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르셀리아는 아침부터 옷장 앞에 서 있었다.정확히는.십 분째였다.평소라면 이런 일은 없었다. 입을 옷을 고르는 데 시간을 쓰는 건 아르셀리아가 가장 귀찮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검은색, 짙은 적색, 가끔 금색 장식.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적월제처럼 반드시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가 아니면 옷장 가장 앞에 걸린 것을 집어 입는 게 보통이었다.그런데 오늘은.세 번째 드레스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이건 너무 빨개.”침대 옆에서 기다리던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기울였다.“적염령의 드래곤께서 붉은색이 너무 붉다고 하시는 겁니까.”“오늘은 안 돼.”“왜요.”“너랑 맞추는 것처럼 보이잖아.”아스테리온은 자기 옷을 내려다봤다.검은색이었다.목깃과 소매 끝에 아주 얇은 금실 장식이 들어간 옷. 적월제 때처럼 붉은 자수는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단정하고 차분했다.“저는 붉은색을 입지 않았습니다.”“내가 입으면 네 눈이랑 맞잖아.”“…….”아르셀리아가 멈췄다.아스테리온도 멈췄다.“아니.”“예.”“방금 건.”“예.”“잊어.”“싫습니다.”“아스테리온.”“제 눈 색까지 고려해 주셨다는 말인데 어떻게 잊습니까.”“고려 안 했어.”“방금 하셨습니다.”“그냥 나온 말이야.”“그런 말이 더 좋습니다.”아르셀리아는 네 번째 드레스를 꺼냈다.짙은 자주색.은색 장식.아스테리온이 바로 말했다.“그건 싫습니다.”아르셀리아가 홱 돌아봤다.“왜.”“은색이라서.”“은색이 왜.”“세레니스 님과 맞춥니다.”“…….”“싫습니다.”너무.당당했다.아르셀리아가 어이가 없어 그를 봤다.“너 지금 질투해?”“예.”즉답이었다.“숨길 생각도 없어?”“주인님께서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그건 일할 때.”“일할 때만 적용됩니까.”“…….”생각해 보니.그럴 이유는 없었다.아르셀리아는 자주색 드레스를 다시 넣었다.아스테리온의 눈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좋습니까.”“옷이 별로였어.”“예.”“네 말 들어준
아르셀리아가 눈을 떴을 때.가장 먼저 느낀 것은.따뜻함이었다.손.정확히는 오른손.무언가에 감싸여 있었다.“…….”아직 잠이 덜 깬 채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그러자.맞물려 있던 손가락도.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아르셀리아의 눈이.천천히.커졌다.어젯밤이 떠올랐다.첫 월급.머리핀.작은 화산목 상자.청혼.그리고.자기가 먼저 내민 손.얼마나 잡고 있느냐는 질문에.내가 놓을 때까지.그렇게 말했다.그 뒤로.잠들었다.그런데.지금도.잡혀 있었다.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돌렸다.아스테리온은 침대 옆 바닥에 앉아 있었다. 등을 침대 옆면에 기대고, 한쪽 팔을 매트리스 가장자리에 올린 채 잠들어 있었다.소파가 아니라.바닥.그런데도.손은.놓지 않았다.“……바보.”아르셀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대답은 없었다.정말 잠든 모양이었다.검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고개는 살짝 옆으로 기울어 있었다. 저 자세로 얼마나 잔 건지 모르겠다.불편해 보였다.아르셀리아의 미간이.조금 좁아졌다.그냥 손 놓고 소파 가서 자면 됐잖아.자기가 잠든 다음에는.그래도 됐을 텐데.그런데.또 생각해 보면.자기가 말했다.내가 놓을 때까지.그리고.자기는.놓지 않았다.“…….”아르셀리아는.얽힌 손을 봤다.풀면 된다.지금.손가락만 빼면.끝이다.그런데.이상하게.조금 아쉬웠다.아침의 온기가.사라지는 게.“아스테리온.”작게 불렀다.금빛 눈이.바로 열렸다.“……주인님?”목소리가 잠겨 있었다.아르셀리아가 조금 놀랐다.“안 잤어?”“잤습니다.”“근데 왜 바로 일어나.”“부르셔서.”아스테리온은 몸을 일으키려다가.손을 보고.멈췄다.“…….”아르셀리아도.같이 봤다.“아직 잡고 있네.”“예.”“왜.”아스테리온의 눈이.천천히.그녀에게 올라왔다.“놓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주인님이 놓을 때까지라고 하셨으니까.”아르셀리아는.잠깐.말이 없었다.“밤새?”
