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1화

Penulis: 임공
병실에 들어선 시연은 침대 옆에 앉았다.

고상훈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시연아,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니? 짐은 다 챙긴 게야?”

‘준비? 짐을 챙긴다는 건 또 무슨 말씀이시지?’

시연은 정신이 멍해져서 대답할 수 없었다.

곧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고상훈이 말했다.

“설마 유건이가 너한테 말을 하지 않은 게야? 이 자식이! 이럴 줄 알았어, 성의 없이 한 대답일 줄 알았다고!”

사실, 조만간 고상훈의 오랜 친구가 생일을 쇨 예정이었는데, 그는 직접 갈 수 없어서 고유건에게 지시연과 함께 가라고 한 것이었다.

이는 고상훈이 좋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었다.

이 나이까지 살아온 그가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유건과 시연을 붙여 놓으려 했다.

“시연아, 이 할아비의 말을 좀 듣거라.”

고상훈은 두 젊은이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유건이가 다른 사람한테 지시를 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이미 결혼한 이상, 감정을 잘 가다듬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네.”

지시연은 반박할 수 없어서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착한 아이구나.”

고상훈이 흐뭇하게 웃었다.

“시연아, 유건이는 너한테 맡기마.”

병실에서 나온 지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실습이 중단된 일을 겪은 그녀는 유건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상훈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시연은 어려서부터 그 누구의 귀여움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상훈은 늘 시연에게 잘해주었고, 그녀는 이를 감사하고 소중히 여겼다.

‘그래, 다녀오자. 다 어르신을 위한 일이잖아.’

‘어차피 이미 실습을 정지당했기 때문에 휴가를 낼 필요도 없어. 하지만...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면 선물은 준비해야겠지?’

‘돈이 없어서 비싼 걸 살 수는 없으니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자.’

마침 시간이 있었던 시연은 천음사로 향하는데...

그녀는 저녁에 기숙사에 돌아와 짐을 싸고 유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상훈이 시연에게 주소를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튿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명리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시연이 명리산으로 향하던 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다.

시연이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상황이었다. 차에서 내린 그녀가 또 한 번 유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에 앉은 유건가 손에 쥔 핸드폰을 힐끗 쳐다보았다.

“허!”

그는 이 한 글자로 경멸의 의미를 남김없이 표현했고, 핸드폰을 뒤집으며 보고도 못 본 척했다.

...

명리산 기슭.

이곳에는 개인차량이 올라갈 수 없었기에, 오로지 산 위에서 보낸 차량으로 갈아타야만 했다.

요 며칠 명리산은 한씨 집안이 전세를 냈기 때문에, 파견될 수 있는 차량의 숫자도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연은 산기슭에서 기다릴 뿐,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벤틀리 뮬산이 멈추자, 유건의 뒤를 따라 지한이 내렸다.

“고유건 씨.”

시연이 바삐 쫓아갔다.

비가 세차게 내렸기에, 지한은 검은 우산을 쓴 채 유건 뒤에 서 있었다.

유건이 눈꺼풀을 살짝 내리고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비켜.”

“할아버지께서 저도 가라고 하셨어요, 고유건 씨와 함께요.”

시연은 일찍이 유건의 태도를 예상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으니, 그와 잘 지내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개의치도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약 2초 동안 침묵했다.

고상훈은 유건에게 시연과 함께 가라고 말했는데, 유건은 대답만 했을 뿐, 뒤돌아서자마자 고상훈의 말을 잊어버렸다.

‘할아버지께서 또 지시연을 찾으시다니!’

‘그런데 이 여자는 또 여길 찾아왔잖아?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야?’

유건이 얇은 입술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한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는 이 말을 끝으로 시연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얼핏 보기에도 유건이 시연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연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는데, 이곳에 온 것은 순전히 고상훈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없이 유건과 지한의 뒤를 따랐다.

“고 대표님, 오셨군요. 어서 타시죠.”

한씨 집안에서 보낸 운전기사가 그를 맞이하며 말했다. 유건을 고개를 끄덕이며 주지한과 함께 차에 올랐다.

시연 역시 그들을 따라 차에 오르려고 했으나, 유건은 ‘쾅’ 소리를 내며 차 문을 닫았다.

