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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장국밥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4 06:17:02

2월 10일, 장터 어귀에는 단자를 받는 아전이 낮은 상을 펴 놓고 앉아 있었다. 새미는 지게를 내려놓지 않은 채 단자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지게 위 물안장 항아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끈을 단단히 묶어 둔 참이었다.

아전은 종이를 펼쳐 이름과 사주를 훑었다.

“단새미.”

“예.”

“내용은 틀림없소?”

“틀린 곳 없습니다.”

새미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손가락이 저절로 접히려 해서 지게끈을 쥐었다. 아전은 단자를 접어 다른 종이들 위에 놓았다. 끝이었다. 이름 하나가 종이 위에 들어갔고, 새미는 그 이름을 당장 되찾을 방법이 없었다.

“이제 돌아가도 됩니까?”

“마감 전에 냈으니 돌아가도 되오.”

아전은 다음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새미는 잠깐 상 위를 보았다. 제 단자가 다른 집안의 단자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종이 한 장에 간택의 문이 열리는 건 빠르기도 했다.

장터에는 사람과 짐이 오갔다. 생선 광주리를 든 장사꾼이 새미 옆을 지나갔고, 바닥에 앉은 아이가 엿가락을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새미는 지게끈을 어깨에 고쳐 걸었다. 항아리에서 장 냄새가 났다. 오늘은 팔아야 했다.

“아가씨, 장 파는 데까지 그 지게로 갈 거요?”

아전이 물었다.

“국밥집에 먼저 가져다드릴 겁니다.”

“그렇소. 길 막지 않게 조심하시오.”

“예.”

새미는 지게를 메고 장터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에 끈이 닿았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항아리 뚜껑이 낮게 울렸다. 새미는 걸음을 늦춰 물안장이 흔들리지 않게 했다.

장터 한복판에 이르자 국밥집이 보였다. 문 앞에는 장작을 쌓아 둔 자리가 있었고, 안에서 국물 끓는 소리가 났다. 새미가 문턱에 닿기도 전에 주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고, 새미 왔네. 어깨 안 아프냐?”

“괜찮아요. 항아리부터 내려놓을게요.”

“잠깐, 내가 받으마.”

주인은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고 나왔다. 새미가 지게를 낮추자 주인이 항아리 아래를 받쳤다. 바닥에 닿는 순간까지 둘은 숨을 맞췄다. 항아리가 장작더미 옆에 놓였다.

“이번 건 간장하고 된장이에요. 간장은 큰애기 독에서 떴어요.”

“큰애기? 지난번에 간이 조금 세다고 했던 그 독?”

“이번엔 물을 맞춰 덧댔어요. 짠맛이 덜하고, 끝에 콩 맛이 남아요.”

주인은 항아리 뚜껑을 열지 않고 손바닥으로 옆면을 짚었다.

“지난번 것도 좋았어. 손님들이 국밥에 넣고는 밥을 더 달라더라.”

“장 때문인지 국밥 때문인지 모르죠.”

“그럼 둘 다 때문이라고 하자.”

주인은 웃으며 안으로 몸을 돌렸다. 새미는 항아리 입구를 덮은 천을 확인했다.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장을 넘길 때는 담근 날짜와 독 이름을 말해 두어야 했다. 물안장 장부에는 전부 적혀 있어도, 장터에서는 손님 입에 들어갈 장의 몫을 입으로도 챙겼다.

“간장은 얼마나 드릴까요?”

“저번만큼. 된장은 작은 항아리로 하나 더.”

“된장은 오늘 다 가져오지 않았어요. 지게 아래쪽에 작은 단지가 있어요.”

“그걸로 하자. 저녁에 떨어지면 난감하거든.”

주인은 안쪽에서 작은 단지를 꺼내 받아 들었다. 새미가 천 매듭을 풀어 열어 주자, 짙은 된장 냄새가 올라왔다. 주인은 숟가락 끝에 조금 묻혀 맛을 봤다. 입을 다문 채 천천히 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익었네.”