아스테리온은 출근 사흘째부터 아르셀리아보다 먼저 서고로 갔다.문제는 그 사실을 아르셀리아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아침.눈을 뜬 아르셀리아는 가장 먼저 세 걸음 떨어진 소파를 봤다.비어 있었다.이번에는 협탁 위의 작은 화산목 상자도 없었다. 아스테리온이 자기 첫 보물을 들고 나간 모양이었다.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분명 말했다.어디 갈 거면 깨우라고.정확히는 자기가 잠들어 있더라도 말하고 가라고 했다. 그 이후 아스테리온은 아침마다 꼭 알려 줬다. 오늘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문제는.자기가 못 들었다는 거였다.“……아스테리온.”당연히 대답은 없었다.아르셀리아는 이불을 걷었다. 잠옷 차림으로 문까지 갔다가, 지난번 일을 떠올리고 멈췄다.안 된다.또 그대로 뛰쳐나가면 저 검이 눈 감고 따라올지도 모른다.아르셀리아는 옷부터 갈아입었다. 머리는 대충 묶었다. 그리고 침실 문을 열었는데.문 바깥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주인님. 깨워도 세 번이나 다시 주무셨습니다. 먼저 서고에 가겠습니다. 아침 식사 전에는 돌아오겠습니다. — 아스테리온]“…….”아르셀리아는 종이를 떼었다.세 번.깨웠다고?기억이.없었다.“거짓말 아니야?”하지만 아스테리온은 이런 걸로 거짓말하지 않는다.그럼 정말 자기가 세 번이나 다시 잤다는 건데.아르셀리아는 종이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에 아주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있다는 걸 발견했다.[첫 번째에는 ‘응’이라고 하셨고, 두 번째에는 제 손을 잡으셨으며, 세 번째에는 ‘조용히 하고 가’라고 하셨습니다.]“…….”기억이.없다.특히 두 번째.“내가?”아르셀리아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그리고.귀가 뜨거워졌다.“잠결이잖아.”아무도 없는데 변명했다.“그건 무효야.”복도 끝에서 불 정령 하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뭐가 무효예요?”“가.”“네!”사라졌다.아르셀리아는 다시 종이를 봤다.버릴까.잠깐 고민했다.그런데.접었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떴다.이번에도.가장 먼저.옆을 봤다.세 걸음.소파.아스테리온은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소파에 누워 있지 않았다. 이미 일어나 앉아 있었고, 무릎 위에는 어제 만든 작은 화산목 상자가 놓여 있었다. 뚜껑은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금빛 태양정이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아스테리온은.그걸 보고 있었다.아르셀리아는.한동안.그 모습을 봤다.그리고.생각했다.좋아하네.정말.좋아하나 보다.어제 처음 자기 것을 가졌다고 했을 때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조차 몰라서 한참 고민했고, 작은 상자 하나를 만드는 데 저녁까지 걸렸다. 삐뚤어진 모서리를 몇 번이나 다시 깎으려다가 아르셀리아에게 막혔다.그런데 지금.그 삐뚤어진 상자를.저렇게 보고 있었다.“아스테리온.”금빛 눈이 바로 올라왔다.“일어나셨습니까.”“응.”“좋은 아침입니다.”아르셀리아는 잠깐 그를 보다가 말했다.“있네.”아스테리온의 눈이.아주 조금.휘었다.“예.”“뭐가 좋아.”“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얼굴이.”“주인님께 배웠습니다.”“그 말 쓰지 마.”“어렵습니다.”아르셀리아는 몸을 일으켰다. 느슨하게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며 다시 상자를 봤다.“아침부터 그것만 보고 있었어?”“그것만은 아닙니다.”“또 뭐.”아스테리온은.아르셀리아를 봤다.“…….”“왜.”“말하면 화내실 것 같아서.”“뭔데.”“주인님도.”아르셀리아의 손이.멈췄다.어젯밤.잠들기 직전.자기가 뭐라고 했더라.아침에.네가 있는 거.그거.좋아.“…….”기억났다.너무.잘.아르셀리아는 다시 이불을 끌어올렸다.“못 들었지?”“들었습니다.”“자고 있었잖아.”“저는 안 잤습니다.”“왜!”“주인님이 말씀하셨으니까요.”“그게 무슨 상관이야!”“잠이 안 왔습니다.”아르셀리아의 얼굴이.뜨거워졌다.“잊어.”“싫습니다.”“잊으라고.”“제게 주신 겁니다.”“뭘 줘!”“말.”아
