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능한 한 빠르게 옷을 낚아채 정적 속에서 헐떡이며 옷을 입었다. 손가락이 단추를 잠그느라 덜덜 떨렸고, 10초 안에 찾을 수 없는 물건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매기는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문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제드가 몸을 뒤척였다.
우리 둘 다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팔이 침대 실크 위에—내가 있던 그 빈 공간 위에—길게 뻗어졌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그의 숨소리가 다시 고르게 돌아왔다.
매기가 내 손목을 잡았고, 우리는 바로 움직였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마자 서늘한 아침 공기가 내 얼굴을 때렸다. 택시 문이 우리 뒤로 닫히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택시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나는 매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어떻게 거기까지 간 거야?"
그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재는 듯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장님이 술을 멈추지 않으셨어요. 여신은 아실 거예요, 제가 얼마나 말리려고 애썼는지. 하지만 그 남자가 사장님 시야에 들어왔을 땐 이미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셨죠."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장내 건너편에서 그를 발견하더니 마치 무언가에 끌려가듯… 그냥 걸어가셨어요. 제가 두 번이나 막아서려고 했는데, 마치 제가 거기 없는 사람인 것처럼 두 번 다 그냥 스쳐 지나가시더라고요."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그 사람한테 먼저 다가갔다고?"
"'다가갔다'는 말은 아주 양반이죠." 그녀가 입술을 바짝 마른 듯 다물었다. "사장님은 그 방에서 가장 강력한 알파한테 똑바로 걸어가더니, 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이건 진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읊는 건데—'그렇게 무섭게 생긴 주제에 눈빛은 더럽게 섹시하네'라고 하셨어요."
나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그 사람, 웃었어요." 매기가 말을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참는 기색이 목소리에 섞여 있었다. "진짜로 피식 웃었다고요. 그러더니 그대로… 사장님을 곁에 끼고 놔주지 않았어요. 그쪽 측근들이 두 번이나 제지하려고 했는데 그 남자가 두 번 다 손짓으로 물러나게 했고요.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저도 조각조각밖에 몰라요. 제가 쫓아가기도 전에 사장님이 그 사람 차에 탑승해 버렸거든요."
나는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의 측근들을 직접 물리쳤다. 일의 경중을 따져 나를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쫓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나를 곁에 두는 쪽을 선택했다. 제드 같은 알파가 그런 행동을 우연히 할 리가 없었다.
대체 왜?
그 질문이 가슴 깊은 곳에 닻을 내리듯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 후로는 엔진의 낮은 웅웅거림을 제외하고는 차 안이 조용했다. 매기는 아무 말 없이 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했고, 우리는 함께 집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나에게 20분 동안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일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텅 빈 집이 단 몇 초 만에 그 환상을 박살 냈다.
그 순간, 잔상들이 쇄도하듯 들이닥쳤다.
어둠 속에서 숨 가쁘고 뻔뻔하게 터져 나오던 내 자신의 목소리. "제발, 제드, 제발—" 나를 마치 온전히 귀중하면서도 죄악스러운 무언가로 바라보던 그 거친 폭풍우 빛깔의 푸른 눈동자.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스쳐 지가는 동안 내 다리를 바짝 벌려 펼쳐내던 그의 손길. 내 귓가를 긁어내리던 낮은 르릉거림. "그래, 꼬마 폭풍. 내 위에서 싸 버려."
나는 닫힌 현관문에 등을 바짝 댄 채 그 안의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왜 그걸 허락했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문에서 몸을 떼어냈다.
내가 일궈낸 모든 것들을 둘러보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은빛 드레스를 입은 레이라뿐이었다. 건배사에서 흘러나오던 캐릭의 이름. 내가 우리의 관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동안, 내 등 뒤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구축해 온 그 방식. 나는 내 인맥을 동원해 그에게 첫 번째 대형 투자자들을 연결해 주었었다.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을 때에도 나는 그자의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그를 믿어주었다. 매번 차갑고 적막했던 침대에서의 밤이 지나면 나는 레이라에게 전화를 걸어 조용히 흐느꼈고, 그녀는 나를 위로해 주었었다.
둘 다.
동시에.
대체 얼마 동안이나?
슬픔은 눈물과 함께 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슬픔은 빛이 내쫓아주길 기다리는 짙은 그림자처럼 찾아왔다. 내가 쌓아 올렸다고 믿었던 모든 것, 내 결혼, 내 가장 가까운 우정이 뿌리부터 썩어 있었다. 나는 사다리였고, 그들은 함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나를 발로 차 버린 것이다.
