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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네."
김정우가 툇마루에 앉아 신발을 고쳐 신는 것을 본 이시안은 덤덤하게 말했다.
"뭐가요?"
"다리를 절어서야, 뛰지 못하잖아?"
"… 누님은 모르겠지만, 이 나이가 되면 뛸 일이 없습니다."
"지금 네 나이가 몇이지?"
"아마 서른둘, 혹은 섯, 넛…?"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을 펴는 모습은 자신이 아는 김정우가 맞는데, 겉모습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김정우의 입장은 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시안은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20살 무렵의 얼굴을 하는 것에 마음이 뒤흔들렸다.
이렇게 마음이 뒤흔들리는 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 처음이었다.
아직 이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기뻤다.
"아직 괜찮지 않아? 상관 놈들이 다 그 나이 정도 아니었나?"
"지금 세상에서는 이 나이도 젊은 축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됐으니."
"그러냐."
"뭐, 그때는 상관이 되거나 고물 취급을 받아야 했지만. 실제로 제 몸도 어디 써먹지도 못하는 고물이 되기도 했고요."
김정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오른발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누님, 저는 정말 수도 없이, 끝없이 묻고 싶었었습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매웠다.
"무엇을."
"누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이유를요."
멍하니 허공을 쳐다본 김정우의 물음에 똑같이 허공을 바라보던 이시안이 픽 웃었다.
"세상에 어느 녀석이 '이시안'을 죽인 건지, 죽을 생각이 있던 것이 아니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무엇이 '이시안'을 죽게 만든 겁니까?"
"유감이네, 대답해 줄 수 없어. 나도 몰라. 기억이 없어."
"죽을 생각이 있었던 것이라면…… 어째서… 약속했습니까? 왜… 대련 해주기로 약속한 겁니까."
살짝 떨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김정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것은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던, 어린 시절부터의 버릇이었다.
"거짓말쟁이."
원망하듯 씁쓸하게 뱉은 한마디에 이시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표정으로 김정우의 등을 툭 쳤다.
"넌, 바보면서 그렇게 오래된 일을 기억하고 있냐."
***
이곳에 온 지 벌써 3일째였다.
'신호 없음'이 반짝이는 휴대폰도 익숙해졌다는 사실에 박시온이 절망하며 단 수박을 먹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도… 박시온 씨. 안 씻어도 됩니까?"
"이미 씻었어요."
아직 미심쩍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김정우의 시선이 불편했다. 그런데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 몇 시간 전부터 자신의 주위를 얼쩡거리는 모습에 결국 박시온이 먼저 김정우를 바라봤다.
"무슨 할 말 있어요?"
"……… 그."
할 말이 있기는 했는지, 냅다 자신의 옆에 앉아, 흉으로 엉망인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누님, 이상증세는 없습니까?"
"이상증세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한다던가, 움직이지 않는다던가… 다른 사람이 아는 체 한다거나."
"뭐… 남의 집 문짝을 뜯을 뻔하기는 했네요."
"건강해서 다행이네요."
"예?"
박시온이 의아한 표정으로 김정우를 보자, 김정우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누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세상이니, 조금 걱정돼서."
"그런데 군대 같은 데는 호칭 엄격한 거 아니에요? 누님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예요?"
궁금했다.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누님, 생각보다 자비가 없는 타입이라… 당시 여러모로 고생했죠. 특히 리더가."
입에서 뱉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입가를 올리며 말하는 것이 언밸런스 했지만, 김정우의 표정은 낯설지 않았다. 한지훈도 가끔 이런 표정을 하며 어울리지 않게 처연하게 웃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추억을 떠올릴 때의 표정이었다.
"협박받았습니다."
"네?"
"글을 배우기도 전에 '병기'가 됐거든요. 그래서 다른 '병기'를 만났을 때 이름을 못 읽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부르라고 협박받았습니다."
"풉!"
저도 모르게 터진 웃음에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김정우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도 된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 이쁨 받았나요? 막내는 이쁨 받는다고 하던데."
이곳에서도 여러모로 챙김을 받고 이쁨받는 것 같아 물은 질문에 김정우의 표정은 상당히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깊은 고뇌에 빠진 김정우의 머리통을 툭 치고 어느새 다가온 이시안은 가는 눈을 하며 말했다.
“이쁨 받았다고 말해.”
“… 이쁨, 받았습니다.”
“이러면 전혀 신빙성이 없잖…… 아, 또 머리 안 말렸어. 일어나요.”
