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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Author: 코코넛 서고
연기준은 못 들은 척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서인경이 그의 어깨 위에서 버둥거리며 심하게 몸을 비틀자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엉덩이를 탁하고 내려쳤다.

“조용히 하거라.”

서인경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얼굴이 한순간에 붉어진 게 어지러운 것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수치심 때문인지 말이다.

“이 망나니야! 어서 날 내려놔...”

파악!

다시 한번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 떠들면 당장 저 주루에 들러서 네게 어떻게 조용해져야 하는지 몸소 가르쳐 주마.”

서인경은 욕을 해도 그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녀는 분통이 터졌으나 입을 꾹 다물었다. 겉모습은 그토록 정숙하고 의젓한 사내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군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어깨 위에 들린 채 막부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 모습을 보는 사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른 길을 비켜섰다.

그때, 진묵염은 방금 막효연을 배웅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그녀의 원림 앞에서 아쉬움의 작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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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33화

    서인경이 방금 내뱉은 말은, 덕비를 떠보는 시험에 가까웠다.그리고 지금의 반응을 보는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의 짐작이 자리 잡았다.덕비는 지나치게 쉽게 분노했고, 또 너무도 쉽게 남에게 휘둘렸다. 좋게 말하면 단순해서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성정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속셈도 계략도 없는 사람이었다.이런 사람이 후궁에서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다.그런데 과연 이런 인물이, 지난 세월 동안 금족을 이곳에 숨겨 두고 큰일을 도모해 온 족장일 수 있을까?야랑국의 늙은 황제는 노련하고 교활하기로 이름난 인물이다.그런 사람이 수년 동안 곁에 두고도 속셈을 품은 자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있을까?서인경과 연기준은 짧게 시선을 주고받았다.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 노무림 안에는, 분명 더 위험한 인물이 숨어 있다.덕비는 그저 앞에 내세워진 희생양일 뿐. 그녀의 딸 역시, 뒤에 숨어 있는 자에게는 하나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오늘 벌어지는 이 기사회생의 의식은 겉으로는 덕비의 집착이지만, 실상은 그 뒤에 있는 자가 서인경과 연기준을 끌어내기 위해 꾸민 판일 가능성이 더 컸다.하지만 덕비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어찌 됐든, 예정연은 반드시 금족의 다음 계승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나는 반드시 아이를 되살릴 것이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을 놓아줬다면, 너희가 제물이 되어 내 딸이 다시 태어나는 발판이 되어줘야겠다!”덕비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진법을 열어라! 이곳에 있는 자들 전부, 이 자리에서 묻히게 하라!”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과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붉게 타오르던 촛불들이 돌연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금빛은 서서히 떠올라 하늘 어딘가에 모이더니 이내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화구로 응집되었다.서인경은 고개를 돌려 연기준을 바라보았다.“저 화구보다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주세요.”연기준은

  • 시간을 거슬러   제1232화

    서인경은 의술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저 한눈에 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할 리 없었다.눈앞에 쌓여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의 유골이었다.유골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늘 정리된 흔적이 역력했다. 매일 누군가가 치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 옆에는 커다란 운반용 수레 하나가 놓여 있었다.강물 속에서는 악어들이 여전히 뒤집히듯 몸을 뒤틀며 요동치고 있었다. 낯선 인간의 기척을 느낀 탓인지, 오히려 더 흥분한 듯 보였다.서인경의 머릿속에 한 가지 끔찍한 가능성이 스쳤고,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이 악어들… 설마 사람 고기로 길러진 겁니까?”사람의 살을 먹고 자란 악어는, 보통의 악어보다 백 배는 더 흉포해진다.한 번 인간의 살맛을 본 뒤로는 식성이 극도로 커져, 성인 열 명의 고기로도 하루 배를 채우기 어려울 지경이 된다.이곳의 악어들은 몸집부터가 남달랐다. 한눈에 보아도 오랜 세월 길러진 것들이었다.셀 수도 없이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이곳에서 스러져 갔을 것을 떠올리자, 서인경의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쓸어버리고 싶었다.“이건 모두 변방의 백성들이다.”연기준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뒤따랐다.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이유. 변방의 기근과 참상, 끝없이 이어지는 비명과 굶주림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가림막이었기 때문이다.하루에 몇 사람이 사라지는지조차, 그곳에서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서인경은 가슴 깊숙이 분노를 눌러 담은 채, 약왕곡에서 붉은 꽃 한 송이를 꺼냈다.눈부시게 붉은 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차라리 눈을 찌를 듯한 기괴한 색채였다.약왕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독한 독. 혈봉후(血封喉).입에 넣은 지 단 한 순간, 피가 목을 막고 전신이 썩어들어 간다. 결국 남는 것은 한 줌의 핏물뿐. 마치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서인경은 이 독을 처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필이면 악어에게 쓰게 될 줄