내 턱관절이 딱딱하게 조여들었다. 슬픔은 이내 더 차가운 무언가로 굳어졌다.
"내 차 열쇠 가져와. 캐릭을 만나러 갈 거야." 내가 명령했다.
매기가 나를 한참 동안 유심히 살폈다. "진심이세요?"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어."
나는 운전하는 것을 증오했다. 통제권을 잃는 느낌, 그 무방비한 상태가 싫었다.하지만 오늘은 내가 직접 선택한 무언가를 느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핸들을 움켜쥔 채, 마치 마왕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차를 몰았다. 매기는 조수석에 앉아 웬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사무실을 거침없이 통과해 지나가자 캐릭의 비서가 놀라 자리에서 튀어 일어났다. "문베인 부인, 잠시만요! 지금 중요한 회의를 시작하시려는 참입니다. 들어가시면—"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집무실 문을 거칠게 밀어젖혔다.
캐릭이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그것을 짜증으로 포장해 덮어버렸다. "디라일라. 지금 한가하게 이야기할 때 아니야."
나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기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문 곁에 자리를 잡고 섰다.
"너 레이라랑 약혼했더라." 내가 말했다.
그가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매기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 손바닥 위에 핸드폰을 쥐여주었다. 나는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그의 책상 위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뒤로 물러섰다.
비디오 소리가 우리 사이의 적막을 채웠다. 박수 소리와 건배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레이라와 캐릭을 위하여!"
그는 얼굴 근육 하나 찌푸리지 않고 동영상을 바라보았다. 영상이 끝나고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눈은 완전히 평평하고 한때 사랑 비슷하기라도 했던 모든 감정이 완전히 바닥나 있었다.
"우리 결혼은 이미 수년 전에 끝났어, 디라일라." 그의 목소리는 지루하다는 듯 덤덤했다.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아이도 없고. 후계자도 없어. 대체 뭘 기대했던 건데?"
단어 하나하나가 내 가슴속 무언가를 비틀어 팠다.
그러더니 그는 책상 서류함에 손을 넣어 서류 한 뭉치를 꺼내 제 앞에 놓았다. 그는 일어서지도 않은 채,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채 그것을 책상 너머 내 쪽으로 슬쩍 밀어 던졌다.
"지난달에 작성해 둔 거야." 그가 말했다. "이혼 서류야. 서명을 하든 말든, 어차피 내 변호사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그가 시계를 슬쩍 보았다. "그리고 난 너와 네 그 저주받은 자궁을 거부한다. 끝났어, 디라일라. 아주 오래전에 이미 끝난 일이야."
나는 서류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파스스 깨져 내렸다. 그것은 진작에 끝났어야 할 시간을 훨씬 넘겨 겨우 버티고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서져 내리는 소리였다. 내 안의 늑대가 아직도 무언가 달라지길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 아주 깊고 은밀한 곳에서 낑낑거리며 신음했다. 그 모든 세월들. 그 차가운 아침들과 텅 빈 밤들, 몸은 자리에 있지만 영혼은 이미 떠나버린 남자 맞은편에서 꾸역꾸역 먹었던 식사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은 항상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남아있었고, 일구었고, 바쳤으며, 희망을 품었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었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배신도, 레이라도, 우리 사이에 놓인 이혼 서류도 아니었다. 내가 순진하고 미련하게 이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는 그 사랑을 보고도 지켜낼 가치가 전혀 없다고 여겼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3초.
나 자신에게 딱 3초의 시간을 주었다.
그러고는 숨을 길게 내쉬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븠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내 속과 달리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여?" 나는 몸을 앞으로 살짝 숙였다. "내가 너를 위해 열어준 그 많은 문들 뒤에서? 넌 허기만 가득하고 그걸 채울 능력조차 없을 때, 내가 내 인맥을 동원해 네 손에 쥐여준 그 수많은 투자자들 앞에서? 온 세상이 너를 실패자 취급할 때, 내가 네 사무실에 밤늦게까지 남아 너를 믿어주었던 그 모든 시간들을 두고? 내가 너를 만든 거야, 캐릭. 네가 딛고 서 있는 그 모든 돌멩이 하나하나를 전부 내가 깔아준 거라고." 나는 그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쳐 들었다. " 그런데 감히 나를 치워버려야 할 치우기 귀찮은 짐짝 취급하면서 서류를 밀어 던져?"
방 안의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캐릭의 턱관절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시선이 나를 지나쳐 문 쪽으로 향했다. "나가, 디라일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 그가 서 있었다.
