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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반란 세력 본거지 사냥

Author: 초록 개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0 00:02:58

심판자는 재차 물었다. 이번엔 좀 더 강한 억압의 기운이 실려 있었다.

“본거지를 말해라. 너희가 모인 장소, 은신처, 지도자, 계획... 모두 어디에 있느냐.”

우두머리의 눈이 왕 쪽으로 잠시 향했다. 그 안에는 ‘이제 끝이군’ 하는 자각이 고여 있었다.

그는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마치 마지막 한 마디를 짜내듯 목소리를 냈다.

“그건...”

목구멍에서 피와 검은 연기가 뒤섞여 올라왔다.

“그건... 너희가... 절대... 찾지 못할—”

바로 그때, 우두머리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의 심장을 짓누른 듯, 상체가 뒤틀리며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심판실 곳곳에서 긴장된 시선들이 일제히 왕에게로 향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이현명은 아주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섰다.

이현명은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와 이미 죽어버린 우두머리 앞으로 걸어가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 보았다.

반란 세력의 우두머리는 이미 숨이 끊긴 채, 상체만 남은 몸뚱이에 마지막 연기조차 흩어져 가고 있었다.

왕은 그 시체 옆에 멈춰 섰다. 잠시 그 붉은 잔해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숨을 몰아쉰 뒤—

뒤편에 서 있던 고위 심판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엄숙하면서도 차갑게 울렸다.

“피와 파동에는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그것을 조사하라.”

심판실 안이 잠시 정적에 잠겼다. ‘피와 파동의 기억’을 읽는 것은 고위 심판자 중에서도 특수한 감각과 훈련을 가진 자만이 가능한 일. 왕이 이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그 심판자가 그만큼 뛰어난 직감과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현명은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말을 이어갔다.

“그대는... 능력 있는 심판자다. 본거지도, 잔당도—한 번에 찾아낼 수 있겠지?”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이의 ‘확신’에 가까운 말이었다. 고위 심판자는 즉시 오른손을 가슴 앞에 가져다 대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그의 목소리는 떨림 하나 없이 묵직하게 울렸다.

“명 받들어 반란 세력의 본거지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두머리의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바닥에 널린 검붉은 피가 심판자의 발끝을 적셨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손을 들어 허공 위에 펼치자, 진동처럼 미세한 파동이 시체로부터 퍼져 나왔다.

심판실 바닥의 마법진이 미세하게 빛을 띠기 시작했다. 고위 심판자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반란의 기억이여. 흔적을 드러내라.”

피 웅덩이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이현명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찾아라.”

그의 목소리는 심판실 전체를 울릴 만큼 명확했다.

“그리고 반드시... 보고하도록.”

이현명은 기억 추출 작업이 시작되는 고위 심판자를 잠시 지켜보다가, 뒤편에서 촬영을 멈춘 인간 헌터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심판실에 서 있는 그들은 뱀파이어 왕의 시선을 받자 본능적으로 척추가 곧게 펴지며 숨을 삼켰다.

“그대들에게... 부탁하지.”

이현명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지만, 왕의 명령이라는 절대적 무게를 품고 있었다.

“지금 이 장면을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그리고—”

그의 시선이 헌터 대장을 향해 날카롭게 꽂혔다.

“능력 있는 헌터들을 데리고 반란 세력의 본거지로 즉시 합류하도록 준비하게. 이제 본격적으로... 반란 세력을 사냥할 걸세.”

순간 헌터들 간에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반란 세력의 본거지’— 그 말은 곧, 지금까지의 교란이나 소규모 충돌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전투가 이어질 것임을 의미했다.

카메라 장비를 정리하던 헌터 대장이 재빨리 자세를 고쳐 세우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도, 혼란도 없었다. 다만 전투 임무를 부여받은 전사의 태도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 바로 대통령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헌터 조합에 즉각 지원 요청을 보내 정예 대원들을 집결시키겠습니다.”

다른 헌터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명령을 재확인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신 장치를 켜고, 대통령 비서실과의 암호 채널을 열며, 각 헌터 팀장들에게 긴급 호출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현명은 그런 헌터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고위 심판자는 우두머리에게서 기억의 파동을 읽은 후 반란 세력의 본거지가 위치해 있는 곳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우두머리가 발견 된 폐건물을 중심으로 반란 세력들이 흩어져 있었다.

“폐하 본거지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고위 심판자의 말에 이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지금부터는 신속함이 모든 걸 결정한다.”

그는 옆에 대기하던 전령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령, 헌터 본부와 심판자 부대에 동시에 연락해라. 즉시 출동 명령을 내리도록. 이동 경로는 고위 심판자가 안내할 것이다.”

