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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겁먹은 토끼

작가: 움디
last update 게시일: 2026-09-08 19:25:58

 “주가는 어떻게 됐어요?”

 민준이 태블릿 PC 화면을 몇 번 넘겨봤다.

 “결혼 기사 뜨고 나서 오전 장에서 강세로 출발했습니다. 태강이랑 서한이 전략적으로 손잡는다는 기대감이 붙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올랐어요?”

 “그룹 전체가 움직인 건 아니지만 서한호텔이랑 태강건설 쪽 거래량이 평소보다 확실히 늘었습니다. 관련 계열사들도 덩달아 움직이고 있고요.”

 지안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그럼 이게 오보로 밝혀지면…….”

 “큰일이죠.”

 민준의 말씨가 조금 무거워졌다.

 “정정 보도가 나가는 순간 차익 실현 물량부터 쏟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오전에만 기사도 계속 붙고 있어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내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아…….”

 지안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안 그래도 숙취 때문에 지끈거리던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윤준표는 난리 났겠네요.”

 “아마 이미 보고받았을 겁니다.”

 기사에는 단순히 두 사람이 맞선을 봤다는 수준을 넘어 양가가 결혼을 전제로 구체적인 논의를 마쳤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밝히는 순간 기사 자체의 신뢰도 문제는 물론이고 두 그룹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따라붙을 게 뻔했다.

 “회사 쪽에서는 아직 공식 입장 안 냈죠?”

 “네. 제가 일단 홍보팀에 아무것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태강 쪽 확인이 먼저일 것 같아서요.”

 지안은 수긍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강그룹 본사에 들어선 지안은 서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잠시 걸음을 늦췄다.

 절제된 공간 전체에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안이 낯선 분위기를 훑어보던 그때였다.

 로비 한쪽에 서 있던 남자 둘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검은 정장.

 한눈에 보기에도 덩치가 큰 체격.

 표정 하나 없는 험상궂은 얼굴까지.

 “서지안 이사님 맞으십니까?”

 “……네.”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지안과 민준이 나란히 굳었다.

 “……가, 가시죠.”

 민준이 먼저 속삭이자 지안이 곧바로 그를 쳐다봤다.

 “실장님 먼저 가세요.”

 “아니요. 이사님 먼저…….”

 둘이 은근슬쩍 서로에게 앞자리를 떠넘기는 사이, 검은 정장의 남자가 아무 표정 없이 손을 뻗었다.

 “엘리베이터는 이쪽입니다.”

 결국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선 뒤에도 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지안은 올라가는 층수를 바라보다 민준 쪽으로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입모양으로만 물었다.

 ‘여기 원래 이래요?’

 민준도 난감한 얼굴로 입술만 뻐끔거렸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땡.

 문이 열렸다.

 흡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복도 양쪽으로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보초를 서는 듯 미동도 없이 정면을 응시한 채였다. 얼핏 세어도 여덟 명 남짓.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에 눈빛까지 매서웠다.

 지안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여기 회사 맞지?

 문득 서한그룹 본사가 떠올랐다.

 아니면 우리 회사 경계가 너무 허술한 건가.

 “어서 오십시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자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지안은 얼떨결에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옆의 민준도 덩달아 허리를 굽혔다.

 “수, 수고 많으십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복도를 걷는 내내 연신 인사를 받았다.

 꼭 사열이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부회장실까지 이어진 짧은 복도가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마침내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안내하던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서 이사님만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만요?”

 지안이 검지로 제 가슴께를 가리켰다.

 옆에 있던 민준이 곧장 한 걸음 나섰다.

 “저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부회장님의 지시라는 말을 덧붙인 남자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지안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조금 전까지 애써 태연한 척하던 얼굴도 금세 울상이 됐다.

 민준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지안은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당연히 괜찮을 리가.

 아마 저 문 너머는 지금 서 있는 이곳보다 몇 배, 아니 백 배쯤은 더 무서울 것 같았다.

 그러자 민준이 한 손을 지안의 어깨에 올렸다. 다른 손으로는 힘내라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지안은 축 처진 어깨로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가 마지막으로 민준을 흘겨봤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묘하게 홀가분해 보였다.

 자기는 안 들어간다고 좋아하는 거지, 지금.

 굳게 닫힌 집무실 문 앞에 선 모습은 영락없이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토끼가 따로 없었다.

 남자가 집무실 문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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