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평소처럼 병원 식당에 마주앉아 점심을 먹던 중, 우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태하야.”밝았던 목소리가,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통화가 끊기는 순간 설희가 물었다.“무슨 일이야?”“이현이가 사라졌다는데, 나도 지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뭐? 안 그래도 이현이 아버님 이혼 기사 떴잖아. 은하는? 은하는 어떡해?”행복한 순간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백이현, 혼자 남은 은하. 은하는 결국 우주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고,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그날 이후, 은하의 방은 조용한 감옥처럼 변했다. 하루에 몇 번씩 흐느낌이 새어 나왔고, 식사 시간마다 식탁은 그대로 차려진 채 식어만갔다.지켜보는 우주도 힘들었지만, 설희 역시 은하에 대한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우주야, 이건 은하한테 분명한 상실이야…”“알아, 그래서 더 무서워. 내가 이번에도 과연 은하를 지킬 수 있을까? 솔직히 나… 자신 없어.”“그동안 잘 이겨냈잖아. 이번에도 분명 은하는 이겨낼 거야.”세상이 무너져버린 은하는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기숙사로 돌아간 후, 학교는 나가긴 했다. 출석을 위한 출석, 대답을 위한 대답.하지만 주말마다 집에 오던 아이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우주와 설희는 가끔씩 기숙사 앞까지 찾아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은하는 늘 똑같은 모습이었다. 수척한 얼굴, 마른 손, 그리고 언제나처럼 “괜찮아요.”라는 말.꼭 감정이 닫혀버린 사람 같았다. 설희는 은하에게 작은 노트 하나를 전했다.“은하야, 뭐라도 한번 적어 봐. 혼잣말이라도 좋으니까.”“네. 그럴게요.”두 사람은 몰랐지만, 은하의 노트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그토록 그리운 이름 하나 조차도.“은하 정말 괜찮은 걸까.”“무서워. 차라리 전처럼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이현이가 왜 그랬을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애가 아니잖아.”“그럴 애가 맞든 아니든. 난 그 자식 절대로 용서 못 해.
은하의 생일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 뒤 우주와 설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은하 대학 갈 때까지 1년만 더 기다려 줄래?”“1년이면 충분해?”“응.”“그래. 오늘 은하 보니까, 정말 많이 좋아졌더라. 그동안 고생 많았어.”“내가 무슨 고생을 했다고 그래….”“어린 나이부터 은하만 돌봐왔잖아. 너 진짜 너무너무 대단한 오빠야.”“……고맙다.”“은하 대학 가면, 그땐 은하만큼 나도 좀 신경 써줘라?”“지금부터 그럴게.”자신이 뱉은 말처럼, 우주는 그날 이후로 눈에 띄게 달라졌다. 먼저 데이트를 하자는 말을 건네오기도 했고, 어느 날은 무심코 설희의 책상 위에 다육이 화분을 놓고 가기도 했다.하루에 끝에는 늘 설희가 있었고 일상 속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만이 아닌 사랑이 담겨 있었다.연애를 하자거나, 사귀자는 말은 딱히 없었지만, 이미 서로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든 뒤였으니까.시작을 알릴 필요도, 끝을 정할 필요도 없는 관계. 그저 하루하루가 고백이었고, 다짐이었고, 사랑이었다.***오늘도 함께 저녁을 먹던 중, 설희가 우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은하 저녁은?” “배달 음식 시켜 먹으라고 했어.”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까지 달라지나? 우주의 변화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냉장고에 칸칸이 반찬 채워 놓던 사람 맞아? 은하 서운하겠다.”“생각보다 애들이랑 배달 음식 먹는 것도 좋아하더라고. 그래야 우리 데이트 할 시간도 생기고.”“강우주, 나 요즘 진짜 행복한 거 알아?”“벌써? 벌써 행복하면 안 되는데.”“…뭐? 안된다니?”그 순간, 우주가 자켓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무심히 케이스를 열어 내밀었다.안에는 커플링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뭐야… 이게…”“뭐긴 뭐야, 커플링이지. 김설희는 이제 내꺼라는 공식 선언.”설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눈가에는 더 이상 참고 눌러둘 수 없는 눈물 같은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김설희, 지금이 내 인
설희 역시 선뜻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 근래 은하의 변화는 확실했고, 그동안 설희가 봐왔던 이현과 태하의 모습은 나름 믿음직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나쁜 아이들 같지는 않아 보였고, 오히려 순수하다는 쪽에 더 가까웠달까.“어려운 문제기는 한데… 늘 처음은 어려운 거니까. 이번 한 번만 은하랑 애들 믿고 보내주는 건 어때?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는 거잖아.”“괜찮을까…”“걱정 좀 내려놔. 한참 놀고 싶어 하는 나이야. 그게 정상이고.”맞다. 비록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다르지만, 한참 놀고 싶어 하는 나이. 그건 똑같다.그동안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못했던 동생에게는 이제 남아있는 학창 시절이 유난히 짧다.허락이 떨어진 뒤, 은하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은하가 막상 여행을 떠난 뒤, 우주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메시지로 도착하는 사진들과 이현의 보고가 끊임 없이 이어졌다.[형님, 저희 도착했습니다.][바닷가 가서 사진도 찍고 이제 저녁 먹어요. 은하도 좀 편해 보이고요.]식당에서 설희와 함께 저녁을 먹던 우주는 핸드폰을 확인하며 미소 지었다.“이현이는… 골 때리면서도 속은 꽤 깊은 녀석이라니까.”