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사실 설희와 우주에게는 애초부터 데이트라는 단어가 사치였다.수업이 끝나면 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각자가 어려워하는 과목은 써머리를 나누었다.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친한, 가장 의지하는 동기생이 되어 있었다.“강우주,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응.”“동생은… 혹시 어디가 아픈 거야?”우주는, 그런 설희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몸이 아니라 마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든. 지금은… 어린 시절 기억을 대부분을 잃어버렸어.”“그럼…PTSD?”“응.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가끔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나서 문제인데… 증상이 좀 심해.”“그동안 혼자서 감당하느라 많이 힘들었겠다.”우주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위로였다. 어떤 설명도, 판단도 필요 없는 문장이었다.“고마워.”***어느덧 시간이 흘러, 마침내 의사면허를 취득하던 날. 설희는 자신의 합격 소식보다 우주의 합격 소식에 더 기뻐해 주었다.“강우주! 진짜 고생했어. 너무너무 축하해.”우주 역시 그런 설희를 향해 작은 미소로 웃어 보였다.“너도 고생 많았어. 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나란히 같은 대학병원에서 인턴생활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낯설었지만, 함께라는 사실 하나로 갖은 피로와 긴장을 버틸 수 있었다.야간 근무 표를 확인하던 어느 날 밤, 카페인으로 잠을 떨쳐내는 그들은 오늘도 함께였다.“너 정신의학과 지원한 거, 은하 때문이지?”“당연하지. 너는?”“나? 나는 너랑 같이 근무하려고!”우주는 그런 설희를 놀란 듯 바라보았고, 설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내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은 너니까.”“…김설희.”“고백하는 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괜히 긴장하지 마.”말은 그렇게 했지만, 설희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분명 처음으로 마음을 꺼내 놓은 고백이었고, 우주는 다행히도 거절의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아씨, 떨려 죽는 줄
기억을 잃어버린 은하를 돌보며 지내던 어느 날, 이모가 찾아왔다.한참 동안 집안을 둘러보던 이모의 얼굴에는 걱정 반, 안쓰러움 반. 그 감정들이 명확하게 담겨 있었다.“은하는 좀 어때…? 아직도 기억을 못 해?”“네, 그렇죠, 뭐.” “넌 언제까지 학교도 못 가고 이러고 있을 거야.”“이모… 지금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우주야, 은하는 우리 집에 보내고 너는 이만 학교로 돌아가. 미래도 생각해야지.”가슴안에서 무언가가 뻐근하게 밀려 올라왔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픈 은하를 두고 돌아갈 순 없었다. 졸업은 조금 더 미루면 그만이니까.“은하한테는 이제 저밖에 없어요. 이모도 잘 아시잖아요.”“그러니까 더더욱 정신 차리고 졸업해야지. 졸업할 때까지만 이모랑 이모부가 도와줄게. 고집부리지 말고 그렇게 하자, 응?”입을 꾹 다문 우주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결론까지는 금방이었다. 현재의 은하도 지켜야 했지만, 미래의 은하 역시 지켜야 했다.“일단… 은하가 낯설어하지 않도록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충분한 설명도 해야 하고요.”“그래, 당분간은 이모랑 이모부가 자주 들를게.”그날 밤, 우주는 잠이 든 은하의 얼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마음속으로 또 하나의 결심을 했다.“오빠는 미래도 은하도 지킬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거야. 그러니까 은하 너도 힘내야 해. 알겠지?”***그렇게 이모와 이모부의 도움 덕분에, 다시 학교로 복학할 수 있었다.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은하야, 오늘은 뭐 했어?”“나 오늘은 이모랑, 이모부랑 갈비 먹었어. 지금은 자려고.”“정말? 엄청 맛있었겠네. 오빠 주말에 갈게. 알겠지?”“으응. 주말에 만나.”주말이면 늘 맛있는 간식을 한아름 사 들고 이모 집으로 향했다. 은하는 전보다 말수는 줄었지만, 매번 달려와 품에 안겼다.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
그대로 기숙사를 박차고 뛰어나가 집으로 향했다.이미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부모님은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우주야…”“납치라뇨! 우리 은하가 왜요!”어머니는 하염없이 가슴을 치며 울었고, 그제야 우주는 그간 있었던 일을 전부 전해 들었다. 의료 소송에 휘말렸다 무혐의로 종결 났던 사건, 그리고 그 사망한 환자의 아들이 은하를 납치했다는 사실을.그 모든 말을 전해 들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은하는 다음날, 낡은 폐창고에서 발견되었다.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가족 모두가 안도했지만,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처음 병원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했다.우주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눈으로 한발 물러섰다.그 순간, 우주는 내면이 깨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은하야, 오빠 왔어. 오빠야.”은하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 막을 치듯, 가느다란 몸을 구석으로 말아 넣었다.밤에는 경기를 일으키며 비명을 질러댔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의사들은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말했다.