“지난달에 담근 거예요. 아직 독에서 더 묵혀야 해서, 이건 먼저 꺼낸 장이에요.”

“날짜까지 기억하니 참 대단하다.”

“맛보면 어느 독인지 알아요.”

주인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새미를 쳐다봤다. 새미는 당연하다는 듯 항아리 뚜껑을 닫았다. 주인이 장값을 세어 건넸다. 새미는 엽전을 손바닥에 늘어놓고 수를 확인했다. 하나씩 세어 받은 뒤 품에 넣었다.

“또 장터에 나올 거지?”

“장 팔러는 또 와야죠.”

“그럼 다음에 간장도 조금 더 가져와. 여긴 손님이 장을 많이 먹어.”

“남은 장을 보고 말씀드릴게요. 독을 비우려고 맛을 당기진 않을 거예요.”

“그게 네 장의 좋은 점이지.”

주인은 항아리 뚜껑을 한 번 더 눌렀다. 새미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국밥집 안에서는 주인이 혼잣말처럼 혀를 찼다.

“염씨장전은 값도 싼데, 장맛이 어째 그리…….”

“아저씨.”

새미가 문틈으로 불렀다.

주인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냐?”

“그냥요.”

“말 안 했어. 혀만 찼지.”

새미는 웃지 않았다. 주인은 앞치마 끈을 만지작거렸다.

“염 주인 장은 늘 색이 진해서 손님들이 좋아해. 맛을 보기 전에는 말이지.”

“그럼 맛을 보고 말하면 되죠.”

“그 집 장을 사 간 손님한테 그 말 했다간 장터에서 장사를 못 해.”

“아저씨도 장을 팔아요?”

“국밥을 팔지.”

“국밥에 장을 넣으시잖아요.”

주인은 대답 대신 문을 반쯤 닫았다. 새미는 국밥 냄새를 맡으며 안쪽을 보았다. 솥에서는 김이 올랐다. 한 그릇 먹고 싶었지만, 아직 염씨장전 앞을 지나야 했다. 장을 다 팔지 못하면 그믐까지 셈이 맞지 않았다.

그때 장터 골목에서 염씨장전 머슴이 걸어왔다. 국밥집 주인은 그 모습을 보자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바람이 덜 차네. 아침보다 나아졌어.”

머슴은 국밥집을 지나며 고개만 끄덕였다. 주인은 문이 닫히는 걸 보고 나서야 새미를 향해 입을 삐죽였다.

“날씨는 좋겠네. 염 주인 장만 안 팔리면 더 좋고.”

“아저씨.”

“이번엔 혀도 안 찼다.”

새미는 지게끈을 다시 당겼다. 국밥집 주인은 문을 조금 열어 둔 채 새미를 배웅했다.

“장터 끝까지 다녀와. 그 사이에 국물은 안 식혀 놓을 테니.”

“국물은 안 식어도 손님은 기다리시겠죠.”

“이 집 손님은 나를 기다린다.”

“밥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요.”

“그건 내가 밥을 주니까 기다리는 거지.”

주인은 문을 닫았다. 새미는 지게를 메고 염씨장전 쪽으로 걸었다.

―

염씨장전 앞에는 큰 항아리들이 늘어서 있었다. 항아리는 새것과 오래된 것이 섞여 있었고, 몇몇 뚜껑에는 장물을 닦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염대길은 굵은 은가락지를 낀 손으로 작은 사기 종지를 들고 있었다.

“이 장은 3년 묵은 간장이오. 색부터 다르지 않소?”

염대길이 종지에 장을 조금 따라 보였다. 장은 어둡고 윤기가 났다. 손님들이 고개를 가까이 했다.

“물안장보다 묽은 장하고는 다르오. 오래 묵히면 이런 색이 나오는 법이지.”

새미는 걸음을 멈췄다. 염대길은 단가네 장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장터에서 서로의 장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장을 깎아내리는 말은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

“주인장, 한 종지 맛보겠소?”