전령관은 주먹을 쥐고 가슴에 대며 답했다.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잠시 뒤,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하고 심판자들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인간 헌터들은 은폐 장비와 검은 전술복을 차례로 정비하며 전투 모드로 전환했다. 고위 심판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반란 세력은 여러 지점으로 소규모로 흩어져 있으나 중심지는 폐건물 북쪽 지하입니다. 그곳에 지휘부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안내하겠습니다.”

이현명은 마지막으로 명령을 덧붙였다.

“조심하라. 그들은 이미 인간 사회와 우리 사회 모두를 위협할 만큼 대담한 무리들이다. 필요하다면 단숨에 제압하되, 민간 피해는 절대 없어야 한다.”

헌터들과 심판자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미 해일과 은재가 맡았던 구역은 거의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현장에 도착한 고위 심판자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살짝 감탄했다.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군. 이 정도 속도면, 혈청 커피를 더 챙겨줘도 되겠어.’

해일과 은재가 피로 회복과 사냥 본능 억제를 위해 혈청 커피가 필수라는 걸 아는 그는 은근히 그들을 챙기고 있었다.

초반 회의에서 예측했던 그대로였다. 우두머리가 사라지자 반란 세력의 신생 뱀파이어들은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헌터들과 심판자들을 상대할 능력도, 조직력도 갖추지 못한 그들은 결국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하나둘씩 빛의 먼지로 사라져 갔다.

고위 심판자와 헌터 대장의 지휘 아래 반란 세력들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고, 다시 그 둘을 중심으로 뱀파이어 심판자들과 인간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반란 세력을 처단하느라 모두들 수고 하셨습니다. 이 뒤의 상황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거라 생각 됩니다.”

고위 심판자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헌터 대장은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둘러 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들 수고 해주셨고, 부상자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이번 반란 세력은 소탕했지만 또 언제 어디서 이런 세력들이 나타날지 모르니 좀 더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 헌터들과 뱀파이어 심판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안정된 공기가 팀 전체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 속엔 공통된 피로와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고위 심판자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기만 햇빛은 어느새 서쪽 너머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밤의 서늘한 공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굉장히 피곤한 하루였다.

“왕실에 바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여러분도 돌아가 정비하십시오. 오늘의 기록은 정확히 남겨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향후 인간 정부와의 회담에서도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니까요.”

그 말에 모두들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인간 헌터들은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이렇게 큰 전투를 벌이고 난 후에는 이틀의 휴가가 주어졌기에 어서 사무실로 돌아가 빠르게 보고서부터 작성해야겠다 생각하며 전투 때 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뱀파이어 심판자들은 그런 헌터들을 보며 인간의 초능력이란 무섭다고 생각했다.

“전투 직후에 저렇게 빠르게 보고서부터 쓰러 뛰어가는 건... 정말 인간들밖에 못 하지.”

그의 중얼거림에 곁에 있던 부심판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중엔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우다가, 끝나면 갑자기 행정력이 올라가죠.”

“저 정도면 초능력으로 인정해줘야 할 것 같군요.”

“맞습니다. 보고서 제출 속도만으로도 승진감 아닙니까?”

서늘한 바람이 폐허가 된 전장의 피 냄새를 걷어냈고, 밤이 완전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고위 심판자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치지 않고 끝난 게 어디냐. 이 정도면 오늘은 성공적인 하루지.”

완연한 밤이 된 이 폐허 건물에서 심판자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정리하기 시작했고, 궁으로 돌아가 이현명에게 보고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심판자들과 헌터들이 떠난 이 건물은 언제 피비린내가 번졌는지도 모르게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 있었다.

다시 평화를 되찾은 안전 지역은 서서히 본래의 리듬을 되찾기 시작했다. 낮 동안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밤의 중심지, 카페 루비 아워는 점점 불빛을 밝히며 다시 뱀파이어들의 은밀한 아지트로 변하고 있었다.

붉은 조명 아래, 지율은 테이블 위의 혈청 커피 잔을 정리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카운터를 닦고 있었다.

한편, 사냥을 끝내고 충분한 혈청을 섭취한 은재는 평소의 다크서클이 내려 와 버그를 찾아 해결하며 좋아하는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전투 중의 날 선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늘어지고 무기력한.... 하지만 코드 앞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살아나는 IT 개발자 하은재의 모습.

체크무늬 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거울 앞에 선 은재는, 자신도 믿기 힘들 만큼 혈색이 살아난 얼굴을 흘끗 바라보았다.

이틀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몸을 움직였지만, 피곤함은커녕 몸이 가볍기까지 했다.

밤에는 인간의 코드 속 어둠을 사냥하듯 버그를 제거했고, 낮에는 반란 세력의 피비린내 속에서 본능을 해방시켰다.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덕인지— 은재는 오랜만에 “살아있다”라는 느낌을 전신으로 받고 있었다.

“...괜찮네. 오늘 컨디션 미쳤다.”

스스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한 번 더 매만지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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