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둘의 뒷모습을 보는 동안 테오의 기억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그녀의 퇴근이 늦어졌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왔는데 품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서 왔다. 출혈이 심해 살아날지 죽을지 모르겠다고 답하자 누나가 꼭 살려야한다고 했고, 테오도 그렇게 했다. 참 안됐다 생각했는데 혐의가 있다고해서 놀랐고, 아이가 ‘그’ 사건의 생존자라 더 놀랐었다. 놀랄 일이 참 많기도 했다. 하얀 환자복을 입기에도 턱없이 마른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나는 다음날 제출할 서류를 읽다가 아이 얼굴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저 아이가 숨겨진 조카인가 경박한 생각도 해봤지만, 닮은 구석이 없었다. 갈색 머리에 파란 눈인 그들과 달리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그나마 색이 다르다고 해봐야 제레미였는데 그도 하물며 금발이었다. 출신지가 궁금해지려는 찰나, 누나는 그를 병실에서 내쫓았었다.
“테오도르 베버.”
이름을 다 부르면 자기랑 비슷하니 싫다고 늘 애칭으로만 부르는 엘리였다. 그날따라 이름을 불렀고,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그녀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엘리는 오늘도
그를 테오도르라고 불렀다. 뒷목을 잡아당기는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너 이제 나보다 병원을 잘 아는구나?”
그녀는 그곳이 병원을 가장한 이능력자 폐기시설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굳이 마리의 앞에서는 병원이라고 불렀다. 마리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영민한 아이의 총기를 보건대 아무것도 모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도 침묵했다.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이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으리라는 것처럼.
마리가 앞서 걸으며 종알거렸다. 매일 율리아랑 숨바꼭질을 하는데 휠체어가 느려서 온종일 숨어있어도 못찾는다고 했다. 율리아가 할머니라는 사실만 그녀가 몰랐다면 듣고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남동생에게 듣기로도 잘 지낸다고 했다. 당분간 못 온다고 해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마리타.”
자켓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아이와 시선을 맞추면 천장이 낮은 병원인데도 공간이 크게 느껴졌다. 그녀가 남동생만큼 신장이 크기 때문인지 거칠 게 없었던 그동안의 삶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마리타.”
이름을 전부 부르면 꼭 마리는 시선을 맞추지 않고 바닥만 봤다. 엘리가 어깨를 잡고 눈을 맞췄다. 그동안에도 아이가 바닥으로 떨어진 자켓이나 흘러내리는 엘리의 머리카락에만 시선을 뒀다. 꼼지락거리는 발은 어색하게 서서 어쩔 줄 몰라했다. 영리하다는 건 다른 일들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막상 눈을 마주치니 엘리도 망설여졌다.
“엘리.”
소녀는 이미 자기가 초능력자인 걸 알았다고 했다. 그 폭발에서 살아남은 걸 이상하게 여긴다. 혼자 가져온 의문이 확신으로 변해가는 과정 어디쯤에 서 있을까. 엘리는 더 이상 상황을 바꿀 힘이 그들 남매에게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마리에게도 기억을 잃었다고 설명하라고 시켰다. 혐의는 없어지지도 않고 선명했고, 그들의 꼬마 아가씨는 여전히 어리기만 했다. 붉은 벽돌기둥에 엘리가 등을 기대자 마리가 걱정스레 그녀를 올려다봤다. 엘레오노라는 허리에도 미치지 않는 마리의 정수리만 보려고 했다. 그러다가는 어려워져 허공을 쳐다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파란 하늘을 닮은 눈동자는 여전히 허공만 보고 있었다. 담담한 빛이 엿보여 마리는 혼자 침을 꿀꺽 삼켰다.
“사건이 어쩌면 오랫동안 해결될 수 없을거야. 그리고 나는 떠나야 할 것 같아.”
테오든 병원의 누구든지 마리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어려서 괜찮다고도 했고 어느 날에는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느냐며 장난으로 화제를 돌렸다. 고의가 아님은 알았다. 모두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혐의는 없어지는 듯했으나, 그럴 수 없을 것이었다. 봤던 풍경은 없어지지 않고 뚜렷하기 때문에 그 수많은 것들이 사라진 날인데, 시간만으로 해결이 되겠는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엘리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멀리,가요? 자주 못오고?”
사실 다른 것보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엘리는 그렇다고 했지만 어디에 가는지는 또 말해주지 않았고, 언제부터 올 수 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날 밤에 병원에서 멀지 않은 도로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테오도 누구도 또다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병원 벽에는 사진이 몇 장 붙어있었다. 이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친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그중에서 한 사진은 이질적이었다. 이름이 그랬다. 여자는 복도를 지나다니는 의사와 생김새가 몹시 비슷했고, 가죽으로 만든 겉옷이 잘 어울렸다.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그녀는 장난기 가득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이름은 고전적이었다. 이제는 마리라고 불리는 게 친숙한 아이는 매일 아침 사진 앞에서 인사를 건넸다. 신경쓰지않으면 갈수록 잊어버린다. 사람은 그렇더라. 제레미가 그랬다.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또 한 번 다녀오라고 시간을 줬다. 무서워서 가슴이 덜컥거려도 자주 마주하라고 했다. 많이 담아두고 보아야 한다고. 그럼에도 저벅저벅 걷는 걸음이 느리고, 심장은 천천히 뛰었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났다.