제드가 그의 측근들을 거느린 채 문가에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위엄이 넘쳤으며, 지난밤 나를 정신없이 파헤쳐 놓았던 그 자력 같은 권력의 아우라를 똑같이 내뿜고 있었다. 그의 거친 폭풍우빛 푸른 눈동자가 내 눈과 얽혀들었다. 우리 사이의 공기가 찌릿하게 튀었다. 충격, 열기, 수치심, 그리고 더 어둡고 허기진 무언가가 한꺼번에 나를 채워왔다. 그는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이었다.
캐릭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나가라고 했다."
나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매기와 나는 회의실 유리 벽 바로 바깥 복도에 멈춰 섰다. 그 유리창을 통해, 나는 제드가 마치 자신의 왕좌를 되찾는 왕처럼 헤드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캐릭은 자신이 준비한 세련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을 도왔던 그의 모조품 같은 모습이었다.
옆에서 매기가 숨을 훅 내쉬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사장님?"
나는 제드를 가만히 응원하듯 바라보았다. 지난밤의 기억이 다시금 생생하고 가차 없이 들이찼다.
어두운 차 안에서 내 귀에 대고 속삭이던 그의 깊은 목소리. "네놈의 그 어떤 놈도 너를 만족시키지 못하도록 내가 너를 완벽하게 망가뜨려 주지, 꼬마 폭풍." 내 안을 파고들어 딱 좋게 말려 올라가던 그의 손가락과, 내 클리토리스를 핥아 올리던 그의 혀. 오르가즘이 나를 집어삼킬 때 시트에서 허리가 들려 올라가며 허벅지가 격렬하게 떨리던 그 느낌. 그것은 캐릭이 수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내게 주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강렬하고, 길고, 깊었다. 그 후 그를 감싸 안고 꽉 조여대며, 그가 내 목덜미에 낮게 으르렁거리는 칭찬을 뱉어내는 동안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흐느꼈던 그 방식까지.
나는 손가락을 입술에 살짝 대었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내 몸은 여전히 뻐근했고,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똑바로 폈다. 잔혹하고 지독한 계획이 가슴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매기." 내 목소리는 낮고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 알파 제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가 있지?"
던의 시점전날의 그 손길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노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애쓰며,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나는 6년 동안 혼자였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관심을 표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충분히 준수한 남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딕슨은 아니었다.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업무와 길고 긴 하루들, 그리고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 틈이라곤 거의 남겨두지 않는 삶 밑바닥에 그 진실을 묻어두었다.그러다 딕슨이 내 손을 스쳤다.6년이라는 거리감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얄팍하게 바래져 버렸다.손가락이 스치던 그 찰나의 순간을 밤새 곱씹으며, 내 몸이 이토록 손쉽게 반응해버린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스스로를 거의 믿을 뻔할 때까지 그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층 전체는 고요에 잠겨 있었다. 업무가 시작되기 전 텅 빈 책상들과 홀로 보낼 수 있는 몇 분의 여유를 기대했다.하지만 그 대신 그가 눈에 들어왔다.딕슨은 인턴용 책상 중 하나에 앉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내 회사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는 침착하고 티끌만큼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책상 위에서 전화기가 부르르 떨렸다. 화면에 에이드리언의 이름이 떠올랐다.열린 공간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전화를 받았다."오늘 밤 약속은 여전하지?" 낮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건너왔다."응," 내가 말했다."좋아. 어제부터 계속 그 생각만 났거든."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에이드리언과 나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유지했다. 우리는 서로 섹스를 원할 때만 만났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는 쪽은 아무도 없었다.지난 6년 동안 내 몸을 만족시키는 데 가장 근접했던 남자는 오직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그는 내 몸이 원하는 것은 채워줄 수 있었지만, 한때 딕슨이 가 닿았던 내 깊은 영혼의 조각에는 결코 닿지 못했다.