  • 시간을 거슬러   제1231화

    붉은 눈의 남궁열은 손에 쥔 명반을 내려다보며, 좋지 못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남궁찬은 이미 서인경의 손에 죽었고, 제물도 진작 서인경이 빼돌렸습니다. 단 한 명도 붙잡지 못했어요! 덕비, 당신은 그들을 너무 얕봤습니다.”제 동생의 죽음을 입에 올리면서도, 남궁열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그 태도는 남궁찬이 그를 대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버려져 밖에서 떠돌던 어리석은 동생은, 죽는 순간까지도 남궁 집안이 자신을 진짜 도련님으로 여긴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 ‘훌륭한’ 아버지는, 애초에 또 하나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남궁열이 ‘선심을 써서’ 이 낡은 숲, 노무림을 내어주고, 덕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지조차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그럼에도 그 하찮은 은혜 하나에 매달려, 남궁찬은 죽는 그 순간까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상좌에 앉은 덕비의 얼굴은 음울하게 굳어 있었고, 이전보다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예정연은 그녀의 유일한 딸이자, 금족의 다음 계승자로 길러온 아이였다. 그 딸의 죽음은 그녀를 깊이 무너뜨렸다.그리고 그 충격은 서인경과 연기준을 향한 증오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다.“그렇다면 오히려 잘됐군. 들어온 이상, 한 놈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하거라. 이곳에 전부 묻어버릴 것이다. 사람을 불러 진을 치고 맞이하거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한 명의 호위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얼굴에는 공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족장님, 큰일입니다! 대규모 병력이 골짜기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적어도 만 명은 됩니다!”만 명이라니?덕비의 미간이 깊이 찌푸려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럴 리가 없다. 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절벽을 넘어오면서 어찌 아무런 기척도 없을 수가 있단 말이냐? 게다가 연기준이 맹경운

  • 시간을 거슬러   제1230화

    피가 한 방울씩 그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그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려 서인경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온통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빙능술은 절대 되돌아 공격하지 않아야 하는데…”서인경이 신식을 거두자 결계도 동시에 사라졌다.주변의 사람들은 이미 전부 붙잡혀 있었고 오직 좌장군만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누구에게도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일어서려 했으나 두 다리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쇠못 하나가 그의 다리를 땅에 단단히 박아버린 듯,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서인경은 그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턱짓으로 가리켰다.좌장군은 시선을 따라 내려갔다. 자신의 양 무릎에 두 개의 빙능이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피가 흘러내려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하지만 얼음의 냉기로 인해 그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서인경이 이렇게까지 강해졌다는 사실은 그가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말도 안 돼… 넌 진국에서 자랐잖아. 어떻게 일불락의 술법을 쓸 수 있지!”서인경은 마치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보듯 그를 내려다봤다.“나는 수장 가문의 후손이다. 일불락의 모든 기술은 한 번 보면 익힐 수 있어.”거기에 더해 그녀의 몸에는 순수한 일불락의 혈통이 흐르고 있었다.그 모든 능력이 그녀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서인경은 연풍에게서 검을 받아 그의 목에 겨눴다.“유언 남길 기회는 줄게. 내가 대신 전해 주지.”좌장군의 눈동자에는 놀람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결코 이런 결말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출정이 곧 죽음이라니. 아직 남궁 가의 원수도 갚지 못했고 형의 복수도 끝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여인의 손에 죽는다고?그는 이를 악물었다.“유언 따윈 없다. 나는… 죽지 않아.”서인경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핏줄기 하나가 길게 터져 나오며 바닥에 쏟아졌다.얼굴에서 가슴까지 길게 그어진 상처가 살을 갈라놓았다.그는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

  • 시간을 거슬러   제1229화

    서인경은 좌장군이라 불린 그 사내를 찬찬히 살폈다. 얼굴은 놀라울 만큼 젊었다.흰 옷에 검은 머리,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듯 단정했다. 피부는 희고 부드러워, 손만 대도 물기가 맺힐 듯했다.그는 손에 접부채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마치 그림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풍류 있는 공자 같았다.다른 이들처럼 햇볕에 그을린 흔적은 전혀 없었다.이토록 곱게 자란 귀공자 같은 사내가 겉으로는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운데도 주변 사람들을 완전히 복종시키고 있었다.이런 유형은 둘 중 하나다. 뒤에 든든한 배경이 있거나 아니면 쉽게 드러내지 않는 진짜 실력을 쥐고 있거나.서인경의 눈빛에 경계가 스며들었다.좌장군은 두 사람을 노려보며 눈에서 불이 튀는 듯했다.“서인경, 설산에 가야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군.”서인경이 미간을 찌푸렸다.“난 널 모른다. 이름부터 밝히거라.”좌장군은 느긋하게 부채질을 했다.그러자 서인경의 시선도 자연스레 부채 위로 향하게 되었다. 그 위에 먹으로 또박또박 적힌 글자 하나. 남궁.그녀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지하흑시 남성 성주, 남궁오와 무슨 관계인 것이냐?”좌장군이 냉소를 흘렸다.“남궁오는 내 친부다. 남궁열은 이복형님이지. 네가 내 형님을 다치게 했으니… 그 빚을 어떻게 갚을 생각이냐?”서인경과 연기준은 짧게 눈을 마주쳤다.남궁 가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심지어 막수한조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인물의 존재는 막수한조차 몰랐다는 것을.그렇지 않았다면, 단 한마디라도 귀띔했을 터였다.좌장군은 두 사람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세상 사람들은 말하지. 어족은 일불락 수장 가문에 가장 충성스러운 노예라고. 헌데 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남궁 가의 실력은 봉 가에 뒤지지 않으니 어족을 이끌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 헌데 왜 남의 숨결에 기대 살아야 하지?”서인경은

