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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남자와 다시 만났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3 06:44:19

‘진짜 최악이야.’

아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인지.

조금 전 자신을 바라보던 눈이 자꾸 생각났다.

⸻

레이 컨덜튼은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도아윤.

회의실에서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어딘가 익숙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랬다.

또렷한 말투.

고집스럽게 올라가는 턱.

그리고 무엇보다.

눈.

그 눈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레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삼 년 전.

한국.

비가 내리던 거리.

그리고.

자신의 손을 잡고 일어서던 여자.

‘……설마.’

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윤은 이미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날의 여자는 계속 울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고, 화장은 빗물에 번졌으며,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조금 전 그녀를 일으켜 세우던 순간.

그때와 비슷한 감각이 느껴졌다.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도아윤.”

그가 낮게 이름을 불렀다.

그때 운전기사가 다가왔다.

“이사님, 출발하시겠습니까?”

레이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웃었다.

“아니요.”

“네?”

“잠깐 들를 곳이 생겼습니다.”

레이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여동생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었다.

[오빠, 오늘 집에 올 거지?]

[엄마가 저녁 먹으러 오래.]

[그리고 오늘 내가 진짜 좋아하는 친구도 와!]

레이의 시선이 마지막 문장에 머물렀다.

좋아하는 친구.

올리비아는 늘 그런 식이었다.

아침마다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고, 일주일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을 소개했다. 그러니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 전 만난 여자가 떠올랐다.

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우연이 겹칠 리는 없었다.

그는 여동생에게 짧게 답장을 보냈다.

[간다.]

그리고 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런던의 저녁 풍경이 흘러갔다.

레이는 손끝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아윤의 손을 잡았던 자리였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런데도 그 온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정말 이상하네.”

삼 년 전에도.

그랬다.

처음 보는 여자 하나가.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

그날 저녁.

아윤은 컨덜튼 저택 앞에 도착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작은 아이가 뛰어나왔다.

“윤 누나아아!”

“우리 로빈!”

아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는 얼른 몸을 숙여 아이를 품에 안았다.

“우리 아가, 잘 있었어요?”

“응!”

“누나 보고 싶었어?”

로빈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엄청!”

“얼마나?”

아이가 두 팔을 최대한 벌렸다.

“이마아아안큼!”

“아이고, 귀여워.”

아윤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때 올리비아가 현관으로 나왔다.

“야! 나는?”

아윤이 고개를 들었다.

“응?”

“나는 안 보고 싶었어?”

“비아도 보고 싶었지.”

“얼마나?”

“로빈이의 절반?”

“도아윤!”

아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올리비아가 그녀에게 달려와 와락 끌어안았다.

“진짜 보고 싶었어.”

“어제도 봤으면서.”

“그래도!”

아윤은 결국 한 손으로 올리비아의 등을 토닥였다.

“알았어. 나도 보고 싶었어.”

그때 컨덜튼 부인이 나타났다.

“윤, 왔니?”

“어머니!”

아윤은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 그런데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이네.”

“오늘 일이 많았어요.”

“밥 먹고 푹 쉬다 가.”

아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녀는 이 집에 올 때마다 이상한 편안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올리비아와 로빈, 그리고 자신을 친딸처럼 챙겨주는 컨덜튼 부인 덕분에 이제는 가족의 집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저택 안쪽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윤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검은 셔츠.

낮에 보았던 얼굴.

그리고.

그 재수 없는 눈.

‘……어?’

남자도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

“…….”

아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왜.

저 사람이.

여기에.

올리비아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윤! 소개해 줄게.”

아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올리비아가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 오빠야.”

“…….”

“레이 컨덜튼.”

그 이름이 떨어지는 순간.

아윤의 입술이 벌어졌다.

레이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웃었다.

“또 만나네요.”

“…….”

“도 대표님.”

아윤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오늘 만난 인간 중 가장 재수 없던 남자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의 오빠라니.

레이는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아윤에게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아윤이 올려다봤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오른손으로 내려갔다.

“손목은 괜찮습니까?”

“…….”

“병원은 다녀왔고?”

아윤의 얼굴이 굳었다.

아.

병원.

완전히 잊고 있었다.

레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 갔군요.”

“…….”

“기억력이 좋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아윤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대답했다.

“이사님.”

“네.”

“지금은 퇴근하셨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업무 얘기는 그만하시죠.”

레이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조금 숙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그럼 이제 사적으로 물어봐도 됩니까?”

“……뭘요?”

그가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아윤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의 입술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리서 보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마주하니 생각보다 더 위험했다.

낮게 가라앉은 눈.

부드럽게 움직이는 입술.

그리고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나무 향.

레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아윤 씨.”

“……네.”

“원래 그렇게 말을 안 들어요?”

아윤의 표정이 굳었다.

“…….”

정말.

진심으로.

재수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레이는 아직 몰랐다.

자신이 삼 년 동안 잊지 못했던 빗속의 여자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아윤 역시 몰랐다.

그날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우산과 손수건을 건넸던 남자가.

지금 이렇게 가까이 서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두 사람의 운명은.

이제 막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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