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와 파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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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산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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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은과 육준수는 황제가 짝지어준 인연이었다. 그런데 혼례를 앞둔 어느 날, 그는 시종의 딸을 팔인 가마에 태워 평처로 들이려 했다. 이는 귀족 아씨인 오주은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였다. 대문 앞에 세워진 사인 가마를 본 그녀는 화려한 혼례복을 입은 채로 황궁으로 향했다. 오늘 날 오씨 가문의 영광은 그녀의 부모님이 목숨 바쳐 일궈낸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정혼자라 하여도 가문의 영광을 짓밟는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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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서음의 부모님은 네 아버지를 구하려다가 희생하였다. 그런데 의지할 곳 없이 고아가 된 그 아이를 모른 체할 수는 없으니 평처로 들이고자 한다. 혼례는 우리의 혼인식날 같이 치르기로 하였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오주은은 익숙한 사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와 육준수는 성상께서 직접 점지해 주신 약혼으로,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며 정을 쌓아왔는데 말이다.

곧 7일 후면 그들의 혼인식이라는 것을 온 경성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하인의 딸을 평처로 맞이하겠다니,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가 허락하지 못하겠다면요?”

오주은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어여쁜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게 식어 있었다.

그러자 육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너와 나는 황명으로 이어진 사이다. 허락을 안 하겠다는 것은 항명을 뜻하는 것이냐?”

“서음을 같은 날 집으로 들이기로 한 것은 그 아이의 신분이 미천하여 조금이라도 위신을 세워주기 위함이야. 그러지 않으면 저택에서 천대받을 것이 분명하니.”

“너는 어릴 때부터 여계와 여훈을 익혀왔다. 그런데 어찌 부군의 뜻을 어기려 하느냐!”

육준수는 표정을 수습하고 오주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속삭였다.

“본디 서음과의 혼례를 앞당길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너와 나의 혼례가 미루어지게 될 것이고, 넌 나이가 들었으니 계속 혼례를 미루다가는 안 좋은 소문이 돌 것이다. 이건 너를 위한 안배이기도 하다.”

그 말에 오주은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부모님의 삼년제를 치르느라 그녀의 나이는 벌써 열일곱을 훌쩍 넘겨버렸다.

다른 집 여인들은 진작에 자식을 품에 안았을 나이였다.

그녀 역시도 혼례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유서음의 부모가 임종 전에 딸을 오라버니께 부탁한 일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저 좋은 혼처를 찾아주고 혼수를 두둑이 해주면 될 것을, 굳이 그 아이와 혼인을 해야 하나요?”

오랜 시간 정을 쌓아온 사람이었기에 오주은은 그에게 기회를 한번 더 주고 싶었다.

사내가 첩을 들이는 일은 흔한 일이었기에 혼인식을 치르고 나서 육준수가 첩을 들이겠다 했으면 절대 막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서음의 신분을 올려치기 위하여 같은 날 혼례를 치르겠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오주은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다.

오씨 가문 일가족은 모두 조정에 충성을 다하다 돌아가셨다. 오늘날 그녀의 신분은 부모님이 목숨 바쳐 일구어 낸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육준수라도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봐줄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힌 육준수는 이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나도 전에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서음이가 다른 사내와 혼인할 거면 차라리 죽겠다고 하더라고.”

오주은이 그 아이가 왜 그런 고집을 피우는지 물어볼 틈도 없이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통방으로 있었던 아이이고 순결을 나한테만 주었는데 어찌 다른 사내와 혼인할 수 있겠어?”

오주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통방이라니!

육준수는 항상 그녀에게 자신은 고결한 사람이라며 그녀를 부인으로 맞기 전에는 절대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첩실은 들이지 않았다고 해도,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아이를 통방으로 두겠다니!

그가 첩실도 아닌 통방을 부인이 될 사람과 같은 날 평처로 맞이하겠다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다면, 오씨 가문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육준수는 그녀의 침묵을 묵인으로 받아들였다.

“서음은 그저 평처의 명분만 필요할 뿐이고, 집안 살림 방면에서는 너를 따라갈 수 없으니 후작가의 안주인은 계속 너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

오주은은 결심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육준수가 돌아간 후, 심복인 영주가 분을 참지 못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아씨, 육씨 가문은 우리 가문에 사람이 없다고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어찌 이런 해괴한 요구를 할 수 있습니까!”