그가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

“출발하세요.”

“예, 고 대표님.”

차가 갑자기 출발하자, 도로에 있는 물이 튀어 시연의 온몸을 덮치려 했다.

시연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는데, 비가 오는 날이라 땅이 미끄러워 실수로 넘어지고 말았다.

이를 본 지한이 놀라며 말했다.

“형님.”

유건이 백미러를 힐끗 쳐다보았다. 백미러에 비친 시연은 빗길에 넘어져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채 아주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인상을 찌푸린 유건이 기사를 향해 차갑게 분부했다.

“어서 가세요.”

몸을 일으킨 시연은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았다.

그녀는 비록 차는 없었지만 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비가 오는 날이라 길을 걷기 어려운 데다가, 명리산의 높이도 낮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연은 족히 30분이 걸려서야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으로, 모두 단층 주택 설계를 따른 것이었다.

시연은 프론트 데스크에 물어본 후에야 유건이 묵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했을 때, 유건은 그곳에 없었다.

‘친구를 만나러 간 건가?’

그녀는 방 카드키가 없어서 방 입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추위를 느낀 시연은 손을 비비기 시작했고, 밀려오는 피로감을 느낀 그녀는 문에 기대어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깨웠다.

“지시연 씨, 정신 차리세요.”

“음...”

천천히 눈을 뜬 시연은 먼저 지한을 보았으나, 그의 뒤로 유건의 모습도 보였다.

“오셨네요.”

몸을 일으키던 시연이 눈살을 찌푸린 채 무릎을 어루만졌다.

“아, 아파.”

‘아프다고? 멀쩡해 보이는데 아프긴 뭐가 아파? 설마 나의 관심을 끌려는 거야? 헛된 꿈이라도 꾸는 거냐고!’

얼굴이 저승사자처럼 굳어진 유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시연, 그런 수법은 나한테 안 통해. 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그는 이 말을 마치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반 박자 늦은 시연은 문밖에 선 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연이 가방에서 말라비틀어진 빵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그녀는 지금 그 빵만 먹을 수 있었는데,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어서 생활비가 빠듯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시연은 돈을 절반으로 나눠서 쓰고 싶을 지경이었다.

빵에 목이 멘 시연은 허둥지둥 소리를 내며 간신히 삼키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앞에 물 한 병을 놓아주었다.

“주지한 씨.”

시연이 미소를 지으며 물병을 받아서 들었다.

“감사합니다.”

지한이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천만에요.”

그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형님께는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으세요.”

‘좋은 감정?’

시연이 고개를 숙인 채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고유건이 이혼을 할 수 없으니... 장미리 모녀는 단단히 화가 났겠는데?’

‘그거면 됐어.’

‘고유건의 미움을 사서 겪은 고생이 헛되이 되지 않은 셈이야.’

“제가 보기에 지시연 씨는 아주 현명한 사람이에요. 즉, 형님께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단 말이죠.”

이 말은 지한이 좋은 뜻에서 한 말이었다.

시연이 감격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유건 씨에게 어떤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지한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요.”

주지한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일이 많아서 이만.”

깊은 밤, 비바람이 멈추지 않았다.

시연은 결국 문에 기대어 어렴풋이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시연은 주지한이 다시 방에 올 때까지 눈살을 찌푸린 채 불안정한 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서 하룻밤을 보낸 거야?’

‘여자는 천성적으로 몸이 약한 법이잖아. 이러다가는 병이 날지도 몰라.’

지한은 안타까운 마음에 허리를 굽혀 한 손은 시연의 겨드랑이 아래로, 다른 한 손은 무릎 뒤쪽으로 넣어 그녀를 안아 일으키려고 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

유건은 차가운 눈으로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는 지한이 자신의 아내인 지시연을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매서운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유건의 낯빛은 그 번개보다 더욱 음침하고 무서웠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76화

