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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돌아온 도위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8 21:54:56

검은 군기가 편전 바닥을 때렸다.

먼지와 마른 피가 금실 용무늬 앞까지 튀었다.

허 도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북강에서 경성까지 말을 갈아타며 달린 얼굴은 바람에 갈라졌고, 갑옷 어깨에는 새 칼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그가 반납받은 동호 병부는 허리에서 검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말린 진흙이 장화 무릎까지 굳어 있었다. 경성의 여름 흙보다 희고 거친 북강 흙이었다. 갑옷 틈에는 검은 화살깃 하나가 부러진 채 박혔고, 오른쪽 뺨에는 채 아물지 않은 말채찍 자국이 났다. 빈 보고를 들고 온 사람의 꼴은 아니었다.

그 뒤로 병사 넷이 들것 둘을 내려놓았다. 피 묻은 투구와 북강군의 잘린 활시위, 군패 아홉 개가 놓였다.

"북강 삼영이 황명을 거역했습니다."

자녕궁으로 돌아가려던 태후의 걸음이 멎었다.

황제가 물었다.

"누가 이 깃발을 들었느냐."

"곽문입니다. 삭왕의 옛 부장이 군량창 셋을 점거하고 금룡기를 내렸습니다."

허 도위는 첫 충돌이 난 날을 밝혔다. 곡식 수레 백 대가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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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38화. 남은 명

    진묵이 군령을 집었다.종이 왼쪽 아래에 찍힌 수결은 틀림없이 제 것이었다. 북강을 떠나던 날 곽문 앞에서 쓴 글. 병부를 내놓고도 국경과 백성을 버리지 말라 남긴 마지막 명이었다.그날 정당 바닥에는 벗은 갑주와 군도가 놓여 있었다. 곽문은 새 황자에게도, 병부를 들고 온 허 도위에게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성을 비우지 않고 백성을 지키겠다는 말만 남겼다. 진묵은 그 선택을 허락하는 수결을 해 주었다.종이가 경성으로 돌아오는 동안 가장자리에는 북강 사람들의 손때가 묻었다. 곽문 혼자 감춘 군령이 아니라 군문에 걸린 공개된 글이었다."내가 썼다."편전 안이 조용해졌다.보요가 그를 보았다. 부정할 수도, 허 도위가 꾸민 글이라 돌릴 수도 있었다. 진묵은 죽은 서른여섯 이름 앞에서 그러지 않았다.황제가 물었다."병부를 내놓고도 네 명을 남겼느냐.""국경을 비우는 명만은 따르지 말라 썼다.""성 안 군량을 지키는 일이 어찌 국경이냐.""창고가 비면 군사는 백성의 곡식을 거둔다. 겨울 전에는 둘 다 죽는다."허 도위가 피 묻은 장부를 펼쳤다."소신은 병부가 찍힌 명을 받아 곡식 삼천 석을 남쪽 군영으로 옮겼습니다. 곽문은 수레 바퀴를 자르고 군문을 닫았습니다. 먼저 쏜 화살도 저쪽 것입니다."허 도위가 찢어진 수레바퀴의 쇠테를 증거로 내놓았다. 도끼로 세 번 찍은 자국이 깊었다. 곽문은 수레꾼과 말을 보내고 빈 수레만 부쉈다고 했다. 황군은 수레를 되찾으려 활을 들었고, 성벽의 어린 궁수가 먼저 당겼다.한쪽만 미리 칼을 간 싸움이 아니었다. 겨울 곡식을 지키는 자와 황명을 지키는 자가 좁은 성문에서 물러나지 않은 끝이었다."누가 쐈지.""성벽의 어린 궁수였습니다. 이름은 백송, 열아홉입니다. 현장에서 죽었습니다."진묵의 손이 장부 위에서 닫혔다. 백송은 그가 떠난 뒤 보충된 아이였다. 얼굴도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제 이름이 적힌 군기 아래서 죽었다."곽문이 내 명을 따랐다. 죄는 내게 물어라.""명하지 않은 살인까지 짊어질 셈이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37화. 돌아온 도위

