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
"20분 거리라더니, 나를 속였군."
양민아의 유난에 휩쓸려 한바탕 집 청소를 하게 된 이후, 숨을 고르며 툇마루 기둥에 앉아 한쪽 발을 흔들며 음료를 마셨다. 어느새 그친 비는 공기를 가라앉게 해 주위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
"그게 없어."
"그거?"
"불이 나오는 기둥."
"하하하, 가로등 말하는 거야?"
양민아의 말에 이시안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훈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의 부모는 인근 마을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어. 나나 만철 씨는 아이들을 봐주고 있고. 얘, 여기도 나름 살 만하다?"
"그래서."
"아, 넌 좀 별로겠네."
양민아가 쓰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란히 앉은 양민아와 이시안을 바라보며 김만철은 사실 처음부터 한결같이 미소 짓고 있지만 놀랐다. 처음 서윤재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장난을 치나 싶었다. 양민아는 그 소식에 만난 이후 너무 놀라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옆에 따라온 박시온의 자식도 그 자식을 경호해 주고 있는 이시안도 그저 놀라움의 연속일 뿐이다.
게다가 첫 만남부터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고 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어려. 너무 어려."
그 당시, 저렇게 어린아이가 병기로서 전쟁의 선두로 나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죄책감에 몸의 근육이 바짝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 살아주세요. 정말로 그거면 됩니다. 」
김만철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가를 가리며 여전히 대화 중인 둘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 당시 너무 커 보였던 뒷모습은 이제 와서 보니, 너무나도 작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 머리를 쓰다듬듯 허공에서 손을 움직였다.
"아."
양민아가 여전히 조잘거리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역시나 하나도 듣지 않았던 건지 이시안의 얼굴에는 이곳에 온 뒤로 처음으로 기쁨이 드리우며 한곳을 응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왜 그런 것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기에 허공에 있던 손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저기, 그 사람은…?"
"시온아, 지금은 잠시… 두 사람의 재회를 방해하지 말아주겠니?"
김만철이 이시안을 찾는 박시온을 향해 말하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고 있는 키가 큰 남자에게 다가가는 이시안이 보였다. 한눈에 보일 정도로 들떴지만, 조금 느린 발걸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
심장이 지끈거렸다.
함께 여정을 시작하고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노을 때문일까?
그 여자의 눈가가 붉어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함께 싸웠던 동지를 만나는 거니까."
김만철의 말에 박시온의 눈이 동그래졌다.
키가 큰 남자와 가까워지자, 이시안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이윽고 남자의 앞에 도달한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한 남자는 부리부리한 겉모습과 다르게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김정우!"
***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이시안이 잔뜩 불만인 표정으로 김정우를 노려봤다.
김정우는 방구석에 찰싹 붙어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이시안과 동시에 박시온을 노려보고 있었다.
"민아야, 왜 정우에게 말 안 했어?"
"그야… 그래야지 더 벅차지 않을까… 하고."
"정말로… 누님입니까?"
"그래."
김정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떻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묻고 싶은 것을 쉽게 물어볼 수 없었다.
물어도 이시안이 대답해 줄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
"그건 말이지… 유령이기 때문이야."
"네…?!"
"이 세상에 미련이 뚝뚝 남아서 귀신으로 부활했다더라. 참고로 여기 박도윤도 같이 회춘해 버렸다고!"
"………!!!"
양민아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는 건지, 동공이 커진 채로 이시안과 박시온은 번갈아 보며 잔뜩 경계하자 어린아이가 눈치 있게 준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를 꽉 쥐고는 여차하며 십자가로 죽일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봐요…."
박시온이 이를 꽉 물며 이시안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틀렸다.
이시안의 눈은 저 꼴이 재밌는지 웃음을 참는 듯해 보였다.
"민아야!"
"꺄하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정말이지 정우는 질리지 않는다니까~"
"농담…?"
그제야 살벌하게 경계하던 김정우는 몸에 한결 힘을 풀고는 이시안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뱉기 전에 아이들이 김정우에 몰려왔다.
"있지~ 정우 오빠~ 전에 줬던 새총 부러졌어~ 고쳐줘!"
"……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시안아, 너도 같이 갔다 와. 정우 여전히 허술하거든."
양민아의 말에 귀찮은 표정으로 절뚝거리며 앞서 걷는 김정우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박시온도 슬쩍 따라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양민아가 박시온의 뒷덜미를 잡아 멈춰 세웠다.
"안돼."
양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정우 어때?"
"네?"
"보통 정우가 그 시절 미쳐 날뛰던 '병기'라고 소개하면 어째서인지 모두 실망하더라고."
"……… 바보 같아서……… 아."
박시온의 솔직한 대답에 양민아가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리며 허공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김만철이 고개를 잘게 흔들며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다 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아이들도… '병기' 이전에 사람이야."
