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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작은 행차

Author: 이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4 08:27:53

수라간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다.

장작 타는 냄새와 함께 김이 피어올랐고, 궁녀들은 쉴 새 없이 손을 놀렸다.

연화 역시 커다란 찬합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강녕전 상궁이 수라간 안으로 들어섰다.

궁녀들이 일제히 손을 멈추고 허리를 숙였다. 수라간 상궁도 곧장 앞으로 나섰다.

"상궁마마."

강녕전 상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 오늘 소규모 행차를 나가신다."

수라간 상궁이 조용히 대답했다.

"준비는 이미 마쳤습니다."

"기미를 맡을 수라간 나인 하나를 붙여야 한다. 기미상궁이 고뿔에 걸렸다 하여..."

수라간 상궁이 사람들을 둘러보려는 순간.

강녕전 상궁이 말을 이었다.

"이번 행차는 전하의 뜻에 따라 사람을 많이 데려가지 않는다."

"..."

"최고상궁은 궁에 남고."

"힘 좋은 아이 하나만 보내라 하셨다."

수라간 상궁은 아무 말 없이 수라간 안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

"...연화."

연화가 얼른 장독을 내려놓고 달려왔다.

"예, 상궁마마."

"오늘 행차에 따른다."

"...소첩이 말씀이십니까?"

"기미도 하고."

잠시 뜸을 들인 상궁이 덧붙였다.

"짐도 들어야 한다."

"..."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힘쓰는 일이었다.

잠시 뒤. 궁궐 정문.

평소보다 훨씬 작은 행렬이었다.

호위무사 몇 명.

내관.

강녕전 궁녀들.

그리고 수라간에서 나온 연화.

연화는 커다란 찬합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강녕전 궁녀 하나가 힐끗 바라봤다.

"무겁지 않니?"

"조금 무겁사옵니다."

"..."

"..."

궁녀는 더 묻지 않았다.

저 아이의 '조금'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행렬이 천천히 궁을 나섰다. 연화는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따랐다. 왕의 모습은 감히 올려다보지 않았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행렬이 한적한 길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히이잉―!

말 한 필이 갑자기 크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행렬이 흔들렸다.

"말이다!"

"비켜라!"

호위무사들이 움직이려는 찰나. 말이 나란히 줄지어있는 궁녀들 사이를 비집으려 했다.

연화는 달려가 말고삐를 붙잡았다. 본래 이럴 생각은 없었으나, 사람이 다칠 거 같다는 본능이었다.

말은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연화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잠시 후.

흥분했던 말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

주변이 조용해졌다.

연화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차.'

얼른 고삐를 놓고 머리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호위무사 하나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연화를 바라봤다.

왕 역시 가마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느냐."

연화는 얼른 대답했다.

"소첩은 괜찮사옵니다."

잠시 침묵.

왕이 담담히 말했다.

"...짐은 말을 물은 것이다."

"..."

연화는 황급히 말을 돌아보았다.

"...말도 괜찮사옵니다."

궁녀 하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올라왔다.

행렬은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호위무사들의 시선은 전과 달랐다.

'방금 저 손놀림...'

'말을 다뤄본 사람이다.'

정오 무렵.

왕은 잠시 행렬을 멈추게 했다.

내관들이 자리를 살피고, 연화는 찬합을 내려놓았다.

기미를 위해 국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공손하게 삼킨 뒤 고개를 숙였다.

"이상 없사옵니다."

왕이 수저를 드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거친 외침이 들렸다.

"비켜라!"

사내 하나가 사람들을 밀치며 달려왔다.

호위무사들이 동시에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전하를 보호하라!"

궁녀들이 비명을 삼켰다. 그러나. 연화는 또 한 번 생각하지 않았다.

몸이 먼저였다.

달려드는 사내의 팔목을 붙잡고. 몸을 틀었다.

사내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쿵!

사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제야 호위무사들이 달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사내는 이를 악문 채 외쳤다.

"죽이려던 것이 아닙니다!"

"억울하여...!"

"전하께 사정을 아뢰고 싶었습니다!"

순간 연화의 표정이 굳었다.

"...암살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사내도 호위무사도. 잠시 말이 없었다.

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시선이 천천히 연화에게 향했다.

말을 제압했을 때도.

방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것은 힘만으로 되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왕은 한참 동안 연화를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연화."

연화는 얼른 무릎을 꿇었다.

"예, 전하."

"누가 그 몸놀림을 가르쳤느냐."

연화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몸놀림은 뭔지 모르겠고, 그냥 사실대로 고하자.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산에서 다치지 말라 하시며 익히게 하셨사옵니다."

"..."

"...짐승이 나타나면 피하는 법이라 하셨습니다."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수라간 궁녀가 아니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왕의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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