던의 시점나는 딕슨을 잊기 위해 6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지원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불쑥 나타났고, 잘못 읽은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며 몇 초 동안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딕슨.동명이인일 것이다. 한때 내 남편이었던 그 남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도시에서 온 누군가일 것이 분명했다.이 세부 사항들이 내 착각을 증명해 주기를 바라며 그의 지원서를 열었다. 하지만 화면에는 그의 사진이 떠올랐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가 맞았다. 나이가 들어 어깨는 더 넓어졌고 이목구비는 한층 날렵해졌지만, 결코 몰라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한때 내게 영원을 약속했던 남자. 제 가족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우리의 결혼을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린 남자.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내 회사에 인턴십을 지원하고 있었다.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당장이라도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었고, 그의 이름 석 자가 나를 얼마나 뒤흔들어 놓았는지 그 아이에게 들킬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비서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마지막 지원자의 전체 서류를 가져와 줘요," 내가 말했다. "인사팀이 그에 대해 쥐고 있는 모든 정보가 필요해요."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당장 그의 지원서를 탈락시켰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서류를 다시 열어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딕슨은 결코 우연히 내 회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해서 이곳에 찾아왔다.서류를 덮고 표지 위에 양손을 얹었다. 의문들이 이미 마음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그리고 별안간, 나는 스물네 살의 그날로 되돌아가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남자가 나를 믿어줄 가치조차 없다고 결론짓던 순간, 그의 본가에 우두커니 서 있던 바로 그날로.누군가 내가 그의 가족 회사에서 기밀 정보를 유출한 것처럼 보이도록 지극히 설득력 있는 증거들을 날조해 나를 함정에 빠뜨렸었다. 그
캐롤라인의 시점"내 차 뒷좌석에서 네 가슴 위에 사정하게 해줬던 거 기억나?" 그는 이제 골반을 앞으로 거세게 쳐올리며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가고 있었고,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축축한 파열음이 창고 안을 가득 메웠다. "넌 씨발 지독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 난 몇 달 동안 밤마다 그 모습만 떠올렸어."그 감각을 쫓으며 매 찌르기를 받아내려 엉덩이를 뒤로 밀어붙였다. 새로워진 각도는 척추를 타고 날카로운 불꽃을 쏘아 올렸다. 그가 손을 뒤로 둘러 두 개의 거친 손가락으로 내 클리토리스를 문질렀다. 양쪽에서 동시에 밀려오는 감각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또다시 갈 것만 같았다. 거대하고 피할 수 없는 파도가 차오르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다시 가버려," 그가 명령했다. "이렇게 깊이 박혀 있는 동안 네가 가는 걸 느끼고 싶어."나는 산산조각이 났다. 첫 번째보다 훨씬 더 거세게. 팔에 힘이 풀려 작업대 위로 무너져 내렸고, 그의 성기를 감싸 안은 채 사시나무 떨듯 격렬하게 떨었다. 그가 자비 없이 퍼붓는 거친 찌르기에 떠밀려 쾌락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부서진 비명을 도무지 멈출 수 없었다.그의 박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의 입술 사이로 짧고 절박한 파열음과 함께 숨이 턱턱 터져 나왔다."나 쌀 것 같아," 그가 이를 악물었다. "어디에 쌀지 말해.""안에요," 숨을 헐떡였다. 그 말이 찢어지듯 터져 나왔다. "제발요. 내 안에 싸줘요."그는 뿌리 끝까지 자신을 박아 넣고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멈추어 거세게 맥동했다. 발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 만큼 깊숙한 곳에서, 그가 내 안을 채우며 뿜어내는 뜨거운 줄기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낮고 무너져 내린 신음이 그의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왔다. 그가 앞으로 쓰러지며 내 등에 가슴을 짓눌렀고, 여전히 내 안에 박힌 채 우리 둘 다 온몸을 떨었다.한참 동안 오직 우리의 거친 숨소리와 바깥의 눈폭풍 소리만이 맴돌았다.그가 내 목
캐롤라인의 시점그의 고백 앞에서 나는 좀처럼 대답을 찾지 못하고 허둥거렸다."충분히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면, 널 향한 갈증도 사그라들 줄 알았어." 그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반대였지. 증상은 더 악화되기만 했어. 어떤 밤에는 그저 네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닿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산길 진입로까지 차를 몰고 오기도 했어. 그러다 차를 돌려 다른 여자가 기다리는 집으로 되돌아가곤 했지."그의 엄지손가락이 내 손목 안쪽을 천천히 한 번 쓸어 올렸다."내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유일한 사람이 너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시치미 떼는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 스스로를 속이고, 널 속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는 짓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아. 