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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진짜 크네요

Author: 도화
서지혁의 손길이 워낙 눈에 띄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둘 시선을 돌렸다.

서인준은 사무실 문 앞에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형, 점심은 형수님이랑 밖에서 먹는 거야? 우리 같이 점심 먹기로 했잖아.”

둘 사이에 점심 약속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서지혁은 태연히 말했다.

“취소됐어.”

서인준은 괜히 심술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형수님만 오면 난 바로 버리고 가네. 진짜 매정해.”

하시윤은 숨을 길게 들이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서인준은 아직도 서지혁의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뒤쪽,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성문영과 심연정이 말없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서지혁이 심연정에게 보여주려는 계산된 연출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서인준은 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 해맑게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래. 데이트 가. 나 걱정은 말고. 난 혼자도 잘 다녀!”

하시윤은 시선을 거두며 낮게 속삭였다.

“지혁 씨 어머니 곧 폭발하실 것 같은데.”

“어차피 나한테 화내는 건 아니잖아.”

서지혁이 담담히 말했다.

“인준이도 이제는 익숙해져야지.”

“참 좋은 형이네.”

하시윤이 말했다.

“인준 씨는 아주 복 받은 거지.”

‘형제가 서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상극이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하시윤은 엘리베이터 안을 몰래 훔쳐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외부에는 심연정이 서지혁의 공식적인 여자친구로 알려져 있었는데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여자친구가 바로 옆에 있는데 서지혁은 다른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고 떠났으니, 이건 거의 특종이나 다름없었다. 화장실과 탕비실에서 이 이야기가 얼마나 떠들썩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지는 안 봐도 뻔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차에 오른 두 사람은 곧장 교외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여전히 그 한옥이었고, 여전히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가 그들을 맞았다.

하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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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혁이 다가와 하시윤의 귀가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정돈해 주며 말했다.“아주 기세등등해졌네.”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아래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주최 측 인물이 등장해 인사를 시작한 모양이었다.서지혁은 난간까지 가더니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하시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금방 올게.”하시윤이 손을 흔들었다.“다녀와. 나 여기 있을게.”서지혁이 내려간 뒤, 하시윤은 편한 자세를 잡고 살짝 눈을 감았다.아래층에서 들리는 인사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처음에는 사회자의 목소리, 그다음은 연 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그리고 바로 누군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서지혁이 말했던 그 연씨 가문의 사생아였다.하나도 궁금하진 않았지만 말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하시윤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그런데 그 와중에 다른 소리가 또렷하게 끼어들었다.“또각, 또각.”하이힐 소리였다.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하시윤은 눈을 감은 채 자는 척을 했다.하지만 그 하이힐 소리는 그녀 바로 곁에서 멈추더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는데 안 보이더라.”눈을 뜨기도 전에 하시윤은 바로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하민지였다.하시윤은 그녀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혼자 왔어? 너희 엄마는?”서지혁이 없는 자리라 하민지는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아빠가 많이 편찮으시니 엄마가 옆에서 보살펴줘야지. 넌 아빠가 엄마한테 잘해주는 걸 영 못마땅하게 생각했잖아. 그런데 결국 아빠 챙기는 건 엄마밖에 없어.”“그럼 너는? 넌 왜 여기에 왔는데?”하시윤이 무심하게 말했다.“너희 아빠가 너한테도 잘해주잖아.”하민지의 얼굴이 굳었다.“나한테 말꼬리 붙이지 마.”그녀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는 옆에 털썩 앉았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시윤의 드레스로 향했다.드레스는 딱 봐도 비싸 보였다.그다음에는 목걸이, 팔찌, 반지까지 세트로 된 보석을 훑었다.하민지도 액세서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라 비싼 건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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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혁은 다시 일어서더니 과일과 간식을 한 번 훑어봤다.“여기 물은 없네. 내려가서 한 잔 떠올게.”사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바로 전에 받은 물도 거의 안 마셨으니 말이다.그러나 잠시 고민하다가 하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시윤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었다.지금 이 감정이 정확히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가슴 위로 계속 치솟아 올랐다.그동안 하시윤에게 잘해준 남자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처음부터 그녀의 가정사를 모르는 사람들, 하민지에게 홀리지 않은 남자들은 그녀에게 꽤 친절했다.하지만 지금 같은 느낌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결국 잠시 앉아 있다가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드레스 자락을 손에 쥐고는 계단 입구로 걸어갔다.아래를 내려다보니 서지혁이 직원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직원이 든 쟁반에는 술밖에 없었는데 서지혁의 설명을 듣고서는 고개를 들어 하시윤 쪽을 보았다.왠지 이따가 가져다주겠다는 뜻 같았다.하지만 서지혁은 고개를 저었다.직원과 함께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아마도 물을 직접 가지러 가는 듯했다.하시윤은 입술을 꼭 다물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다시 소파로 돌아가려는 순간, 아래쪽에서 누군가 계단을 지나가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시선이 맞닿자 하시윤의 동작이 멈췄다.그 사람은 계단을 천천히 올라왔다.하시윤은 얼른 소파로 돌아가 앉은 뒤 드레스 자락을 한 번 더 정리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심태진은 이미 눈앞까지 와 있었다.그는 처음부터 그녀를 향해 온 게 분명했다.심태진은 바로 옆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하시윤 씨, 안녕하세요.”하시윤은 이렇게 심태진을 유심히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세월이 흐른 얼굴이긴 해도 살지 찌거나 탈모가 진행되지 않아 지저분한 기색이 전혀 없다.너무 마르지도 않은 반듯한 체형이라 얼굴만 가리면 젊은이들 틈에 섞여도 크게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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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제199화 나 좋아하는 건 알겠어

