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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작가: ALL장르
last update 게시일: 2026-09-19 23:05:06

31.

온실 안에서 자신을 가두듯 끌어안던 바실리안의 눈빛은 가문이 멸문하던 날 자신에게 서슴없이 칼을 들이밀던 기사단장의 서늘함과 끔찍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제드 카일란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까지 이성을 잃었던 걸까?’

약혼자가 될 뻔했던 사내라는 말에 발끈했던 걸까 생각하다가도, 이내 아그네샤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 같은 죄인에게 고작 질투 따위를 느낄 리가 없었다.

“왜 자꾸… 사람 마음을 흔드는 건데.”

원래 소설 속의 오만하고 위엄 넘치던 진짜 귀족 영애 아그네샤였다면 이런 태도에도 멀쩡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현실에서 평범하게 살다 빙의한 자신은 달랐다.

냉혹하기 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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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40.

    40.아그네샤는 어이없는 제 처지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얇은 가운의 깃을 죔죔 단단히 여몄다.“…성녀님을 침실로 모시거라.”“예, 영애님.”잠시 후, 깃털처럼 새하얗고 신성한 성녀 의상을 차려입은 여자가 메리의 안내를 받아 침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다시 마주해 보아도 여자의 얼굴은 원작 속 세라피나의 얼굴도 진짜 성녀가 돼야 했을 영애의 얼굴도 아니었다.“성녀님을 뵙습니다.”부드럽게 손을 내미는 여인의 모습에 아그네샤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손등에 이마를 대며 예법대로 경애를 표했다.“반갑습니다, 발로아 공녀. 아니, 가문이 몰락했으니 이제 아그네샤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셰라드 공작저 식솔들은 여전히 영애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아그네샤라고 불러주십시오. 식솔들은 그저 손님이니 정중히 대해주는 것뿐입니다.”“그렇군요. 일단, 앉을까요?”아그네샤와 여자는 소파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메리가 차를 내려놓고 밖으로 물러나 문이 잠기자마자, 성녀의 온화하던 눈빛이 180도 뒤집히며 기괴하게 일그러졌다.“…그나저나 진작에 죽었어야 할 당신이 왜 아직도 여기 살아 있는 걸까? 아니, 아직 6일 남았나?”비꼬듯 던진 한마디에 아그네샤의 얼굴이 순간 핏기를 잃고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성녀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39.

    39.고통 속에서 밀려드는 쾌락에 수치심과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 와중에도 그의 거친 몸짓에 쾌감을 느끼며 몸을 떨고 있는 저 스스로가 너무나 원망스러워 아그네샤는 소리 없이 오열했다.“흑, 윽… 제발, 리안… 아아앙-!”“샤샤… 샤샤……!”울먹이는 아그네샤의 몸을 으깨버릴 듯 껴안은 바실리안은 자비 없이 안쪽 깊은 자궁구까지 파고들었다. 통증과 쾌락이 잔혹하게 뒤얽힌 몰아침 속에서 아그네샤는 덜덜 떨며 연속해서 세 번, 네 번이나 지독한 절정에 도달했다.질벽이 경련할 때마다 왈칵 뿜어져 나온 애액이 바실리안의 성기를 질척하게 적셨다. 결국 연속된 쾌락의 폭풍을 견디지 못한 아그네샤는 쾌감의 여운 속에서 기절하듯 의식을 놓아버렸다.그러나 바실리안의 폭주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의식을 잃고 흐물거리는 아그네샤의 가녀린 몸을 붙잡고 두 번이나 내벽 깊숙한 곳에 짙고 뜨거운 정액을 가득 쏟아붓고 나서야 겨우 허리 짓을 멈추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내부에 차오른 정제 마력이 몸의 요동을 완벽히 가라앉히자, 바실리안의 붉은 눈동자에 천천히 이성이 돌아왔다.허공을 맴돌던 시선이 제 아래 깔린 아그네샤에게 닿은 순간, 바실리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흐트러진 침대 위, 얇은 슬립은 갈기갈기 찢겨 있고 눈가는 붉게 짓물러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입술은 피가 배어 있었고 제 무자비한 흔적들로 범벅이 된 채 기절하듯 잠들어 있는 여인의 자태.“…하아, 젠장. 내가 무슨 짓을.”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38.

    38.그날 이후, 아그네샤는 침실에 완전히 감금되었다. 문 앞에는 기사 둘이 24시간 동안 조를 짜서 철통같이 지키고 섰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바실리안은 그녀에게 제대로 된 드레스조차 주지 않았다.몸을 겨우 가리는 얇은 슬립과 겉에 걸치는 가운이 집안에서 입을 수 있는 옷 전부였다. 밤이면 침실 안으로 커다란 간이 욕조가 들어와 시녀들의 수발 속에 목욕을 마쳤고 삼시 세끼와 달콤한 디저트가 때맞춰 들어왔지만, 사실상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하루, 이틀…… 무심한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다. 바실리안과 약속했던 한 달의 기한 중 이제 단 일주일만이 남아 있었다.원래대로라면 원작의 아그네샤가 바실리안의 차가운 검에 목이 달아나 죽음을 맞이하는 그 운명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불안감에 피가 말라갔지만, 갇혀 있는 아그네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게다가 매일 밤 찾아와 자신을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던 바실리안의 발걸음도 그날 이후 뚝 끊겨버렸다. 대신전에 다녀온 그가 세라피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여주의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물어볼 길조차 없었다. 어쩌면 여주의 폭주 정제로 자신의 존재가 더는 필요 없는 건 아닐까.‘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죽지 않기 위해, 그 핏빛 밤 바실리안의 정제제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 시작이었을까. 여주가 나타나면 흔적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려 했건만, 정작 현실은 이 화려한 감옥 속에 갇혀 사지가 묶인 꼴이었다. 아그네샤는 커다란 창가에 기대어 맑게 개어 있는 정원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바로 그때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37.

