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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마리타와 운석(2)

Author: 도수정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1 16:15:09

“나뭇가지로는 안될텐데에?”

마리가 테오가 주는 돈을 주머니에 꽂아넣으며 빙그레 웃고는 그가 낮에 한말을 따라했다. 

“따라하지 마라. 연습한 거지 너?”

“아닌데, 아닌데.”

얄미운 인물에게 방금 당직으로 번 야근 수당을 전부 내주고 베버는 신입과 함께 당직실로 향했다. 현금을 양손으로 주물거리는 소녀에게서 눈을 못떼고 그가 어떻게든 떨어뜨려놓으려는 신입, 헤게는 대체 저게 뭐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으쓱한 베버가 입을 다물 것처럼 굴자 금세 불만을 토해냈다.

“방어 시스템이 마비됐나요? 어떻게 운석이 병원 상공에 들어올 수 있죠?이건 엄연한 정의규정의 위반 아닙니까! 어서 연맹에 항의해야 합니다.”

“아, 그쪽이 먼저? 거참, 어...그렇지 위반이지, 근데 그럴 수도 있죠. 뭐...”

“선생님! 이렇게 가볍게 넘기실 일이 아닙니다. 방금은 요행입니다. 운석이 그냥 없어진 것이지 자칫하면 병원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던 상황이에요.”

베버는 그것보다야 똑같은 반응에 매번 똑같은 사실을 설명하는 그의 일이야말로 가볍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보안서 조항 1번부터 3번 기억합니까, 헤게 선생.”

“하나, 환자를 우선하여 지킬 것. 하나, 병원 내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외부에 유출될 수 없는 기밀로 간주한다. 하나, 이를 유출할 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함에 성실하게 임해야 합니다.”

”총명하군요. 오늘 다들 저녁을 먹고 일찍이 잠들었어요. 헤게 선생이랑 나는 같이 카드 게임을 하느라 바깥일은 몰랐어요.”

“저에게도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

“차트, 받지 않았습니까. 여기는 능력자 폐기 병원, 최장수 환자는 제레미 렘. 최연소 환자는 마리타 렘. 끝.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죠?”

기록은 편협하고 기억은 광활하다. 수치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믿어야 할 것은 오로지 제 직감일 것이다. 능력 상실과 잦은 사고라는 두 변명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함축되어 있나. 그제야 헤게는 이 곳이 바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누군가는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하지만 과거가 현재보다 힘이 센 삶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게 이곳의 누군가는 아니라거나 혹은 자기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해가 맑게 개었고 어제의 운석이 깨진 조각은 다음날 로봇들이 수거해갔다. 미지의 운석 조각이라고 대충 설명이 올라간 보고서를 보며 헤게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출처 불명이라고. 하늘에서 떨어졌고, 연맹이 제공하는 최고의 방어 시스템은 무력했고 소녀가 그걸 부수었는데 다들 당연하다는 듯 그걸 없던 일로 만들었다.

헤게는 단단히 잘못된 매듭의 어디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오래 굳어진 듯한 관행은 베버로부터 시작됐을지 아니면 더 위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어제부터 새롭게 그녀의 방이 된 공간에도 낯설기만한 책들로 가득했고, 침대마저도 새로웠다. 그나마 이 공간에서 익숙한 것이라면 가죽으로 엮은 책 정도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 책조차 겉표지가 다른 것이 있어 그녀가 알던 저자의 책이 맞는지 확인해봐야 했다. 어제 봤던 책등을 가만히 훑으며 헤게는 블라우스 단추를 잠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시계가 다시 출근 시간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헤게는 풀었던 머리를 꽉 조여 묶고 가장 먼저 만날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반가워요, 마리타.”

마리타는 여자의 친화력이 낯설지만 제법 기분은 좋았다. 그녀가 운석을 깨는 걸 보고도 먼저 인사하러 온 것이 아닌가. 그러면 적어도 담력에서는 합격인 셈이다. 이제껏 겁에 질려 하룻밤에 짐싸고 다음날 나타나지 않은 사람만 서넛이 넘었다. 

“안녕하세요, 헤게 선생님.”

베버에게도 하지 않는 존대를 하는 모습을 그가 봤다면 아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폈을 것이다.

“네, 어젯밤은 편하게 잘 잤어요? 날이 너무 덥지 않아요?”

“조금 더웠지만 좋았어요. 아픈 곳도 없이 잘 잤고, 꿈도 안 꿨어요. 선생님은요?”

“저도 그랬어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헤게는 마리타가 평소 병원에서는 나눌 수 없는 상식적이고 평범한 대화를 나누었다. 어젯밤에 누굴 죽이지는 않았느냐 같은 질문을 듣지 않는다는 점에서 얼마나 평화로운가. 마리타는 이 사람이야말로 병원에 몇 없는 교양있고 상식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왔어요.”

게다가 그녀는 테로 시작하는 능구렁이보다야 훨씬 솔직하고 상냥했다.

“어제, 마리타가 운석을, 해결했잖아요?”

나름 고심한 해결이라는 단어는 마리타에게 새로운 접근이었다. 맞아, 내가 문제를 해결했어.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에 성취감도 차올랐다. 조심스럽게 그녀가 덧붙였다. 바깥에서는 볼 수 없던 방식이라서 그러는데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소녀는 친절한 사람에게 유독 약했고 특히나 예쁜 것에 유난히 약했다. 헤게는 충분히 범주에 들었다.

“어려운 거 아니에요. 저게 없어져야 된대하고 생각하면 돼요.”

“나뭇가지로요? 그러면 다른 일도 가능할까요?”

그제야 마리타는 말이 왜 맴도는지를 알고 다시 설명했다. 헤게의 눈이 커졌다가 뺨이 창백해졌다가 하는걸 보면서는 반응이 참 재밌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편 베버는 오후에 잡힌 마리타의 회진을 미리 돌았다는 헤게의 보고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마리타는 마리타대로 솔직하게 설명했기에 사달이 났다. 헤게는 헤게대로 집요하게 베버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어제 잠을 설치느라 까칠해진 눈가는 아마 오늘 밤에 더 심해지리란 예감이 확실하게 들었다.

“그러니까, 마리타 양은 절대 렘즈에 있을 수 없는 유형입니다. 저런 능력에 저런 구상력에 폐기 처분이요?”

폐기라는 말은 말을 할 때마다 어딘가 오싹한 구석이 있었다. 마리타가 설명한 것들은 그녀가 배운 대부분의 이론에서 정반대에 위치해있고 그녀의 능력체계 역시 전혀 다를 것이었다.

“네. 렘즈에서도 최초고 연맹에서도 최초고 아마 이 도시랑 세계에서도 최초일 겁니다. 저런 녀석은요.”

베버는 일부러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대놓고 눈가를 비비는 그의 행동에 헤게는 잠시 움찔하다가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정당하지 않아요. 소수의 능력이라서 미래를 가질 수 없다니요. 그것도 고작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한테 과분한 처사에요.”

“서류에서 뭐라고 합니까, 저 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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