우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잖아. 내 남은 삶을 떠올릴 때면, 너 아닌 다른 누구와 함께하는 미래는 상상조차 되지 않아."우리를 둘러싼 창고 벽면을 매섭게 후려치는 칼바람 소리조차 거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매튜가 방금 쏟아낸 고백을 못 들은 척 넘겨버릴 길 따윈 없었다."나도… 우리가 계속 연극하며 버티는 거, 더는 원하지 않아." 갈비뼈를 요란하게 두드리는 심장 박동을 억누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그럼 이제 그 연기, 아주 끝장내 버리자."내가 채 입을 열어 대답을 건네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집어삼켰다.입맞춤은 거칠고 노골적이었으며, 그가 방금 털어놓은 모든 진심으로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열기가 순식간에 온몸을 덮쳐와 무릎에 힘이 풀려버렸다. 그의 혀를 받아내며 신음을 흘렸고, 더 깊은 접촉을 갈망하며 그의 품으로 바짝 파고들었다.그의 외투는 여전히 열려 있었다. 내 외투 역시 마찬가지였다.스웨터가 말려 올라가 드러난 허리 언저리의 살결에 차가운 바람이 스쳤으나, 그의 두 손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그 한기를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그가 내 골반을 움켜쥐더니 작업대 모서리 위로 단숨에 나를 들어 올려 앉혔다. 공구들이 와르르 덜컹거렸지만 그 소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리
캐롤라인의 시점말을 내뱉던 도중에 전기가 나가버렸다.찰나 전까지만 해도 주방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라디오에서는 옛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온 세상이 암흑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보일러가 나지막한 신음을 토해내며 멎었다. 냉장고의 웅웅거림도 뚝 끊겼다. 잠시 동안 거실 바닥을 가로질러 굴러가는 베니의 장난감 트럭 바퀴 소리만이 유일하게 남았다.새아버지가 낮게 욕설을 짓씹었다. 복도 쪽에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로즈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휴대폰 손전등이 켜지며 어둠 속으로 가느다란 백색 빛줄기를 쏘아 올렸다."차단기 쪽인 것 같군," 새아버지가 말했다.새아버지와 로즈 이모는 휴대폰 불빛으로 앞을 비추며 다용도 벽장으로 향했다. 베니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에 열중해 있었고, 나는 주방 아일랜드 식탁 곁에서 손전등을 든 채 방 건너편의 매튜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얼굴은 절반쯤 그림자에 잠겨 있었다. 그가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새아버지가 먼저 돌아왔다."차단기는 멀쩡해. 전선로 쪽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창고에 낡은 발전기가 있잖아. 지난번 큰 폭풍 왔을 때 당신 아버지가 사두셨던 거 말이야."다른 이들이 채 입을 떼기도 전에 매튜가 나섰다."제가 다녀오겠습니다."엄마는 외투를 챙기려 현관실로 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캐롤라인, 오빠랑 같이 가렴. 큰 손전등 챙겨 들고 시동 줄이 뻑뻑하면 옆에서 좀 거들어줘. 밖이 꽁꽁 얼어붙었으니까."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로즈 이모는 여전히 창문들을 살피고 있었고, 새아버지는 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데도 전력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베니는 트럭을 밀며 입으로 부릉부릉 엔진 소리를 냈다.엄마를 따라 현관실로 들어갔다. 엄마는 내게 묵직한 대형 손전등과 매튜의 낡은 작업용 외투를 건네주었다. 매튜가 선반에서 두 번째 손전등을 집어 들 때 우리의 손가락이
매튜의 시점캐롤라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고 베니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잠이 안 와서 그랬어," 그녀가 말했다. "영화를 틀었는데 볼륨을 낮춘다고 낮췄지만 잘 안 됐나 봐. 벽 너머로 그 소리를 들었나 보네."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다시 달걀 요리로 몸을 돌렸다."어머, 그래서 그랬구나. 다음엔 이어폰 끼고 보렴, 알겠지?"아빠가 껄껄 웃으며 토스트로 손을 뻗었다. 로즈 이모는 이런 오래된 집들은 벽이 참 얇다며 한마디 보탰다. 대답에 금세 흥미를 잃은 베니는 다시 의자 다리를 발로 차며 접시 위의 베이컨 조각을 쫓아 포크를 찔러대는 일로 돌아갔다.주방 안으로 서서히 다시 대화가 차올랐다. 제설차 작업 현황. 오후 계획. 장작이 더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 지극히 평범한 소리들. 평범한 단어들.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캐롤라인을 지켜보았다.그녀는 포크를 집어 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사를 이어갔다. 머리카락 한 가닥이 뺨 위로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아이가 입을 열었던 그 순간부터 치솟은 내 맥박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음식을 삼킬 때 목덜미가 작게 오르내릴 때마다 내 시선은 사로잡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식탁에 앉은 다른 모든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어젯밤의 일이 우리 사이에 도사리고 있었다.억지로 남은 커피를 들이켜며 표정을 담담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내가 머그잔을 얼마나 으스러지게 쥐고 있는지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이메일을 확인해야 한다는 막연한 핑계를 대며, 눈에 띄지 않게 서둘러 식탁에서 일어났다.새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빠는 이미 다시 날씨 이야기로 돌아가 있었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 내 침실 문을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세게 닫아걸었다.방 안은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