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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계산 밖

작가: moominkiller
last update 게시일: 2026-07-19 19:51:38

북강은 소문보다 가난하지 않았다.

신부 행렬의 붉은 가마 안에서, 온보요는 주렴을 반 치 걷고 성 안을 읽었다. 성벽의 보수 흔적은 최근 것이었고, 저자의 곡물전 앞에는 줄이 짧았다. 군마는 살이 올랐는데 백성의 낯빛이 상하지 않았다. 저자 어귀에서 마른 약초와 무두질한 가죽 냄새가 주렴 틈으로 스며들었고, 성벽 쪽에서 대장간 망치 소리가 고르게 울렸다. 겁에 질린 성읍의 소리가 아니었다. 폭군이 다스리는 땅의 얼굴이 아니었다.

소문은 부풀려졌거나, 만들어졌거나.

그녀는 주렴을 내렸다. 어느 쪽이든 쓸모 있는 기별이었다.

혼례는 배운 대로 치렀다. 절의 각도, 잔을 받는 손, 너울 아래의 호흡까지. 스무 해를 연습한 춤이었다. 다만 맞절 상대의 그림자가 컸다. 너울 너머로도 짐작되는 크기였다.

신방에 앉아 그녀는 무릎 위에 손을 포갰다. 너울 안쪽은 제 숨으로 데워져 있었다. 초 심지 타는 냄새에 낯선 향이 섞여 들었다. 송진 냄새라고, 그녀는 짚었다. 북쪽의 나무가 타는 냄새였다.

사흘 안에 왕부의 사람 배치를 파악할 것. 이레 안에 안채의 살림 문서를 손에 넣을 것. 보름 안에 경성으로 보낼 첫 서신의 내용을—

문이 열렸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그림자가 먼저 무릎 위에 얹혔다. 저울대가 너울 자락에 걸리고, 붉은 것이 흘러내렸다.

고개를 숙인 채, 그녀는 배운 떨림을 속눈썹에 실었다. 겁먹은 사슴. 물기 어린 눈. 사내들이 좋아하는 것들.

침묵이 길었다.

예법에 없는 길이였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은 혼례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붉은 것이 어울릴 리 없는 사내에게, 지독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넓은 어깨에서 옷자락이 무겁게 떨어졌고, 금실 깃 위로 드러난 목에는 오래된 흉 하나가 화촉 불빛에 얕게 패어 있었다.

끝까지 꺾어야 닿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먹으로 그은 듯 짙은 눈썹 아래 눈매는 깊고 서늘했다. 콧날은 칼등처럼 곧았고, 다문 입매에는 온기가 없었다. 깎아낸 것이 아니라 벼려낸 낯이었다. 삭풍이 이십 년을 두고 사람을 다듬으면, 이런 얼굴이 나오는가.

미남이라는 말은 게을렀다.

소문 속의 짐승이 아니라, 소문을 부리는 자의 눈이었다.

판에 없던 수.

머릿속에서 한 줄이 소리 없이 지워지고, 다시 쓰였다.

턱에 손끝이 닿은 것은 그때였다. 낯을 들어 올리는 손길은 느리고 무람없었다. 물건 값을 매기는 손인가 하면, 뺨을 쓸고 가는 엄지에는 뜻 모를 온기가 있었다. 심장이 제멋대로 속도를 올렸다. 이것은 배운 떨림으로 덮어야 했다. 속눈썹을 떨어 보였다. 덮은 것인지 들킨 것인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합환주가 오갔다.

"신첩, 왕야를 뵈옵니다."

목소리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가 몸을 숙였다. 그림자가 접히며 내려와 방 안의 불빛을 반으로 줄였다. 숨이 닿을 거리에서, 낮은 목소리가 말했다.

광대놀음은 거기까지 해라.

네가 세작인 것을, 본왕은 안다.

심장이 한 박자 엇나갔다. 발각 탓— 이어야 했다.

가까워서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정수리 위에서 장신구가 멎어 있던 것을, 그녀는 뒤늦게 알았다.

알고도 들였다. 죽일 것이었으면 국경에서 죽였을 것이다. 알고도 들인 세작은 쓸 데가 있다는 뜻이고, 쓸 데란 하나다. 저를 통해 조정에 무언가를 흘리겠다는 것.

그렇다면.

역이용당해 주면 된다. 그 판 위에 제 판을 한 겹 더 얹으면 될 일이었다.

온보요는 속눈썹의 떨림을 거두었다. 물기를 걷어낸 눈으로 사내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갓 벌어진 꽃봉오리 같은 낯으로, 방긋 웃었다.

"하오면 왕야."

"·······."

"신첩이 무엇을 적어 보내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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