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회복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결국 어머니가 병원을 그만두고 은하의 곁을 지켰고, 우주는 마음은 무거웠지만 학교로 돌아갔다. 사실 휴학을 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은 한사코 우주의 결정을 막았다.“그건 안 돼 우주야, 온 가족이 무너질 순 없잖니.”“그래. 은하는 엄마랑 아빠가 돌보면 돼. 너는 걱정 말고 네 할 일 해.”맞다. 온 가족이 무너질 순 없었다. 자신이라도 일상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야 했다. 혹시라도 온 가족이 다시 웃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더 많이, 더 편하게 웃을 수 있도록.“은하야, 오빠는 너를 위해 다시 힘내볼 거야. 그러니까 너도… 조금만 더 버텨줘.”그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위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위기만
우주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세진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입학식 날 학교 정문 앞에서 부모님, 은하와 함께 찍은 사진은 늘 지갑에 소중하게 담겨 있었다.처음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 9살의 은하는 참 많이도 울었다. 새하얀 티셔츠에 곰돌이 가방을 멘 채 입술을 삐죽이며 매달렸다. 이미 코끝까지 빨개져 있었다.“오빠 꼭 가야 돼? 그럼 나는? 나느은!”“은하야, 오빠는 학교가 멀어서 기숙사에서 지내야 해. 자주 올 테니까 울지 마. 응?”“택시! 매일 택시 타면 되잖아! 흐아앙!”우주는 그 천진난만한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웃어버리는 건 너무 못할 짓 같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은하와 눈을 맞췄다.“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숙제도 잘 하고, 편식하지 말고 잘 있을 수 있지?”“아니! 못해앵!”“거짓말쟁이. 어제도 혼자 잘 잤잖아.”“어제눈 오빠가 있었짜나아!”그 작고 서러운 목소리로 떼를 쓰는 통에, 결국 부모님이 은하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은하가 자꾸 이러면 오빠는 멋진 의사 선생님 못 되는데?”“우리 우주가 은하 때문에 슬프겠네.”엄마 아빠의 그 한마디에 은하는 움찔했다. 눈물범벅인 얼굴, 그 작고 동그란 눈망울엔 진심이 가득했다.“오빠 정말 의사 될 거야? 엄마랑 아빠처럼?”“그럼, 멋진 의사가 돼야지! 그래야 우리 은하 아야 하면 고쳐주지.”그 말에 은하는 꺼억,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주는 은하를 품 안에 꼬옥 안아주었다.아직 가슴팍까지 닿지도 못하는 작은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오빠 다녀올게. 전화도 자주 할게.”“진짜지?”“그럼, 진짜지.”은하의 눈망울은 여전히 그렁그렁했지만, 더는 떼를 쓰지도, 울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 연락 자주 드릴게요. 저 가요.”어머니는 우주를 꼭 안아주었고, 아버지는 덤덤하게 어깨를 토닥여주었다.“우리 아들, 장하네. 힘들어도 잘 이겨낼 수 있지?”“그럼요.”“아빠는 늘 아들을 응원한다
밤공기는 차분했고,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서 있던 가희가 태하의 차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가희는 웃었지만, 태하는 차에서 내리면서도 웃지 않았다. “무슨 중대한 진술이라도 받으러 온 거야?”“백가희.”“뭐야… 혹시 나… 뭐 잘못했어?”“응.”순식간에 긴장감이 몰려온 가희가 마른침을 삼켰다.방금 전까진 엄청나게 설렜는데, 진짜로 무슨 잘못을 한 건가 싶어서.“뭔데 그래? 일단 미안해. 그러니까 표정 좀 풀어.”“바보같이… 나를 왜 아직도 좋아해.”“….”가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설마 또 거절인가? 너무 자주 귀찮게 했나? 오늘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나?별의 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눈물이 찔끔 맺힐 듯 말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그 모습이 태하의 눈에는 너무나 작고도 애처로워 보였다. 팔을 벌려, 가희를 품안에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오, 오빠…”“늦었지만, 우리 이제라도 제대로 시작해 보자.”결국 참아왔던 눈물이 안도의 숨과 함께 터져버렸다.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과는 달라졌다고 느끼긴 했지만, 오빠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흐흑… 나 울어엉… 오빠아아앙…”태하는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우는 가희를 더 단단히 품 안으로 감쌌다.밤공기 속, 고백 위로 떨어지는 눈물에 마치 아팠던 시간들이 전부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울 거야? 대답은 안 할 거야?”가희가 눈물 콧물 범벅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흐아앙… 오빠앙… 오늘 집에 못 가.”“뭐?”“오빠가 책임져. 오빠가 나 울렸잖아.”“이게 진짜, 발랑 까져가지고.”“나도 이제 어른이라고!”***조명이 은은하게 켜진 침실 안.고요한 공기 속에서 서로를 막 갈구하기 시작하던 그때, 가희가 태하의 옆구리에 난 흉터를 보고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이게 뭐야?”“아, 그거… 전에 범인 잡다가.”“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누구야!”이럴까 봐 말을 못 한 건데, 동료들한테도
