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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작가: 삼구이사
last update 게시일: 2026-05-11 23:15:29

소진은 더는 선을 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듯 서늘한 눈으로 은호를 직시했다.

"유 이사님도 이 이상은 묻지 마시죠. 딱히 이사님 매칭에 필요한 이야기도 아니잖습니까?"

“…….”

그 말이 은호의 가슴에 정확하게 박혔다.

맞았다. 예리와 자신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었다. 걱정할 자격도, 물어볼 자격도 없는 사이였다.

은호는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이 일렁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은호는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삼키며 예리가 사라진 텅 빈 입구를 응시했다.

한편, 부스를 빠져나온 예리는 무작정 앞을 향해 걸었다.

신경 쓰지 않아야만 했다.

하지만 광수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부터 예리의 이성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머릿속에선 해묵은 기억들이 비명처럼 쏟아졌다.

짐을 싸서 집을 나가던 미영의 뒷모습,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서늘한 눈을 하던 미영. 그리고….

"미영아! 너 진짜 왜 이래. 너… 나를 사랑한다 했던 건 진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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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55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몸은 괜찮으시죠?”예리가 의자 바퀴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해진의 붉어진 눈가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들었다.“그럼요, 모두 도움 주신 덕분에 멀쩡해요.”해진이 회의실 안의 팀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시선 끝마다 깊은 고마움이 묻어났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예리의 두 손을 맞잡았다.“저 그날, 팀장님 전화 받고 밤을 꼬박 새웠어요. 그동안은 민수 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기어들어 가던 목소리에서 서서히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용기 내 보려고요. 팀장님 말대로 지금은,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요.”예리는 제 손을 붙잡은 해진의 마른 손을 내려다보았다.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등이 주체할 수 없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손끝으로 전해지는 연약한 떨림과 온기를 가만히 받아내며, 예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불안하게 떨리는 손과 달리, 해진의 눈동자는 곧게 살아 있었다. 예리도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저희도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약속할게요.”해진이 주먹을 쥐듯 예리의 손을 꽉 쥐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예리가 팔을 뻗어 회의실 테이블 상석을 가리켰다.“그럼, 한시가 급하니까 바로 시작할까요?”해진이 자리에 앉자, 예리가 커다란 스크린 앞으로 걸어 나가 돌아서며 리모컨을 쥐었다.“해진 씨, 지금까지 노민수와 전화 통화는 계속하고 계신 거죠?”해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집에서 나온 뒤로 마음 정리하러 템플스테이 왔다고 했어요. 휴대폰도 잠깐씩만 켤 수 있다고 못 박아뒀고요. 어제저녁에도 통화했는데, 아직까지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어요.”“힘드시겠지만, 지금처럼 계속 통화 부탁드려요.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른 낌새가 보이면 바로 알려주시고요.”“남편, 아니, 노민수한테 사랑한다는 역겨운 거짓말을 듣는 게 곤욕스럽긴 하지만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54화

    은호는 꼬고 있던 긴 다리를 풀며 의자 깊숙이 기대고 있던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나 팀장님, 혹시 두통 있으십니까?”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은호가 검지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톡, 짚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예리가 커다란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아휴, 왜 이렇게 가렵지? 오늘 아침에 샴푸를 잘못 헹궜나….”그녀는 열 손가락이 머리카락에 파묻히도록 안으로 넣어 두피를 벅벅 긁었다.“여러분은 머리 감고 꼭 바짝 말리세요. 오늘 아침에 너무 바빠서 대충 말리고 왔더니 이 모양이네요….”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는 예리의 주변으로 가라앉은 침묵이 맴돌았다.잘게 눈살을 구긴 승호는 의자 등받이를 움켜잡았다. 바닥에서 마찰음이 나지 않게 살짝 들고는 예리와의 거리를 벌렸다.세 뼘 이상은 벌어진 그와의 빈 공간을 보며 예리가 큼, 목을 가다듬었다.“그래서,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죠?”“박민수와 오지연 두 사람, 어떻게 대응할 건지 물었습니다.”어느새 견고하게 가라앉은 눈빛의 은호가 질문했다.예리의 귀에 두 사람의 이름이 꽂힌 순간, 예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곧바로 한쪽 입꼬리도 호선을 그리며 비틀려 올라갔다.“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저 미소! 결국 나오고야 말았구나…!’한 여름 뙤약볕에서도 패딩을 챙겨 입게 만드는 서늘한 미소에 승호의 팔 위로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테이블 밑으로 슬그머니 팔을 내린 그가 손바닥으로 팔을 문지르며 물었다.“팀장님, 혹시나 해서 묻는 말입니다… 화내지 말고 들어주세요.”옅은 숨소리가 섞인 그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떨렸다. 예리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가 내려갔다.“설마, 그 인간들 똑같이 차로… 들이받으시려는 건 아니죠?”말을 내뱉는 짧은 순간에도 지난날의 아찔한 광경들이 카메라 셔터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소개팅 자리에서 성추행한 남성의 손목을 단숨에 뒤로 꺾어 테이블로 엎어뜨린 예리. 손목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사내 앞에서 머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53화