    “응, 좋아.”“이렇게 하면요, 내일 유건 씨 공항 갈 때 딱 하고 갈 수 있어요.”“그래. 하고 갈게.”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정성스럽게 목도리 마무리 코를 잡았다.“다 됐어요.”그리고 다시 유건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말했다.“예쁘든 안 예쁘든 이렇게 가야 해요. 싫다고 하면 안 돼요.”“싫을 리가 없지.”어떻게 싫을 수 있을까?“눈이 정말 많이 오네요. G시는 눈이 올까요?”“왔어. 꽤 많이.”“그래요? 그럼 조이가 아주 좋아했을 텐데... 진아랑 부 대표님이 조이랑 같이 눈사람 만들어줬겠죠?”“내가 돌아가면, 만들 거야. 이를테면 우리 세 가족 같은 거.”“좋아요.”밖에서는 눈이 조용히 쌓이고, 방에서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유건도, 시연도 말하지 않은 채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유리창 너머의 하얀 정원을 바라봤다....새벽 5시 조금 넘은 시간.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하얀 눈발의 기운만 유리창을 통해 은은히 들어왔다.방 안은 불을 켜지 않아 흐릿한 그림자만 깔렸다.유건이 먼저 눈을 떴다.옆에 잠든 시연을 내려다보고 조심스레 품에서 떼어 소파에 눕히고, 부드러운 담요를 덮어주었다.“시연...”유건은 아주 작게 이름을 불렀다.허리를 굽혀 점점 길어지는 시연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나 간다...”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유건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깨우진 않을게. 혼자 가면 돼. 굳이 나 배웅 안 해도 돼. 나는...”유건은 이별의 순간을 버티지 못할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여기서... 이대로 인사하자.”유건은 몸을 숙여 시연의 이마를 가린 앞머리를 살짝 넘기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리고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시연... 잘 있어.”유건은 천천히 일어섰다.시연을 깊게, 오래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심지어 문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소파에 누운 시연은 눈을 꼭 감았지만, 떨리는 어깨를 숨길 수는 없었다. 눈물이 조용히, 눈가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75화

    유건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말했다.“그동안, 많이 힘들었지?”[나한테 그런 말은 하지 마...]“아니야.”유건은 진심으로 고마웠다.하지만 또다시 지하에게 부탁해야 했다.“이틀만 더. 딱 이틀만 더 고생해 줘.”[또 기다리라고?]“응. 아직... 할아버지 유골함을 기다리고 있어.”그 말을 들은 순간, 지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건이 그 일을 위해 CA국까지 갔었다.그런데 빈손으로 돌아올 순 없지 않은가.[알겠다.]지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너 돌아오고 나서 뭔가 이상하게 되어 있더라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그건 당연하지.”전화를 끊자, 유건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고상훈의 유골함을 위해 온 게 맞지만, 지금 유건의 마음은 복잡했다.고장민이 유골함을 어디 숨겨뒀는지 몰라서 경찰과 레오의 사람들은 계속 찾고 있었다.유건 마음속엔 아주 불효한 생각마저 스쳤다.‘조금만... 조금만 더 늦게 찾아도 괜찮아.’그렇게 되면 시연과 함께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니까.이 꿈 같은 유토피아에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으니까. ...승하는 경찰서에서 유건을 만나고 난 뒤 바로 죄를 인정했다.이제 고장민은 꼼짝없이 끝이었다.그리고 마침내, 레오의 부하들은 고상훈의 유골함을 찾아냈다.부드러운 천으로 덮어 조심스레 들고 와 유건 앞에 내밀었다.“고맙습니다.”유건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서 들었다.며칠, 몇 주 동안 조여 있던 마음이 그제야 제자리로 내려앉았다.“할아버지, 제가... 모시러 왔어요.”유건의 바로 뒤에서 시연은 조용히 눈시울을 적셨다.부명주는 딸의 팔짱을 살짝 끼며 낮게 속삭였다.“듣자 하니, 고장민 침대 밑에서 나왔다더라.”“네...?”시연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어쩐지 지금까지 아무도 찾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고장민과 그 집안은... 정상이 아니었다.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수준이었다.그래도 이제 모두 끝났다.하지만 시연은 유건을 보며 마음이 먹먹했다.‘이 사태가 끝났다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74화

