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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삼구이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5 19:54:39

웨딩홀이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혜영의 부모가 경악한 얼굴로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이게 무슨…!”

하객들은 이 상황을 놓칠세라 앞다투어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요…?”

혜영이 귀를 의심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사진 뭉치를 꺼내 혜영의 가슴팍으로 사납게 내던졌다.

사진들이 파르르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장, 한 장 주워 확인하던 혜영이 비명을 막으려는 듯 급히 입을 틀어쥐며 주저앉았다.

“이, 이게….”

하지만 사시나무 떨듯 잘게 떨리는 손끝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나 박현진 애 임신했다고! 이 인간, 나랑 사귀면서 너랑 바람피운 거야!”

여자가 식장이 떠나가라 결정타를 날렸다.

객석 곳곳에서 탄식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비난 섞인 고성으로 변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혜영은 눈물이 가득 맺혀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조금 전까지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현진에게 매달렸다.

“현진 씨, 아니지?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혜영아, 내가 다 설명할게. 그게, 그러니까!”

다급하게 어깨를 붙잡는 현진의 손길이 닿는 순간, 위태롭게 휘청이던 혜영은 결국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혜영아!”

혜영의 부모가 허둥지둥 버진로드 위로 뛰어올랐다.

영숙은 쓰러진 딸을 품에 안고 통곡했고, 목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태준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너, 네 이놈! 감히 내 딸한테 이런 짓을 해?”

이번엔 현진의 부모가 앞을 가로막으며 태준의 팔을 붙잡았다.

“사돈어른, 일단 진정하세요! 남들 보는 데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고!”

눈이 뒤집힌 태준이 그대로 현진의 멱살을 움켜쥐고 이마를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빡-!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현진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아이씨, 이게 얼마짜리 코인데…! 어? 손에 이거 뭐야… 피? 나 지금 코피 나?”

코를 부여잡은 현진이 태준을 향해 악을 썼다.

그에게는 제 얼굴 속 가짜 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종현 역시 아들의 부도덕함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듯 태준의 멱살을 틀어쥐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내 아들 코 어쩔 거야? 어? 귀한 아들 얼굴에 문제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태준과 종현이 엉겨 붙어 옥신각신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수현은 손수건으로 아들의 코피를 닦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입했던 여자는 팔짱을 낀 채 이 아수라장을 구경하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 아비규환의 한구석, 혜영만이 영숙의 품에 안겨 처량하게 쓰러져 있었다.

주말 아침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추태였다.

‘부전자전이라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네.’

말리려는 직원과 친척들, 구경하는 하객들까지 뒤엉켜 단상 위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격렬한 소동 끝에 종현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장식된 꽃줄기를 잡아당겼다. 천장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연보랏빛 꽃들이 비명처럼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직원마저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장식품들이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튀었다. 구둣발에 짓이겨진 꽃잎과 파편들 사이로 순백의 버진로드는 점차 처참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날뛰는 와중에도 예리만은 홀로 침착하게 현진의 소매 끝을 주시했다.

그가 허둥대며 팔을 휘두르던 찰나, 말려 올라간 셔츠 아래로 손목 안쪽 살이 드러났다.

예리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역시, 아무것도 없어.’

식장 안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했다.

반면 바닥에 힘없이 축 처진 혜영의 가느다란 손목 위엔, 지우다 만 타투처럼 붉은 문양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2031年 4月 3日]

문양을 훑는 예리의 몸 위로 서늘한 냉기가 스쳤다.

동시에 소음을 뚫고 예리의 귓가에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들려왔다.

끼익, 끼이익—.

한쪽 축은 멈췄으나 남은 하나가 억지로 회전하려 들 때 터져 나오는 비명 같은 소리.

예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익숙하지만 언제 들어도 불쾌한 소리였다.

‘앞으로 5년.’

혜영은 저 쓰레기 같은 남자를 5년이나 더 그리워해야 한다. 그것은 사랑에 빠진 대가이자 남겨진 자가 홀로 감당해야 할 형벌이었다.

원하던 답을 얻은 예리는 미련 없이 가방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수라장이 된 웨딩홀을 뒤로하고 나서는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경악도, 동정도 없었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예리의 가방 안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그녀가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강 비서님.”

-확인은 잘 마치셨어요?

"그럼요. 예상대로예요. 박현진 손목은 깨끗하고, 신혜영 손목엔 만료 문양이 있고요.”

수화기 너머로 강 비서의 안타까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제가 첫 상담부터 그렇게 나 팀장님 말대로 하라고 설득했는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고집을 피우신 건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예리가 1층 버튼을 눌렀다. 닫히는 문 사이로 식장의 소음이 멀어졌다.

-저는 혜영 님께서 하도 자신만만하길래, 이번엔 정말 그분의 법칙을 깨는 예외라도 하나 탄생하나 싶었습니다.

예리가 휴대폰을 고쳐 잡으며 엘리베이터 거울 속을 응시했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묶어 넘긴 머리. 그 아래로 서늘한 눈빛이 비쳤다.

“말씀드렸잖아요. 세상 다른 일에는 예외가 있을지 몰라도, 사랑엔 예외 없다고.”


웨딩홀 밖으로 나오자 강렬한 햇살이 쏟아졌다.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찾는 예리의 뒤로 오늘 결혼식을 막장 드라마로 만든 주인공이 걸어 나왔다.

여자는 쏟아지는 햇살이 제 조명이라도 된 듯 두 팔을 벌려 만끽했다. 그대로 빨간 스포츠카에 올라탄 여자가 거침없이 시동을 걸었다.

눈 부신 태양 아래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빨간 스포츠카, 새카만 선글라스.

예리는 운전대를 잡은 여자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흔적조차 남지 않은 깨끗한 살결까지.

오늘 날씨처럼 모든 게 완벽했다.

멀어져 가는 스포츠카를 바라보던 예리도 선글라스를 걸쳤다.

“탈출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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