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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잃어버린 사람.
첫 기억은 감옥에서 시작했다. 눈을 뜨자 아빠가 손을 잡고 우리 보물,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다시 나를 품에 안으며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두막으로 갔을 때도 펑펑 울고는 그날 일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아빠를 쫓아 일터에 가는 건 앞으로 자제해달라고만 해서,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마리타 마르샬라.
사무소에는 현장사진이 몇 장 붙어있었다. 시신들이나 폭발한 건물의 사진 따위. 그중에서 한 사진은 유난히 이질적이었다. 오래되어 사진의 모서리가 뭉툭하게 닳아버렸지만, 검은 연기 속에 다른 동료의 품에 안긴 창백한 어린 아이의 사진이었다. 마리타 마르샬라. 이제는 마리타 렘으로 불리는 게 더욱 친숙한 아이였다. 수사관은 그 아이의 거취를 주기적으로 신경써야 했다. 상관이 오늘 아침에 또 한 번 다녀오라고 임무를 줬다. 건네받은 파일에 함께 들어있는 쪽지는 모른 척 쓰레기통에 버렸다. 긴장한 상관의 표정으로 대충 사정은 이해했다. 자기야 어떻든 왔다갔다 그 시골짝에 가느라 하루를 통으로 쓰겠구나 싶어서 엘리는 뒷목을 벅벅 긁었다. 사건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였다. 연맹이 자기들 입맛대로 그냥 덮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크게 죽어서, 부모도 없는 아이를 어딘가 보호시설에 보내지도 못하고 사건을 놓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지체했다. 일반시설에 보내면 진실과는 무관하게 살인자의 딸로 꼬리표가 달릴 것이 뻔하고 사건이라도 잘 해결되었으면 싶지만 증거라고는 없는 이 상황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아니다, 증거는 있었다. 만들어졌을 뿐. 그래서 발견한 즉시 엘리가 묻어버렸을 뿐이다. 하늘은 파랗게 떠 있고, 빌어먹을 동생은 또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테오도르 베버, 이를 갈며 차를 몰아 길을 떠났다. 어쨌든 그녀도 오랜만에 아이와 동생이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원 문을 열고, 안에서 아이를 본다. 차분하게 검은 원피스를 갖춰 입은 소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엘리가 평소처럼 티셔츠를 입지 않고 단정한 차림새인걸로 평소와 다르게 굴어야하는 걸 안다. 볼수록 영리한 아이였다. 둘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기억이 떠오른 건 없는지, 이곳의 생활은 어떤지, 개인적으로는 이미 동생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보고서를 작성했다. 작은 발을 동동거리는 게 탁자의 진동으로 느껴졌다. 벌써 가만히 앉아있기에 진저리가 났는지 흘끔거리기도 한다. 언제 끝날지 시간을 재는 폼이 아주 본격적이었다. 뒤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지만 않았어도 마리가 진작에 그에게 장난을 쳤으리라.
“이정도면 됐다, 오늘은 그만하자.”
뒤에서 테오가 녹화를 멈추고, 신호를 주면 그도 천장으로 손을 뻗어 길게 기지개를 폈다. 움직여도 된다는 엘리와 마리타만의 수신호였다. 음식 앞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은 강아지처럼 있던 아이가 마침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간 아이가 의자에서 펄쩍 뛰어내려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종알거렸다.
“자고 갈거죠? 저녁이 고기래요. 엘리는 특별히 소고기인데 다 먹으면 디저트도 있어요!”
테오가 어깨를 으쓱이건 말건 엘레오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이다. 마리가 즐거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 웃으며 공간을 나갔다.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순간임을 알고 먼저 비켜준것이다. 여러 차례 이 일을 반복하면서 아이도 능숙해졌다. 수용소의 바로 앞에서 발견된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게 말끔하고 천진했다.
사진 속에서는 혼자 정신을 잃은 채로 방치됐었다. 마리를 볼 때마다 속으로 당시의 기록을 정리하고는 했다. 쇤베르그 령 포르베 지방 원주민 전원 사망, 양친 사망, 용의자 추정 신원 불명 인물과 부녀관계. 공범 혐의 의심 중 입증과정 미정.
마지막 결론 때문에 그녀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의 거취는 사무실 안에서도 담당자인 그와 직속상사, 또 그 위에 높은 사람들을 빼면 기밀이었다. 보호차원에서도 격리차원에서도 가장 원만한 합의였다. 그에 관해 언론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잠잠해진 편이다. 일 년에 한 편정도 기사가 올라오고는 했다. 엘리는 이대로 마리가 완전히 잊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지폐 수를 헤아리는 척 손가락을 비볐다. 돈 빌려달라는 소리다. 저런 놈에게 아이를 맡겨도 되나싶어 순간 고민이 깊어졌다.
“여기서 지낼만해?”
그 애, 생략된 말도 알아들었다. 묻는 게 그의 안부가 아니란 것쯤은 안다. 테오가 보기에 누나는 마리를 지나치게 신경 썼다. 사건을 담당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도 꼭 어미새처럼 굴곤 했다. 자기 약혼자나 잘 챙겨줄 일이지 이 병원의 누구랑 비슷해서 낯익었다. 답답한 마음에 넥타이를 한손으로 풀어낸 테오가 떠보듯 질문을 던졌다.