‘아가.’
작은 호칭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아버지가 살인범인데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였고 그대로 마리는 그녀를 잃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엮인 일을 그냥 덮지 않아 그런 일이 생겼다고도 했고 사건을 놓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지체해서 그렇다고도 했다. 살인자의 딸이 해결할 힘은 없었다. 하늘은 파랗게 떠있고, 그녀의 동생은 더 이상 아이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똑같이 엘레오노라 베버, 엘리를 떠나보냈다.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은 그 밤 이래로. 그도 아이도 그녀가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나뭇가지로는 안될텐데에?”마리가 테오가 주는 돈을 주머니에 꽂아넣으며 빙그레 웃고는 그가 낮에 한말을 따라했다. “따라하지 마라. 연습한 거지 너?”“아닌데, 아닌데.”얄미운 인물에게 방금 당직으로 번 야근 수당을 전부 내주고 베버는 신입과 함께 당직실로 향했다. 현금을 양손으로 주물거리는 소녀에게서 눈을 못떼고 그가 어떻게든 떨어뜨려놓으려는 신입, 헤게는 대체 저게 뭐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으쓱한 베버가 입을 다물 것처럼 굴자 금세 불만을 토해냈다.“방어 시스템이 마비됐나요? 어떻게 운석이 병원 상공에 들어올 수 있죠?이건 엄연한 정의규정의 위반 아닙니까! 어서 연맹에 항의해야 합니다.”“아, 그쪽이 먼저? 거참, 어...그렇지 위반이지, 근데 그럴 수도 있죠. 뭐...”“선생님! 이렇게 가볍게 넘기실 일이 아닙니다. 방금은 요행입니다. 운석이 그냥 없어진 것이지 자칫하면 병원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던 상황이에요.”베버는 그것보다야 똑같은 반응에 매번 똑같은 사실을 설명하는 그의 일이야말로 가볍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보안서 조항 1번부터 3번 기억합니까, 헤게 선생.”“하나, 환자를 우선하여 지킬 것. 하나, 병원 내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외부에 유출될 수 없는 기밀로 간주한다. 하나, 이를 유출할 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함에 성실하게 임해야 합니다.””총명하군요. 오늘 다들 저녁을 먹고 일찍이 잠들었어요. 헤게 선생이랑 나는 같이 카드 게임을 하느라 바깥일은 몰랐어요.”“저에게도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차트, 받지 않았습니까. 여기는 능력자 폐기 병원, 최장수 환자는 제레미 렘. 최연소 환자는 마리타 렘. 끝.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죠?”기록은 편협하고 기억은 광활하다. 수치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믿어야 할 것은 오로지 제 직감일 것이다. 능력 상실과 잦은 사고라는 두 변명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함축되어 있나. 그제야 헤게는 이 곳이 바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멍청아! 나무보다 돌이 더 단단하지.”어린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는 흰 가운 위로 면접 때 보았던 명찰이 보였다. 테오도르 베버.“아니라니까! 나무가 더 단단하다고!”곱슬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긴 남자는 면접 때 보았던 차분한 인상과 거리가 멀었고, 무엇보다 환자복을 입은 어린 아이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의사에게서 보게될 줄은 몰랐던 헤게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손을 소녀의 머리에서 치웠다.“뭐하시는 겁니까! 환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나름의 정색이 먹혀들었을까. 테오도르는 한마디를 더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는 금세 기세가 사그라들어 사과했다.“네, 죄송합니다. 때린 건 미안하다.”소녀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 듯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헤게에게 방긋 웃고는 베버의 발을 밟았다. 베버는 미처 대처할 새도 없이 당하고 잽싸게 도망가는 소녀의 뒷모습만 바라봐야했다.“내일부터 출근하는 던 헤게 선생 맞습니까.”“네. 테오 선생님이신가요? 저번과 영 딴판이라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말 속의 가시를 의식한 듯 베버의 미간이 찡그려졌다.“예, 제가 테오도르 베버입니다. 호칭은 선생님 정도로 족합니다. 차트는 받으셨을 테니 그대로 따라주시면 되고 굳이 환자들과 추가적인 접촉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테오가 웃으면서 선을 긋자 헤게는 첫 직장의 설렘이 모조리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분노만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제 마음을 비단결에서 걸레짝으로 만드는 사람이 하필 유일한 상사였다. 앞날이 벌써 징그럽다.기록은 정확하지만 기억은 편협하다.헤게의 오랜 주관이었다. 수치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아야 할 것은 오로지 여러 사람의 분석과 해석이다.이번에 새로 부임한 병원은, 주위에서도 그런 그이기에 잘 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렘즈. 소위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능력자들을 위한 이능력자 폐기 시설이었다.캐리어를 이끌고 쭉 꺾어 들어간 길은 울퉁불퉁하고 차가 다니기에도
