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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이솔은 휴가 중.

Author: 초록 개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1 00:02:46

반란 세력을 정리한지 이틀 정도가 지났다.

하지만, 이현명이 아직 뱀파이어 언론사에게 알리지 않은 탓에 반란 세력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지율은 한숨을 쉬며 업무 준비를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면 은재가 저 문을 열고 들어 올 터였다.

은재는 굉장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루비 아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회사로 출근하기 전 혈청 커피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였다.

“지율형!!! 나 혈청 커피!!! 샷 잔뜩 넣어서!!!”

지율은 은재의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에 ‘양반은 못되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웃어보였다. 사냥을 하고 오더니 힘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은재야......”

자신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에 지율이 한 숨을 쉬며 부르자 은재는 왜그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왜? 형!! 나 지금 너무 상쾌해! 버그도 잡고, 반란 애들도 싹 정리하고.... 아, 진짜 개운해. 오늘 하루 종일 코딩도 막 미친 듯이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지율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알았어~! 일단 기다려! 형이 혈청 커피 타줄테니까 커피 가지고 어서 회사로 돌아가버려~”

지율의 진저리 치는 모습에 은재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자신의 커피를 기다리며 루비 아워를 둘러보니 이제 막 인간손님들은 다 빠지고 뱀파이어 손님들이 오기 전 인 듯 한산했다.

“지율형~! 그러고보니 김매니저는 어디갔어? 안보이네?”

지율은 혈청 커피를 제조하다가 김매니저를 찾는 은재를 돌아보았다.

“김매니저, 수요일까지 휴가야.”

은재는 눈이 커졌다.

“형. 그럼 낮에는 누가 지휘하는거야? 김매니저 없으면 낮에는 루비 아워 안돌아가지 않아?”

“지우씨 있어서 괜찮아. 김매니저 그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했으니 휴가 좀 다녀와야지.”

은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솔은 그도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루비 아워에서 꽤 오랜 시간 일한 직원이었고,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인간이었다.

지율은 은재가 주문한 혈청 샷이 잔뜩 들어간 커피를 내어 주었다.

“니가 우리 루비 아워 걱정도 해주고 이거 황송한데? 자!! 커피 가지고 이제 너도 일하러 가!! 혈청 커피 부족하면 해일이한테 배달 주문하고!”

은재는 자신의 혈청 커피 테이크 아웃 잔을 받아 들고 알았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알았어~! 형!! 오늘도 수고하고 내일 새벽에 보자!”

자신에게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은재의 뒷 모습을 보면서 내팔자야 하는 표정이었다.

지율은 뱀파이어 손님들을 위해 혈청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사이 뱀파이어 직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희 왔습니닷~!”

지율은 카운터 너머로 들어오는 직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요 며칠 동안, 루비 아워의 평화를 위협했던 반란 세력과의 일촉즉발 상황을 직원들은 알지 못했다. 그저 사장인 자신이 평소보다 피곤해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조만간... 아마 뱀파이어 전용 뉴스에서 오늘의 사건을 알게 되겠지.”

조용히 중얼거리며, 지율은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된 지금의 평화로운 순간을 만끽했다.

심지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기분 좋은 여유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솔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전해주고 싶은 말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휴가 잘 다녀오셨나요, 그동안 이런저런 일 있었는데... 이제 다 해결됐어요.’라고 그녀에게 해 줄 말들이 떠올랐다. 말하자면, 평온을 되찾은 루비 아워의 분위기와 함께,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지율은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루비 아워 안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조명 아래, 혈청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카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평화롭고 안정된 공기가 공간을 감쌌다.

지금 이 순간, 지율은 문득 이솔의 차분한 목소리와 사람 좋은 미소가 그리워졌다.

늘 조용히, 그러나 묵묵하게 루비 아워를 지탱해주던 존재. 바쁜 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 직원들을 다독이는 따뜻한 말투, 그리고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든든한 오른팔 같은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느끼던 이솔의 빈자리가 오늘 따라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김매니저는 휴가 잘 보내고 있으려나....?”

지율은 커피잔을 닦던 손을 멈추고, 문 쪽을 향해 짧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문이 열리고, 이솔이 언제나처럼 ‘사장님, 저 출근 했습니다!!’ 하고 미소 지으며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 생각만으로도 지율은 절로 미소를 지었고, 홀 안의 공기는 조금 더 따뜻해졌다.

지율이 이솔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을 때, 그녀는 휴가를 만끽하며 전국을 천천히 여행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잡힌 휴가였기에 해외 일정은 무리였고, 대신 평소 바쁘게 일하던 일상을 벗어나 전국의 소소한 명소와 맛집, 작은 카페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낯선 풍경과 자유로운 이동은 그에게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뱀파이어의 존재를 알고 있는 만큼 행동에는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낮 동안에는 가능한 한 사람 많은 곳에서 자유롭게 움직였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저녁에는 숙소에 머물며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밤이 되면 뱀파이어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자신이 예상치 못한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을 철저히 피하기 위함이었다.