    검은 군기가 편전 바닥을 때렸다.먼지와 마른 피가 금실 용무늬 앞까지 튀었다.허 도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북강에서 경성까지 말을 갈아타며 달린 얼굴은 바람에 갈라졌고, 갑옷 어깨에는 새 칼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그가 반납받은 동호 병부는 허리에서 검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말린 진흙이 장화 무릎까지 굳어 있었다. 경성의 여름 흙보다 희고 거친 북강 흙이었다. 갑옷 틈에는 검은 화살깃 하나가 부러진 채 박혔고, 오른쪽 뺨에는 채 아물지 않은 말채찍 자국이 났다. 빈 보고를 들고 온 사람의 꼴은 아니었다.그 뒤로 병사 넷이 들것 둘을 내려놓았다. 피 묻은 투구와 북강군의 잘린 활시위, 군패 아홉 개가 놓였다."북강 삼영이 황명을 거역했습니다."자녕궁으로 돌아가려던 태후의 걸음이 멎었다.황제가 물었다."누가 이 깃발을 들었느냐.""곽문입니다. 삭왕의 옛 부장이 군량창 셋을 점거하고 금룡기를 내렸습니다."허 도위는 첫 충돌이 난 날을 밝혔다. 곡식 수레 백 대가 서쪽 군량창을 나서려던 새벽, 북강 여인들이 성문 앞에 빈 자루를 깔고 누웠다. 금군이 밀어내자 곽문이 성벽에서 내려와 수레를 멎게 했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첫 화살이 날았고, 해질 무렵 검은 군기가 다시 올랐다."군량창 셋에는 지금 누가 있지."진묵이 물었다."북강군 천이백과 성안 백성들입니다. 어린것까지 돌을 들고 문을 막았습니다."진묵이 검은 천을 보았다. 눈보라에 닳아 가장자리 실이 풀린 군기였다. 스무 해 동안 북강 성벽 위에서 제 그림자보다 오래 펄럭인 물건. 그가 북강을 떠나던 날 직접 내려 창고에 봉하라 명했던 물건이었다."죽은 사람은."그가 먼저 물었다.허 도위가 피 묻은 작은 장부를 내놓았다."황군 스물일곱, 북강군 아홉입니다. 다친 자는 쉰이 넘습니다."허 도위는 죽은 군졸들의 반쪽 패가 든 나무함도 열었다. 피가 마른 패 하나에는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적혀 있었다.편전 한쪽에서 붓 긁는 소리가 멎었다. 태후를 데려가려던 궁인들조차 걸음을 떼지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36화. 두 사람의 죄

    황제가 옥인을 집어 들었다.어린 시절 손에 쥐었던 모서리 하나가 닳아 있었다. 가짜라 부르기에는 너무 익숙한 흠이었다.편전의 창호로 한낮 빛이 길게 들어왔다. 작은 옥인의 해 문양이 상 위에 또렷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황제의 금관 그림자보다 낮고 작았으나, 누구도 그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태후는 여전히 서 있었다. 염주를 쥔 손도 떨리지 않았다. 아들이 끝내 제 쪽을 지킬 것이라 믿는 사람의 고요였다."모후께서 쓰라 하셨습니다.""내가 칼을 네 손에 쥐여 주었느냐. 종이와 인장뿐이었다.""빈 종이에 찍게 하셨지요.""찍은 손은 네 것이다."어미와 아들의 말이 편전 바닥에서 맞부딪혔다. 스무 해 동안 한쪽은 죄를 저질렀고 다른 한쪽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서로가 먼저 칼을 들었다고 밀어내고 있었다.소월백이 명이 적힌 종이를 들었다. 손은 흔들리지 않았으나 종이 끝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소자를 데려오라 한 것입니까, 죽이라 한 것입니까."황제가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는 네가 살아 있는 줄도 몰랐다.""몰랐으니 죽어도 괜찮으셨습니까.""내가 쓴 글이 아니다.""인장은 형님의 것입니다."형님이라는 부름이 이번에는 칼집 없는 날처럼 떨어졌다.소월백은 종이를 반으로 접으려다 멈췄다. 손가락이 힘을 받아 희게 질렸다. 진묵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찢지 마. 네가 살아남은 증거다.""보고 있어야 합니까.""끝까지 보고, 태후마마 앞에 놓아."소월백은 진묵을 보았다. 위로도 명령도 아닌 거친 말이었다. 그는 종이를 다시 펴 태후 쪽으로 돌려놓았다.허강이 갑옷의 왼쪽 어깨를 풀었다. 오래된 상처가 쇄골 아래로 깊게 꺼져 있었다."그날 추격대는 동궁의 명이라 외쳤습니다. 소인은 황태자께서 우리를 죽이라 하신 줄 알고 스무 해를 살았습니다."그 말 뒤에 허강의 아내가 문밖에서 울음을 삼켰다. 가족들은 황실 사당 곁방으로 가지 않고 회랑에 남아 있었다. 큰딸은 아버지의 이름이 바뀐 날을 알고 있었고, 작은딸은 한씨 제삿밥을 숨어 차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35화. 열한 살의 인장

