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경호단은 창고 뒤편 갯벌 초입까지 물리세요. 불빛 하나, 담뱃불 하나라도 새어 나가선 안 됩니다.”준호의 명령은 낮고 엄호했지만, 그 음절마다 서린 온도는 섭씨 영도에 가까웠다. 사설 경호원들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동화되어 사라진 후, 폐염전 창고 안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았다.사방이 바다와 갯벌로 막힌 고립된 지형. 환기창 틈새로 들어오는 밤바람은 끈적하고 짠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부식된 철재의 비린내가 뒤섞인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준호의 턱끝이 단단하게 굳어졌다.평생을 유복하게 자란 그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디뎌본 적 없을 더럽고 음습한 낙후 지대. 제이가 이런 퀴퀴하고 차가운 바닥에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준호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준호의 눈동자는 마치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이글거렸다. 당장이라도 배후가 누구인지 사설 정보망을 총동원해 샅샅이 뒤집어엎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준호 씨.”그의 터질 듯한 침묵을 깬 것은 제이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제이는 준호의 다부진 팔뚝 위로 자신의 손을 얹었다. 차갑게 식어 있는 준호의 살결에 제이의 온기가 닿았다.“지금 섣불리 움직여서 배후를 캐내려 들면 꼬리가 잘려요. 이영민을 잡으면, 싫어도 그 실체가 제일 먼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조금만 더 침묵을 유지해요.”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이 거부하는 이성적인 제동. 준호는 제이의 손길에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는 회귀하기 전,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구차한 과거를 떠올렸다. 그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쥐덫을 놓은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벽에 기대어 어둠 속을 지켰다.스산한 바람 소리만 가득하던 염전에 고요를 깨는 이질적인 소음이 틈입한 것은 늦은 새벽, 인적이 완전히 끊긴 시각이었다.사각, 사각.습기를 머금은
가슴뼈 안쪽에서 거친 맥박이 끊임없이 뛰어댔다.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잔상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경찰에 신고는 마쳤지만, 정식 수사 절차가 개시되고 추적반이 움직이기를 기다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일 분 일 초가 흐를 때마다 제이의 목을 조여오는 시간의 흐름이 사정없이 흘러가고 있었다.준호는 가쁜 호흡을 고르며 운전대를 쥔 손가락 끝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며 길가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제이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 지독하게 맴돌았다.혼자 두지 말아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서늘하게 긁어내렸다.따르릉, 하며 비서실장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연결된 것은 가속 페달을 밟은 지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본부장님, 통신사 협조를 받아 현 사장님의 휴대전화 기지국 신호 최종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위치가 생각보다 아주 외딴곳입니다.]"어디입니까. 당장 말씀하세요."[태안 외곽의 버려진 염전 지대입니다. 반경을 좁혀보려 해도 워낙 허허벌판이라 전파가 인근 기지국 하나에만 희미하게 걸쳐 있습니다. 그 주변을 위성 지도로 조회해 보니, 지금은 가동을 멈춘 소금 창고 건물 몇 채와 폐허가 된 집들뿐입니다. 사방이 펄과 바다로 막혀 있는 고립된 구역입니다.]염전 창고.그 단어가 들려온 순간, 제이가 홀로 어둠 속에 결박되어 있을 축축하고 소금기 가득한 공간의 실루엣이 뇌리를 스쳤다. 자금줄이 완전히 묶여 사채업자들에게 코너까지 몰린 이영민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음습한 은신처였다. 사방이 바다와 갯벌로 가로막힌 고립된 영토. 그곳은 침입하기도, 탈출하기도 까다로운 최악의 무대였다."당장 사설 경호팀 그쪽으로 이동시키세요. 저도 지금 출발합니다."준호는 전화를 끊어 조수석 시트 위로 내려놓았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도로 바닥을 긁었고, 세단은 붉게 물들어가는 서해안의 도로를 향해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생각도 머릿속에 담아둘 여유는 단 한 줌