"………!"
"그래. 주위 어디에나 있는… 그저 어린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무슨 감정일까?
괜히 박시온의 심장에 박히는 말이었다.
자신이 이시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린 걸까?
수치심에 열이 화르르 올라 입을 꾹 닫고 일어서 박시온이 자리를 피해버리자, 김만철은 퍽 곤란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지만, 차마 닮은 뒷모습의 박시온을 멈출 자신이 없었다.
김만철이 턱을 문지르며 곤란한 표정을 했다."그렇다고 한들… 우리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아마 여기서 더 머물렀다가는 극성쟁이 한지훈이 이곳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시온도 처음이야 신기했지, 이곳의 생활이 썩 편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정보 없이 나갔다가는 이곳에 올 때처럼 어디서 조난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는다.전쟁이 없는 세상이라고 한들, 위험이 없어졌다는 건 아니니까."살쾡이 부대는 가장 먼저 소식이 끊기기도 했고… 호랑이 부대나 독사 부대와도 그리 친한 편이 아니니까….""시안아, 너는 뭐 떠오르는 게 없어?"양민아의 물음에 박시온이 미덥지 못한 표정을 하며 이시안을 바라봤다."없어. 안호가 국밥집 하고 싶다고 하기는 했는데."이시안이 기억을 짜내고 짜내 생각해 낸 것은 겨우 '국밥'이었다. 김만철은 초조했다. 도움만 받던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때도 지금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의 무능력함은 여전히 변함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 같아 폐를 틀어막는 것만 같았다."아.""응?""그리고 보니 10년 전에….""정우야?"김정우가 다리가 불편한 것도 잊고, 벌떡 일어서다 비틀거리는 것을 이시안이 자연스럽게 뒷덜미를 잡아 고정했다. 그리고 그런 이시안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고 한참 동안 입을 움찔거리더니, 집으로 가야 한다며 절뚝거리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정우야!? 갑자기 왜 그래!!!""그, 그게 아니라…! 일단 집으로!"
"아쉽네."김정우가 툇마루에 앉아 신발을 고쳐 신는 것을 본 이시안은 덤덤하게 말했다."뭐가요?""다리를 절어서야, 뛰지 못하잖아?""… 누님은 모르겠지만, 이 나이가 되면 뛸 일이 없습니다.""지금 네 나이가 몇이지?""아마 서른둘, 혹은 섯, 넛…?"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을 펴는 모습은 자신이 아는 김정우가 맞는데, 겉모습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김정우의 입장은 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시안은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20살 무렵의 얼굴을 하는 것에 마음이 뒤흔들렸다.이렇게 마음이 뒤흔들리는 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 처음이었다.아직 이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기뻤다."아직 괜찮지 않아? 상관 놈들이 다 그 나이 정도 아니었나?""지금 세상에서는 이 나이도 젊은 축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됐으니.""그러냐.""뭐, 그때는 상관이 되거나 고물 취급을 받아야 했지만. 실제로 제 몸도 어디 써먹지도 못하는 고물이 되기도 했고요."김정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오른발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누님, 저는 정말 수도 없이, 끝없이 묻고 싶었었습니다."귀뚜라미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매웠다."무엇을.""누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이유를요."멍하니 허공을 쳐다본 김정우의 물음에 똑같이 허공을 바라보던 이시안이 픽 웃었다."세상에 어느 녀석이 '이시안'을 죽인 건지, 죽
"20분 거리라더니, 나를 속였군."양민아의 유난에 휩쓸려 한바탕 집 청소를 하게 된 이후, 숨을 고르며 툇마루 기둥에 앉아 한쪽 발을 흔들며 음료를 마셨다. 어느새 그친 비는 공기를 가라앉게 해 주위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그게 없어.""그거?""불이 나오는 기둥.""하하하, 가로등 말하는 거야?"양민아의 말에 이시안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한지훈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아이들의 부모는 인근 마을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어. 나나 만철 씨는 아이들을 봐주고 있고. 얘, 여기도 나름 살 만하다?""그래서.""아, 넌 좀 별로겠네."양민아가 쓰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나란히 앉은 양민아와 이시안을 바라보며 김만철은 사실 처음부터 한결같이 미소 짓고 있지만 놀랐다. 처음 서윤재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장난을 치나 싶었다. 양민아는 그 소식에 만난 이후 너무 놀라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옆에 따라온 박시온의 자식도 그 자식을 경호해 주고 있는 이시안도 그저 놀라움의 연속일 뿐이다.게다가 첫 만남부터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고 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어려. 너무 어려."그 당시, 저렇게 어린아이가 병기로서 전쟁의 선두로 나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죄책감에 몸의 근육이 바짝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살아주세요. 정말로 그거면 됩니다. 」김만철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가를 가리며 여전히
