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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마리타와 운석(1)

Author: 도수정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1 16:10:26

“멍청아! 나무보다 돌이 더 단단하지.”

어린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는 흰 가운 위로 면접 때 보았던 명찰이 보였다. 테오도르 베버.

“아니라니까! 나무가 더 단단하다고!”

곱슬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긴 남자는 면접 때 보았던 차분한 인상과 거리가 멀었고, 무엇보다 환자복을 입은 어린 아이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의사에게서 보게될 줄은 몰랐던 헤게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손을 소녀의 머리에서 치웠다.

“뭐하시는 겁니까! 환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나름의 정색이 먹혀들었을까. 테오도르는 한마디를 더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는 금세 기세가 사그라들어 사과했다.

“네, 죄송합니다. 때린 건 미안하다.”

소녀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 듯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헤게에게 방긋 웃고는 베버의 발을 밟았다. 베버는 미처 대처할 새도 없이 당하고 잽싸게 도망가는 소녀의 뒷모습만 바라봐야했다.

“내일부터 출근하는 던 헤게 선생 맞습니까.”

“네. 테오 선생님이신가요? 저번과 영 딴판이라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말 속의 가시를 의식한 듯 베버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예, 제가 테오도르 베버입니다. 호칭은 선생님 정도로 족합니다. 차트는 받으셨을 테니 그대로 따라주시면 되고 굳이 환자들과 추가적인 접촉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테오가 웃으면서 선을 긋자 헤게는 첫 직장의 설렘이 모조리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분노만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제 마음을 비단결에서 걸레짝으로 만드는 사람이 하필 유일한 상사였다. 앞날이 벌써 징그럽다.

기록은 정확하지만 기억은 편협하다.

헤게의 오랜 주관이었다. 수치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아야 할 것은 오로지 여러 사람의 분석과 해석이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병원은, 주위에서도 그런 그이기에 잘 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렘즈. 소위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능력자들을 위한 이능력자 폐기 시설이었다.

캐리어를 이끌고 쭉 꺾어 들어간 길은 울퉁불퉁하고 차가 다니기에도 불편하다.

불가해한 힘을 가진 능력자들이 있는 도시 주제에 아직도 이런 풍경이 남아있는 것이 놀라워 헤게는 또 한참 사진을 찍었다. 첫 직장, 첫 사회생활로 생기는 긴장과 설레임을 만끽하는 동안 처음으로 본 풍경은, 색달랐다.

직원용으로 제공된 숙소는 병원 본관과도 거리가 멀지 않아 금세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위치였다. 대충 짐을 풀고 나니 금세 해가 졌고 내일부터 진짜 출근인걸 알고는 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막막하고 두려워져 문득 스스로가 굉장히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 사이 베란다로 비가 몇 방울 들이쳤다.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어째 멋대로 또 비가 온다. 이 지역은 특히 날씨예보가 맞았던 적이 거의 없어서 오는 내내 고생을 했다.

“나쁜 놈들, 이제는 예보도 안 해주네.”

베란다에 주저앉아 헤게는 가만히 하늘을 보았다. 그나마 별이 보이는 건 위로라면 위로다. 그런데 뭔가 하나가, 유난히 크고 붉게 빛나는 중이었다. 어째 점점 그녀의 머리 위로 크기를 불리며 가까워져 오는 중이었다.

방어시스템이 알아서 잘 없애겠거니 싶었지만 정말로 하늘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이상한 일이었다. 헤게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본관으로 향했다. 베버가-더 이상은 친한 척 이름을 불러주기도 싫은 사람이 되었다.-

당직을 설 테니 장치도 잘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마도 외부 비행선이 근처를 맴도는 모양이리라 헤게는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재수가 없는 건 이제 예고도 안하고 운석 비를 뿌리는 연맹 놈들이다. 베버는 오늘도 그렇게 결론을 냈다.

하늘에 보이는 빨간 점을 보고 벌써 환자들은 밖으로 나와 구경 중이었다.

“지네 대빵하고 우리 대빵하고 악수한 게 언젠데 또 이렇게 선물을 보내고 말이야 진짜.”

그야 이 광경이 익숙하니 괜찮다손 치더라도, 하필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신참이 문제였다.

지금쯤 숙소에서 자고나 있으면 좋으련만, 문제적 신참은 정직하게 테오에게로 향하는 중이었고 그 중에서도 하필 문제적 인물의 근처였다. 저 자리배치 누가 했나.

왜 쟤가 쟤 옆에 있담. 베버는 오랜만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했다.

저러다 겁에 질려서 그만두면 언제 또 새로 사람을 뽑는단 말인가.

아까야 겁먹지 말라고 선을 그었지 이 병원에서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한편 신입은 뭔가 잘못됐다는 표정으로 주위 환자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불구경 하듯이 뜨개질을 하며 붉은 점을 구경 중이다.

당직을 서던 선배는 미간을 찡그리고 그저 서서 이리로 오라고 한다. 베버에게 무엇이라도 물어보려던 것일까 싶은 찰나 신입은 무슨 정의감에 불탔는지 자기 옆에 있는 어린 환자-이자 아까 낮의 베버를 밟고 간 범인-를 베버의 곁으로 보내려 했다. 아마 저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 가련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을 지키고 말겠다 혹은 이들을 위해 내가 의사가 된 것이다’같이 깊은 생각을 하며 어린 소녀의 앞을 막고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 찰나가 빚어지기 전에 베버가 외쳤다.

“나와요! 얼른 나오라니까!”

그때까지도 헤게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늘에서 맨눈으로 운석이 보였다. 보안팀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엄마한테 연락해야하는데 아 어쩌지, 진짜 어쩌지. 여러 생각을 하는 순간에 붉은 운석으로 가벼운 무언가 박혔다. 쩍 소리를 내며 운석이 반으로 갈라지고 완전히 미세한 조각으로 깨어졌다.

그녀가 본 게 맞다면 나뭇가지가 던져져 운석을 반으로 갈라 폭파시켰다. 불길이 붉다 못해 하얗게 타올랐었다. 다큐에서 본 용암이 저렇게 생겼었다. 헤게는 하얗게 질려서 몇 번이나 위와 아래를 쳐다봤다. 몇 번이나 같은 풍경을 보고서 말이다. 뜨개질을 하던 율리아, 저녁에 그녀에게 파이를 주었던 너그럽던 할머니는 이제 다 끝났냐며 휠체어를 밀어 익숙한 듯 스스로 병실로 돌아갔다. 다른 환자들도 태연하게 자리를 파했다.

구경 한 번 잘했다며 방금 그의 곁에 서 있던 제일 어린 환자의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아가 오늘도 잘 봤다.”

베버는 문제적 인물의 손에 내기 돈을 쥐어주었다. 저것까지 가능하다면 보고서에 쓸 말이 얼마나 늘어나려는지

저절로 머리가 아팠다. 신입을 달래주러 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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