염대길이 손님에게 물었다. 손님은 종지를 받아 입술에 댔다. 새미는 사람들 사이로 다가갔다.

“저도 맛봐도 될까요?”

염대길의 눈이 새미의 지게로 갔다.

“물안장 아가씨 아니오?”

“단새미입니다.”

“이름까지 밝힐 건 없소. 장터 사람들은 다 알지. 네 장은 색이 연하고 값은 더 받잖소.”

손님 몇이 서로 얼굴을 봤다. 새미는 지게를 가게 앞에 내려놓았다.

“그 장이 3년 묵은 장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내가 3년 묵었다고 했으면 3년 묵은 거요.”

“제가 맛봐도 됩니까?”

염대길은 종지를 들고 있던 손을 잠깐 멈췄다. 손님들 앞에서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웃는 얼굴로 종지를 내밀었다.

“맛을 아는 처녀라니 한번 보시오. 네가 맞힐 수 있나.”

새미는 허리춤에서 작은 나무 맛숟가락을 꺼냈다. 염대길이 종지를 낮춰 주었다. 새미는 장을 조금 떠 입에 넣었다. 짠맛이 먼저 올라왔다. 혀끝에 소금기가 남았고, 콩의 단맛은 짧았다. 목으로 넘기기 전에 혀를 한 번 굴렸다.

“소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염대길이 코웃음을 쳤다.

“장에 소금이 안 들어가오?”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장은 짠맛이 먼저 나고, 콩 맛이 뒤에 거의 남지 않습니다. 색은 진하지만 깊이가 없습니다.”

손님 하나가 종지를 다시 보았다. 염대길은 은가락지를 엄지로 문질렀다.

“혀가 어리니 아직 모르는 게 많구려.”

“그러면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새미는 맛숟가락을 종지 가장자리에 대고 남은 장을 살폈다. 한 방울이 천천히 내려왔다. 새미는 손가락을 접었다.

“하나, 짠맛이 바로 올라옵니다. 둘, 단맛이 짧습니다. 셋, 콩 냄새가 약합니다. 3년 묵은 장이라기보다 1년 묵은 장에 소금을 많이 넣어 색을 낸 장입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손님은 종지를 염대길 쪽으로 돌려주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다.

“그걸 네가 어찌 아오?”

“장맛을 보면 압니다.”

“물안장 장을 팔려고 남의 장을 헐뜯는 게 아니오?”

“그럼 제 장도 맛보시면 됩니다.”

새미는 지게 위의 항아리 뚜껑을 열지 않았다. 염대길은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장을 맛보고 네 장까지 맛보라는 거요?”

“손님들이 고르실 일이니까요. 두 장을 같은 숟가락으로 맛보시면 됩니다.”

“네 장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소.”

“지금 꺼내겠습니다.”

새미가 지게끈을 풀려 하자 염대길이 손바닥을 내보였다.

“그럴 것까지 있소?”

“먼저 제 장을 비웃으셨으니, 손님들이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염대길의 입술이 얇아졌다. 손님들은 새미의 지게와 염씨장전 항아리를 번갈아 봤다. 종지를 들고 있던 사람은 장을 코 가까이 가져갔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이게 3년 장이 아니란 말이지?”

손님이 물었다.

“제 혀로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장맛을 오래 본 혀라고 해서 늘 맞는 건 아니오.”

염대길이 말했다. 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다시 맛보시라고 했습니다. 제 말만 믿으실 필요 없습니다.”

새미는 작은 나무 맛숟가락을 헝겊으로 닦았다. 종지를 내민 손님은 염대길을 향해 물었다.

“그럼 3년 장이라는 말은 어떻게 확인하면 되오?”

“장부가 있소. 담근 날을 적은 장부 말이오.”

“그 장부를 보여 주면 되겠네.”

염대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가게 안쪽에 있던 머슴이 몸을 움직였지만, 염대길이 손등을 들어 막았다.

