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내가 아직 네 대답을 듣지 못했다.”
연화의 몸에서 힘이 완전히 빠졌다.
이헌은 그녀를 안아 들고 강녕전을 향해 달렸다. 놀란 궁인들이 급히 길을 비켰다.
“의관은 아직이냐!”
“오고 있사옵니다!”
“당장 데려오라!”
내관이 전의를 향해 뛰어갔다.
이헌은 침전 안으로 들어가 연화를 눕혔다. 상궁이 다친 팔을 확인하려 하자 그가 먼저 찢어진 소매를 걷어 올렸다.
상처 주변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푸른 핏줄이 도드라졌다. 독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헌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연화.”
대답이 없었다.
그가 연화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눈을 떠라.&rd
연화는 눈을 뜨자마자 입술부터 만졌다.어젯밤 일이 꿈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이헌의 입술이 닿았던 감촉은 아직도 선명했다. 한 번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네가 원한다면.’낮은 목소리까지 떠오르자 얼굴이 뜨거워졌다.연화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일어났으면 그만 나오거라.”바로 옆에서 이헌의 목소리가 들렸다.연화가 이불을 조금 내렸다.그는 침상 곁에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언제부터 계셨습니까?”“처음부터.”“계속 소인을 보고 계셨습니까?”“입술을 만지는 것부터 보았지.”연화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못 본 것으로 해 주십시오.”“싫다.”“전하.”“어젯밤에는 피하지 않더니 아침이 되니 얼굴도 보여 주기 싫으냐?”“싫은 것이 아니라 어색합니다.”이헌이 서책을 내려놓았다.“무엇이.”“전하를 보는 것이요.”“왜?”연화는 이불 밖으로 눈만 내놓았다.“자꾸 어제 일이 생각납니다.”“나도 그렇다.”“전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것처럼 보입니다.”“다시 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텐데.”이헌이 몸을 숙이자 연화가 놀라 침상 끝으로 물러났다.그 움직
“어머니를 살리시겠습니까.”최 상궁이 연화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아니면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시겠습니까?”이헌은 연화의 손을 놓지 않았다.“둘 다 지킬 것이다.”“욕심이 지나치십니다.”“내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연화를 이쪽으로 보내시면 대비마마는 놓아드리겠습니다.”연화가 이헌의 손을 당겼다.“소인이 가겠습니다.”“안 된다.”“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내가 찾을 것이다.”“찾는 동안 대비마마께서 다치십니다.”연화는 이헌을 올려다봤다.“소인을 믿어 주십시오.”“그래서 또 혼자 싸우겠다는 것이냐?”“이번에는 전하도 계시지 않습니까.”연화는 최 상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이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놓아주십시오.”“싫다.”“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다.”“전하.”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던 대비가 차갑게 말했다.“내가 죽더라도 그 아이를 보내지 말거라.”최 상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마마께서는 아직도 저 궁녀를 감싸십니까?”“네가 날
“대비마마께서도 사라지셨사옵니다.”이헌의 얼굴에서 온기가 사라졌다.“마지막으로 뵌 것이 언제냐.”“반 시진 전이옵니다. 최 상궁이 밤참을 가져온 뒤 모두 물러가라 명하셨다고 합니다.”“대비전을 봉쇄하고 궁문을 확인하라.”이헌이 곧바로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연화도 뒤따랐다.“너는 남아 있어라.”“같이 가겠습니다.”“상처가 다시 벌어졌다.”“어마마마께서 사라지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누구의 어마마마라는 것이냐.”연화가 걸음을 멈췄다.“전하의 어마마마이시니 소인에게도 중요한 분입니다.”이헌의 굳은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그는 연화의 다친 팔을 살핀 뒤 멀쩡한 손을 잡았다.“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예.”“이번에는 정말이다.”“손까지 잡고 계시는데 어찌 떨어집니까.”두 사람은 함께 대비전으로 향했다.대비의 처소에는 찻잔 두 개와 다과상이 남아 있었다. 의자가 옆으로 넘어져 있었지만 몸싸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연화가 다과상 앞에 앉았다.“무엇을 하는 것이냐.”“밤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지금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연화가 서운한 얼굴로 이헌을 바라봤다.“소인도 때와 장소는 가립니다.”