오주은은 오히려 피식 냉소를 지었다.

글공부도 하지 못한 영주마저 해괴한 요구인 것을 아는데 육준수가 그걸 모르고 했을 리 없었다.

그저 부모님을 여읜 그녀를 힘이 없다고 무시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만 방으로 돌아가자.”

오주은은 별다른 말없이 방으로 돌아가서 하다 만 혼례복을 계속 짜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저 집에서 이리도 아씨를 무시하는데 왜 혼례복을 계속 짜시는 겁니까? 이런 수모를 받고도 꼭 그런 사람이랑 혼례를 올려야 하나요?”

오주은은 금실로 봉황의 날개를 수놓으며 담담히 말했다.

“폐하께서 친히 점지하여 주신 인연이야. 아무리 싫어도 황명을 거스를 수는 없지 않겠니?”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조금 전의 불쾌감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신하 된 자로서 어찌 황명을 거스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어렴풋이 과거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촉지에 수재가 들어 매년 사상자가 나왔었다.

오주은의 부모님은 명을 받고 수재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촉지로 떠났고, 그곳에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드디어 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던 길, 두 분은 피로가 쌓이고 쌓인 탓에 결국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황제는 오주은의 아버지에게 충숙공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오주은은 촉지의 현주로 책봉하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오씨 가문에는 오주은 한 사람만이 외로이 남게 되었는데, 그 무렵, 문관들의 지지가 필요했던 육씨 가문은 문관의 수장이었던 오 대인의 딸인 그녀를 며느리로 삼겠노라고 황명을 청한 것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해서 그때그때 변하는 법이지.”

오주은의 탄식 소리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담겨 있었다.

현재 문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육씨 가문은 조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미 떠나고 없는 오 대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충신의 후손인 오주은에게는 그녀가 죽든 살든, 무시를 당하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한낱 하인의 딸이 내 머리 위까지 기어오르는 일은 용납할 수 없어!’

혼인식까지 이제 4일밖에 남지 않았다.

남겨둔 시종이 많지 않기에 혼례식 절차는 오주은 혼자 준비해야 했다.

그녀는 영주와 함께 필요한 물품을 사러 시내로 나갔다.

그런데 앞장서서 걷던 영주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부루퉁한 얼굴로 한 연지 점포를 가리켰다.

“아씨, 저 사람 유서음 아닌가요?”

오주은은 이내 영주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금은 장신구를 가득 두르고 있는 유서음이 있었다.

유서음의 아버지는 한때 육씨 가문의 집사로 일했었다.

비록 가문에서 다소 권력을 행사했다고 하더라도 하인의 핏줄은 역시 하인인 법이었지만, 지금 차림새만 보면 유서음은 양반댁 규수라고 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았음에도 육준수에게 퍽이나 예쁨 받는 듯했다.

여기서 혼례까지 올리면 얼마나 더 기세가 올라갈까?

“가자.”

하지만 이미 결심이 선 오주은은 더 이상 유서음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뒤돌아서 가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은 언니!”

고작 몇 발자국 뛰었음에도 유서음은 숨을 헐떡이며 가련한 척을 하며 다가왔다.

오주은은 가녀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육준수가 욕 먹을 각오하고까지 그녀를 평처로 들이기로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전의 유서음이었다면 그녀를 보고 아씨라고 하며 공손히 대접해야 하는데,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유서음은 그녀의 앞에 고개를 살짝 수그리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따로 볼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혹시 준수 오라버니가 혼례식 때 어느 정도 격식으로 언니를 맞이할지 궁금해서요.”

오주은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육준수가 알아서 할 일인데 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서음은 여전히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준수 오라버니께서 저를 삼서육례의 격식에 맞춰서 팔인 가마를 보낸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주은 언니는 명문 귀족 출신이시니 저보다 격식이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언니가 입장할 때 팔인 가마보다 안 이쁘면 얼마나 난처하시겠어요!”

