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진묵은 아이 발 앞의 작은 돌을 장화 끝으로 밀었다.온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요가 웃음을 삼키며 흙 묻은 손을 받아 닦았다. 아이는 닦인 손으로 아버지의 검은 옷자락을 다시 잡았다. 진묵은 옷을 빼지 않고 아이와 함께 수레에 올랐다."첫 역참 전에 자겠네요.""그럼 더 가지 않지."왕부 처마가 수레 창 아래로 내려갔다. 진묵은 보요 무릎에 놓인 지도부터 접었다. 대신 낮잠에 쓸 담요를 펼치자 온이가 지도 끝에 묻은 붉은 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담요 귀퉁이에 눌린 그 작은 손자국은 경성 근교의 마지막 객점에 닿을 때까지 남았다.객점 주인은 수레의 스무 번째 숙박 패를 받고도 빈방 열쇠를 하나밖에 내놓지 않았다. 뜰에는 혼례 구경을 온 지방 사람들의 수레가 빼곡했다. 군관이 먼저 와 묵은 상인들을 내보내려 하자 진묵이 열쇠를 가져갔다."저들이 먼저 왔다.""전하께서 주무실 곳이 없습니다.""마구간 위에 볏짚은 있느냐."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요는 대답 대신 진묵의 말안장 위에 아이의 젖은 밑싸개를 얹었다."그건 어디서 말리실 건가요?"진묵의 시선이 무명에 멎었다."방에서.""그럼 왕야도 방에서요."방은 좁았다. 온이의 자리를 펴면 두 어른이 다리를 곧게 뻗을 수 없었다. 군관은 궁에서 역마가 왔다며 문 앞에 섰으나, 진묵은 방문의 틈으로 손만 내밀어 글을 받았다.`북강의 범람 뒤 군사를 부린 일을 묻습니다. 내일 어전에서 뵙겠습니다.`그는 황명이 적힌 글을 창턱에 놓았다. 보요는 그 앞에 죽사발을 놓지 않도록 선반을 닦았다. 좁쌀이 푹 퍼진 노란 죽에서 김이 올라왔다. 아이는 숟가락을 밀어내고 아버지 손의 마른 호병을 달라 했다.진묵이 속의 부드러운 부분만 떼어 내자 보요가 손을 막았다."죽 먹고요. 어제도 그제도 아버지 것이 먼저였어요."그는 호병을 도로 놓았다. 온이가 입을 벌려 항의했다. 진묵은 대꾸하지 않고 작은 숟가락을 들었다. 아이가 한술 먹자 보요는 제 사발을 무릎 가까이 당겼다. 뜨거운 죽이 빈속으로
보요는 옥대를 집어 접은 겨울옷 위에 놓았다.어젯밤 장시에서 들고 온 비단띠 끝이 궤 밖으로 흘렀다. 진묵이 궤를 닫으려다 그 끝을 집어넣었다. 상 위 황명에는 경성에서 군권을 의논할 날이 적혀 있었다. 곁에는 앞서 받은 국혼 날짜 글이 놓였다. 보요는 둘 사이에 손가락을 놓았다."아이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저도요.""길은 스무 날.""알아요. 말로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진묵이 문밖에 선 의원을 불렀다. 의원은 보요의 맥을 짚고 허리를 굽혔다 펴 보게 한 뒤, 하루에 넘지 말아야 할 역참을 붉게 둘렀다. 진묵은 여섯 번째 붉은 원에서 손을 멈췄다."여기는 바닥이 찹니다.""방 안에 깔 짚을 먼저 보내십시오. 아무 탈 없던 몸도 온종일 수레에 실리면 허리가 굳습니다."보요가 옆의 작은 솥을 들어 보였다. 