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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의 입술을 적시는 셰프
사모님의 입술을 적시는 셰프
Author: 6jay

01화. 메마른 입술과 낯선 침입자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22:27:45

그릇에 담긴 것은 차가운 모욕이었다.

“또 깨작거리는군. 집에서 온종일 뒹굴면서 남편 퇴근길 밥상 하나 제대로 못 차리는 게, 입맛까지 까다로워?”

식탁 맞은편에서 서태우가 질색하며 젓가락을 내던졌다. 도자기 그릇에 부딪힌 은수저가 쨍, 날 선 소리를 냈다. 백채린은 파리하게 질린 입술을 가만히 깨물었다.

식탁 위에는 그녀가 서툰 솜씨로 반나절 내내 씨름해 끓여낸 소고기뭇국과 나물들이 식어가고 있었다.

“기름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와서…… 죄송해요.”

“죄송하면 먹어. 네 친정아버지 회사 넘어가기 직전에 내가 숨통 트여준 값, 이런 형편없는 밥상으로 갚을 생각 말고.”

태우는 혐오스럽다는 듯 혀를 차며 일어섰다. 거칠게 닫히는 서재 문소리가 적막한 펜트하우스 복도를 울렸다. 혼자 남은 식탁. 채린은 메스꺼움을 억누르며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혀끝에 닿자마자 목구멍이 굳어지며 역한 구역질이 치밀었다.

우욱.

채린은 싱크대로 달려가 위액을 쏟아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노란 담즙만 섞인 신물이 타일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식증.

남편의 3년에 걸친 폭언과 감시, 그리고 인형처럼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녀의 목구멍을 닫아버린 지 오래였다. 세상의 모든 음식이 모래알 같았고, 삼키는 행위 자체가 지옥 같은 형벌이었다. 다음 날 오후, 거실에 낯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번 주말, 프랑스 파트너사 임원들이 우리 집으로 온다. 네 손으로 차릴 생각 따윈 꿈도 꾸지 마.”

태우가 넥타이를 고쳐 매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예약 대기만 반년이라는 프라이빗 출장 셰프를 불렀어. 파리 미슐랭 3스타 출신이라더군. 괜히 주방 얼씬거리면서 창피 주지 마.”

태우가 출근한 뒤, 현관 벨이 정적을 깨고 울렸다. 채린이 인터폰을 확인하고 문을 열자, 초가을 바람과 함께 낯선 남자가 문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오늘부터 주방 동선과 식자재 점검을 맡은 강도혁입니다.”

문턱에 선 남자는 생각보다 훨씬 젊었다. 187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큰 키와 탄탄한 어깨. 단정한 블랙 셰프 코트와 차분한 눈매가 먼저 들어왔다. 그에게서는 신선한 허브와 쌉싸름한 시더우드 향이 희미하게 났다.

“아…… 서태우 상무님이 말씀하신…….”

“네. 오늘 저녁 사전 테이스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도혁의 낮은 목소리가 채린의 귓전에 닿았다. 도혁은 채린의 창백한 안색과 떨리는 입술을 짧게 살폈다.

“남편분은 저녁 늦게 들어오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회의가 길어져서…… 혼자 준비하셔도 괜찮아요. 전 제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 편하게 쓰세요.”

채린이 몸을 돌려 피하려던 순간이었다.

“사모님.”

도혁이 한 걸음 다가오다 멈춰 주방 쪽을 가리켰다.

“셰프의 음식은 드실 분의 입맛을 맞춰야 완성됩니다. 잠깐만 확인해 주시죠.”

강요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도혁은 주방으로 가는 길을 비켜둔 채 기다렸다. 채린은 망설이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섰다. 도혁은 거침없는 손길로 나이프를 잡고 레몬과 신선한 무화과를 얇게 저몄다.

도마를 두드리는 규칙적인 칼질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빛 볼에 담긴 크림빛 소스가 완성되었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과 진한 바닐라 향이 주방의 공기를 채웠다.

“자, 드셔보시죠.”

도혁이 작은 스푼을 채린에게 건넸다. 하지만 채린은 뒷걸음질을 쳤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가며 어제의 역한 구역질이 다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전…… 못 먹어요.”

“못 먹는 겁니까, 안 먹는 겁니까?”

“속이 안 좋아서……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해요. 그러니까 그냥 남편 입맛에 맞추세요.”

채린이 고개를 돌리며 거부했다. 도혁은 한 걸음 다가오다 멈췄다.

“억지로 먹이진 않겠습니다.”

그는 더 다가가지 않고 소스가 담긴 볼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냄새부터 맡아보십시오. 속이 뒤집히면 여기서 끝냅니다.”

“그걸 왜 당신이 정해요?”

“끝낼지는 사모님이 정합니다. 저는 온도와 향만 맞출 겁니다.”

도혁은 검지 끝에 무화과 크림을 아주 조금 묻혀 보였다.

“스푼이 싫다면 이만큼만. 어느 쪽이든 선택하십시오.”

채린은 당장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코끝에 닿은 레몬과 무화과 향에도 속이 울렁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기름기 없는 과일 향에도 명치부터 굳었을 텐데, 오늘은 침이 아주 조금 고였다. 그 낯선 반응에 채린은 제 몸을 의심하듯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셨다.

“……한 번만요.”

도혁은 손을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채린이 먼저 고개를 기울여 그의 손끝에 입술을 댔다. 차가운 크림이 갈라진 아랫입술에 스며들었다.

“산미가 먼저입니까, 단맛이 먼저입니까?”

“단맛이요. 뒤에…… 레몬 맛이 나요.”

“좋습니다. 그럼 삼킬 수 있는 만큼만 넘겨보십시오.”

채린이 조심스럽게 혀를 움직이자 무화과 씨앗이 톡톡 터졌다. 구역질 대신 침이 고였고, 목구멍이 아주 조금 열렸다.

꿀꺽.

도혁의 눈이 그녀의 목울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사모님.”

그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맛을 느끼면서도, 그동안 얼마나 참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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