    허강이 무릎을 꿇었다."그때 소인의 이름은 한강이었습니다."편전의 종친들이 장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먹으로 적힌 ‘허강’ 두 글자가 조금 전과 다른 꼴로 보였다."허씨 성은 언제 받았습니까.""재호송에서 살아 돌아온 뒤 석 달 만입니다. 중궁전 죄인 명부에 올랐다가 허 승상 댁 종적으로 옮겨질 때였습니다."강무가 황실 종친 앞에 가져온 죄인 명부 사본을 펼쳤다. 팔월에는 ‘마부 한강’, 구월에는 ‘생존 죄인 한강’, 동짓달 첫날에야 붉은 줄로 한씨가 지워지고 곁에 ‘허강’이 적혀 있었다. 세 달의 먹빛이 서로 달랐다.중서성 관원이 두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스무 해 전 팔월의 같은 사람이 한쪽에서는 한강, 다른 쪽에서는 허강이었다. 붓을 든 서리들이 입을 다문 채 날짜만 베껴 적었다."그 전에 허강이라 불린 적은요.""없습니다."보요가 장부를 덮었다."스무 해 묵은 종이와 먹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빈 장부에 오늘 글을 쓰고 오래된 쑥잎 사이에 넣으면 되지요. 그러나 사람의 성이 바뀐 날까지 옛날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허 태후의 낯에는 변화가 없었다."뒤에 다시 베껴 묶은 장부일 수도 있다.""그러면 어째서 스무 해 전 중궁 상궁의 손도장이 새 글 위에 찍혀 있습니까. 그 상궁은 재호송 이튿날 우물에서 죽었다고 황실 장부에 적혀 있습니다. 죽은 손이 석 달 뒤 이름에 인주를 묻혔습니다."강무가 손도장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가리켰다. 붉은 인주가 이름의 마지막 세로획 틈으로 스며 있었다. 글이 먼저, 도장이 나중이었다. 허강이라는 이름을 적은 뒤 죽은 상궁의 손가락을 빌렸거나, 오래된 손도장을 떼어다 붙인 자가 획의 순서를 놓쳤다.종친 중 가장 늙은 이가 장부를 덮었다."선대 삭왕을 묻기 전에 이 글을 만든 자부터 찾아야겠습니다."중서성 관원이 붉은 도장을 빛에 비췄다. 인주가 ‘허강’의 끝 획을 덮고 있었다. 뒤에 베낀 글이라는 태후의 말과 함께 설 수 없는 자국이었다.황제가 손을 내밀었다."장부를 가져오라."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34화. 스무 해 전의 성