밥알이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나무주걱도 솥 안에 넣었다."온이는 낮에 이걸 먹어요. 젖만 찾던 때하고 달라요."진묵은 볕 드는 역참 두 곳에 다시 점을 찍었다. 아이의 낮잠 때마다 한 번씩 쉬는 길이었다. 그의 먹 묻은 손등에 보요의 소매가 닿았다. 그는 붓을 내려놓고 그 손목을 쥐었다."아프면 말을 바꾸어도 된다.""제 말을 기다려 주시면 돼요."손목 안쪽에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보요는 솥뚜껑을 반대로 덮고도 바로잡지 않았다. 문턱에서 헛기침이 났다.앵무가 작은 나무패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왕비 곁시중이라 새긴 글자의 가장자리가 손때에 반질반질했다. 그 밑에는 동전 줄과 새로 쓴 물가표가 놓였다."저는 여기 남겠습니다."보요는 물가표 맨 밑을 보았다. 숯 한 광주리의 값 아래 앵무의 이름이 있었다."누가 그 값을 받아 적게 했니?""숯장수는 여덟 푼, 사 간 사람은 일곱 푼이라 했습니다. 두 줄 다 썼더니 둘이 저를 찾아왔어요. 물 먹은 숯 한 줌을 빼고 나서야 같은 값을 적었습니다."앵무는 짧게 웃고 월삯 줄을 당겼다. 매듭 안에는 아직 한 푼도 빠지지 않았다."남의 말을 전하러 뒷문으로 다닐 때보다 문을
곽문은 장부를 손톱으로 끌어당겨 턱 아래에 물었다.일영이 그의 옷을 잡아 처마 밖으로 당겼다. 입안에 흙탕물과 먹이 번졌다. 곽문은 마른 판자를 딛고 올라서자마자 장부부터 폈다. 첫 장의 서른여섯 이름 아래로 물이 흘렀다. 장시 곡식을 받은 장에는 붉은 수결이 남아 있었다."군패가 빠졌습니다."병사가 물 아래를 가리켰다. 곽문은 입가의 먹을 닦고 가슴 안쪽에서 반쪽 병부를 꺼냈다. 깨진 가장자리를 군관에게 보인 뒤 도로 넣었다."군패는 분실로 적어라. 사람과 곡식부터 위로 옮긴다."병사들이 자루를 들자 상인이 한 사람의 팔을 붙들었다. 그가 가리킨 자루에는 다른 집 매듭이 달려 있었다. 곽문은 밀치지 않고 병사의 어깨에서 자루를 내리게 했다."이 집 주인은 어디 있소?"노강이 골목 반대쪽으로 외쳤다. 가죽 치마를 입은 여인이 물을 헤치고 왔다. 그녀는 볏짚 꼬리를 풀어 자루 안을 보고 허연교의 장부에 손도장을 찍었다. 자루는 그 뒤에 다시 병사의 어깨로 올라갔다.곽문은 젖은 장부를 널빤지에 펴 놓았다. 번진 글자마다 빈 종이를 끼우고 돌로 눌렀다. 연교가 다가와 자기 장부를 잃었다고 말했다."여기서 나간 곡식은 베껴 가시오. 나눠 준 집의 몫은 그 집들과 다시 맞춰야 하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앉았다. 곽문은 군량창 첫 장을 덮지 않았다. 뒤에 새로 적는 수량이 그 이름들과 한 상 위에 놓였다.눅은 책등이 마르며 우그러졌다. 물이 빠진 골목에서 걷어 온 진흙이 장시 한쪽에 높이 쌓였을 때, 곽문은 돌 밑의 마지막 종이를 꺼냈다. 물이 넘친 뒤 닷새가 지나 있었다. 장부의 먹은 더 번지지 않았다.상인들은 되찾은 곡식 앞에 앉았다. 젖은 자루 여덟 가운데 두 자루는 버리고 여섯은 먹을 것과 갈라 말리기로 했다. 사공 하나가 물에서 건진 군패를 내밀었다. 곽문은 잃은 날과 되찾은 날을 같은 줄에 적게 했다."동쪽 방앗간은요?"연교가 물었다. 방앗간 안주인이 젖은 신 한 켤레를 탁자에 놓았다."노인이 안쪽 맷돌을 붙들고 있었어요. 우리