“수박 먹고 말리면 안돼?”
“안 돼요. 말리고 먹어요.”
“아니, 정우야. 원래 애들이 이래?”
“… 글쎄요.”
박시온이 굳건한 표정으로 이시안의 팔을 잡아 이끄는 것에 별 저항 없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김정우가 아무 말없이 제 발끝을 보았다.
무언가 여러 감정이 엉킨 것 같아 속이 뒤틀렸다.
"…… 미안해."숨 막히는 침묵은서윤재의사과로 깨졌다. 그제야서윤재의팔을 잡은이시안의손에 힘이 풀렸고, 한지훈이 애써 웃으며 둘 사이로 쏙 들어가 분위기를 전환해 보고자이시안의어깨를 둘러맸다."둘 다 머리 좀 식혀. 둘이 너무 예민하잖아~ 일 때문인가~?""그래, 그래. 좀 쉬자."이시안은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고, 박도윤이 차마 그 손을 잡을 수 없어 멈칫하자, 한지훈이 대신 가겠다는 듯 손을 허공에서 흔들며이시안을따라갔다. 그리고서윤재도긴장이 풀린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죄송해요.""그건 내가 아니라시안이에게해야지.""……….""도윤아, 너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애에게 스스로 죽겠다고 하는 건… 너무 심하잖아."서윤재의말에 박도윤은 잘못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지금은 조금 진정하게 두고, 너 본부로 보내는 것도 내가 시안이랑 다시 이야기해 볼 게. 그러니까, 너도 진심으로 사과해. 알았지?""… 네."*****누가 저 모습을 보고 병기라고 할까?천막 틈 사이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이시안은시간이 흘러도 어릴 적, 그이시안과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한지훈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머리를 긁적이
박도윤이 움찔했다.불과얼마 전에발견한 시체의 옷에서 나온 쪽지를 보고 샘플을 보냈었다. 그걸윤재이보다이시안이더 빨리 눈치챌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내가 잘못 본거라고 해. 그거 다른 사람이라고 하라고!"박도윤이얼어붙은듯, 대답하지 못했다. 눈이 동그래진 박도윤을 보며이시안의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적진 한가운데서 있는 것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에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널뛰었다."미쳤어? 무슨 생각이야? 그 송 효라고. 뭘 믿고보낸 거야!?""내가 약해서 의지 할 수 없으면… 내가 강해지면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겨우 입을 연 박도윤의 말은이시안이이해할 수 없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항상, 함께 있고 싶다는 소리야."요즘 늘 내던 짜증이나 화가 아닌, 덤덤하게 말하는 모습에이시안이잡은 팔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 지금이시안의온몸을 지배하는 이 감정을 박도윤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나도 뒤가 아닌, 네 옆에서….""말이 되는 소리를 해!""………!""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어!? 애초에 그 송 효가 진짜일 거라는 확신도 없어!""진짜가 아니면 단순히 피를 보낸 거야. 나도 나름대로 생각도 각오도 하고 보낸 거야."이시안이입을 틀어막으며고장 난듯이 멍하니 박도윤을 바라봤다.
송 효.전쟁이 막 시작될 때쯤,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는 전쟁을 이기게 해 주겠다며 실험체를받아 가서는인체공학으로 '병기'를 만들어 낸 개발 책임자.모두그를 송 박사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하지만 송 효는 마지막으로 김정우를 만들어 낸 1년 이후, 돌연 잠적했다. 그의 행방은 여전히 추적 중이지만윤재이도실마리를 잡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본부에서도 소수만 아는 그 이름이 주 학에게서 나오니 의아했다."요즘 부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아. 송 효라는 사람이 제2의 병기를 만들기 위해실험 대상을모집한다고 샘플로 피를 모으고 있다나 봐.""뭐?"이시안이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주 학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닌, 송 효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 믿을 수없다는 것에가까웠다."의도적인가? 이쪽은 그런 소문 없어. 있었다면 위에서 그냥 있었을 리 없어.""역시 그렇게 생각하지?""그 리스트, 알 수 있어?""사실이라면.""최대한 빠르게."주 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려고 하자, 먼저 일어선이시안이주 학에게 손을 뻗었다. 기꺼이 그 손을 잡아 일어섰다.*****"야!!!빡도! 너도 들었지!?이씨완전 무리 중이라고!!! 걱정도 안 돼!? 그냥 네가 먼저 사과하라니까!?""…… 안돼. 지금 내가 먼저