"니가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사장이 됐어? 그 자리가 얼마나 갈지 한번 보자."이영민의 갈라진 목소리가 축축한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기괴하게 울렸다. 늘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는 헝클어져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초점을 잃고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광기와 패배감만이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지금 너를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너는 모르지? 내가 아니어도 너는 그 자리 3개월도 못 지켜. 그럴 수밖에 없어. 나만이 너를 알아봤던 건데."이영민은 제이의 턱밑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쁘고 뜨거운 숨결이 제이의 뺨에 닿았지만, 제이는 그저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온몸을 지배하는 약품 냄새와 욱신거리는 손목의 통증이 선명했다. 손과 발은 거친 박스 테이프로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고, 몸은 차가운 간이 의자에 묶인 채였다."니가 그리고 있는 그 아이템들…… 이 세상 그 누구한테 들이밀어도 절대 너는 인정 못 받아. 유일하게 너의 안목을 알아본 건 나뿐인데, 나를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 넌 그 신선식품 배송도, 너 자신도 지키지 못하게 될 거야."악담을 쏟아내는 이영민을 바라보며, 제이의 머릿속은 폭풍전야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소리를 질러봤자 소용없다. 이영민이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르면서 허술한 곳을 골랐을 리 없었다. 묵직하게 닫힌 철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와 짠내, 옅은 곰팡이 냄새로 보아, 이곳은 인적이 드문 바닷가 창고거나 폐쇄된 물류 컨테이너 내부일 터였다.지금 가장 어리석은 짓은 막다른 길에 몰린 미친개를 자극하는 것이다. 제이는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호흡의 템포를 늦췄다."……내가 지키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뭐죠?"제이의 목소리는 떨림 없이 고요했다. 납치당한 피해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담담한 어조에, 오히려 이영민의 눈동자가 이질감으로 크게 흔들렸다."이 대표님처럼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회의실 안에는 차분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현제이를 설득하거나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사내에 아무도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입사한 지 일 년 남짓 된 스물다섯의 신입사원이었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단호한 리더십과 추진력은 노련한 임원들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만큼 깊이가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제이는 진짜 초년생이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 실무 현장에서 이십 년 동안 묵묵히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이었기에, 물류 흐름의 미세한 맥을 짚어내는 능력이 누구보다 탁월했다. 상하차장의 복잡한 동선이나 저온 창고의 효율적인 관리법 등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감각들이 고스란히 살아있었다.과거의 기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녀가 가진 가장 확실한 자산이었다. 이전에 겪었던 미래에서 신선식품의 당일 배송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다만 그때는 대형 업체들의 선점 경쟁이 끝난 뒤라 시장의 모퉁이에서 현상 유지에 급급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세부적인 기획력과 실무 운영 경험까지 모두 갖추고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직은 임원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답답할 뿐이었다."더는 이견이 없으시면, 금일 자로 설비 예산안 승인하겠습니다."제이가 펜을 소리 없이 내려놓자, 임원들은 조용히 지시 사항을 받아 적으며 고개를 숙였다.* * *회사의 중심에서 성공적인 궤도에 오를수록, 제이는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에 부쩍 정성을 들였다.이전 생에서 겪었던 위암의 기억이 남아있기에, 건강을 잃으면 이 모든 성취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흔다섯에 마주했던 쓸쓸한 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식단부터 꼼꼼하게 유기농 위주로 챙겼다.