"석평! 안에 있으면 기왓장을 두드리시오!"일영이 처마에 귀를 댔다. 젖은 볏짚 사이에서 약한 소리가 났다. 그는 이영에게 손짓한 뒤 기왓장 두 개를 옆으로 밀었다. 처마 아래 고인 물이 손목까지 찼다.이영이 밧줄을 걸었다. 아래에서 지붕 수선공이 긴 사다리를 올렸다. 머리칼을 질끈 묶은 그 사람의 허리에 새 삯패가 흔들렸다. 일영은 익숙한 옆얼굴을 보고도 예전처럼 손가락 하나를 세우지 않았다."어디에 걸면 되겠소?""그 들보 말고 안쪽 것에요. 겉은 멀쩡해도 속이 썩었어요."보요의 곁에서 호위 아이라 불리던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무명 옷깃 아래 호패에 `연소` 두 글자가 보였다. 삯패에도 같은 이름이 적혔다."그 이름을 골랐소?""수선집에 올렸어요. 삯을 남의 이름으로 받을 수는 없잖아요."일영은 몸을 옆으로 비켰다. 연소가 그의 앞을 지나며 못주머니를 기둥에 걸었다. 두 사람은 무기를 내보이지 않고 손바닥을 맞대어 짧게 예를 나눴다."연소, 이쪽 끝도 살펴 주시오."그 이름에 고개가 돌아왔다. 일영은 사다리를 붙들고 발을 뗐다. 지붕 안에는 석평과 다리를 다친 노인이 엎드려 있었다. 젖은 솜옷이 나무판에 들러붙었다. 이영이 아이만 한 구멍을 넓히는 동안 연소는 노인의 허벅지 아래 널빤지를 밀었다."둘을 같이 올리면 안 됩니다."밧줄 아래 매듭에는 청암나루의 배 이름이 적힌 헝겊이 달렸다. 온이 첫돌 물품을 싣고 온 배가 내려놓은 새 줄이었다. 류묘의 사공들은 남쪽에 있었고, 줄값을 받은 장시 사공은 지금 물속에서 매듭을 잡고 있었다."이 줄은 제 가게에서 샀습니다. 끊어지면 제게 말씀하시오!"그가 소리쳤다. 일영은 노인의 어깨에 줄을 걸었다. 노인이 처마 밖으로 나가자 국숫집에서 가져온 넓은 문짝이 물 위로 다가왔다. 흰 밀가루가 문짝 틈에서 풀렸다.남쪽 종이꽃 가게의 짐표가 붙은 기름종이는 상처 감은 팔 위에 덮였다. 약방 일꾼은 봉마다 약재 주인의 수결을 받아 들고 다녔다. 어느 집 것도 아무 말 없이 가져오지는
유앵아가 못 끝을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널판은 기울지 않았다. 밤새 머문 사람들의 젖은 겉옷 아래로 새 방값이 보였다. 한 방을 나누어 쓰면 각자 낼 몫도 그 밑에 작게 적었다. 말먹이는 방값에 넣지 않았다."왕부에서 길러 준 아가씨가 이제 방값을 받으시오?"옛 하인이 마루에 올라서며 말했다. 뒤에 업힌 노파의 발이 문설주를 쳤다. 앵아는 문을 더 열어 주고 그의 신발에서 흐르는 물에 헌 무명을 밀어 넣었다."가진 돈과 묵을 날부터 말씀하세요.""이 꼴을 보고도.""제가 저 방을 거저 받지 않았어요."그녀가 벽을 가리켰다. 경성에서 나온 통행패와 북강 관아의 도착 인장 아래 일 년 임차글이 걸렸다. 북문 통행패에는 떠난 날, 관인에는 보름을 건너 도착한 날이 찍혔다. 첫 달 방세를 받은 주인의 수결도 있었다.하인은 노파를 의자에 앉히고 글을 가까이 보았다."그동안 경성에 계셨던 게요?""문초가 끝난 뒤에도 머물렀어요. 향 가게 사람들이 주고받은 봉을 다시 대야 했고, 그 뒤에는 바느질 삯을 모았고요.""왕비께서 데려오라 안 하셨소?""제 이름으로 통행을 청했어요."