    37.아그네샤는 서둘러 움직이기 편한 간편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메리를 방 밖으로 물렸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침대 아래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짐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바실리안이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아그네샤는 짐가방을 소파 뒤쪽의 그늘진 곳에 숨겨놓고는 방 밖 복도를 서성이고 있을 메리를 문을 열고 불렀다.“메리.”“예, 영애님. 무슨 필요하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내가 지금 속이 조금 거북해서 그러는데… 주방에 가서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꿀을 조금 타서 가져다줄 수 있겠어? 지금 당장 마시고 싶은데.”“예, 영애님. 바로 주방에 들러 준비해 오겠습니다.”평소 아그네샤가 깐깐하게 구는 상전이 아니었기에, 메리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메리의 발소리가 완벽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아그네샤는 침실로 돌아와 소파 뒤의 짐가방을 거머쥐었다. 창문 밖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방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가슴을 졸이며 저택 정원으로 향했다.그녀가 노리는 곳은 지난 보름간 정원을 산책하며 눈여겨보았던 외곽 담장의 작은 개구멍이었다. 덩굴 숲에 가려져 있어 기사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유일한 사각지대였다.‘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돼……!’짐가방을 꽉 쥔 채 숨을 죽이고 덩굴 구석으로 발걸음을 바쁘게 옮기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스락.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36.

    36.다음 날, 아그네샤는 바실리안이 건넨 짙은 색 로브를 깊게 뒤집어쓴 채 그를 따라 수도의 가장 번화한 상점가 거리로 나섰다. 대로변 주변은 성녀의 행진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높은 상점 건물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서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화려한 신전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화사한 꽃으로 장식된 오픈 마차가 천천히 다가왔다.그리고 마차 위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아그네샤는 숨을 헉 내쉬며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분명 아그네샤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세라피나 샤이로’의 외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익히 읽었던 소설 속 원작 여주인공의 묘사와 닮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지금 마차에서 우아하게 손을 흔드는 여자는 과거 사교계 연회장에서 약자인 다른 영애를 대놓고 욕보이다가, 참다못한 아그네샤에게 충고를 듣고 망신당했던 전혀 다른 가문의 영애였다.‘말도 안 돼… 저 사람은 세라피나가 아니야. 그렇다고 소설 속 성녀도 아닌데. 그럼, 대체 누구지? 성녀가 왜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거야?’원작 속 여주인공도 아닌, 진짜 성녀도 아닌 영애가 제 본래 얼굴을 그대로 한 채 '세라피나 샤이로'라는 이름과 '성녀'라는 신분을 덮어쓰고 있었다.정체 모를 기괴함과 세계 전체가 미쳐 돌아가는 듯한 충격에 아그네샤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길로 옆에 서 있던 바실리안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저, 저기…

  • 악녀는 죽음 대신 남주의 침대로 들어갔다   35.

    35.온실에서의 일 이후, 바실리안은 일주일 내내 지나칠 정도로 다정했다. 그러나 그 온기 뒤에 마구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오직 아그네샤뿐이었다.틈만 나면 자신을 탐하고 안아오는 바실리안의 행동에 이제는 그녀 스스로가 그를 애타게 갈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실리안이 서류에 치여 뒤늦게 돌아오는 밤이면 아그네샤는 침대에 홀로 누워 그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제 모습을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와 피부가 맞닿는 순간 화끈거리는 체온과 달아오르는 몸. 이것이 마력 폭주를 가라앉히는 ‘정제’ 때문인지, 그가 안겨주는 단순한 몸의 쾌락 때문인지, 아니면 나른하게 웃어주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마음을 빼앗겨서인지조차 이제는 헷갈렸다.어느덧 아셰라드 공작저에 갇혀 지낸 지도 보름이 넘어가고 있었다. 원작의 흐름대로라면 일주일 후 여주인공이 수도에 도착할 테고, 날짜를 계산해 보면 정확히 보름 뒤가 아그네샤가 바실리안의 손에 차갑게 처형당하는 날이었다.어쩌면 제 목을 죄어오는 그 예정된 죽음의 날짜 때문에 그가 아무리 다정하게 굴어도 어떻게든 이 저택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원작 여주인공을 피하고자 지난 3년 동안이나 죽은 듯 숨어 다녔건만, 결국 원작보다 한 달이나 먼저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괜히 속에서 짜증과 억울함이 치밀었다. 만약 그 핏빛 밤, 자신에게 여주인공과 같은 마력 정제 능력이 있음을 생각해 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바실리안의 검에 목이 달아났을 터였다.‘이게 인과율 같은 건가…? 보름 전에 죽었어야 할 목숨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원작에서 아그네샤가 죽기로 되어 있던 그날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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