는 말을 하면서도 내내 그의 반응을 살폈다.박한빈은 잠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으며 물었다.“성유리, 이게 지금 무슨 뜻이야? 기정사실화부터 하고 나서 알리는 거야?”“저도 원래는 그럴 생각 없었어요.”성유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근데 어제 그 동네 사진을 찾아봤는데 풍경이 진짜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네 맘대로 해.”박한빈이 툭 내뱉듯 대답했다.그 말이 떨어지자 성유리는 오히려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더 할 말 있어?”박한빈이 물었다.“아니요.”“그럼 끊을게.”박한빈은 원래 바로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그렇게 말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043화

    박한빈이 이미 말을 꺼낸 상황이라 맞은편 사람들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하고 얼른 아까 하던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하늘이의 시선은 다시 태블릿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아이는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잠시 박한빈을 진지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회의실 앞쪽 스크린으로 천천히 돌렸다.그날 하루 종일, 하늘이는 박한빈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점심도 같이 먹었고 오후엔 박한빈이 일부러 그 유명한 케이크 가게에 사람을 보내 에그타르트를 사 오게 했다.그렇지만 박한빈의 일은 정말 너무 많았고 해 질 무렵엔 현장 점검 때문에 공사장까지 다녀와야 했다.공사장 쪽은 워낙 시끄럽고 위험한 환경이라 어린 하늘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결국 그는 비서실 사람들에게 하늘이를 잠시 맡겼다.박한빈이 돌아왔을 때, 하늘이는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늘이가 박한빈을 많이 닮았다고 했지만 박한빈이 보기엔 오히려 하늘이의 성격은 성유리를 더 닮아있는 것 같았다.겉보기엔 순하고 얌전하지만 속은 누구보다도 고집이 세고 독했다.박한빈은 한참을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담요 대신 하늘이에게 덮어주고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그러자 하늘이는 바로 잠에서 깼고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엔 박한빈을 바라보며 아빠라고 불렀다.“응. 아빠가 집에 데려가 줄게.”박한빈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피곤하면 그냥 아빠 어깨에 기대서 조금 더 자.”“응.”하늘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박한빈의 말대로 어깨에 기대 다시 눈을 감았다.박한빈은 하늘이를 안고 그대로 주차장까지 걸어갔다.그 일요일 하루는 두 사람 모두 그런 식으로 보냈다.박한빈은 일하고 하늘이는 조용히 옆에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고 가끔 태블릿으로 게임을 했다.정 할 일이 없다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밤에 성유리와 영상 통화를 했을 때, 하늘이는 아주 진지하게 오늘도 즐거웠다고 이야기했다.두 사람이 영상 통화를 하는 동안, 박한빈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042화

    “그럼 저 진짜 가요!”성유리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후,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박한빈은 그 자리에 서서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박한빈이 바라본 성유리의 뒷모습은 꽤 행복해 보였다.마치 탈출에 성공한 고양이처럼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했다.게다가 손을 흔든 그 순간 이후, 성유리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박한빈이 출장 갈 때마다, 성유리가 배웅을 나왔으면 그는 늘 세 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봤었다.하지만 정작 성유리는?하늘이는 옆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말했지만 박한빈은 성유리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그 말을 들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이미 자유를 얻은 성유리에게 자신들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아빠, 우리 어디 가?”하늘이의 목소리에 박한빈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그제야 그는 고개를 숙여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할머니 댁에 데려다줄게.”“응.”하늘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뜻밖에도 엔젤 월드 입구에서 그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사모님께서 요 며칠 절에 가 계십니다.”집사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일주일 정도 거기 머무르실 거라고 하셔서...”박한빈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서영이 가끔 절에 가는 건 알고 있었고 절에 머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굳이 지금 이 타이밍에 갔다니?박한빈은 본능적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아빠, 그럼 우리 어디 가?”하늘이가 다시 묻자 박한빈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아빠는 회사 가야 돼.”하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들어 그를 바라봤다.마치 그럼 자기는 어떡하냐는 듯한 표정으로.결국 박한빈은 하늘이를 회사로 데려갔다.물론, 하늘이가 지화 그룹에 오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때는 항상 성유리와 함께였고 그들이 오면 박한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빨리 끝내고 둘에게로 갔었다.사랑하는 사람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일은 절대 없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041화

    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도우미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슬쩍 다가가 박한빈의 뺨에 입을 맞췄다.“고마워요.”박한빈은 그저 웃어 보였다.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조금은 가셨지만 여전히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그는 고개를 푹 숙여 젓가락으로 앞에 있는 애꿎은 생선 살만 툭툭 찔렀다.하얀 살이 다 으깨질 때까지 찌르고 나서야 박한빈은 한 조각을 집어 성유리의 밥그릇에 넣었다.“먹어.”“전 안 먹을래요. 한빈 씨나 드세요.”성유리가 그렇게 말하자 박한빈은 눈을 점점 내리깔았다.길고 짙은 속눈썹이 내려앉은 그의 눈은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보여 성유리는 그제야 허둥지둥 생선 살을 다시 자기 그릇으로 옮겼다.“알겠어요. 알겠어. 먹으면 되잖아요.”하지만 박한빈은 크게 기뻐하지는 않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성유리는 그가 아직도 자기의 외출 계획에 대해 마음이 안 풀렸다는 걸 알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었다.어차피 지난 2년 동안, 성유리의 삶은 줄곧 금성에서만 유지되었고 여행을 가든, 활동을 하든 전부 박한빈과 함께였으니까 말이다.이런 행사에 혼자 참석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그래서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이 일 때문에 그 며칠 동안 박한빈의 기분은 계속 가라앉아 있었다.그리고 성유리가 떠나는 날이 되자 그 감정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성유리는 아침 10시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아침 6시에 박한빈이 서둘러 그녀를 깨웠다.무언가를 메우려는 듯이.박한빈은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겼고 마지막엔 성유리의 손가락까지 살짝 깨물었다.“아파요!”성유리는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당신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개예요?”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성유리는 원래 더 말하려고 했지만 이후의 말은 박한빈의 움직임에 모두 흩어져버렸고 그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둘이 ‘엉켜 붙어’있는 시간이 두 시간 넘게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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