“근데 이현이랑 태하 말이야, 둘 다 은하 좋아하는 거 아니야?”“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어. 셋이 너무 붙어 다니니까.”“자연스러운 감정이지 뭐. 그런 거 다 해봐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잖아.”“근데 은하한테 그런 감정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서.”시작은 좋았으나, 은하와 관련된 대화는 늘 걱정으로 끝이난다. 그리고 그 당연했던 대화가, 설희에게는 오늘따라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너는 꼭 은하 일에만 객관적이지 못하더라? 환자들한테는 네 입으로 그러잖아. 자연스럽게 오는 감정들을 받아들이라고. 그게 회복의 시작이라고.”“….”“가족 일이니까 이해는 하는데, 너도 좀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그냥… 왜 이렇게 어렵냐. 모든 일
결국 설희에게 은하를 부탁하고, 일주일의 긴 출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면세점에 들러 은하와 설희에게 줄 향수도 샀다.기분 좋게 차에 올라타자마자 가장 먼저 일주일간 고생했을 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한국 왔어. 일주일동안 고생 많았다.”“우주야…”“응?”“사실 며칠 전에… 은하한테 일이 좀 있었어.”“…그게 무슨 소리야?”“학교에서 아이들이 은하를 창고에 가둬두고 협박을 좀 했나 봐. 은하는 당연히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왔었고.”우주의 언성이 곧장 높아졌다. 누가 봐도 그건 분노였다. “김설희! 그걸 왜 이제 말해!”“너 이럴까 봐. 또 다 내팽개치고 달려올까 봐. 그리고 이건 내 결정 반, 은하 결정 반이었어.”“뭐라고?”“은하가 깨어나자마자 담임 선생님께 부탁하더라. 제발 오빠한테 얘기하지 말아달라고.”“일단 끊자. 은하한테 가봐야겠어.”우주는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있던 일을 모두 전해 들었다. 창고에서 있던 일, 가해자들의 등교정지까지.하지만 한 번 터진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그 분노는 은하에 대한 것도, 설희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이나 곁을 비운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학교 앞,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은하를 기다렸다.얼마 후, 은하를 발견한 그의 눈동자가 조금은 순해졌다.태하, 그리고 처음 보는 여학생과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잠시 인사를 나눠보니 그 여학생은 처음 생겼다던 친구 민희였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최대한 태하와 민희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넨 뒤 집으로 돌아왔고, 은하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설희에게 그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자신을 책망했었다.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탓이라고, 끝까지 출장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얼마나 후회했던지.하지만 은하는 그런 우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떨리는 손등 뒤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레 포갰다.“오빠… 오빠는 아무 잘못 없어.”“….”“오빠는 세상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게 분명했다. 그렇게 통화를 끊지도 못한 채 급하게 학교로 향하던 중, 수화기 너머로 한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 여보세요?”“여보세요!? 너 누구니? 은하 친구니?”“저 송화고 학생인데, 핸드폰 주인이 갑자기 운동장에서 쓰러져서요.”“지금 가고 있으니까, 일단 은하 좀 보건실로 옮겨줄래?”“네, 알겠습니다.”오늘도 은하는 새하얀 침대 위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손목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너무나도 빨랐다. 단순한 불안 발작이 아니었다. 곧바로 은하를 품에 안아 들고, 보건실을 뛰쳐 나왔다.그제야 그 앞에 서있던 남학생 두 명과 여학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하지만 정신이 없던 탓에 가벼운 인사만을 나누고는, 곧장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향했다. 산소마스크가 씌워지고 안정제가 투여되었다. 우주는 그런 은하의 창백한 모습을 보자마자 얼굴을 감싸 쥔 채 자신을 자책했다.“은하야, 내가 너무 욕심낸 걸까, 너한테 학교는 정말… 무리였던 걸까….”아무래도 학교생활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전학이든, 자퇴든 이번에는 무언가를 결단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다음날, 은하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나 내일 학교 갈 거야.”“…괜찮겠어?”“응. 지고 싶지 않아.”분명 그동안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다음날, 우주는 은하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설희의 방을 찾았다. “은하는 좀 어때? 괜찮아?”“응, 많이 좋아졌어. 오늘은 학교도 갔고.”“진짜? 다행이다.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래?”우주가 커피잔을 감싸쥐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청소도구함 닫히는 소리에 많이 놀랐나 봐.”“하… 하필 또 철문이었구나. 그나저나 학교는 계속 보내도 되는 거야? 요즘 검정고시도 많이들 하잖아.”“나도 그래서 물어봤는데, 은하가 가겠다더라. 지고 싶지 않다고.”“어머? 보기보다 단단한데?”“정말 그랬으면 좋겠다.”은하의 결심으로 인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은하는 여전했다.