“저 궁녀를 죽이려는 사람은 규원들 중에 있지 않습니다.”이헌은 내관을 내려다봤다.“그럼 누구지?”내관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웃었다.“전하께서는 끝까지 찾지 못하실 것입니다.”“끌고 가서 입을 열게 하라.”호위들이 내관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의 턱이 움직였다.연화가 침상 옆에 놓인 쟁반을 집어 던졌다.퍽!쟁반이 내관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그의 입에서 작은 환약이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호위가 급히 환약을 주웠다.“독이 든 듯하옵니다.”이헌이 연화를 돌아봤다.“어떻게 알았느냐?”“자객들은 붙잡히면 입 안의 독을 먹는다고 들었습니다.”“그래서 쟁반을 던졌느냐?”연화는 바닥에 두 동강 난 쟁반을 보며 아쉬워했다.“튼튼해 보였는데.”“내관보다 쟁반이 걱정되느냐?”“전하의 물건이지 않습니까.”“너도 내 사람이다.”연화의 입이 다물렸다.이헌은 호위에게 다시 명했다.“입 안을 막고 끌고 가라.”내관이 몸부림쳤다.“제 가족을 죽일 것입니다!”호위들의 움직임이 멈췄다.“누가 말이냐.”“소인이 입을 열면 서촌에 있는 처와 아이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이헌이 호위대장에게 눈짓했다.“당장 사람을 보내
연화가 죽었다는 소문은 반나절 만에 궁 전체로 퍼졌다.독이 뒤늦게 심장에 번졌다고 했다.시신은 전염될 우려가 있어 천으로 감싼 채 곧바로 궁 밖으로 내보냈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졌다.실제로 궁문을 빠져나간 관 안에는 쌀가마니가 들어 있었다.그 시각, 죽은 연화는 이헌의 침전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한 그릇 더 주십시오.”상궁이 빈 그릇 세 개를 보며 망설였다.“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냐?”“독을 이겨 내느라 힘을 많이 썼습니다.”“죽은 사람치고는 식욕이 지나치게 좋구나.”이헌이 맞은편에서 말했다.연화는 새로 받은 밥그릇을 품 가까이 끌어당겼다.“살아 있는 동안 많이 먹어 둬야 합니다.”“너는 오늘부터 죽었다.”“그러면 제사상처럼 차려 주십시오. 전도 빠졌고 약과도 없습니다.”이헌은 잠시 연화를 바라보다 상궁에게 손짓했다.“약과를 가져오너라.”연화의 얼굴이 환해졌다.“역시 전하의 침전은 좋습니다.”“밥을 많이 줘서?”“약과도 주시니까요.”“그것 말고 좋은 점은 없느냐.”연화는 방 안을 둘러봤다.“따뜻하고 넓습니다.”“또.”“이불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이헌의 시선이 침상으로 향했다.“오늘 네가 덮을 것이다.”
“누군가 또다시 두 규원 중 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습니다.”연화의 말에 이헌은 종잇조각을 받아 들었다.‘민서령의 명을 받았다.’한소원의 짐에서는 자객의 무기가 발견됐고, 그 안에는 민서령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이헌이 호위에게 명했다.“두 규원을 편전으로 데려오라.”잠시 뒤, 민서령과 한소원이 나란히 들어왔다.민서령은 종이를 확인하자마자 헛웃음을 흘렸다.“이번에는 종이까지 남겼군요.”“네 글씨가 맞느냐?”“아니옵니다.”한소원도 나무함을 바라봤다.“저런 물건은 처음 봅니다. 누군가 제 짐에 넣은 것이 분명하옵니다.”“모두 그렇게 말하겠지.”이헌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소원, 네게서는 자객과 같은 향이 났다.”한소원의 시선이 연화에게 향했다.“그래서 아까부터 향낭을 달라고 했던 것이냐?”“확인하고 싶었습니다.”“백매향은 우리 집안에서 오래 사용한 향이다. 내 사람에게서 같은 향이 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자객이 좌의정 댁의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연화의 말에 한소원의 얼굴이 굳었다.“나를 의심하는 것이냐?”“아직은 모두 의심하고 있습니다.”“모두?”“민 아기씨도, 한 아기씨도, 두 분의 몸종들도요.”연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