“장부는 가게 안에 있소. 장사하면서 아무한테나 보여 주는 게 아니오.”

“그럼 우리도 아무 장이나 사면 안 되겠구려.”

손님이 종지를 돌려주었다. 다른 손님은 장독에서 몸을 뗐다.

“오늘은 안 사겠소. 다음에 장부를 보고 사지.”

옆에 있던 손님도 장독에서 몸을 뗐다.

“나도 다른 데부터 둘러보겠소.”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 앞을 비웠다. 염대길은 종지를 안으로 가져가며 새미를 노려봤다.

“네가 말 몇 마디 했다고 장터 사람들이 네 장만 살 것 같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네 장이 더 낫다고 자랑하고 싶은 게 아니오?”

“맛으로 판단하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참 매끄럽구려.”

“장도 제대로 담가야 하니까요.”

손님 하나가 낮게 웃었다. 염대길은 웃지 않았다. 새미는 숟가락을 소매에 넣었다. 손가락 끝에 장이 조금 묻어 있었다. 그녀는 헝겊으로 닦고 다시 손가락을 접었다. 네. 다섯. 여섯. 더 말하면 같은 말을 반복할 것 같았다.

한 손님이 종지를 염대길에게 돌려줬다.

“오늘은 안 사겠소. 다음에 장부를 보고 사지.”

옆에 있던 손님도 장독에서 몸을 뗐다.

“나도 다른 데부터 둘러보겠소.”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 앞을 비웠다. 염대길은 종지를 안으로 가져가며 새미를 노려봤다.

“네 아비 빚이 얼마인지 알고 있소?”

“압니다.”

“장 팔아 갚을 수 있겠소?”

“그건 제가 계산하고 있습니다.”

“마흔 냥을 계산만 해서 갚을 수 있다면 장사꾼은 다 부자겠소.”

새미는 지게끈을 다시 어깨에 걸었다.

“그래서 장을 팔러 왔습니다.”

“내 장을 헐뜯었으니 네 장도 잘 팔려야겠구려.”

“제 장을 맛본 손님이 정하실 겁니다.”

염대길은 대꾸하지 않았다. 새미는 돌아섰다. 뒤에서 머슴이 항아리 뚜껑을 닫는 소리가 났다. 새미는 국밥집 쪽으로 걸었다. 지게는 비어 있지 않았지만, 어깨에 얹힌 무게가 아까보다 크게 느껴졌다. 염대길의 말이 따라붙어서가 아니었다. 빚은 그대로였고, 오늘 번 돈도 많지 않았다.

―

국밥집 안은 손님들로 차 있었다. 주인은 그릇을 나르다가 새미를 보고 빈자리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 늦은 점심이라도 먹고 가.”

“장부터 정리할게요.”

“항아리는 내가 안쪽에 들여놨어. 된장도 잘 덮었고.”

새미는 지게를 내려놓고 끈을 풀었다. 주인은 이미 항아리들을 부엌 안쪽에 옮겨 둔 뒤였다. 지게가 가벼워져 있었다. 새미는 어깨를 문질렀다.

“수고하셨어요.”

“네가 장을 가져왔는데 내가 손을 안 보태면 주인이 아니지.”

주인은 국밥 한 그릇을 내왔다. 새미는 그릇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잡았다. 김이 올랐다. 국물 위에 파가 조금 떠 있었고, 고기 몇 점이 보였다. 새미는 밥을 말기 전에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장의 짠맛이 앞서지 않았다. 간이 알맞았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

“단자를 내고 오느라요.”

주인은 숟가락을 멈췄다.

“냈어?”

“예.”

“그럼 간택에 나가게 된 거냐?”

“아직은 단자만 냈어요.”

“그게 무슨 차이냐?”

“단자에 이름이 올라갔다고 뽑힌 건 아니니까요.”

주인은 새미 앞에 물그릇을 놓았다.

“가고 싶지 않은 얼굴이구나.”

새미는 숟가락을 그릇 옆에 내려놓았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단자는 냈고.”