    시연은 결국 참지 못했다.“푸하하...”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나 놀리는 거야?”유건도 웃으며, 시연을 꼭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나 많이 냄새나?”“네, 맞아요!”“맞아?”“하하하...”유건 품 안에서 시연은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잘못했어요... 하하...”“이제 그런 말 안 할 거야?”“안, 안 해요... 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하하...”한바탕 웃고 떠든 후, 결국 유건도 자기 체취에 눈썹을 찡그렸다.그러고는 얌전히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했다. 다시 내려왔을 때, 다이닝룸에는 향긋한 냄새가 퍼져 있었다.가사도우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시연만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씻고 왔어요?”시연은 정좌한 채 맞은편을 가리켰다.“앉아요.”유건이 자리에 앉아 보니, 앞에는 파스타 한 접시와 보르시 수프.시연 앞에도 같은 메뉴였고, 그 두 사람 사이엔 큼지막한 양다리 구이가 놓여 있었다.“상 엄청 푸짐한데?”“그럼요.”시연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얼른 먹어봐요. 맛있는지.”“응.”유건은 별생각 없이 포크로 면을 한 입 먹고, 수프도 한 숟가락 떴다.“어때요?”시연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좋은데...”그제야 유건은 문득 생각이 미치며, 믿기지 않는 듯 시연을 바라봤다.“이거... 네가 한 거야?”“히힛.”시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네.”“대단한데.”유건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솜씨 좋아졌네.”“그럼요.”시연은 턱을 자랑스럽게 들고 말했다.“지난 며칠 동안 유건 씨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거, 괜히 한 일이 아니었어요. 저 똑똑해요. 전에는 그냥 안 배운 것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못 배우는 게 어디 있어요?” “그래?”유건은 웃음을 참으며, 가운데의 양다리 구이를 가리켰다.“이것도 네가 했어?”“네에...”시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약간 죄지은 얼굴이 되었다.“크흠, 손질하고 양념한 건 아주머니가 하셨어요...”“아, 그러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73화

    순간, 승하가 손을 들어 뺨을 감싸 쥐었다.“아...”승하가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젠장! 고장민이랑 심화연, 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아...”유건은 울고 있는 승하를 보며, 예전에 승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승하는 다시 고씨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피를 잇는 자식으로서 인정받고 싶어 했다.그리고 그날, 유건 어머니의 묘비 앞에 홀로 서서 절을 올리던 그 모습까지...창백하게 질린 승하의 얼굴을 보며 유건의 마음속에서 무거운 의문들이 쌓여갔다.결국 입을 열었다.“네 몸... 왜 그래?”“응?”승하가 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들었다.“나 말이야?”아직 눈물 자국도 마르지 않은 얼굴로, 승하가 웃었다.“봤어? 나 말이야, 곧 죽어. 고장민이랑 심화연이 사람 짓을 안 한 벌, 다 나한테 떨어졌지. 하하하...”유건은 시선을 거두고 뒤돌았다.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답답했다.이제 유건은 떠나도 됐다.레오가 불러온 변호사가 이미 모든 서류를 처리해 놨고, 기사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렇게 문을 나서는데, 거기 또 한 사람이 있었다.바로 고장민이었다.“유건아!”유건은 차갑게 눈을 들어,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그렇다. 노인이었다.며칠 보지 않았을 뿐인데, 고장민은 눈에 띄게, 놀랍도록 급격히 늙어 있었다.유건 앞에 선 고장민은 어디에다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이었다.“그... 너, 너... 잘 있었냐?”유건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당신이라면, 들어가서 고승하 안 만날 거야. 당신 안 보면, 고승하가 며칠은 더 버틸지도 모르잖아.”그 말만 남기고, 유건은 더 말하지 않았다.뒤돌아 걸었다.고장민은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 섰고, 그 한순간 사이에 또 열 살은 늙어버린 것처럼 보였다....“왜 이렇게 안 오지?”별채 안에서, 부명주는 시연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시연은 아침부터 연락받았다.오늘 유건이 돌아온다고.하지만 어느덧 거의 정오였다.마침내 검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72화