“그쪽에선 잘 숨길만한거고?”
그녀가 누구를 따라하듯 어깨를 으쓱였다. 테오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물을 걸 물어라. 테오도르.”
검은 머리카락에 잔뜩 재가 묻어 이 곳에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엘레오노라 베버와 테오도르 베버는 겉으로 여상한 척 굴고 있으나 그들 중 누구도 그날의 풍경을 잊지 못했다는 건 서로 확인해볼 가치도 없었다.
“밤에 악몽을 꾸나봐, 약을 쓰고는 있는데 잠을 잘 못 자.”
아무렴 누가 잘 수 있을까. 제 아버지와 섬 사람들이 전부 죽어나간 사건에 어느 날 이런 답답한 시설에 갇혀 지내는 신세라면. 엘리는 종이컵을 대충 입에 물고 겉옷에 팔을 뀄다. 아이가 오래 기다렸을 것 같았고,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문가에 쭈그려 앉은 마리가 그녀를 올려다본다. 까만 눈동자가 기대로 반짝였지만 직감적으로 제 처지를 아는지 먼저 손을 내밀어줄 때까지 아이는 망설이곤 했다.
“방 구경 시켜줄래, 아가?”
반가운 미소에 마리가 방긋 웃었다.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작은 손을 마주 잡았다. 따뜻한 손이 주는 감촉에 그제야 제 손이 놀랄만큼 서늘했다는 걸 안다.
“나뭇가지로는 안될텐데에?”마리가 테오가 주는 돈을 주머니에 꽂아넣으며 빙그레 웃고는 그가 낮에 한말을 따라했다. “따라하지 마라. 연습한 거지 너?”“아닌데, 아닌데.”얄미운 인물에게 방금 당직으로 번 야근 수당을 전부 내주고 베버는 신입과 함께 당직실로 향했다. 현금을 양손으로 주물거리는 소녀에게서 눈을 못떼고 그가 어떻게든 떨어뜨려놓으려는 신입, 헤게는 대체 저게 뭐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으쓱한 베버가 입을 다물 것처럼 굴자 금세 불만을 토해냈다.“방어 시스템이 마비됐나요? 어떻게 운석이 병원 상공에 들어올 수 있죠?이건 엄연한 정의규정의 위반 아닙니까! 어서 연맹에 항의해야 합니다.”“아, 그쪽이 먼저? 거참, 어...그렇지 위반이지, 근데 그럴 수도 있죠. 뭐...”“선생님! 이렇게 가볍게 넘기실 일이 아닙니다. 방금은 요행입니다. 운석이 그냥 없어진 것이지 자칫하면 병원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던 상황이에요.”베버는 그것보다야 똑같은 반응에 매번 똑같은 사실을 설명하는 그의 일이야말로 가볍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보안서 조항 1번부터 3번 기억합니까, 헤게 선생.”“하나, 환자를 우선하여 지킬 것. 하나, 병원 내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외부에 유출될 수 없는 기밀로 간주한다. 하나, 이를 유출할 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함에 성실하게 임해야 합니다.””총명하군요. 오늘 다들 저녁을 먹고 일찍이 잠들었어요. 헤게 선생이랑 나는 같이 카드 게임을 하느라 바깥일은 몰랐어요.”“저에게도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차트, 받지 않았습니까. 여기는 능력자 폐기 병원, 최장수 환자는 제레미 렘. 최연소 환자는 마리타 렘. 끝.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죠?”기록은 편협하고 기억은 광활하다. 수치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믿어야 할 것은 오로지 제 직감일 것이다. 능력 상실과 잦은 사고라는 두 변명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함축되어 있나. 그제야 헤게는 이 곳이 바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멍청아! 나무보다 돌이 더 단단하지.”어린 소녀의 머리를 쥐어박는 흰 가운 위로 면접 때 보았던 명찰이 보였다. 테오도르 베버.“아니라니까! 나무가 더 단단하다고!”곱슬 머리를 아무렇게나 넘긴 남자는 면접 때 보았던 차분한 인상과 거리가 멀었고, 무엇보다 환자복을 입은 어린 아이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의사에게서 보게될 줄은 몰랐던 헤게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손을 소녀의 머리에서 치웠다.“뭐하시는 겁니까! 환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나름의 정색이 먹혀들었을까. 테오도르는 한마디를 더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는 금세 기세가 사그라들어 사과했다.“네, 죄송합니다. 때린 건 미안하다.”소녀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 듯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헤게에게 방긋 웃고는 베버의 발을 밟았다. 베버는 미처 대처할 새도 없이 당하고 잽싸게 도망가는 소녀의 뒷모습만 바라봐야했다.“내일부터 출근하는 던 헤게 선생 맞습니까.”“네. 테오 선생님이신가요? 저번과 영 딴판이라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말 속의 가시를 의식한 듯 베버의 미간이 찡그려졌다.“예, 제가 테오도르 베버입니다. 호칭은 선생님 정도로 족합니다. 차트는 받으셨을 테니 그대로 따라주시면 되고 굳이 환자들과 추가적인 접촉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테오가 웃으면서 선을 긋자 헤게는 첫 직장의 설렘이 모조리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분노만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제 마음을 비단결에서 걸레짝으로 만드는 사람이 하필 유일한 상사였다. 앞날이 벌써 징그럽다.기록은 정확하지만 기억은 편협하다.헤게의 오랜 주관이었다. 수치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아야 할 것은 오로지 여러 사람의 분석과 해석이다.이번에 새로 부임한 병원은, 주위에서도 그런 그이기에 잘 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렘즈. 소위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능력자들을 위한 이능력자 폐기 시설이었다.캐리어를 이끌고 쭉 꺾어 들어간 길은 울퉁불퉁하고 차가 다니기에도