“마감이라 냈습니다.”

“네가 말한 건 다 맞는데, 듣는 사람은 자꾸 다른 걸 붙여 듣는구나.”

“그렇습니다.”

주인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새미의 밥그릇에 국물을 조금 더 부었다.

“오늘 장터에서 염 주인하고 부딪쳤다면서?”

“봤어요?”

“장터는 좁아. 네가 지게를 메고 염씨장전 앞에 섰는데 모를 리가 있나.”

“제가 먼저 장을 헐뜯은 건 아니에요.”

“그건 나도 알아.”

“염 주인이 물안장을 깎아내렸어요. 1년 장을 3년 장이라고 팔았고요.”

주인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아까 말하려던 게 그거야. 저 장은 맛을 보면 알 수 있어. 그런데 장터에서 염 주인한테 그 말을 했다가는 괜히 시비가 붙지.”

“말하지 않으면 손님이 속아요.”

“그렇지. 그래서 네가 그 자리에서 말했구나.”

“맛을 본 손님들이 판단하게 했어요.”

주인은 새미의 빈 숟가락을 보았다.

“넌 장을 팔러 온 건데, 네 장은 제대로 보여 주지도 않았네.”

“염 주인 장을 맞히는 게 먼저였어요.”

“그럼 점심은 내가 더 줘야겠네. 일도 했으니.”

“국밥값은 낼게요.”

“장값에서 빼면 되지.”

“아까 장값은 장값이에요.”

“그럼 국밥값은 다음에 받아야겠군.”

“다음에 오면 드릴게요.”

주인은 웃고는 다른 손님에게 물을 가져다주러 갔다. 새미는 국밥을 한 숟가락 더 떴다. 구석 자리에는 쪽빛 도포를 입은 선비가 앉아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몸이었다. 선비는 국밥을 앞에 둔 채 손을 멈추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에는 활을 오래 잡아 생긴 굳은살이 보였다.

새미는 그 손을 짧게 보고 국밥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비는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을 뜨고, 입에 가져갔다. 한 숟가락을 삼킨 뒤 움직이지 않았다.

국밥집 주인이 빈 그릇을 치우러 왔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선비님, 국물이 입에 안 맞으십니까?”

선비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구석 자리의 시선이 새미 쪽으로 옮겨 왔다.

“이 장, 어느 집 것이오?”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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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미는 강정 접시를 마루 가운데로 옮겼다. 접시 밑에 깐 종이가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손끝으로 종이를 당기자 바삭한 부스러기가 손바닥에 묻었다.“이렇게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었는데.”“손님이 오신다면서요.”옆에서 찻물을 올리던 나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새미는 접시를 살폈다. 강정은 가지런히 놓였지만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쌀알이 큼직하게 붙은 것도 있고, 끝이 조금 부서진 것도 있었다.“모양이 달라도 맛은 같아요.”“그래도 마마께서 손수 놓으셨는데요.”“손님들이 모양을 세어 보러 오시는 건 아니잖아요.”나인은 웃음을 삼키며 주전자를 들었다. 뜨거운 물이 찻잔에 부어졌다. 새미는 찻잔을 받쳐 들고 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강정에 묻은 조청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별궁 마당에서는 빗자루가 마른 잎을 쓸고 있었다. 매실나무 아래에는 잎 몇 장이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이 떨어졌고, 나인은 쓸고 새미는 잠시 뒤 다시 밟았다. 오늘은 그 정도 실수쯤은 그냥 두기로 했다.“오시는 분들이 곧 도착하실 겁니다.”“가희가 먼저 오면 방으로 안내해 주세요. 도강도 같이 왔으면 둘 다요.”“예, 마마.”새미가 강정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입에 넣으려는 순간,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나인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손님이 오셨습니다.”새미는 강정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손끝을 옷에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희는 마루에 오르자마자 새미를 보고 두 손을 들었다.“새미야!”새미도 웃으며 앞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가희의 손에 보자기가 들려 있었고, 새미의 손에는 찻잔이 있었다.“손부터 비워야겠네.”“그럼 이걸 받아.”가희가 보자기를 새미에게 건넸다. 새미는 찻잔을 나인에게 맡기고 보자기를 받았다. 도강이 뒤에서 가희의 겉옷을 받아 들었다. 도강은 새미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마마,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두 사람 다 편히 들어오세요.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예를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그렇다고 마루에

