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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코드제로

Penulis: 도수정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6-13 19:41:21

헤게는 서류라는 말에 이번에도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그놈의 원칙을 벌써 어제 오늘 두 번째로 내세우게 되는 베버로서도 이 순간이 극도로 혐오스러웠지만 다시 입 밖으로 낼 수밖에 없었다.

“코드 0 특별 제한대상 분류. 후천 발현, 포르베 수용소 수감자 및 거주자 내 사망실종자비율 ...99%.”

입술을 꽉 깨물고 무언가를 참는 듯한 헤게의 모습에 테오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능력자 관련 분야에 종사한다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사건이다.

“마저 읊을까요? 아버지인 이아고 마르살라가 딸의 능력을 이용해 범죄자 부루를 탈옥시키고 수용소 내 민간인 및 수감자를 전원 학살한 후 본인도 자살한 사건입니다. 능력의 소유자는 어린 소녀임에도 피해규모, 유전관계에 의한 인격 장애 및 장래 위험초래 가능성 등 능력의 위험도를 고려해 코드 제로를 부여하고 렘즈 내 24시간 보호 및 통제할 것을 결정한다고, 이것도 겨우 구걸하다시피 받아냈죠. 격리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저 네 줄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헤게의 시각에서 해석하자면 이랬다.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났는데 가해자 때문에 엄청난 재능을 역 이용당했고 하필 그 가해자와 혈육이라 유전에 의한 위험성 요인도 포함됐다.

코드의 계산에는 본래 이렇듯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았다. 어린 아이의 미래가 이렇게 절단되는 경우도 없었고, 렘즈에 수용되는 경우도 없다. 코드 제로는 일상생활이 불가하며 특정 시설 이외 출입이 불가하고 당연히 연맹의 주기적인 연구와 관리의 대상이 되어 평생을 지내게 될 것이다.

꿈이나 결혼, 보통의 사람이 이 도시에서 그리는 대부분의 것들은 아이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배제될 것이다. 시작부터 도려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번 사건을 은폐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헤게는 초조하게 책상을 두드렸다. 베버도 그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연맹은 렘즈의 폐기예정자들이 죽기를 바라죠. 특히 제레미와 마리타.”

이미 능력이 지나치게 폭주해 그들 개인이나 연맹의 통제를 벗어났거나 나이가 들어 은퇴를 희망하는 코드 제로들의 집합소 였다. 통제가 어려운 이들이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킬까 모아둔 곳이니 당연히 죽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연맹의 단순한 이해관계에서라면 그랬다.

“봐서 알겠지만 마리타는 조금 달라요. 미래에 통제를 벗어날 걸 예상하고 이미 세뇌에 가깝게 통제를 시작했죠. 만약 저 애가 렘즈에서 벗어나는 날이 있다하더라도 그건 완전히 연맹의 개가 돼서 가능한 걸 겁니다. 그걸 막겠다고 제레미는 매일 온갖 협정과 협약을 맺으러 다니고요.”

아예 어릴 때부터 렘즈라는 구속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헤게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면 운석은요? 방어 시스템이 막지 못한 건가요, 아니면 연맹의 고의인가요.”

“운석이라면 눈이 달려있지는 않으니 다행이죠. 마리타를 시험하고 감시해야하니까요. 능력이 여전히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통제가 필요한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연맹에 저항할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순응하는지. 서류로도 실제로도 우리는 티끌 하나 남길 수 없어요, 저 꼬마 때문에라도. 우리야 까짓 회사 때려치면 되고 솔직히 말해 다른 노인네들도 그냥 삶에 미련 없을 테지, 제레미? 걔가 제일 그럴 걸. 근데 당장 저 꼬마는, 우리 중에 누가 감히 쟤를 망치겠어요.”

헤게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는 발을 뺄 수 없을 것 같이 벅차서 잠시 손을 들었다.

“그럼 능력은요, 앞으로 저게 문제가 될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저 나이에 운석을 부순다는 건 너무.”

다음에 이어질 말을 베버도 알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생각했다.

“과하죠. 그나마 저게 우리 때문에 참고 있는 수준이라는 게 나는 제일 무서워요. 우린 아무것도 몰라요. 어떻게 힘을 쓰게 됐는지,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대가는 뭔지, 저 애가 뭘 느끼고 있는지,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

마리타에 대해서 말할 때 제레미는 종종 그런 말을 했다. 저 애를 보고 있자면 자기가 날고 긴다했고 잘나가면서도 힘들다고 했던 옛 시절도 다 쓸모없게 느껴진다고, 저런 존재가 있을 줄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과거의 자기나 누구라도 한번은 고민해봤어야 했다고. 베버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 누가 생각해봤을까. 아무도 여태껏 연구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그들 모두 도시가 주는 안일함에 젖어 할 수 있는 한 나태하고 무난하게만 누려온 것이다. 모든 것을. 이능력이란 게 등장했을 때부터 신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존재가 등장하리란 걸 알아챘어야 했다. 

헤게는 더 이상 베버에게 무어라 따질 수도 없었다. 살아있어도 통제받을 것이고 죽어서는 연구대상이 될 몸이다. 이미 시작부터 암울했고 이 능력이 마리타에게 좋으리란 법도 없다. 그나마 지금껏 렘즈에서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연구를, 뭐라도 해야죠,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두기에는 너무 가여운데.”

“본인이 원치 않아요.”

헤게의 이름은 던이다. 던은 옛말로 새벽이고 모든 게 시작되는 좋은 시간이라며 어머니가 지어줬다. 헤게는 모든 걸 놔버리는 심정을 몰랐다. 대개 그녀가 아는 것들은 밝고 좀 더 색이 옅고 사랑스러운 것들이었다. 이런 것이 아니다.

“괜찮아진다고, 말하지 마요. 그냥 오늘은 즐거울 거라고 그렇게만 말해줘요. 아마 마리타는 그걸 더 좋아할 거예요.”

즐겁게 자기에 대해 설명하던 아이는 이제 마당에서 낙엽을 줍는 중이었다. 헤게는 마리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괜히 마음이 찔려서 시선을 피했다.

“당신은 이번에 기억을 잃지 않을 최초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항의 마지막에 기억을 지울 수 있다던 네모난 칸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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