그 말에 오주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귀족의 혼례에서 삼서육례에 팔인 가마면 이미 최고의 격식이었다. 육준수가 그녀에게 팔인 가마를 보낸다고 해도 유서음과 동일한 격식이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귀족 가문인 오씨 가문에게는 크나큰 모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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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서음의 부모님은 네 아버지를 구하려다가 희생하였다. 그런데 의지할 곳 없이 고아가 된 그 아이를 모른 체할 수는 없으니 평처로 들이고자 한다. 혼례는 우리의 혼인식날 같이 치르기로 하였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오주은은 익숙한 사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와 육준수는 성상께서 직접 점지해 주신 약혼으로,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며 정을 쌓아왔는데 말이다.곧 7일 후면 그들의 혼인식이라는 것을 온 경성이 알고 있었다.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하인의 딸을 평처로 맞이하겠다니,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었다.“제가 허락하지 못하겠다면요?”오주은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어여쁜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게 식어 있었다.그러자 육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너와 나는 황명으로 이어진 사이다. 허락을 안 하겠다는 것은 항명을 뜻하는 것이냐?”“서음을 같은 날 집으로 들이기로 한 것은 그 아이의 신분이 미천하여 조금이라도 위신을 세워주기 위함이야. 그러지 않으면 저택에서 천대받을 것이 분명하니.”“너는 어릴 때부터 여계와 여훈을 익혀왔다. 그런데 어찌 부군의 뜻을 어기려 하느냐!”육준수는 표정을 수습하고 오주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속삭였다.“본디 서음과의 혼례를 앞당길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너와 나의 혼례가 미루어지게 될 것이고, 넌 나이가 들었으니 계속 혼례를 미루다가는 안 좋은 소문이 돌 것이다. 이건 너를 위한 안배이기도 하다.”그 말에 오주은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쓴웃음을 지었다.부모님의 삼년제를 치르느라 그녀의 나이는 벌써 열일곱을 훌쩍 넘겨버렸다.다른 집 여인들은 진작에 자식을 품에 안았을 나이였다.그녀 역시도 혼례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유서음의 부모가 임종 전에 딸을 오라버니께 부탁한 일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저 좋은 혼처를 찾아주고 혼수를 두둑이 해주면 될 것을, 굳이 그 아이와 혼인을 해야 하나요?”오랜 시간 정을 쌓아온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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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오주은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자신의 신분을 올리기 위해 감히 우리 가문의 체면을 짓밟으려 하다니!’유서음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오주은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혹시 제가 말실수라도 해서 화가 나신 건가요? 그런 거라면 제가 사죄드릴게요.”그러고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오주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오주은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뒤에서 육준수가 달려와 유서음을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서음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앞으로 너는 주은과 같은 평처의 신분이 될 터이니 이렇게 예의 차릴 이유가 없단다.”그는 안쓰러운 눈으로 유서음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서음을 평처로 들이고 삼서육례의 격식까지 갖춰준 이유는 그녀가 어깨를 펴고 당당해지기를 바래서였다.앞으로도 유서음이 오주은 앞에서 무릎을 굽힌다면 그가 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세자께서 참으로 저 아이를 아끼시는군요.”오주은은 자신을 앞에 두고 서로 애정을 과시하는 둘을 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준수는 오주은이 유서음을 괴롭혔다고 확신한다는 듯이 싸늘한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고는 유서음에게 말했다.“서음아, 어서 일어나.”그 상황을 차갑게 바라보던 오주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잠깐.”“지금 대체 뭐 하자는 거야!”그러자 육준수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오주은은 마치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서음을 노려보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만해도 혼례 격식을 놓고 자랑하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무릎도 먼저 꿇은 그녀가 피해자인 양 구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오주은은 냉소를 지으며 육준수에게 말했다.“세자께서 전에 그러셨지요. 혼례를 올려야지 평처라고요. 아직 혼례를 올리기 전이고 저는 폐하께서 친히 책봉한 정이품 현주인 반면, 이 아이는 그저 시종의 딸에 불과하죠. 시종이 제게 무릎 꿇고 예를 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평소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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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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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혼례식 전야.