  • 시간을 거슬러   제1228화

    아직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은 계절이라 가지마다 잎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그 덕분에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가려졌다.암위들 역시 재빨리 각자의 은신처를 찾아 몸을 숨겼다.연풍은 서인경과 연기준이 있는 나무 옆 가지 위에 자리 잡았다.조금 늦게 올라온 그는, 여자의 신발 한 켤레를 연기준에게 건넸다.“방금 안에서 평이 짐을 찾았습니다. 새로 사서 아직 신지 않은 신발입니다. 마마께서 잠시라도 신으십시오.”연기준은 그것을 받아들고 서인경에게 나무를 단단히 붙잡으라 했다. 그러고는 몸을 낮춰 한 단계 아래 가지로 내려섰다.마침 그의 손이 닿는 높이에 서인경의 발이 있었다.서인경과 평이는 발 크기가 비슷해 신발은 꼭 맞았다.연기준이 조심스럽게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을 보며 서인경은 문득 말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손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데 쓰이는 건데, 여인 신발 신겨주는 일까지 이렇게 능숙하네요. 참으로 본받을 만한 남자입니다.”연기준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알아듣게 말하거라.”서인경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앞으로는 매일 저한테 신겨줬으면 해서요. 물론, 저도 당신한테 신겨줄게요.”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달콤한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말은 조용히 연기준의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뿌리를 내렸다. 겨울날 햇살처럼 따뜻하게 그를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말이었다.훗날, 수없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는 순간마다 그는 이 한마디를 떠올리며 끝까지 버텨냈다.산속에서 내려온 자들은 곧 마을로 들이닥쳤다. 서인경과 연기준은 나뭇잎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아래에서 사람들이 집집마다 무너진 잔해를 뒤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결과는 하나같이 같았다.모두 허탕이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 이냐?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이냐?”“어제 낮에만 해도, 촌장 그 늙은이가 마을 입구에서 돌아다니는 걸 봤고, 낯선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는 것도 봤습니다. 헌데 하

  • 시간을 거슬러   제378화

    이튿날 조정 아침 조회.서가군의 귀속 문제를 두고 다시 한 번 격렬한 논의가 벌어졌다.태황태후가 열다섯 째 황자를 궁으로 데려간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숙귀비를 반대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그녀가 이전에 반대한 것은 오직 열다섯 째 황자가 어리고 어머니가 곁에 없으면 염려되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자신이 직접 그를 거두어 기른다면 궁중에서 외롭거나 학대받을 염려가 없으니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명분이었다.백관의 맨 앞에 서 있던 연기준은 그 말을 들으며 낯설지 않은 기억 속으로 잠시 가라앉았다.

  • 시간을 거슬러   제385화

    서인경은 고개를 돌릴 필요조차 없었다. 말속에 섞인 몇 마디만 들어도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태연히 연기준의 품에서 몸을 뺐다.“진짜 실력이 있으면 진 공자께서도 한번 뽐내 보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진 공자가 그저 못 먹는 감 찔러본다는 속담의 산 증거라 생각하겠습니다.”진방옥은 순간적으로 위화감을 느꼈다.서인경이 ‘깨를 볶는다’는 표현과 ‘솔로’라는 단어까지 이해하다니.과연 상왕이 눈여겨본 여인답다. 그는 서인경이 평범한 여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자신과 마음이 통한다는 사실에 은근한 우쭐함이 치밀어

  • 시간을 거슬러   제397화

    한 그릇의 쓴 약이라 해도 아니 독약이라 할지라도 봉한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삼켰을 것이다. 그런 결심이 얼굴에 어려 있었기에 이번에는 서인경이 일일이 숟가락을 들어 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약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단숨에 쭉 들이켰다.“이렇게 시원하게 약을 마시는 아이는 처음 본다. 정말 대견하고 씩씩해.”서인경의 말에는 꾸밈이 없었다. 본디 한약은 혀끝을 절여 울컥 눈물이 나올 만큼 쓰디쓴 법. 과거 의사로 일하던 시절, 서인경은 한설 또래 아이들이 약 한 모금을 넘기지 못해 부모가 눈물겹게 달래는 장면을

  • 시간을 거슬러   제366화

    서인경이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진 뒤, 연기준은 방 문을 닫고 전정으로 나섰다.그때, 열댓 명의 암위들이 일렬로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연기준이 나오자 그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저희가 임무를 다하지 못했사옵니다. 왕야께서 벌을 내리소서.”그들은 모두 왕부를 지키는 자들이었다.아침에 출문하기 전 연기준은 이미 명백히 분부했었다.“서인경이 결코 문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거라.”그러나 그들은 단 한 사람도 막아내지 못했다.“그녀는 어떻게 나간 것이냐?”선두에 선 암위가 답했다.“왕비께서는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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