둘의 뒷모습을 보는 동안 테오의 기억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그녀의 퇴근이 늦어졌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왔는데 품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서 왔다. 출혈이 심해 살아날지 죽을지 모르겠다고 답하자 누나가 꼭 살려야한다고 했고, 테오도 그렇게 했다. 참 안됐다 생각했는데 혐의가 있다고해서 놀랐고, 아이가 ‘그’ 사건의 생존자라 더 놀랐었다. 놀랄 일이 참 많기도 했다. 하얀 환자복을 입기에도 턱없이 마른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나는 다음날 제출할 서류를 읽다가 아이 얼굴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저 아이가 숨겨진 조카인가 경박한 생각도 해봤지만, 닮은 구석이 없었다. 갈색 머리에 파란 눈인 그들과 달리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그나마 색이 다르다고 해봐야 제레미였는데 그도 하물며 금발이었다. 출신지가 궁금해지려는 찰나, 누나는 그를 병실에서 내쫓았었다.“테오도르 베버.”이름을 다 부르면 자기랑 비슷하니 싫다고 늘 애칭으로만 부르는 엘리였다. 그날따라 이름을 불렀고,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그녀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엘리는 오늘도그를 테오도르라고 불렀다. 뒷목을 잡아당기는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너 이제 나보다 병원을 잘 아는구나?”그녀는 그곳이 병원을 가장한 이능력자 폐기시설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굳이 마리의 앞에서는 병원이라고 불렀다. 마리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영민한 아이의 총기를 보건대 아무것도 모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도 침묵했다.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이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으리라는 것처럼.마리가 앞서 걸으며 종알거렸다. 매일 율리아랑 숨바꼭질을 하는데 휠체어가 느려서 온종일 숨어있어도 못찾는다고 했다. 율리아가 할머니라는 사실만 그녀가 몰랐다면 듣고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남동생에게 듣기로도 잘 지낸다고 했다. 당분간 못 온다고 해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마리타.”자켓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아이와 시선을 맞추면 천장이 낮은 병원인데도 공간이
1화 잃어버린 사람.첫 기억은 감옥에서 시작했다. 눈을 뜨자 아빠가 손을 잡고 우리 보물,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다시 나를 품에 안으며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두막으로 갔을 때도 펑펑 울고는 그날 일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아빠를 쫓아 일터에 가는 건 앞으로 자제해달라고만 해서,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마리타 마르샬라. 사무소에는 현장사진이 몇 장 붙어있었다. 시신들이나 폭발한 건물의 사진 따위. 그중에서 한 사진은 유난히 이질적이었다. 오래되어 사진의 모서리가 뭉툭하게 닳아버렸지만, 검은 연기 속에 다른 동료의 품에 안긴 창백한 어린 아이의 사진이었다. 마리타 마르샬라. 이제는 마리타 렘으로 불리는 게 더욱 친숙한 아이였다. 수사관은 그 아이의 거취를 주기적으로 신경써야 했다. 상관이 오늘 아침에 또 한 번 다녀오라고 임무를 줬다. 건네받은 파일에 함께 들어있는 쪽지는 모른 척 쓰레기통에 버렸다. 긴장한 상관의 표정으로 대충 사정은 이해했다. 자기야 어떻든 왔다갔다 그 시골짝에 가느라 하루를 통으로 쓰겠구나 싶어서 엘리는 뒷목을 벅벅 긁었다. 사건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였다. 연맹이 자기들 입맛대로 그냥 덮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크게 죽어서, 부모도 없는 아이를 어딘가 보호시설에 보내지도 못하고 사건을 놓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지체했다. 일반시설에 보내면 진실과는 무관하게 살인자의 딸로 꼬리표가 달릴 것이 뻔하고 사건이라도 잘 해결되었으면 싶지만 증거라고는 없는 이 상황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아니다, 증거는 있었다. 만들어졌을 뿐. 그래서 발견한 즉시 엘리가 묻어버렸을 뿐이다. 하늘은 파랗게 떠 있고, 빌어먹을 동생은 또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테오도르 베버, 이를 갈며 차를 몰아 길을 떠났다. 어쨌든 그녀도 오랜만에 아이와 동생이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병원 문을 열고, 안에서 아이를 본다. 차분하게 검은 원피스를 갖춰 입은 소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엘리가 평소처럼 티셔츠를 입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