    유건은 말없이 승하를 바라보았다.‘뭐가... 그렇게 싫다는 거지?’“싫다고. 내 부모!”승하는 수갑 찬 두 손을 들어 올리더니, 금속이 쾅 하고 책상에 부딪힐 만큼 세게 내려쳤다.핏기 하나 없는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지며, 그 안에서 끓어오르는 증오가 그대로 드러났다.“너희, 상상이나 해봤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들이랑... 얼마나 오랫동안 억지로 살아야 했는지!” 그 말에 유건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내려앉았다.‘그 둘... 고장민, 심화연.’유건은 잠시 숨을 들이켰다.“이상해?”승하는 유건의 눈빛을 읽은 듯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난 운이 없는 거지, 대가리가 없는 게 아니야. 너도 싫어하고, 할아버지도 버린 인간들인데... 내가 어떻게 좋아하겠어?”승하는 한순간 숨을 고르고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난 안 가고 싶었어. 고장민이랑 심화연 따라가고 싶지 않았어. 나한텐 할아버지도 있었고, 날 사랑하던 엄마도 있었고, 똑똑한 동생도 있었는데...”승하는 고개를 떨궜다.“근데 선택지가 없었어. 할아버지는 날 버렸고, 엄마는 날 미워했어. 그런 내가... 어디로 가겠냐?”유건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가슴 깊이, 묘한 무언가가 밀려왔다.“도망친 적 있어.”승하가 고개를 들어 유건을 보았다.눈동자가 이상하게 반짝거렸다.“한 번이 아니야. 여러 번. 진짜 여러 번. 근데 어린 내가... 어디까지 가겠어? 고장민이랑 심화연한테서 벗어나면, 나는 살 수가 없었어. 하, 웃기지?”승하는 자신을 비웃듯 헛웃음을 터뜨렸다.“그러니까 도망쳐도 결국 돌아가는 거야. 싫어 죽겠는데, 붙어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한테.”이어지는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엄마가 죽고, 그 둘 옆에 있어야 했던 매일이... 다 지옥이었어. 매일, 매순간...”유건의 목젖이 천천히 움직였다.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승하는 갑자기 이를 꽉 물며 말했다.“심화연은 죽어 마땅해.”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친언니 남편이랑 몰래 붙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71화

    유건의 손바닥이 시연의 양 볼을 부드럽게 감싸 올렸다.입가까지 차올랐던 말들이 너무 많아, 막상 내뱉으려니 몇 마디밖에 남지 않았다.“잘 있어. 이틀이면... 금방 돌아올 거야.”“네.”시연은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였다.“나... 유건 씨 목도리 뜨고 있을 거예요.”유건의 눈매가 금방 풀리며 웃음이 번졌다.“토마토색이랑 같은 빨간색, 나 진짜 좋아해. 내가 돌아오면... 그 목도리 바로 쓸 수 있을까?” “음...”시연은 잠깐 망설이며 말했다.“최대한 노력해 볼게요.”입술을 꼭 깨물고 난 뒤, 유건은 시연의 볼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나 간다.”“네...”시연은 애써 밝게 대답했지만, 그 아쉬움은 숨길 수 없었다.“걱정하지 마라.”레오가 조용히 말했다.“이미 다 조치해 놨어. 제임스가 고 대표 괴롭히는 일 없게 내가 보증할게.”시연은 유건이 작은 별채를 나서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문이 닫히는 순간, 별채는 마치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그날 밤.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시연은 잠이 오지 않았다.레오가 보증했다고 해도 유건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마음이 가라앉을 리 없었다.결국 시연은 포기하고, 무릎 위에 실뭉치를 올려놓고 밤새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한 코, 한 코.실을 넣고, 빼고, 또 넣고.‘이렇게라도 해야 불안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아.’...경찰서.조사는 순조로웠다.이틀 밤낮의 취조 끝에 기환의 진술과 경찰의 조사로 승하의 죄는 거의 확정적이었다.문제는 승하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들숨과 날숨조차 미동이 없고, 마치 오래된 쇠문처럼 마음을 닫아 버렸다. 그러던 중, 밖에서 누군가 들어와 제임스에게 속삭였다.“제임스 경무관님, 레오 회장님 쪽에서 묻습니다. 고 대표님... 돌려보내도 되냐고요.”제임스가 ‘가능합니다’라고 말하려고 할 때, 승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날 듯 몸부림쳤다.“누구라고?”수갑으로 의자에 고정돼 있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제임스에게 달려들 기세였다.“너 말고.”제임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