오주은은 밤을 새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혼례복을 완성했는데,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옷감은 본디 아름다운 모요의 자태를 더욱 빛나게 했다.“이렇게 아름다운 혼례복을 입고 그딴 집안으로 시집을 가시다니… 너무 억울합니다!”영주는 분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황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오주은은 혼례복을 벗어 곱게 접은 후에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혼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옷만큼은 그녀가 정성을 다해 만든 옷이었다.내일 이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백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니까!“아버지의 위패를 가져오너라.”영주는 이것이 자신이 시집가기 전에 부모님께 다시 한번 절을 올리려는 것이라 여겼다.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오주은은 ‘충숙공 오태화’라는 글씨가 새겨진 위패를 손으로 만지고 또 만졌다.‘아버지, 수고스럽지만 내일 저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오가의 체면이 땅에 털어질 터이니, 부디 불효를 용서해주세요.’이튿날 아침, 동 트기 전.오주은은 일찍이 기상하여 머리를 빗고 곱게 단장을 했다.관저 안에는 붉은 촛불이 환하게 밝혀지고 혼인식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지만 정작 아무도 웃는 얼굴이 없었다.오가의 체면을 짓밟는 혼례인데 어찌 경사라 할 수 있겠는가.곧이어 육가에서 보낸 혼주 어멈이 도착하여 오주은의 긴 머리를 빗겨주었다. “후작가에서 보낸 가마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무려 사인 가마입죠. 보통의 집안에서는 이렇게 화려한 격식을 못 누리지요!”혼주 어멈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육가를 위한 말만 했다.오주은은 동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마치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어멈이 말한 것처럼 사인 가마는 보통의 집안에서나 화려한 격식이지. 평양 후작가가 어디 보통 집안인가?”‘뻔뻔하게 잘도 포장하는구나.’혼주 어멈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이내 사라지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후작가의 돈을 받았으니 당연히 그를 위한 말만 해야 하지만, 후작 가문에서 사인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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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주은아, 일단 뭐가 원통한지부터 말해보거라. 대체 무슨 일이기에 아비의 위패까지 들고 온 것이냐?”황제는 오주은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안고 있는 위패를 보니 측은해서 화조차 낼 수 없었다.오주은은 위패를 안은 채, 먼저 황제에게 큰절을 올렸다.“오래전 폐하께서는 소녀에게 약혼자를 정해주셨지요. 그러니 소녀는 본디 오늘 평양 후작가로 시집을 가야 마땅하옵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말하던 중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다.“허나… 육 세자께서는 집안 하인의 딸과 정분이 나서 그 아이를 평처로 들일 결정을 하셨지요.”“이품 현주인 소녀가 시종의 딸과 같은 날 혼례를 올리고 동등한 신분의 평처가 된다는 것은 이미 오씨 가문의 명성을 더럽히는 일이옵니다.”“그러나 육 세자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유서음에게 팔인 가마의 격식을 주고 제게는 고작 사인 가마를 보냈습니다. 이게 저희 집안에 사람이 없다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오주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평양 후작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혼례복도 못 갈아입고 온 육준수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그저 경고만 하려고 했을 뿐인데….’“폐하, 소인은… 절대 오씨 가문에 모욕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사옵니다. 서음의 부모는 제 아버지를 구하려다 사망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이옵니다.”“그리고 주은이가 말한… 사인 가마는… 단지 후작가의 재정에 무리가 좀 있어 팔인 가마 한 대를 더 마련하기 곤란하여서 그런 것입니다!”육준수의 변명이 끝나자 평양 후작은 절망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멍청한 자식!’오주은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울먹이며 황제를 바라보았다.“시종의 딸의 위신을 세워주고자 팔인 가마의 격식을 차려주었으면서 이품 현주인 저에게, 하물며 폐하께서 점지해 주신 약혼녀인 저에게는 사인 가마만 보냈습니다. 이것은 우리 오씨 가문을 무시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폐하의 은총을 무시한 행위입니다!”오주은의 말을 들은 황제는 기가 막혀 웃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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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폐하, 소녀는 차라리 평생 부처님을 섬기더라도 저를 괄시하는 집안에 시집가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소녀의 청을 들어주시옵소서!”오주은은 정중하게 황제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황제는 그런 오주은의 완고한 태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본디 이 정도에서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으나, 그녀는 한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이게 다 평안 후작가에서 일을 공정히 처리하지 못한 탓이겠지!’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황제는 더욱 싸늘해진 눈빛으로 육준수를 노려보았다.‘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결국엔 짐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 네 앞길을 망친 셈이 되었구나.”