    낡은 장부에서 쑥 냄새가 났다.벌레를 막으려 종이 사이마다 마른 잎을 넣어 둔 물건이었다. 겉장은 누렇게 바랬고 끈은 손때로 윤이 났다. 허 태후는 장부를 황제 앞이 아니라 종친들 앞에 펼쳤다.장부 모서리에는 당시 중궁 별고의 불도장이 찍혀 있었다. 종이를 묶은 구멍도 오래 쓸린 듯 둥글었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같은 손이 물건과 수량을 적었다. 어젯밤 급히 꾸민 글이라 의심하기 어려운 낡음이었다.강무가 가까이 가려 하자 금군이 막았다. 그는 열일곱 해 문서고에서 닳은 종이를 만져 온 사람이었다. 눈으로 두께를 보고 코로 쑥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굳었다."종이는 옛것이 맞습니다."태후의 입가에 미소가 얇게 걸렸다."스무 해 전 중궁 별고에서 무기를 내주고 돌려받은 일을 적은 원본이다."서리가 첫 줄을 읽었다.팔월 열사흘, 선대 삭왕의 청으로 날 셋 화살 열여섯을 재호송 별장 허강에게 내어 줌.그 아래에는 선대 삭왕의 수결과 중궁 상궁의 붉은 손도장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화살을 꺼낸 까닭은 황자를 북강으로 데려가는 길의 호위라 적혔다.소월백이 선대 삭왕의 수결을 보았다. 왕부 동루에서 찾은 친필에 증인으로 남은 글씨와 닮아 있었다. 진짜 글 몇 획을 떼어다 다른 뜻 아래 붙인 솜씨였다. 진묵의 턱선이 서서히 굳었으나 손은 보요의 의자 등받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태후가 허강을 보았다."네 어깨에 박힌 것이 중궁 화살이라 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 네가 받아 간 화살이 호송대의 손에서 돌았을 뿐이다."허강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소인은 화살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장부에는 네 이름이 있다. 살아남은 입 하나와 스무 해 지킨 글 중 어느 쪽이 무거우냐."종친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검은 화살촉은 허강의 말과 맞았으나, 장부는 그 화살의 임자를 선대 삭왕으로 돌렸다. 죽은 왕이 여덟 살 황자를 숨기다 제 호송대를 쏘았다는 꼴이었다.허강이 왼쪽 어깨의 옷을 걷었다. 화살이 들어간 방향은 뒤에서 앞으로 비스듬했다. 호송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33화. 한 그릇

    죽 한 그릇이 편전에 들어왔다.누런 좁쌀 위에 붉은 대추 두 알이 얹혔고, 흰 김에서는 생강 냄새가 났다. 수저는 하나였다.오래 끓인 죽은 가장자리가 엷게 눌어붙어 있었다. 궁인이 상을 내려놓자 생강 한 올이 김을 따라 흔들렸다. 보요의 속은 빈 채로 오래 걸은 탓에 냄새만으로 먼저 아팠다. 손끝이 차고 발목은 신 안에서 묵직하게 부었다.진묵은 의자 하나를 발로 끌어 그녀 뒤에 놓았다. 소리가 크게 나 대신들이 눈을 들었으나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보요가 앉고 나서야 자신도 옆에 섰다.황제가 말했다."삭왕비에게만 준 것이다."진묵이 그릇을 먼저 받았다. 은수저를 국물에 넣어 색을 보고, 가장자리의 죽을 한 술 떠 삼켰다. 궁인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독은 없네. 먹어.""왕야도 굶으셨잖아요.""왕비부터다."보요가 수저를 받으려 하자 진묵은 내주지 않았다. 뜨거운 죽을 입김으로 식혀 그녀 입술 앞에 내밀었다. 황제와 대신들이 보는 앞이었다."혼자 먹을 수 있습니다.""손이 차다."실제로 떨리는 것은 진묵의 피 묻은 손이었다. 보요는 더 다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생강의 매운 향 뒤로 대추의 단맛이 천천히 번졌다. 두 번째 술에는 진묵이 대추를 반으로 눌러 얹었다.보요의 입술에 좁쌀 하나가 남았다. 진묵의 엄지가 닦아 내고 제 입으로 가져갔다. 편전 서리 하나가 붓을 떨어뜨릴 뻔하다 겨우 잡았다. 황제는 상을 두드리던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맛은.""조금 맵습니다."진묵은 다음 술에서 생강을 전부 골라 제 입에 넣었다. 붉은 대추만 남은 죽이 다시 그녀 앞에 갔다.황제가 빈 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내전 문서고에 불을 놓고 금군을 묶은 죄를 묻는 자리다. 부부 놀이를 보자고 부른 것이 아니다.""불은 바깥에서 들어왔습니다."보요가 죽을 삼킨 뒤 답했다."창고 빗장도 바깥에서 걸렸고, 불을 놓으러 온 금군의 기름 항아리는 목욕전에 남아 있습니다.""삭왕이 죄인실을 부수고 병사를 쳤다.""죽은 군졸이 있습니까.""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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