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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삼계절
2년 만에 처음으로 이라는 은후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서양적인 역삼각형 상체 골격에 동양적인 피부, 날카로운 눈매, 특유의 압도하는 기세.

모든 것이 여전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검은 정장을 입었고 넥타이는 없었다.

흰 셔츠 깃은 조금 열려 있었다.

매끈한 목 아래로 선이 분명했다.

그렇게 편하게 입은 걸 보니 박동혁의 초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마음에 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시 고은후 같은 사람을 박동혁이 설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선배의 기대는 무너졌겠구나.’

이라는 속으로 좀 아쉬웠다.

은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매서운 검은 눈이 이라를 붙잡았다.

“언제 들어왔어?”

시선이 마주쳤다.

은후의 눈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같았다. 그 안에 빠지면 숨을 놓칠 것만 같았다.

이라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오늘 오후에 도착했어요.”

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며 화려한 도로의 흐름으로 빠져들어갔다.

은후가 물었다.

“어디 묵어?”

“호텔이요.”

이라는 호텔 이름을 말한 뒤, 자신도 모르게 은후의 기분을 살피듯, 무의식적으로 덧붙였다.

“아직 집을 구할 시간이 없었어요.”

역시 은후의 눈썹이 희미하게 좁혀졌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집에 안 가?”

은후가 말한 ‘집’이 어디인지 이라는 바로 알 수 없었다.

고씨 집안 본가인지, 은후의 개인 저택인지.

이라는 10살에 고씨 집안으로 들어갔고, 고씨 집안은 이라가 18살이 될 때까지 거둬 주었다.

지금 다시 돌아가기에는 어딘가 맞지 않았다.

18살부터는 은후와 함께 살았다. 꼬박 2년이었다.

은후의 집에는 가장 달콤했던 기억이 있었고, 가장 부끄러운 마음도 숨어 있었다.

은후와 끈적하게 이어졌던 낮과 밤도 그곳에 있었다.

이라는 달콤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건 좀 그렇잖아요.”

은후는 더 캐묻지 않았다.

“네 마음대로 해.”

차 안은 조용해졌다.

공기는 묘하게 굳었다.

운전대를 잡은 정훈도 뒷좌석에서 흘러오는 냉기를 느꼈다.

이라는 늘 추위를 타는 편이었다. 예전에는 은후가 자기 차에 이라를 태울 때마다 차 안 온도를 조금 높이라고 일렀다.

정훈은 이라가 추울까 봐 조용히 차 안 온도를 올렸다.

창밖의 야경이 뒤로 밀려났다. 빠르게 흘러가 어디인지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얼룩진 네온이 창문을 지나 뒷좌석에 떨어졌다.

빛은 두 사람을 서로 다른 세계에 나눠 놓는 듯했다.

뒷좌석은 넓었지만 두 사람은 양 끝에 앉았다. 가운데에는 건널 수 없는 틈이 놓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라는 뚜렷하게 기억했다.

지난 2년 동안, 이 차의 뒷좌석에서 몇 번이나 은후와 입술을 맞췄는지.

어둠 속에서 은후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깊은 시선이 은근히 이라에게 내려앉았다.

정교한 옆얼굴에서 등 뒤로 흐른 긴 웨이브 머리, 허리, 맨다리까지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바다풀처럼 흐른 머리카락은 가는 등을 거의 덮고 있었다.

이라는 단순한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가는 팔다리가 바깥으로 드러났다.

차창 사이로 들어온 빛 아래 이라의 피부가 맑게 빛났다.

남자의 시선이 한 줌 같은 허리를 지나갔다. 예전에 은후가 세게 잡으면 이라는 아파서 눈썹을 살짝 찌푸리곤 했다.

이어 하얗고 곧은 다리에 눈길이 닿았다. 가느다란 발목은 은후의 손바닥 안에 쉽게 들어왔었다.

‘말랐네. 더 예뻐졌어.’

‘성질도 늘었지.’

은후의 입가가 거의 보이지 않게 휘었다.

‘말 몇 마디 하는 것도 귀찮아하네.’

‘아주 잘 컸어.’

...

가방 속 핸드폰 진동이 어색한 침묵을 깼다.