황제는 안타까운 어투로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오주은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말속에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황가의 위엄은 절대로 거역해서는 안 되었다.그녀가 오늘 가문의 공적으로 황제를 압박하여 평양 후작 일가를 처벌하게 만들었으니 황제가 그런 그녀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만약 오늘 일로 황제의 불만을 사게 된다면 앞으로 누구와 혼인하든 삶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었다.그녀가 말이 없자, 황제는 냉소를 지으며 한층 차가워진 어투로 말을 이었다.“짐도 네 청을 들어주고 싶다만… 앞으로 누구나 짐을 찾아와 혼사를 물려달라고 하면 천자인 짐의 체면은 어떻게 되겠느냐?”“내 너에게 한달의 기한을 주겠다. 추석연회까지 너에게 청혼하는 세가 자제가 없다면… 황릉에 제실 상궁 자리가 비어 있으니 오거라.”오주은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럼 세가의 자제 중에서 선택을 받으라는 뜻인가?’제실 상궁의 신분으로 황릉에 가면 평생 속세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그리고 황릉에 제실 상궁의 자리가 비어 있을 리도 없었다. 이는 황제가 그녀에게 주는 징벌이나 마찬가지였다.만약 그녀가 한달 안에 짝을 찾지 못한다면 황제는 자신의 위엄을 손상시킨 그녀를 편히 살게 두지 않을 것이다.오주은은 눈을 스르륵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아뢰었다.“성은이 망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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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오주은이 마차에 오르자, 마차는 천천히 출발했다.마차 안쪽에는 부드러운 탄자로 덮여 있었는데 탁자 위에 놓인 달아 보이는 과자가 오주은의 시선을 끌었다.‘촉왕은 단 것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여인을 위해 준비한 걸까?’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밖에서 사내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파혼을 하였는데 생각해둔 혼처라도 있소?”오주은은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아직이옵니다. 허나 아직 시간이 많아서 그리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오 소저야 워낙 경성에 미명이 자자하니, 구혼 행렬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겠군.”오주은은 왠지 그의 말투에서 날선 감정이 느껴졌다.그렇게 그 뒤로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차 안에서 풍기는 은은한 대나무 향에 오주은은 온몸이 나른해지며 졸음을 느꼈다.“실례지만 촉왕 전하께서는 어느 집 향을 사용하십니까?”“오 소저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내일 내 사람을 시켜 저택으로 보내주지.”그렇다는 것은 아마 경성에서 파는 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구하기 힘든 것이라면 굳이 보내주실 것까지는 없사옵니다.”한참의 침묵 후에 그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뭐 그리 귀한 물건도 아니고. 소저가 원한다면 내 기꺼이 선물해 줄 수 있소이다.”느릿한 어조에 담긴 미묘한 여운에 오주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을 어찌 저리 태연하게….’그녀는 앞으로 그를 최대한 멀리해야 겠다고 다짐했다.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사내의 담담하지만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저는 나와 그리 예의 차릴 것 없소. 내 어릴 적에 소저의 아버지인 충숙공께 은혜를 입은 일이 있어 챙겨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오주은은 이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을 때 촉왕과 접점이 있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우연히 지나가다가 도와주신 걸까?’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오늘 그의 도움을 받았으니 차후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그래도 오늘 전하께서 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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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말을 마친 평양 후작은 옆에 있는 육준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그러나 그가 아직도 유서음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찻잔을 집어들었다.“준수야!”눈치 빠른 장씨가 재빨리 육준수를 불렀다.육준수는 그제야 유서음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아버지, 이제 와서 화를 내셔도 무슨 소용인가요. 혼약도 파기되고 제가 그 수모를 당했는데 저 다신 그 계집을 못 찾아갑니다!”육준수는 속으로 딴 속셈을 품고 있었다.이 시기에 자존심 굽히고 오주은을 찾아간다면 그는 온 도성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안 그래도 수치스러운데 더 이상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그의 생각을 뻔히 아는 평양 후작은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려쳤다. 놀란 장씨는 미소를 지으며 부군을 달랬다.“나으리, 진정하세요. 준수가 나이가 어려서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런 것이니 잘 가르치면 말은 들을 거예요.”평양 후작은 육준수를 힐끗 흘겨보고는 차갑게 말했다.“폐하께서 왜 한달 기한을 주셨는지 알아? 그건 네게도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야! 당장 찾아가서 혼약을 되돌려놓지 않으면 난 너 같은 아들은 이제 없는 셈 칠 것이다!”장씨는 후작이 왜 이리 강경하게 나오는지 의아했지만, 구태여 의중을 물을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평양 후작이 서재로 돌아간 후, 장씨는 유서음을 달래주는 아들을 보고 있으려니 미천한 시종의 딸인 그녀가 더욱 꼴 보기 싫어졌다.그나마 눈치 빠른 유서음이 장씨가 뭐라 하기도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모든 건 제가 모자란 탓에 벌어진 일이니 이만 화 푸세요, 마님. 