말수는 늘지 않았고 때로는 작게 웃기도 했지만, 정말로 마음을 놓고 웃는다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차리리 어렸을 때가 더 나았던 것 같았다. 그때는 오빠, 오빠 부르며 의지하고 따르기라도 했으니까.가을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일기 예보에 없던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누군가에겐 꿉꿉함을, 누군가에겐 여유를 주는 비.하지만 우주에게만큼은 달랐다. 회진을 마치고 창가를 바라보자마자 다급히 차키를 챙겼다.“젠장, 갑자기 왜.”차 안으로 뛰어들어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도 찍지 않은 채 곧장 은하의 학교로 차를 돌렸다. 예고 없는 폭우는 늘 우주에게 두려운 신호였다.그렇게 학교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던 와중,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운전대에 땀이 배어들 정도로 불안했다.그때,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가 무슨 전화인지 곧장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은하 괜찮나요?”“아니요! 지금 복도에서 주저앉아 움직이질 못하고 있어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멍하게 뜨고 있고요.”“죄송한데, 더 늦기 전에 은하 가방에서 약 좀 꺼내서 전해주시겠어요? 10분 안에 도착합니다.”“네, 그렇게 할게요. 얼른 오셔야 할 것 같아요.”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급하게 주차를 하고 보건실 문을 벌컥 열자, 은하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한 채 손을 벌벌 떨어대고 있었다.우주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다가가, 은하의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갰다.“괜찮아, 오빠 왔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오빠 얼굴 좀 볼래?”은하의 시선이 천천히 허공에서 우주에게로 옮겨졌다. 다행히 빨리 약을 먹은 덕에 증상이 심하지 않았다. “오빠…”“이제 괜찮아. 집에 가자.”그날 우주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여전히 이 아이 안에 있다는걸.하지만 은하는 그 사건 이후, 여전히 학생들의 수군거림에 시달려야 했다. “쟤 또 쓰러졌다며?”“진짜 이상한 애 아니야?”복도 끝
“어제 그 말,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뭐?”“유치하다는 말, 굉장히 거슬리더라고?”순간, 주변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살짝 커졌다. 몇몇 학생들이 흘끔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현은 그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를 즐기는 듯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은하를 지켜보았다.은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와, 볼수록 웃기는 애네. 이거.”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현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주변 학생들 사이에서도 점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은하는
그렇게 은하의 첫 등교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약간의 불편한 상황은 생겼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은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색 차 한 대. 오빠, 우주였다.“끝났어?”하루 종일 바쁜 일정이었을텐데도, 우주는 은하의 첫 등교가 궁금한 탓에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은하는 생각지도 못했던 오빠의 마중에 조금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조용히 끄덕이며 조수석에 올랐다.계절과 다르게 차 안은 따뜻했다. 차창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오늘, 학교는
태하는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동시에 확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현과 은하 사이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시선은 은하를 먼저 스쳤다. 짧고도 묘한 무게감이 담긴 눈빛은 곧장 이현을 향해 차갑게 바뀌어갔다.“그만 좀 해.”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현은 태하를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한쪽 입술을 비틀며 지어 올리는 미소,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 학생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이현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시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강우주.조용한 진료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업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 하다 가도, 다시금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은하는 괜찮겠지….”정신과 의사인 우주. 사실 그가 정신 의학과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동생, 은하 때문이었다.은하가 9살이던 그날 이후. 그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했던 사건이 지나간 후, 은하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활기라곤 온데간데 사라졌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으며, 때때로 보이는 불안한 모습과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