    그 말을 들은 하시윤은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다.그녀는 돌아서서 벽에 기대어 선 채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서지혁이 물었다.“뭐? 뭘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건데?”서인준이 차분하게 말했다.“전에는 형이 심연정을 안 좋아하고 형수님이랑 애도 둘이나 있으니까 형이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집에서도 결국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그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오늘 할머니 뜻을 보니까 전혀 그게 아니더라.”그는 서지혁에게 물었다.“형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인준이 먼저 말을 이었다.“그때 형수님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형은 형수님이랑 거리를 두려고 했었잖아. 혹시 그때 망설였던 거야?”“망설인 적 없어.”서지혁이 말했다.“그때는 잘 몰랐을 뿐이야.”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서인준의 담뱃갑을 자연스럽게 집어 들었다.익숙한 동작으로 하나를 빼 입에 물려다가 순간 멈칫했다.곧바로 담배를 손가락으로 으깨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케이스도 다시 테이블 위에 두었다.“그때는 내 마음을 정확히 몰랐던 거야.”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좀 헤맬 수밖에 없었다.서인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이 남은 얼굴이었다.“그런데 만약... 부모님이 끝까지 반대하면? 형은 어떻게 할 건데?”“왜 그게 중요해?”서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굴 좋아하든, 누굴 만나든 그건 내 일이지.”서지혁이 말했다.“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들이 데려가서 살면 되잖아. 왜 내 인생에 끼어들게 하는데?”그는 아주 담담하게 덧붙였다.“결국에는 두 분의 동의 같은 건 필요 없어.”서인준이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두 분 고집이 얼마나 센데. 형도 알잖아. 설득 안 되면 어떡하려고? 형, 예전처럼 또 연 끊을 거야?”그리고 이어서 말했다.“그때처럼 할머니께서 쓰러지시면? 집안이 뒤집히면서 형 다시 불러들일 거잖아. 그때 또 마음이 약해지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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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혁은 그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그는 하시윤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우리가 지금 어떻게 보이는데요?”살구는 바로 대답했다.“제가 보기에는 부부 같은데요?”그녀는 장난스럽게 웃더니 또 금세 말을 바꾸었다.“그런데 서 대표님은 결혼 안 했으니까 그건 아닐 테고.”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그럼 연인 사이겠죠?”하시윤은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를 흘깃 봤다.상대는 그들의 대화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무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아마 교육이 철저하게 되어 있어 입이 무거울 것이다.하시윤이 대답하려는 찰나, 서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살구 씨가 처음에 성빈이 밑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했었죠. 김성빈 옆에서 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성빈이는 그중에서 경험 없는 살구 씨를 뽑았으니까요.”질문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살구는 미간을 찌푸렸고 하시윤도 고개를 갸웃했다.서지혁이 이어 말했다.“그런데 성빈이가 그러더라고요. 살구 씨는 나이가 어려도 눈이 정확하다고요.”그는 가볍게 웃었다.“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딱 맞는 말이었네요.”살구는 흠칫하더니 뒤늦게 깨달은 듯 말했다.“아니, 그 쉬운 질문을 왜 이렇게 빙 둘러서 얘기해요!”서지혁은 거울 속 하시윤을 바라봤다.둘의 시선이 그대로 맞닿았다.“칭찬도 같이 넣었잖아요. 싫어요?”“좋죠!”살구는 씩 웃더니 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그런데 우리 사장님이 정말 그런 말을 했어요?”서지혁이 대답했다.“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봐.”살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물어보죠, 뭐!”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살구가 사라지자 메이크업 룸 안에는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메이크업이 끝난 뒤 하시윤은 이어서 헤어 스타일링까지 마무리했다.그 뒤 스타일리스트가 하시윤의 드레스를 가져오겠다며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하시윤이 입을 열었다.“지금 방금 그 얘기는 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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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 출발하자 백미러로 방현석이 그 여자와 함께 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심연정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따라가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하시윤은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시선을 거두고는 의자에 편하게 기대었다.배가 부르니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다가 정신이 반쯤 풀려 있을 때, 저도 모르게 질문이 흘러나왔다.“심태진 부부는 사이가 좋아?”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시윤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걸 서지혁이 아니라 서인준에게 물어봤어야 했는데 말이다.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린 하시윤은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돌렸다.“그냥 궁금해서. 부모 사이가 원만했으면 저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않았을 것 같아서.”“그럭저럭.”서지혁이 입을 열었다.“심태진은 사람을 참 잘 다루는 것 같아. 정경란은 성질이 있는 편인데도 심태진 앞에서는 많이 누그러지지.”하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한두 번 마주쳤는데 말수가 적어 보이던데.”“정경란이 워낙 성격이 세니까 자연스럽게 좀 묵직해지겠지. 둘 다 조용하거나 시끄러우면 어떻게 살겠어.”하시윤은 더 묻지 않았고 서지혁도 말을 잇지 않았다.둘은 그대로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긴 복도를 지나자 거실 앞 흔들의자에 앉은 서인준이 보였다.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다리를 꼰 채 흔들의자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거실은 노란 스탠드만 희미하게 켜져 있어 반쯤 어둠 속에 묻힌 서인준의 모습은 꼭 퇴직한 아저씨 같았다.둘이 말도 꺼내기 전에 서인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데이트 끝났어?”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나를 빼고 슬쩍 빠져나간다고? 둘 다 참 대단해.”그는 한숨까지 길게 내쉬더니 의자에서 일어섰다.“내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오니까 둘이 안 보이더라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빨리도 도망갔어.”서지혁도 하시윤도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둘은 그대로 거실에 들어섰는데 서지혁은 주방에서 생수병 하나를 꺼내고는 하시윤에게 말했다.“가자.”하시윤이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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