김매니저는 그렇게 낮에는 여행과 여유를 즐기고, 밤에는 안전을 확보하며 휴가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휴가를 떠나기 직전, 지율에게 들었던 신생 뱀파이어의 등장 소식은 이솔이 몸을 더 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솔은 절대 뱀파이어가 되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비록 짧을지라도, 그것이 훨씬 자유롭고 온전하다고 믿었다.

세상에는 가끔 영원한 삶을 꿈꾸며 뱀파이어가 되길 원하거나, 그 불멸에 매혹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솔은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영원함’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옥이며,

뱀파이어에게는 탈출구 없는 감옥과도 같다는 것을. 그들은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끝없이 사냥 본능을 억눌러야 했고, 평범한 인간 사회에 완전히 스며들 수도 없었으며, 밤마다 본능과 윤리 사이의 끝없는 줄타기를 해야 했다.

지율이 웃으며 넘겼던 이야기의 이면에는 그런 무거운 진실이 있다는 것을 이솔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조심스럽게, 낮에는 햇빛 아래에서만 움직이고 밤이면 철저히 숙소 안에 머물며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솔은 전국 일주를 하면서 잠시 들른 기념품 가게 안에서, 지율과 해일, 은재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천천히 고민하며 진열대를 살폈다. 작고 귀여운 장식품, 실용적인 소품, 지역 특산품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손에 들었다가 내려놓고, 다시 다른 것을 집어 들며 마음속으로 ‘누가 좋아할까?’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는 자신이 들어선 이 가게 주변이 또 다른 뱀파이어 안전 구역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특이하고 눈길을 끄는 물건들이 많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벽 한쪽에는 손때 묻은 지도와 오래된 장식품들이 놓여 있었고, 이솔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여행하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설렘을 동시에 만끽했다.

작은 선물을 고르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루비 아워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율과 은재, 해일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번졌다.

“뭐가 좋을까... 이거면 좋아할까?”

그가 소곤거리는 말 속에는, 휴가 중임에도 그가 좋아하는 이들을 생각하는 다정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선물을 다 고른 김매니저는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고, 직원은 계산을 해주고 포장을 해주며 한가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관광객이신 것 같은데, 여기 숙소가 있으신건가요?”

“네~ 지금 전국 일주 중이라 오늘은 여기 근처 숙소에서 머물 생각입니다.”

직원은 포장을 끝낸 후 이솔에게 건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시다면 오후 7시 이후로는 숙소에서 나오지 마세요. 이곳이 낮 동안은 밝아서 상관은 없지만 밤이 되면 위험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위험해요.”

직원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이솔은 우범 지역이라는 말에 바로 이해 할 수 있었다.

자신도 루비 아워에서 근무 하면서 인간 손님들이 저녁에 오면 항상 하는 멘트가 바로 밤에는 우범 지역이라 위험하니 이곳을 벗어나라는 경고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직원의 이 경고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뱀파이어들의 거주 공간인 안전 구역이라는 뜻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오늘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네요.”

이솔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포장을 받아들었다.

아무리 안전 구역에서 거주하는 뱀파이어들이 ‘인간 친화적’이라 불린다 해도, 밤은 또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시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심해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내일이면 전국 일주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하루 푹 쉰 뒤 다시 출근하면 모든 일상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이솔은 오늘만큼은 무리하지 말고 숙소에서 푹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해가 기울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골목을 지나, 그는 천천히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숙소에 도착한 이솔은 짐을 풀고, 그동안 전국을 돌며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정리해 SNS에 올렸다.

친구들에게 건넬 작은 선물들도 책상 위에 늘어놓고 차근차근 정리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하는, 그런 평범하고 잔잔한 시간이었다.

숙소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고, 어둠을 해치고 숙소의 작은 창문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붉은 빛이 방 안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노을빛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짙고, 조금 더 차갑고... 무엇보다 이제 곧 뱀파이어들의 시간이 열린다는 신호라는 것을 이솔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려 잠시 자신이 루비 아워를 중심으로 한 안전 구역에서 오랫 동안 일하고 뱀파이어들과 어울려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곳에서는 지율, 해일, 은재 같은 뱀파이어들을 매일같이 마주했지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행동하는 이들이었다.

그 덕분에—혹은 그 때문인지—자신도 모르게 위험에 대해 안일해진 부분이 있었다.

만약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전혀 모른 채, 평범한 일상만을 살아온 사람이었다면 ‘밤이 위험하다’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밤이 되면 세계가 조금 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창밖의 붉은 빛은 그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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