"멋대로 행동하면서?"그 말에 퉁명스러운 표정을 했지만, 반박하지 않는 것에 화는 조금 누그러든 것 같아 한숨을 들이 쉬었다."그보다 뭐야~?시안이는전쟁이 끝나면 뭘 하고 싶길래, 새삼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말해주면 안돼~? 비밀로 할 게!""안돼.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고서는 말했잖아.""아니, 그건 네가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 없었어. 말해주라. 이번엔 진짜로 비밀로 할 게."*****"큰 형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둘이 살벌하게들어간 지한 시간이 넘었어! 저러다 시안이고장 나면어쩔 거야~! 형님이 가서 말려 봐~!!!"정안용이꿈적하지 않는김상팔의 팔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자, 김상팔이 퍽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내가 말리면 시간이 더 길어질 거 같은데.""이거 완전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힘없는 남편 아니야!?"정안용이가슴팍을퍽퍽 치며괜히 얌전히 있던 김상팔에게 소리치고는 맞은 편에 얌전히앉아 있던김정우의 얼굴을 꼬집으며 제 불안감을 표출한다는 명목으로 괴롭혔다."전 혼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위험한 행동이잖습니까.""그래.얼마 전의피로도 회복되지 않을 건데.""이게 전부 공주님 때문이다.하아~ 시안아, 힘없는 나를 용서해!""윽!"정안용이&
받은 쪽지의 글씨체는 분명윤재이의글씨체다.그래서 더욱 의심스러웠다.이시안의미간이 오만상으로 찌푸려지자, 오태성이 웃음을 꾹 참으며 폼을 잡았다."박도윤은 그곳에 있어.""…… 다른 의미로 놀라운데.""뭐?"박도윤과윤재이가친했냐고 물으면,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이시안이손아귀에 있는 쪽지를 강하게 쥐며 구겼다.지금 이 모든 상황이 여간 수상한 게 아니다. 지금이시안의머릿속에서 이 상황의 조각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조각이라면 박도윤의 여자가, 박시온의 엄마가윤재이와관련 있는 여자라는 것이라는 것.그것 하나뿐이다."화, 화 난 건 아니지? 난 사실만 말했을 뿐이야! 가게 엉망으로 만들면 안 된다!?"특히 지금 자신이 걸어온 이 여정이윤재이가만들어 놓은 것이란 찝찝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박도윤 성격에 자신의 아이를 한지훈에게 맡길 이유가 있나?이시안의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그것은 표정으로 드러났다."복잡해 보이네?"오태성이 술을 슬쩍 권하며 묻자,이시안은술잔을 툭 쳐버리고 의자에 앉았다."여러모로."오태성이 구레나룻을 긁적이며이시안을바라봤다. 그리고는이시안이툭 쳐버린 술잔을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뭐… 나도 살쾡
안으로 들어오자, 술집인 듯 여기저기 어지럽게 놓여있는 술병과 특이한 물건들에 박시온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슬쩍 손가락으로 툭 건들이자, 남자가 혀를 차며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고 한 소리 하려고 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이시안의 시선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크흠.""말해. 너 뭐야? 재이의 지인?"아무리 생각해도 유추할 수 있는 건 그쪽뿐이었다."재이? 아아, 그래, 맞아. 그쪽도 재'희'처럼 '병기'인가?"남자는 선반에서 파는 것으로 보이는 술병을 들고 뚜껑을 따더니 입으로 쑤셔 넣었다. 알싸한 냄새가 너저분한 공간을 가득 메웠다."하여간에 귀신같은 놈이네. 내 이름은 오태성. 이 가게의 주인이지."이시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오태성을 바라봤다. 지저분한 머리와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긁적이며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양은 윤재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런 이름 들은 적 없어. 윤재이는? 재이에게 직접 들어야겠어.""그건 곤란하네. 이야기가 통할 줄 알았는데, 너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트림을 '꺽' 하는 모습에 뒤에 있던 박시온도 인상을 찌푸리며 흥미롭게 보던 책을 그대로 두고 슬금슬금 이시안의 뒤로 바짝 붙었다."재희 말로는 의심이 많을 거라더니… 진짜네. 일단 물어는 둘게. 저 애는 박도윤과 무슨 관계?""…… 아들… 인데요…….""진짜냐고."오태성이 입을 막으며 탄성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가게의 과자를 박시온에게 던지자, 과자를 받아 든 박시온은 의아하게 과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