아르셀리아가 눈을 뜬 것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정확히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뒤에야 자신이 먼저 눈을 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화염궁의 아침은 아직 조용했고, 두꺼운 커튼 사이로 스며든 붉은 빛도 희미했다. 복도에서 불 정령들이 돌아다니는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옆을 보는 것이었다.세 걸음.소파.있었다.“…….”아스테리온은 아직 눈을 감고 있었다.어제 아침에는 없었다.그래서 찾았다.그 사실이 떠오르자 아르셀리아는 괜히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오늘은 있으니까 됐다. 딱히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보물이 제자리에 있는지 보는 것뿐이었다.보물은 원래 확인하는 거니까.아르셀리아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그런데.“확인하셨습니까.”눈이 번쩍 떠졌다.고개를 돌리자.금빛 눈이 열려 있었다.“……언제 깼어.”“방금.”“거짓말.”“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나 보는 거 기다렸잖아.”아스테리온이 웃었다.들켰다.“조금.”“언제부터.”“주인님께서 눈을 뜨기 전부터.”“그럼 자는 척한 거잖아!”“주인님이 오늘도 저부터 찾으시는지 궁금해서.”“안 찾았어.”“예.”“확인한 거야.”“예.”“보물이 제자리에 있나.”아스테리온의 웃음이.조금 더 짙어졌다.아르셀리아는 그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차렸다.“…….”“주인님.”“왜.”“아침부터 기분이 좋습니다.”“나빠져.”“어렵습니다.”“소파 다시 여섯 걸음으로 옮긴다.”“그건 싫습니다.”“싫은 건 말하라고 했다고 또 그러려고?”“기억해 주셨군요.”“…….”대화가.왜 자꾸.이쪽이 지는 것 같지.아르셀리아는 이불을 걷어찼다.“일어날 거야.”“예.”“나가.”“예.”아스테리온이 순순히 일어났다.그리고 문으로 가다가.멈췄다.“주인님.”“또 왜.”“오늘은.”“응.”“어디 가지 않습니다.”아르셀리아가 그를 봤다.“주인님이 일어나실
아르셀리아는 아침부터 기분이 이상했다.정확히는.눈을 뜬 순간부터였다.어젯밤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는 그대로였고, 침대에서 세 걸음 떨어진 곳에는 소파가 있었으며, 그 위에는 아스테리온이 있었다. 창밖에서는 화염궁을 감싼 용암이 느리게 흘렀고,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불 정령들이 복도를 오가며 작은 불꽃 소리를 냈다.평소와.같았다.그런데.“…….”아르셀리아는 눈을 뜬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어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자꾸 생각났다.후회하십니까.아니.대답은 빨랐다.고민하지도 않았다.아스테리온을 가져온 걸 후회하느냐고 물었고.자기는.아니라고 했다.그게 뭐.사실인데.보물을 가져온 걸 왜 후회해.문제는.그다음이었다.아스테리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평소라면 좋아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또 청혼하고 싶어졌다고 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내일도 물어보겠다고 능글맞게 웃었을 것이다.그런데.어젯밤에는.조용했다.그래서 오히려.그 침묵이.더 오래 남았다.아르셀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소파.아스테리온은.없었다.“…….”눈이.조금 커졌다.이불을 걷었다.바닥에 발을 내렸다.소파 위에는 접힌 담요와 책 한 권만 있었다.아르셀리아는.침실 문을 봤다.“아스테리온?”대답이 없었다.문을 열었다.복도.없었다.왼쪽.오른쪽.불 정령 하나가 지나갔다.“아스테리온 봤어?”정령이 빙글 돌았다.“성검님이요?”“응.”“아까 아래층으로 갔어요!”“왜.”“몰라요!”“언제.”“조금 전?”“얼마나.”정령이 작은 불꽃 손가락을 꼽았다.“열 번 반짝이기 전?”“그게 몇 분인데.”“몰라요!”“……가.”“네!”정령이 도망갔다.아르셀리아는 복도를 걸었다.걷다가.조금 빨라졌다.계단.아래층.응접실.없다.서재.없다.식당.없다.“…….”아르셀리아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어제.자기가 말했다.아침에 있어야 된다고.그리고.그는 있었다.눈을 떴을 때까지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