마님께서 어떤 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습니다.”그러자 장씨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유서음을 바라보았다.“그래도 유 집사의 딸인데 어찌 중벌을 내리겠느냐. 준수가 너를 마음에 들어한다니, 앞으로 우리 집안의 천첩으로서, 예법을 열심히 배워야 할 것이다.”유서음은 곧장 고개를 조아리며 공손히 말했다.“제가 비록 어리석기는 하나, 주제넘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방 어멈에게서 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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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육준수도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체 어느 가문 규수인지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소녀가 가까이 다가오며 그녀의 얼굴이 점차 시야에 들어왔다.그는 그 소녀가 오주은이라는 것을 알아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어떻게 네가!”오주은은 대문 앞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되물었다.“여긴 내 집인데 내 집에서 내가 나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인가요?”육준수는 이를 갈며 그녀의 차림새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입고 있는 옷만 해도 적게 쳐서 백 냥 금은 넘어 보였다.게다가 눈앞의 여인은 이런 것이 매우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자신을 만나러 올 때마다 입었던 소박한 차림을 떠올리자, 육준수의 표정은 더더욱 음침하게 굳어졌다.“이리 값비싼 옷을 갖고 있었으면서 왜 내 앞에서는 가난한 집 딸처럼 입고 다닌 거지?”“일부러 내가 동료들 앞에서 창피하라고 그런 것이야?”오주은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영주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비아냥거리듯 말했다.“육 공자, 전에 근검절약을 추구한다며 사치를 혐오한다고 하신 분이 공자 아닙니까? 저희 아씨는 공자의 명성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신을 희생하였는데 어찌 그런 식으로 저희 아씨를 몰아가시는 겁니까?!”‘희생이라니! 그럼 후작가의 세자인 내가 오주은보다 가난하단 소리야?’육준수는 이를 갈며 매섭게 오주은을 노려보았지만, 오주은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육 공자, 혼서와 정혼 신물은 가져오셨겠지요?”주인이 말이 없자 조급해진 추서가 곁에서 다그쳤다.“공자, 저희가 오늘 온 목적을 잊지 마세요.”“나도 알아, 그러니까 좀 닥쳐!”육준수는 고함을 지르며 추서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그의 이런 행위는 오주은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다.오주은은 툭하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 자신이 뭘 보고 이런 인간과의 혼인을 허락했는지 내심 후회가 되었다.‘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오주은, 네가 어제 황궁까지 가서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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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오주은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무함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는 정교한 문양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오주은의 어머니가 건재하실 때부터 신변에서 시중을 든 왕 집사는 한눈에 그 문양을 알아볼 수 있었다.“아씨, 이 향은 경성에서 천금을 주고도 못사는 귀한 향입니다.”“알지요.”오주은은 상자를 왕 집사에게 건네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아저씨, 어머니께서 직접 조제하신 유란향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걸 답례로 촉왕부에 전달하고 와주세요.”유란꽃의 청아한 향은 연예준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한편,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온 연예준은 입이 귀에 걸린 상청을 보고 싸늘하게 말했다.“웃는 모습이 참으로 흉하구나.”그 말을 들은 상청은 입을 삐죽이더니 상자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전하, 오 소저께서 보내온 답례입니다. 지금 열어 보실 건가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내의 따가운 눈총이 날아왔다.“너 요즘 한가하니?”상청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에이, 그럴 리가요. 소인은 지금 할 일이 차고 넘쳤습니다! 바로 일하러 가볼게요!”말을 마친 그는 상자를 공손히 내려놓고 다급히 안방을 나섰다.연예준은 침상에 걸터앉아 무심하게 상자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 한참 후, 그는 덤덤히 상자를 열었는데, 상큼하고 청량한 향이 상자 풍겨져 나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가녀린 소녀의 자태를 떠올리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참으로 향기롭군.”말을 마친 그는 향 한대를 집어 향로에 넣고 불을 붙였다. 방 안에 풍기는 은은한 향이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덜어주는 것 같았다.그는 노곤함에 그대로 침상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연예준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표정을 풀었다.그는 물끄러미 향로에서 타고 있는 향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내가 최근에 잠을 설친 것을 눈치챘나? 아니면 그냥 우연인가?’“상청, 지금이 언제지?”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상청이 공손히 고했다.“전하, 뱃놀이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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