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거르지 않는 약속도 만들었다. 바로 아침 조깅이었다."체력이 제법 좋아지셨네요."옆에서 부드럽게 발걸음을 맞추던 준호가 다정한 미소를 건넸다. 이마에 맺힌 얇은 땀방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체력 관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우던 먼지 냄새 대신, 이제는 새 가죽 의자의 묵직한 가죽 향과 매끄러운 유리 테이블이 제이의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 화면 속 숫자는 매일 아침 전산이 리셋될 때마다 기어코 앞자리를 바꾸며 치솟고 있었다. 이영민의 몰락이 가져온 반사이익은 실로 엄청났다. 갈 곳을 잃고 시장에 쏟아진 중소 물류 거래처들이 제이의 계열사로 도미노처럼 흡수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출 곡선은 가파른 수직을 그렸다.임원들은 매일 아침 문턱이 닳도록 사장실을 드나들며 아부 섞인 보고서를 내밀었지만, 그들의 눈빛 깊은 곳에는 여전히 스물다섯의 낙하산 핏덩이를 향한 은근한 무시와 불만이 깔려 있었다."현 사장님, 이번 달 지표는 창사 이래 최대치입니다. 정 회장님께서 내리신 목표치도 이미 가볍게 넘겼습니다."보고서를 검토하는 제이의 눈빛은 무미건조했다. 숫자는 화려했지만, 이건 제이가 원하는 진짜 승리가 아니었다. 단지 상대의 파멸로 인해 굴러떨어진 눈먼 떡고물에 불과했다. 매출의 외형만 불어났을 뿐, 시스템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대량 수송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이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제이는 펜 끝으로 붉은색 지표를 툭툭 치며 단호하게 말했다."공산품과 생필품 몇 상자 더 나르는 걸로 만족할 생각 없습니다. 이영민의 망가진 물류망을 거저먹었다고 안주하는 순간, 다음 주자는 우리가 될 겁니다."보고를 하던 기획조정실장의 안색이 일순 굳어졌다. 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걸린 대형 도심 지도를 짚었다. 지도의 주요 거점마다 붉은색 핀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보통의 물류는 썩지 않는 물건을 며칠에 걸쳐 배송하는 것에 안주하죠. 하지만 제가 그리는 최종 목적지는 다릅니다. 신선식품입니다.""신선식품이요?"실장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장실 한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상무와 전무들의 얼굴에도 순식간에 황당함과 실소가 번져나갔다."야채나 고기, 우유 같은 것들 말
새로운 보금자리는 도심의 화려한 심장부를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초고층 오피스텔이었다.24시간 보안 요원이 상주하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카드 키를 대야만 들어설 수 있는 완벽한 요새. 지문 인식 한 번에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우아하게 열리는 현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제이는 비로소 자신이 이전 생의 구차했던 밑바닥을 완전히 벗어났음을 온몸으로 실감했다.거실 전면을 가득 채운 대형 통창 너머로 밤의 도심이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아득하게 펼쳐졌다."내 공간이야……."제이는 가만히 읊조렸다. 낡은 조립식 가구와 삐걱거리는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던 이전 빌라의 기억은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스스로 설계한 전쟁에서 온전한 제 힘으로 쟁취해 낸 안식처였다."마음에 듭니까?"어느새 다가온 준호가 제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한 온기가 제이의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긴장마저 부드럽게 녹여 내렸다.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현관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백화점과 명품 브랜드의 배송 직원들이 줄을 지어 박스를 들고 들이닥치기 시작했다."여기에 내려놓으시면 됩니다."준호의 지시에 따라 거실과 드레스룸이 순식간에 화려한 박스들로 채워졌다. 제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포장을 뜯어내다 이내 숨을 삼켰다.악어가죽으로 마감된 클래식한 블랙 백부터,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우아한 로즈골드 팔찌와 목걸이, 스위스제 가죽 스트랩 시계까지. 드레스룸의 조명 아래 유리 진열장을 채운 것들은 보통의 여자들이라면 평생을 열망할 법한 초고가 명품들이었다."준호 씨, 이게 다 뭐예요?"제이가 놀라 뒤를 돌아보자, 준호는 그저 당연하다는 듯 싱긋 웃으며 유리장에 시계를 가지런히 올려놓을 뿐이었다."저…… 아직 스물다섯이에요. 이런 건 감당하기 너무 벅차요."제이가 뺨을 살짝 붉히며 손을 내젓자, 준호가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