  • 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지려고 회귀했더니 세자가 장독대로 찾아왔다   77화. 대추차

    “할매, 씨간장 독은 지게로 못 져.”끝분의 손이 독 뚜껑에 놓인 채 멈췄다. 두식은 막걸리 사발을 내려놓고 장독대 앞에 바짝 다가섰다. 새미는 아버지의 갓을 보았다. 갓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지만 두식은 그걸 모르는 눈치였다.“못 지면 수레에 싣지.”“궁 문턱을 수레가 넘어가겄냐.”“그러면 내가 들면 되지.”“독을?”“씨간장 독은 안 되더라도, 작은 독은 들 수 있어유.”끝분은 두식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에 굳은살은 있었지만, 장독을 들어 본 손 같지는 않았다.“네가 장독을 들어 봤냐?”“장 지게를 졌잖유.”“그건 장 항아리 몇 개 실은 지게였고.”“그려도 등에 멨슈.”“항아리도 깨 먹었지.”두식은 입을 다물었다. 새미는 접시를 든 채 아버지를 살폈다. 지난번 같았으면 두식은 “금방 오께”라는 말만 남기고 마당을 빠져나갔을지 모른다. 오늘은 막걸리 사발도 내려놓았고 장독대에서 물러나지도 않았다.“그럼 내가 지게 대신 장독대를 지킬게유.”끝분이 고개를 돌렸다.“뭐라고?”“새미가 궁에 가면 물안장 독을 누가 살펴야 하잖유. 어머니 혼자 다 보기엔 힘에 부칠 테고. 내가 배우면 되지.”“장 담그는 것도 모르면서 뭘 지켜.”“그러니까 가르쳐 주시면 되잖유.”끝분은 한동안 두식을 바라봤다. 두식의 갓은 여전히 삐뚤어져 있었다. 새미는 웃음이 나오려는 입술을 다물었다.“내가 새미한테 장 담그는 법을 가르친 건 한두 마디가 아니여.”“나도 처음부터 배우면 되지.”“처음부터라면 메주부터다.”“그러면 메주부터 하겄슈.”“소금도 골라야 한다.”“고르면 되지.”“독도 씻고 말려야 혀.”“씻으면 되잖유.”“입은 잘 씻네.”“손도 씻을게유.”끝분이 독 뚜껑에서 손을 떼었다. 두식은 그 손짓을 허락으로 알아들었는지 소매를 걷었다.“지금부터 할까유?”“지금은 손님들 밥을 먹여야제.”“그럼 밥 먹이고 나서 배우면 되겠구먼.”“네가 밥을 먹이고?”“내가 상도 옮겼잖유.”“접시 하나 들고 전을 흘릴 뻔했지.”“안 흘렸

  • 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지려고 회귀했더니 세자가 장독대로 찾아왔다   76화. 막걸리