    은호가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설마 모든 스케줄을 다 따라올까 싶었다.그런데 지난주 월요일, 출근 준비로 바쁜 예리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수신 화면에 뜬 이름은 유은호.받기가 무섭게 ‘지금 데리러 가고 있다’는 제 할 말만 툭 내뱉은 그는, 예리가 되묻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날을 시작으로 그는 출퇴근 시간에 정확히 맞춰 매일 예리의 집 앞과 사무실을 제집 마당 드나들듯 찾았다.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은호는 아예 예리의 옆 책상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곤 아무렇지 않게 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예상과 달리 업무 시간에 그는 예리에게 딱히 말을 걸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그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예리는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정작 그는 평온해 보이는데 자신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아 은근히 짜증이 치밀었다.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예리와 함께 출근한 그가 회의실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완벽하게 몸에 딱 맞는 스리피스 슈트를 차려입고 찻잔을 입술로 기울이는 은호는, 심란한 자신과 달리 여유롭게 꼰 다리까지 까딱이며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그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키던 예리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역시나, 가람이 자신과 은호를 번갈아 가며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는 중이었다.함께 출퇴근하는 것도 모자라 예리의 사무실에서 업무까지 같이 보겠다는 은호의 파격적인 행보에 인연 VIP 전담팀은 발칵 뒤집어졌으나, 곧 예리가 ‘신변 보호’ 때문이라고 적당히 둘러댄 탓에 다들 납득하는 눈치였다.단 한 사람, 가람만 빼고.지난주 내내 회의할 때도, 점심을 먹을 때도 은호와 자신이 함께 있는 모습만 포착하면 사설탐정처럼 집요하게 관찰하던 그녀였다.그리고 지난 금요일, 마침내 가람의 집요한 수사망이 예리를 덮쳤다.점심을 먹고 1층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 예리에게, 먼저 나온 제 디카페인 아아를 쭉쭉 빨던 가람이 슬며시 다가와 은밀하게 속삭인 것이다.“팀장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52화

    사고 당일 밤, 은호가 입원한 응급실을 나와 집으로 향하던 차 안.예리의 휴대폰 너머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보세요? 나예리 팀장님?속삭이듯 작게 들려오는 해진의 목소리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소진이 옆을 힐끔거렸다.“네, 해진 씨 저예요. 몸은 괜찮으세요?”-네, 검사 마치고 지금 막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혼자 있을 때 연락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가 좀 늦었어요. 지금은 민수 씨가 씻는 중이라 그 사이에 조용히 건 거예요.“잘하셨어요.”예리의 짧은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해진의 음성은 사시나무 떨리듯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나 팀장님, 이제 말씀해 주세요. 아까 분명 범인이 누군지 안다고 그러셨잖아요….외면하고 싶었던 잔혹한 실체를 기어이 마주해야 하는 사람처럼, 해진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두려움이 기묘하게 뒤엉켜 있었다.“…….”잠시 숨을 고르던 예리가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오늘 내내, 해진 씨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차가운 차창 밖으로 도로의 불빛들이 빠르게 예리의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이 범인이에요.”-…설마 지연 씨요?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해진이 되물었다. 스스로도 놀랐는지 다급하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맞아요. 그리고… 민수 씨도요. 오늘 일, 두 사람이 철저하게 계획하고 벌인 살인미수극이에요.”예리의 입에서 나온 잔혹한 진실에 해진의 목소리가 마구 젖어 들었다.-아, 아니에요, 팀장님. 민수 씨랑 지연 씨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두 사람…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민수 씨는 절대 그런 사람 아니에요! 팀장님이 뭔가 잘못 아신 게 분명해요. 저 오늘 통화, 못 들은 걸로 할게요.현실을 부정하며 전화를 끊으려는 해진의 태도에, 예리가 차분하지만, 송곳처럼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못 믿으시겠다면, 두 사람의 대화가 담긴 녹음본을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예리는 어두운 숲속에서 숨을 죽인 채 켰던 휴대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51화

