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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문틈 사이의 단두대

Penulis: 이십세기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7-17 15:41:53

## 제3화 : 문틈 사이의 단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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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처럼 차가운 지하수 문을 틀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거친 물줄기가 머리칼과 어깨에 들러붙은 끈적한 전복죽 덩어리들을 씻어내렸다. 뜨겁게 익어버린 두피와 뺨에 찬물이 닿을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올 듯한 통증이 일었지만, 설아는 이를 악물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처참했다. 붉게 짓무른 얼굴,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칼.

그러나 그 처참한 겉껍데기 뒤에 숨겨진 눈동자만큼은 핏빛 복수심으로 차갑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낡은 가운을 걸친 순간, 설아의 뇌리 속에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했다. 여신이 하사한 AI 인지 시스템이 저택 내부의 미세한 음파 진동을 감지한 것이다.

`[이상 음파 감지: 2층 홍명숙 여사의 비밀 서재]`

`[대화 인원: 3명 (홍명숙, 강민우, 최유라)]`

`[보안 등급: 최고 수준, 주파수 증폭 가동]`

설아는 숨을 죽였다.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발로 욕실을 나왔다. 두꺼운 페르시아 양단 카펫이 깔린 복도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발등의 화상 상처가 바닥에 쓸려 쓰라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홍 여사의 서재 앞. 육중한 마호가니 문이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1센티미터 틈을 두고 열려 있었다. 그 좁은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함께, 세 사람의 추악한 모의가 설아의 귀를 청각 데이터로 변환시키며 꽂히기 시작했다.

"민우야, 방금 저년 눈빛 봤지? 은설아 저거, 그냥 놔뒀다간 우리가 먼저 물려 죽는다. 근본도 없는 고아 년을 며느리랍시고 앉혀놨더니 감히 누구 앞에서 대가리를 쳐들어?"

홍 여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매서운 담배 연기가 문틈을 타고 흘러나와 설아의 코를 찔렀다.

"어머니, 저도 놀랐어요. 평소 같으면 울고불고 빌었을 년이 눈을 똑바로 뜨고 가시 돋힌 말을 내뱉는데…… 소름이 돋더라고요. 유라 다리 저렇게 만든 것도 분명 고의예요."

강민우의 목소리에는 아내에 대한 걱정 따윈 없었다. 오직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불쾌함과 두려움뿐이었다. 얼음을 띄운 위스키 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다리에 붕대를 감은 최유라가 표독스러운 음성으로 거들었다.

"민우 씨, 더 지체하면 안 돼. 내 안방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내 다리까지 이 모양으로 만들었잖아. 그리고 지금 우리 친정 사채 빚 독촉 들어오는 거 알지? 이번 달 내로 한성 바이오 지분 안 넘어오면 우리 다 같이 길바닥에 나앉아."

최유라가 강민우의 매끄러운 뺨을 쓸어내리며 애처로운 척 콧소리를 냈다.

"은설아 그년 앞으로 선대 회장님이 남긴 한성 바이오 지분이 자그마치 15%야. 지금 시가로 3,000억이 넘는 돈이라고. 그게 유라 네 친정 사채 빚 탕감하고, 내 마카오 손실 메울 유일한 동아줄이다."

강민우의 입에서 나온 잔인한 진실. 설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1회차인 전생에서도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정신병원으로 끌려갔었다. 저들이 그 막대한 지분을 가로채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속이고 가스라이팅했던 것이다.

`[데이터 분석: 한성 바이오 지분 15% 소유권 확인]`

`[타깃들의 목적: 대상(은설아)을 정신질환자로 조작, 법정대리인 자격 취득 후 지분 강탈]`

설아의 망막 위에 저들이 꾸미는 음모의 시나리오가 완벽한 확률 계산과 함께 텍스트로 떠올랐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저년이 순순히 지분을 넘겨줄 것 같진 않고."

홍 여사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물었다. 강민우가 비열하게 웃으며 양복 안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척 올려놓았다. 서류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문밖의 설아에게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이미 손은 써 뒀습니다. 가평에 있는 그린 요양병원 박상철 원장이라고, 돈만 주면 멀쩡한 사람도 평생 시체처럼 썩게 만들어 주는 의사가 있어요. 사설 구급대 애들한테 연락해 놨으니, 오늘 밤 비 쏟아질 때 저년 결박해서 조용히 실어 보낼 겁니다."

"어머, 민우 씨! 정말? 그럼 저년은 영원히 못 나오는 거야?"

최유라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로 강민우의 목에 매달렸다.

"그럼. 정신질환으로 인한 보호자 동의 입원이야. 남편인 내 서명 한 방이면 끝나는 거지. 아무리 밖에서 소리쳐 봐야 정신병자 미친 소리로 치부될 테니까."

바스락거리는 만년필 소리가 들렸다. 강민우가 주저 없이 보호자 동의서 칸에 자신의 이름을 갈겨쓰는 서명 소리였다. 오직 혼자 살기 위해, 조강지처를 산지옥으로 밀어 넣는 남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잔혹한 미소만이 가득했다.

문틈 사이로 그 미소를 바라보는 설아의 전두엽에 AI 시스템의 차가운 음성이 울렸다.

`[경고: 강제 감금 이벤트 발생 확률 100%]`

`[대응책 가동 여부: 예 / 아니오]`

지금 당장 이 서류를 빼앗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다. 머릿속의 시스템을 가동해 강민우의 계좌를 해킹하고 파멸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니, 막지 않겠어.'

설아의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전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가평 그린 요양병원 지하 세탁실. 그곳에는 홍명숙에게 토사구팽당해 15년간 갇혀 있는, 한성그룹의 진짜 창업주이자 스위스 비밀 자산 2조 4천억 원의 열쇠를 쥔 '신혜숙 여사'가 있다.

그 자산이 있어야만 저들을 완벽하게 밟아 뭉개고, 한성그룹을 통째로 씹어 삼킬 거물 자산가 '에바 은'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저들이 파놓은 지옥의 함정은, 역설적이게도 설아가 여왕으로 부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완벽한 제단이었다.

"민우 씨, 최고야! 그럼 내일부턴 저 안방 침대도, 이 저택도 다 내 거네?"

최유라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서재 안을 가득 채웠다.

설아는 천천히 몸을 돌려 어두운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발등에서 흐른 핏방울이 카펫에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 서둘러 나를 지옥으로 보내다오.'

설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창밖으로 거센 먹구름이 몰려오며 천둥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 장대비가 쏟아지는 그 지옥의 버스가 오기를, 설아는 피가 끓는 희열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단두대의 줄을 당긴 것은 자신이 아닌, 바로 저 추악한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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