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세이런은 눈을 한 번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그러지 않으면 눈가에 차오른 뜨거운 것이 정말 흘러내릴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의 차례였다.
세이런은 아티니스의 두 손을 잡은 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나, 세이런 포르투릭스는 아티니스 포르투릭스를 나의 아내로 맞이하여….”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이번 생이 다하는 날까지 아티니스를 사랑하고, 웃는
눈부신 햇살이 바다 위로 쏟아져 수면을 수천 개의 보석처럼 반짝이게 만들고 있었다. 물결이 한 번 일렁일 때마다 부서진 빛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그 빛이 고스란히 아티니스에게로 번져 왔다.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주홍빛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금빛 햇살이 스며들었다.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까지 빛을 머금은 듯 반짝였고, 새하얀 피부 위로는 물결에 반사된 햇빛이 아른아른 흔들렸다.그 한가운데에서 아티니스가 웃고 있었다.눈꼬리를 부드럽게 휘고, 세이런을 바라보며.마치 바다 위에 쏟아진 모든 햇빛이 그녀 하나를 비추기 위해 반짝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정말 눈이 부셨다.세이런은 순간 정말로 눈앞의 풍경이 현실인지 의심할 만큼 넋을 잃었다.행복해서 웃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좋아서.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세이런의 가슴이 이상하리만큼 크게 뛰었다.수없이 보아온 얼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티니스는 눈을 뜨자마자 도시로 나가자고 세이런을 재촉했다.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이나 하자는 세이런의 계획은 아티니스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장을 발견한 순간 깨끗하게 사라졌다.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커다란 장이 들어서 있었다.색색의 천막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아래로 처음 보는 물건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향신료의 알싸한 냄새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 과일의 달콤한 냄새가 뒤섞였다. 조금 더 항구 쪽으로 가까워지면 갓 잡은 생선을 손질하는 소리와 바닷내음까지 더해졌다.“세이런, 빨리 와 봐요!”아티니스는 시장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세이런의 손을 잡아끌었다.“이것 봐요. 이런 모양은 처음 봐요!”조개껍데기로 만든 작은 장식품이었다. 한참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던 아티니스는 불과 몇 걸음 뒤에서 풍겨 온 냄새에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잠깐만요. 저기서 빵 냄새
두 사람만의 두 번째 결혼식이 끝난 뒤, 아티니스와 세이런은 포르투릭스 대공저로 돌아왔다.그러나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두 사람에게는 아직 하지 못한 것이 하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첫 번째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미처 떠나지 못했던 신혼여행이었다.세이런이 신혼여행지로 고른 곳은 제국 동쪽에 자리한 포르투릭스 대공가의 오래된 별장이었다. 원래는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곳은 한때 황제를 피해 잠시 몸을 숨길 장소로 생각해 두었던 곳이었으니까.하지만 그 장소의 이야기를 들은 아티니스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고, 결국 두 사람의 신혼여행지는 이곳으로 정해졌다.그곳은 바다와 산을 모두 품은 작은 항구 도시였다.저 멀리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도시의 뒤편으로는 완만한 산맥과 울창한 숲이 이어졌다. 항구에서 올라오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하고 맑은 공기가 섞여,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했다.덜컹거리던 마차가 별장 앞에 멈추었
세이런은 눈을 한 번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그러지 않으면 눈가에 차오른 뜨거운 것이 정말 흘러내릴 것 같았다.이번에는 그의 차례였다.세이런은 아티니스의 두 손을 잡은 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나, 세이런 포르투릭스는 아티니스 포르투릭스를 나의 아내로 맞이하여….”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이번 생이 다하는 날까지 아티니스를 사랑하고, 웃는 날에는 함께 웃고, 힘든 날에는 곁을 지키며, 어디로 가든 함께 걷겠습니다.”아티니스의 눈동자에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그리고 아티니스가 돌아오고 싶은 곳이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라도 그 자리에서 기다리겠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세이런이 희미하게 웃었다.