    예리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은호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은호는 쿵, 쿵 두근대는 심장을 깊이 눌러 삼키며 조심스레 예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네.”“저도 어릴 때 무척 아팠던 적이 있었거든요.”리클라이너 등받이 깊숙이 묻었던 등을 곱게 세워 앉은 예리가, 은호와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그 순간, 은은한 주홍빛 불빛이 예리의 얼굴 반쪽을 집어삼키듯 짙은 음영을 만들어 냈다.그 기묘한 명암 탓일까. 늘 씩씩하기만 하던 그녀의 실루엣에, 숨겨진 낯선 그리움이 옅게 번졌다.“그럴 때마다… 엄마가,”순간, 예리의 말문이 턱 막혔다. 아주 찰나의 정적이었다.하지만 평소 늘 단단하고 흐트러짐 없던 예리의 눈동자가 조용한 어둠 속에서 잘게 흔들리는 것을 은호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동시에 어제 행사에서 광수와 대화 후 어두워진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예리의 뒷모습이 떠올라, 은호의 가슴 한구석이 아리게 내려앉았다.도대체 예리와 임 대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복잡하게 얽히는 의문 속에서도 은호의 시선은 줄곧 미세하게 흔들리는 예리의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밀려드는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잠깐 숨을 고른 예리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부드럽게 말을 이어 붙였다.“…아니, 아빠가 항상 제가 잠들 때까지 조곤조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해주셨어요.”예리는 추억을 더듬듯, 리클라이너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덕분에 그녀의 몸이 은호 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좁혀진 거리만큼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눈에 담겼다.하지만 은호의 시선은 예리의 말을 내뱉은 다정한 입술이 아닌, 닿을 수 없는 오랜 추억에 가닿아 있는 듯한 그녀의 아련한 눈망울에 그대로 묶여 버렸다.예리가 그 아련함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눈을 천천히 감았다.“그렇게 눈을 감고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까맣던 눈앞에 이야기의 내용이 영화처럼 재생되기 시작하거든요.”예리의 입가에 처음 보는, 아련하면서도 가벼운 장난기가 섞인 미소가 부드럽게

  • 사랑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50화

    "전 비서님 접니다. 당장 경찰 쪽 인맥 전부 연락 넣….”탁.예리가 다급히 손을 뻗어 은호의 휴대폰을 낚아챘다.통화 종료 버튼을 거칠게 연타하는 예리를 보며 은호가 붉어진 눈으로 시선을 맞춰왔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 사람들 때문에 팀장님, 죽을 뻔했습니다. 두 사람, 하루라도 빨리 처벌받게 해야 합니다.""아니요, 지금은 안 돼요.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무혐의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요."은호가 억지로 이성을 붙잡으려,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한참을 그 자세로 서서 생각에 잠겼던 그의 입술 사이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그래도 당분간은 안 됩니다.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이사님.""그 사람들 계획, 나 팀장님 때문에 실패한 겁니다. 이성을 잃고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걱정이 뚝뚝 묻어났지만, 예리를 응시하는 눈빛만큼은 완강했다.지독할 정도로 단단한 시선에 예리는 무거운 공기를 환기하려 슬며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이 일 하면서 협박 한두 번 당해본 줄 아세요? 예전엔 저 죽여버리겠다고 칼 들고 찾아온 고객도 있었어요."“…네?!”은호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날카로운 눈동자엔 감출 수 없는 경악이 서렸다."그런데 제가 발차기 한 방에 날려버렸거든요. 저 보기보다 제법 강해요."허공에 펀치를 날려 보이는 예리를 보며 은호는 황당함에 입술을 달싹였다. 이게 진심인지, 아니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농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하지만 곧, 은호의 미간이 더 단단히 좁혀졌다."그래도 안 됩니다. 경호가 정 부담스러우시면, 제가 직접 곁에 있겠습니다. 당분간 나 팀장님 모든 스케줄은 저랑 동행하시죠."“네?!”예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이 말은 그러니까… 온종일 눈앞의 남자와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예리의 입꼬리가 급격하게 내려갔다. 그녀는 다급하게 손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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