이현과 은하의 결혼식 날.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가희와 태하는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태하는 라면을 호호 불며 먹는 가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배 안 불러? 식장에서도 엄청나게 먹던데.”“라면은 그냥 디저트로 먹는 거지. 그리고 스테이크 엄청 느끼했단 말이야.”“그게 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의문이다.”“근데 오빠.”“응?”“결혼식 보니까 어때? 은하 언니 오빠 첫사랑이잖아.”아무렇지 않은 질문에 잠시의 정적이 흘렀지만, 그 정적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은하는 이제 친구지.”“그게 가능해?”“응, 가능해.”“그럼 오빠 마음은 지금, 아주 확실하게 비어 있다는 소리네?”“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래.”가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오빠가 먼저 연락했잖아!”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내가 언제?”“내 사진을 보면, 늘 마음이 평온하다며.”“그게 무슨 소리야…?”“사실 이거 비밀인데… 내가 바로 비블이지롱!”태하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가희는 핸드폰을 들어 자신의 SNS 계정을 보여주었다. “이거 봐, 맞지? 비블!”“그 비블이… 진짜 너였어?”태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가희를 바라봤다.비블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좋아하는 계정이다.특이하지만 따뜻한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고, 짧은 한 줄의 문장들로 그간 지친 마음을 위로받곤 했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백가희였다니. 그 모든 위로를 백가희가 해줬던 거라니. “정말 내 사진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졌어?”“응, 그런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네. 진짜 신기하다.”“나 사실… 그날 오빠가 남긴 댓글 보고 연락하고 싶었어.”“하지 그랬어.”“그냥… 그때는 뭔가 자신이 없었달까? 우리 오빠 마음이랑 좀 비슷했던 것 같아.”“백이현, 백가희. 너네 둘은 예전부터 진짜 놀랄 일 투성이 남매다.”그 말에 가희가 웃음을 터뜨렸다.“인정. 정상적인 남매는 아니지.”“뭔가 되게 고맙다, 네가 비블이라서.”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희의 심장은 이미 쿵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치는 어느 가을날, 희뿌연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은하는 옷장에 걸린 새 교복을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걸려 있는 교복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속삭이는 듯했지만, 은하에게는 그저 낯설고 무거운 천 조각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벌써 세 번째 전학. 이제는 익숙해야 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이 순간은 낯설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고등학교 생활은 아직도 1년도 넘게 남아있었다.학교를 옮길 때마다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은하를 안아들고 보건실로 향해 걸음을 옮기는 태하. 팔에 안긴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숨소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민희 역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뒤를 따르며 은하의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다.보건실로 향하자마자 은하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 놓았다.놀란 보건 선생님이 급히 다가와 은하의 상태를 살폈고, 담임 선생님 역시 소식을 듣고 보건실로 달려왔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큰 소리에 갑자기 놀란 듯 하더니…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었어요.”“약? 무슨 약?”민희는 서둘러 은하의 가방을 뒤적여 은하가 먹었던
뒷문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태하가 은하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아? 보건실 데려다 줘?”목소리엔 왠지 모를 걱정이 담겨 있었고, 눈빛에는 분명한 진심이 서려 있었다. 이현은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느릿하게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감정은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흥미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아니… 나… 먼저 가봐야겠어. 담임 선생님께 말 좀 전해줘.”그 말과 함께, 은하는 가방을 들고 자리를 피하려는 듯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태하는 쉽게 수긍하지 않는 표정이었다.“은하야
다음날도 어김없이 시작된 학교생활.우주는 한결같이 동생 은하의 등교를 챙겼고, 교문을 지나던 은하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이틀이나 잘 해왔잖아. 이대로만 하면 돼.’ 다행히 은하의 생각대로 오늘은 별일 없이 무난한 시간이 끝나가는 듯 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자,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은하는 이번 주, 교실 청소 담당이었다.표정 없이 칠판을 닦고 있던 은하가 잠시 손을 멈추고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털어냈다.그리고 그 순간, ‘쾅—!’누군가 철제로 된 청소 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