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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오카다 경부와 가짜 머슴 1

Penulis: 고독한포켓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18 23:13:45

​붉은 노을빛이 낙동강 물결 위로 핏빛처럼 진하게 번져 나갔다.

​산그늘이 기 길게 늘어지는 저녁 무렵이 되자, 삼강 나루터의 강바람은 낮보다 훨씬 매섭고 스산하게 불어왔다.

​유옥연은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잔불씨를 가만히 다스렸다.

​낮에 다녀간 늙은 사공 김 씨의 소문 덕분이었는지, 나루터 근처를 지나던 뱃사공 두 어사가 주막에 들러 시래기국을 사 먹고 돌아간 뒤였다.

​바닥에 놓인 조그만 옹기 항아리 속에는 사공들이 내고 간 동전 몇 푼이 제법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옥연은 그 동전들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내리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가문이 풍비박산 나고 경성에서 도망쳐 왔을 때만 해도, 당장 오늘 밤을 버틸 수 있을지조차 아득했었다.

​하지만 이 작고 낡은 주막에서 지어낸 뜨거운 국 한 사발이 스스로의 목숨을 이어나가게 해주고 있었다.

​옥연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 끝으로 닦아내고 상마루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옥연과 한탕 국사발 밀당을 벌였던 남자는, 식은 국을 사발째 비워낸 뒤 상마루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남색 도포 자락을 넓게 늘어뜨린 남자의 모습은 여전히 현실의 사람이라 믿기 힘들 만큼 기풍이 흘렀다.

​낮에 사공의 감사를 흡수하여 신력을 회복한 덕분에, 그의 몸은 반투명하던 영체에서 벗어나 완벽한 실체로 굳어 있었다.

​옥연은 남자의 단정하게 굳게 닫힌 붉은 입술과 짙은 속눈썹 그늘을 가만히 건너다보았다.

​까탈스럽고 고고하게 굴면서도, 식어버린 국사발을 하나도 남김없이 싹 비워낸 모습이 은근히 기가 차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옥연은 툇마루 위로 올라가 남자가 남겨둔 빈 옹기 사발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 대문 밖에서 둔탁하고 기분 나쁜 구두지옥 소리가 서걱서걱 흙바닥을 짓밟으며 다가왔다.

​일반적인 뱃사공들의 짚신 소리가 아니었다.

​빈틈없이 다듬어진 가죽 구두가 마른 흙을 짓눌러 갈아버리는 묵직하고 섬뜩한 소리였다.

​옥연의 손끝이 나직하게 떨리며 옹기 사발 테두리를 바짝 쥐었다.

​이곳 나루터까지 제복을 입고 가죽 구두를 신고 들어올 자는 단 한 부류뿐이었다.

​쿠웅!

​오카다 쇼이치가 도깨비들이 단단하게 고쳐놓은 대문을 발로 툭 차며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읍내 경찰서의 악질 조선인 순사인 그는, 잘 다려진 검은 순사복을 빈틈없이 입은 채 허리춤의 군도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광대뼈가 불거진 그의 마른 얼굴 위로, 가늘고 찢어진 눈동자가 뱀처럼 스산하게 번뜩였다.

​오카다는 마당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더니, 툇마루에 서 있는 옥연을 향해 비스듬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야아, 여기가 소문으로만 듣던 그 삼강주막인가."

​오카다가 조선어와 일본식 억양을 이상하게 섞은 기분 나쁜 음성으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검정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허리춤의 군도를 툭툭 치며 툇마루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경성에서 독립당 놈들의 뒤를 봐주던 유 참판 댁 여식이 도망쳐 왔다는 소문을 듣고 와봤는데."

​오카다가 눈을 반쯤 감은 채 옥연의 얼굴을 사정없이 훠이훠이 훑어 내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참말인듯 하구만."

​옥연은 옹기 사발을 든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오카다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가슴 안쪽에서 서리 품은 공포가 솟구쳐 올랐지만, 옥연은 단 한 번도 눈동자를 떨구지 않았다.

​"손님이 아니시라면 나가 주십시오. 주막은 술과 국밥을 파는 곳이지, 관가 순사님의 사사로운 조사를 받는 곳이 아닙니다."

​옥연의 또박또박하고 정중한 거절에 오카다의 가늘어진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가 비웃음을 흘리며 툇마루 위로 구둣발을 턱 올려놓았다.

​"허, 이 년이 양반가 가문이 망한 줄도 모르고 여전히 기개가 높구만."

​오카다가 긴 손가락을 뻗어 옥연의 단정한 턱을 강제로 잡아채려 손을 내밀었다.

​"최참판댁 후처 자리를 마다하고 이런 흉가 같은 곳에 숨어 국밥이나 팔고 있었단 말이냐. 당장 읍내 서로 연행해 네 죄를 낱낱이 문초해 주마."

​오카다의 기분 나쁜 손가락이 옥연의 뺨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잉.

​주막 마당 전체의 공기가 사정없이 일그러지며, 오한을 부르는 차가운 중력이 오카다의 손목을 단숨에 옥죄어 왔다.

​오카다의 손이 공중에서 돌처럼 딱 굳어버렸다.

​"어디서 지저분한 똥파리가 꼬여서 귀를 더럽히는가 했더니."

​상마루 어둠 속에서 낮고 서늘한 음성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인간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깊고 차가운, 뼛속까지 얼려버리는 울림이었다.

​오카다가 놀라 고개를 돌리자, 상마루 기둥 뒤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기품 넘치던 남색 도포는 어디로 갔는지, 남자는 헐렁하고 소박한 삼베 저고리에 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대충 거칠게 접어 올려 기다란 손목과 넓은 어깨 선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머슴의 옷을 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과 수려한 기풍은 도저히 숨겨지지 않았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그의 차가운 청색 눈동자가 오카다의 얼굴을 벌레 보듯 내리꽂고 있었다.

​오카다는 난데없이 나타난 장신의 사내가 뿜어내는 기운에 기가 눌려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너, 너는 어떤 놈이냐! 어찌 순사의 업무를 방해하느냐!"

​오카다가 허리춤의 군도 자루를 꽉 쥐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남자는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려 오만하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남자가 기다란 다리로 툇마루를 가볍게 내디디며 옥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접어 올린 손으로 옥연의 마른 어깨를 단숨에 확 잡아 끌어당겼다.

​"앗..."

​옥연의 작은 몸이 남자의 넓고 단단한 가슴께로 단숨에 끌려 들어갔다.

​남자의 몸에서 풍겨오는 차가우면서도 짙은 물이끼 향이 옥연의 코끝을 가득 채웠다.

​남자는 옥연의 어깨를 단단하게 감싸 안은 채, 오카다를 향해 눈매를 가늘게 찌푸려 보였다.

​"보시다시피, 이 주막의 머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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