둘의 뒷모습을 보는 동안 테오의 기억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그녀의 퇴근이 늦어졌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왔는데 품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서 왔다. 출혈이 심해 살아날지 죽을지 모르겠다고 답하자 누나가 꼭 살려야한다고 했고, 테오도 그렇게 했다. 참 안됐다 생각했는데 혐의가 있다고해서 놀랐고, 아이가 ‘그’ 사건의 생존자라 더 놀랐었다. 놀랄 일이 참 많기도 했다. 하얀 환자복을 입기에도 턱없이 마른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나는 다음날 제출할 서류를 읽다가 아이 얼굴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저 아이가 숨겨진 조카인가 경박한 생각도 해봤지만, 닮은 구석이 없었다. 갈색 머리에 파란 눈인 그들과 달리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그나마 색이 다르다고 해봐야 제레미였는데 그도 하물며 금발이었다. 출신지가 궁금해지려는 찰나, 누나는 그를 병실에서 내쫓았었다.“테오도르 베버.”이름을 다 부르면 자기랑 비슷하니 싫다고 늘 애칭으로만 부르는 엘리였다. 그날따라 이름을 불렀고,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그녀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엘리는 오늘도그를 테오도르라고 불렀다. 뒷목을 잡아당기는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너 이제 나보다 병원을 잘 아는구나?”그녀는 그곳이 병원을 가장한 이능력자 폐기시설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굳이 마리의 앞에서는 병원이라고 불렀다. 마리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영민한 아이의 총기를 보건대 아무것도 모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도 침묵했다.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이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으리라는 것처럼.마리가 앞서 걸으며 종알거렸다. 매일 율리아랑 숨바꼭질을 하는데 휠체어가 느려서 온종일 숨어있어도 못찾는다고 했다. 율리아가 할머니라는 사실만 그녀가 몰랐다면 듣고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남동생에게 듣기로도 잘 지낸다고 했다. 당분간 못 온다고 해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마리타.”자켓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아이와 시선을 맞추면 천장이 낮은 병원인데도 공간이
1화 잃어버린 사람.첫 기억은 감옥에서 시작했다. 눈을 뜨자 아빠가 손을 잡고 우리 보물,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다시 나를 품에 안으며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두막으로 갔을 때도 펑펑 울고는 그날 일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아빠를 쫓아 일터에 가는 건 앞으로 자제해달라고만 해서,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마리타 마르샬라. 사무소에는 현장사진이 몇 장 붙어있었다. 시신들이나 폭발한 건물의 사진 따위. 그중에서 한 사진은 유난히 이질적이었다. 오래되어 사진의 모서리가 뭉툭하게 닳아버렸지만, 검은 연기 속에 다른 동료의 품에 안긴 창백한 어린 아이의 사진이었다. 마리타 마르샬라. 이제는 마리타 렘으로 불리는 게 더욱 친숙한 아이였다. 수사관은 그 아이의 거취를 주기적으로 신경써야 했다. 상관이 오늘 아침에 또 한 번 다녀오라고 임무를 줬다. 건네받은 파일에 함께 들어있는 쪽지는 모른 척 쓰레기통에 버렸다. 긴장한 상관의 표정으로 대충 사정은 이해했다. 자기야 어떻든 왔다갔다 그 시골짝에 가느라 하루를 통으로 쓰겠구나 싶어서 엘리는 뒷목을 벅벅 긁었다. 사건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였다. 연맹이 자기들 입맛대로 그냥 덮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크게 죽어서, 부모도 없는 아이를 어딘가 보호시설에 보내지도 못하고 사건을 놓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지체했다. 일반시설에 보내면 진실과는 무관하게 살인자의 딸로 꼬리표가 달릴 것이 뻔하고 사건이라도 잘 해결되었으면 싶지만 증거라고는 없는 이 상황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아니다, 증거는 있었다. 만들어졌을 뿐. 그래서 발견한 즉시 엘리가 묻어버렸을 뿐이다. 하늘은 파랗게 떠 있고, 빌어먹을 동생은 또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테오도르 베버, 이를 갈며 차를 몰아 길을 떠났다. 어쨌든 그녀도 오랜만에 아이와 동생이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병원 문을 열고, 안에서 아이를 본다. 차분하게 검은 원피스를 갖춰 입은 소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엘리가 평소처럼 티셔츠를 입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