노파가 허리춤에서 동전 두 닢을 꺼냈다. 앵아는 받지 않고 작은 잔에 데운 물부터 부었다. 보리 냄새와 젖은 솜 냄새가 마루에서 섞였다."두 분은 공동방에 드세요. 오늘 모자란 값은 여기 빚으로 쓰겠습니다. 숯은 하루 한 바구니, 더 때시면 내일 말씀하시고요."하인이 붓을 받았다. 앵아는 왕부에서 쓰던 이름 대신 그의 호패를 달라고 했다. 손때 묻은 나무에 아내와 살던 골목의 글자가 남아 있었다.보요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젖은 치맛단 대신 짙은 무명 치마를 입었다. 뒤따른 진묵은 앵아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문밖 아이들의 젖은 신을 발로 가지런히 모았다. 보요가 그의 어깨에서 작은 무명 보퉁이를 받아 앵아 앞에 놓았다."장시에서 공용방 세 칸을 빌릴게요. 값은 써 붙인 대로요."앵아는 바로 돈을 받지 않았다."왕비의 서랍에서 글을 베꼈어요. 배에서도, 경성에서도.
문고리를 당기자 눅은 쌀겨 냄새가 얼굴을 덮었다.허연교는 첫 자루에 손을 댔다. 아래쪽만 무겁고 차가웠다. 곡물전 주인은 마른 자루부터 밖으로 밀었다. 문 앞에 댄 널빤지가 사람 무게를 받을 때마다 물이 갈라졌다.그녀는 저울 기둥에서 가져온 장부를 품 안으로 더 깊이 밀었다. 유족에게 나눠 준 쌀과 갚을 곡식이 다른 먹으로 적혀 있었다. 물을 먹은 종이 가장자리가 손톱 아래서 일어났다."하나만 더!"밖에서 여인이 외쳤다. 연교가 몸을 돌리는데 작은 누런 소매가 물 위를 스쳤다. 곡물전의 어린 딸이 널빤지에서 미끄러졌다. 어머니가 팔을 뻗었으나 자루를 지던 사내의 어깨에 막혔다.연교는 품을 누른 손을 폈다. 장부가 물로 떨어졌다. 그녀가 아이의 옷깃을 잡자 목둘레 매듭이 손가락을 죄었다. 한 손을 겨드랑이 아래로 옮기며 무릎을 세웠다. 물이 치마를 뒤에서 잡아당겼다.문밖의 밧줄이 팽팽해졌다.허 도위가 수레 바퀴에 발을 걸고 버티고 있었다. 성치 않은 팔에 감긴 줄 아래로 피가 배었다. 아이를 널빤지 위에 올린 뒤에도 줄은 풀리지 않았다. 곡식 자루 둘이 뒤에서 밀려왔다."이제 놓으세요!"연교가 외쳤다. 그는 고개만 저었다. 수레가 한 번 더 밀리고 병사 둘이 반대편 바퀴를 붙들었다. 그제야 감긴 줄이 느슨해졌다. 그의 손가락은 펼쳐지지 않았다.연교는 아이를 어머니에게 넘겼다. 곡물전 안주인은 아이의 젖은 머리칼을 입술로 누르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숨이 목에 걸려 기침만 났다. 연교는 아이의 풀린 옷매듭을 다시 묶어 주고 몸을 돌렸다.수레 옆에서 병사의 누이가 장작을 내려놓았다. 군량창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연교에게 해마다 다시 읽게 하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허 도위의 피 묻은 팔을 보고 수레 고삐를 그의 성한 손에 걸었다."저 위까지만 맡으시오. 물이 빠지면 내가 가져갈 테니."그가 고개를 숙였다. 여인은 기다리지 않고 아이들 쪽으로 갔다.높은 헛간에 놓인 약상에는 한철 의원패가 달려 있었다. 심유화가 자기 이름 아래 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