“하지만 다음 생에서도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꽃밭의 한가운데였다.수많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그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과 다를 것 없는 자리였다. 어느 꽃이 특별히 더 많이 피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세이런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아티니스를 품에 안고 이곳으로 돌아왔던 날을. 차갑게 식었던 그녀를 조심스럽게 이곳에 눕히고, 그 옆에 자신도 몸을 누였던 순간을.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때의 세이런은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더는 살아갈 이유도, 다음 날을 맞이해야 할 이유도 남아 있지 않다고. 그래서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이곳에서 함께 끝나기를 바랐다.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기적처럼 다시 아티니스의 목소리를 들었다.나, 당신 곁으로 돌아왔어요.그 지점으로 세이런은 말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아티니스의 주홍빛 머리카락 위에서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그 모습을 눈에 하나하나 담아두려는 사람처럼 한참 바라보던 세이런이 태연하게 말했다.“오늘의 아티는 오늘밖에 못 보잖아.”아티니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는 모습이 어딘가 묘하게 익숙했다.아티니스의 웃음이 그대로 멈췄다.농담처럼 시작한 대화였는데, 마지막에 돌아온 말은 생각보다 훨씬 간지러웠다.무엇보다 저런 말을 해 놓고도 세이런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대답이 없느냐는 듯 눈썹을 살짝 들어올릴 뿐이었다.아티니스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그의 시선을 피해 앞을 바라보았다.‘……아빠한테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온 거야?’며칠 동안 서재에 불려가 혼이 난 줄만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죠?”아티니스의 목소리에는 불편함과 억눌린 분노가 섞여 있었다.세이런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차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그 이유를 알아. 그리고 도와줄 수 있어.”“그 말도... 병약하다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죠?”아티니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전 오늘 거절하러 온 거예요. 그리고 비밀을 지켜준다고 한 말… 끝까지 지켜주세요. 전 그걸 확인하러 온 거예요.”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등을 돌렸다.이곳에 더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껴졌다.알아
생각지도 못한 큰 키에 아티니스는 고개를 살짝 들어야만 했다. 그의 가슴팍 너머로 올라간 시선 끝에서 마주한 것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는 짙은 자주빛 눈동자였다.‘여전히 잘생겼네… 잘생… 기면 안 되는데. 거절해야돼!’그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아티니스는 순간 목적을 까먹을 뻔했다.당황한 그녀는 뒷걸음치며 거리를 두었다.“청, 청혼서가 마음에 들긴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말을 하려다 목소리가 꼬이고, 톤도 이상해졌다.“대공자의 청혼서를 협박이라니. 너무한걸.”당황한 그녀와 달리,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로 되물
청혼서라는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면식 없는 대공가에서 결혼을 제안하다니. 게다가 시골 영지에 틀어박혀 살아온 자신을 어떻게 알고 보낸 건지 아티니스는 의아했다. “설마… 예전에 황실 파티에서 우리 아티를 본 건 아닐까요?”백작부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시골 영지 영애인 제게 누가 관심을 보였겠어요… 저도 관심 없었고요.”“무슨 소리야. 우리 아티의 아름다움은 태어날 때부터였단다. 세상을 밝혀주는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주홍색 머리카락에, 릴리스를 쏙 빼닮은 아메랄드를 담고 있는 두 눈동자. 그 무도회에
둘은 물에 흠뻑 젖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아티니스는 다시 넘어지지 않게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그 소년을 내려다보았고, 소년은 팔꿈치로 몸을 일으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ㅁ… 뭘 봐.”정적을 깨는 차가운 말투였다. 그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깜빡였다. 잠시나마 그에게서 느꼈던 환상이 살짝 깨지는 듯했지만 그의 얼굴은 쉽게 그 환상을 깨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 또한 그랬다. “옷 다 젖어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