"정말 소란스럽게 오네~""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즐거워 보이는데요."앞치마를 둘러매고서 한 소리 하는 양민아의 말에 저도 모르게 말대꾸를 한 박시온이 아차 싶어 입을 틀어박고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잡은 이시안의 뒤로 몸을 숨겼다. 물론 그 몸이 다 숨겨질 리가 없지만, 언젠가 본 듯한 장면에 양민아가 손사래를 치며 천박하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동시에 양손 가득 내온 찐 감자를 보며 이시안은 속이 뒤틀리는지 인상을 찌푸렸다."으."먹지도 않았는데 체한 것처럼 가슴팍을두어 번치며 손끝으로 연기가 모락모락피어오른찐 감자를손끝으로 툭 밀치는 모습에 여전한 반응을 보며 깔깔거리며 몸을 비틀어 웃는 양민아를 살짝 발로 밀치고 나타난 김만철이 눈가에 생긴 잔주름만큼 인자하게 웃으며 시원한 탄산음료를 건넸다."여기는고기 같은거 없어?""물론 있지."양민아의 대답에 더욱 구겨진 표정으로이시안은찐 감자를쳐다봤다."그런데 왜 이런 걸 들고 나와?""아이들 간식으로 인기 많아. 시온이도 먹을래?""……….""뻔해~ 지훈이, 그 성격에 금이야 옥이야 키웠지?"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가시가 있는 말이다.낡은 탁상에 어울리지 않는 맞지도 않는 큰 옷을 입고 있는이시안과짧은 옷을 입고 있는 박시온을마주 보고있는 김만철과 양민아.한없이 인자하고 장난스럽게 웃고 있지만,
“으… 구려!!!”주소를 보고 도착한 곳은 자신이 살던,서윤재가있던 도심과는 달리 촌이었다.박시온이 들고 있던 휴대폰화면이 ‘신호 없음’으로 깜빡였다. 팔을 뻗어 이리저리 공중에서 흔들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결국 똘망똘망한 눈은 짜증으로 가득 뒤덮어졌다.“짜증 나!”이 상태라면홀딱 젖은 채로 산속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상태로 산행은 위험해 겨우 비만 막아주는 쉼터에 나란히 앉아 떨어지는 비를 멍하니 쳐다보는 꼴이 됐다."나온 거 후회해?""… 절대 안 해."그럼에도 제 선택에 후회는 없는 것인지 제 눈앞의 빗물로 만들어진 흙탕물을 괜히 손가락으로 휘저으며 불편함을 보였다.“저기, 당신은 무슨 일을 했어요?”“일?”“삼촌은기밀 서류를운송하고 지키는 임무를 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본부의 자산인 지금의 집에 미련이 가득해 버릴 수 없어서 지킨다고. 그런데 삼촌이 소중하게 지킨 집에서 당신이 나왔잖아요. 그럼 삼촌은 여태 당신을 지킨 거야?”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지만이시안은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아이에게 말하기 곤란해서 혹은 어려워서가 아니었다.자신도 그 답을 몰랐다.“으음.”“당신, 바보죠?”“꼬맹이가 건방지네. 진짜.”“솔직히 기대했는데.”“뭘.”“병기라고 하길래, 좀 다를 줄 알았는데.”사실이다.서재에서 서류를 훔쳐 읽고, 또 전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개운하게 나온 박시온이 대충 어깨에 수건을 얹고 앉은 이시안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윽~ 머리는 제대로 말려야 해요.”뚱한 목소리로 목덜미에 수건을 끼고 와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제 머리를 보고 하는 말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신경 쓰인다고요.”그리고는 마음대로 다가와 제 목덜미에 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그것은 우습게도 너무나도 익숙했다.“야.”“왜요.”“넌 정말 틀림없는 박도윤의 아들일 거야.”그 말에 박시온은 답지 않게 만난 이후, 처음 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삼촌도 종종 그렇게 말했어요.”“그게, 기뻐?”“부모를 닮았다는 말을 싫어하는 자식도 있어요?”그 말을 곱씹던 이시안이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있을 걸.”“아빠를 만나보고 싶어요.”“엄마는?”“물론. 하지만 짐작 가는 것이 없으니까… 아빠를 만나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요.”“그건 그렇네. 만나서 뭐하게? 왜 한지훈에게 맡겼냐고 한방 먹이게?”장난스러운 물음에 한참을 말없이 머리를 조물조물 말리다 입을 열었다.“나를 낳은 이유를 듣고 싶어서요. 그건 얼굴도 모르는 엄마도 그간 한 번도 만나러 오지 않았지만 사랑하니까 나를 낳지 않았을까 해서요.”“무슨 뜻이야?”“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일지도 몰라요. 자식도 어찌 보면 사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