    마당에 들어선 단새미는 먼저 장독대를 바라봤다.장독 87개가 제자리에 있었다. 그 앞에는 멍석이 깔렸고, 마당 한쪽에는 잔치 음식이 놓인 상이 길게 이어졌다. 떡과 전, 삶은 고기가 접시마다 담겼다. 부엌에서는 국 끓는 소리가 났고, 막걸리 사발이 상 위에 하나씩 놓였다.“새미야,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봐라.”끝분이 부엌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새미는 치맛자락을 조금 걷어 잡고 다가갔다.“할매, 뭐 도와줄까?”“저짝 상에 전이 모자란다. 저것 좀 옮겨라.”“벌써 다 놨는데?”“다 놨다고 끝이냐. 먹는 사람 입이 한둘이 아닌디.”끝분은 새미 손에 접시를 얹어 주었다. 새미는 접시를 들고 상으로 갔다. 마당을 가로지르던 단두식이 그 앞을 막았다.“새미야, 오늘은 네가 손님이여. 일을 하면 쓰나.”“아부지가 방금 일하라고 하셨잖아.”“그려. 아까는 그랬슈. 지금은 내가 생각이 바뀌었어.”“전은 이미 들었는데.”“그러면 잘 들고 가면 되지.”두식은 딸 손에 든 접시를 받아 들었다. 접시를 너무 높이 들자 전 하나가 가장자리로 미끄러졌다. 두식은 다른 손으로 얼른 받쳤다. 그 동작이 제법 능숙해 새미는 눈을 깜빡였다.“아부지, 전 옮기는 법도 배웠어?”“내가 젊어서 말이여, 장터에서 접시를 한 손으로 열두 개씩 옮겼어.”새미는 접시를 내려다봤다. 전은 몇 장 없었다.“열두 개가 어디 있어?”“그때는 있었지. 오늘은 접시가 작아서 이만큼만 든 거여.”끝분이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두식아, 허풍도 상에 올릴 거냐?”“어머니, 오늘은 새미 시집가는 잔칫날이잖유. 기운 좀 내야지.”“기운은 네가 내고 전은 내가 부칠란다. 그거 놓고 얼른 움직여.”두식은 접시를 상에 놓았다. 이번에는 전이 미끄러지지 않았다. 끝분은 그 모습을 보고도 칭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엌으로 돌아가며 새 접시를 한 장 더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새미는 그 접시를 받아 상 끝에 놓았다. 전 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마당에 퍼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

  • 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지려고 회귀했더니 세자가 장독대로 찾아왔다   75화. 떡국

    삼간택 처소의 문이 열렸다. 새미는 무릎 위에 모은 손을 내려다봤다. 나무 맛숟가락은 허리춤에 있었다. 오늘은 그걸 꺼내 쓸 자리가 아니었다.윤보옥이 먼저 일어섰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중전 앞에 섰다. 고개를 숙이는 각도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중전마마께 청이 있습니다.”“말하라.”“삼간택에서 물러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옹원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방 안이 잠잠해졌다. 보옥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 자리가 싫어서 물러나는 것도, 세자를 원하지 않아서 물러나는 것도 아니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새미는 보옥이 제 선택을 고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보았다.중전은 보옥의 눈을 살폈다.“세자빈 자리를 마다하고 사옹원에 가겠다는 뜻이냐?”“그렇습니다.”“사옹원 일은 예법을 익히는 것과 다르다. 손에 물도 묻고, 장부도 살펴야 한다.”“알고 있습니다.”“그 일을 네가 원하느냐?”“제가 원합니다.”보옥의 대답은 망설이지 않았다. 손은 치맛자락을 잡지 않았다. 예법 시험에서 답을 읊을 때와 달리 고개를 뻣뻣이 세우지도 않았다.중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네 뜻대로 하라. 오늘부터 사옹원에서 배우도록 하겠다.”보옥은 깊이 절했다. 다시 몸을 일으키자 새미와 눈이 마주쳤다.“새미.”보옥이 불렀다. 두 사람 사이에 호칭이 바뀐 뒤로도,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부른 적은 드물었다.“네가 고른 일이니까, 잘해.”“새미도 네가 고른 일을 하겠지.”“응.”“그럼 됐어.”보옥의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새미는 손가락을 세지 않았다. 대신 보옥이 절을 마치고 돌아서는 것까지 지켜봤다.보옥은 삼간택을 위한 자리에서 물러나 문 쪽으로 걸었다. 그 걸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보옥이 나간 뒤, 비어 버린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새미는 그 자리를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새미도 한때는 떨어지는 일만 바라봤다. 할머니와 장독을 두고 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빚을 갚고 집을 지키면 그다음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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