은후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이라가 핸드폰을 꺼낼 때 몸을 조금 돌렸다.

일부러 은후의 눈을 피하는 듯했다.

은후는 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예전에는 작은 일까지 전부 보고하던 이라가 이제는 무언가 숨길 줄도 알았다.

이라는 발신자를 보고 화면을 껐고, 받지 않았다.

몇 초 뒤 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도 끊었다.

결국 전원을 꺼 버렸다.

핸드폰을 가방에 밀어 넣자 은후의 차가운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안 받아?”

말투는 담담했다. 그 안의 감정은 조금도 읽히지 못했다.

이라는 고개를 돌려 웃었다.

“하루에 열 번 넘게 전화하는 사람이 있어요. 너무 들러붙어서 받기 싫어요.”

은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남자?”

이라는 은후의 무감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좀 있는 남자요.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아주 끈적해요.”

은후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차 안의 온도가 조금 더 내려간 듯했다.

이라는 시선을 거두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상한 즐거움이 피어올랐다.

...

얼마 뒤, 검은 세단은 호텔 앞에 멈췄다.

정훈은 바로 내리지 않았다.

이라는 혼자 호텔에 묵은 적이 없었다.

은후도 이라가 혼자 밖에서 호텔에 묵는 걸 용인한 적이 없었다.

정훈은 룸미러로 뒷좌석을 살피며 지시를 기다렸다.

차가 멈췄을 때, 이라의 숨도 따라 멈추는 듯했다.

조용한 차 안에는 작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았다.

은후는 뒷좌석에 기대 눈을 가볍게 감고 있었다.

날카로운 턱선만 보일 뿐,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몇 초 뒤 이라는 마음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기대했던 자신이 우스웠으니까.

‘고은후가 나를 붙잡아 주길 기대하다니.’

‘이 사람은 여자를 붙잡는 사람이 아니잖아.’

2년 전, 이라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모진 말을 다 쏟아냈을 때도 은후는 한마디 붙잡지 않았다.

“잘 가요, 삼촌. 태워 줘서 고마워요.”

이라는 입꼬리를 올려 예의 바르게 말했다. 입가의 보조개 때문에 웃음은 더 달게 보였다.

은후는 눈을 뜨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에는 파문 하나 없었다.

정훈이 내려 짐을 꺼내는 사이에 이라는 혼자 문을 열고 내렸다.

밤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 닿았다.

정훈은 정중하게 이라에게 캐리어를 건네고 다시 차에 올랐다.

곧 검은 세단이 멀어졌다.

이라의 눈에 남은 건 눈부시게 차가운 후미등이 전부였다.

차가 흐르는 도로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이라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의 떨림은 오래도록 가라앉지 못했다.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꺼 두었던 핸드폰을 켜자 보기 싫은 전화가 바로 떠올랐다.

화면에는 ‘서건오’ 세 글자가 있었다.

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입을 열기도 전에 꾸짖는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강이라! 귀가 먹었어? 내가 지금까지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안 받아? 전원까지 꺼? 이제 네 눈에 외삼촌도 안중에 없냐?]

서건오가 이라에게 좋게 말한 적은 딱 두 번뿐이었다.

하나는 2년 전, 해외에 있던 이라를 찾아와 가족이라며 다가왔을 때.

다른 하나는 이라가 최씨 집안과의 혼사를 받아들였을 때.

이라는 호텔 로비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앞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말투는 무심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저 바빠요.”

[네가 뭐가 바빠?]

서건오의 목소리는 컸다.

[그 쓸모없는 대본 쓰는 데 시간 쏟아봐야 돈이 얼마나 되는데? 그 힘으로 최씨 집안 어른들한테 잘 보여. 최씨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이 대본 백 개 쓰는 것보다 낫다!]

이라는 서건오의 반응이 뻔하고 지루하다는 듯 귀를 후비고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 속 남자는 계속 떠들었다.

[오늘 비행기 내렸으면 바로 지범을 찾아갔어야지. 앞에서 얌전하게 굴어. 이 약혼 망치면 내가 가만 안 둬. 네가 원하는 그 물건, 평생 못 받을 줄 알아!]

그 말이 끝나자 이라의 맑은 눈이 어두워졌다. 표정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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