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하은재의 혈청 커피에 대한 집착은 이미 ‘변태적’ 수준이었다.
그 변태적인 집착은 주변에서 보인이들로 하여금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의 것이었다.
그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느끼는 황홀한 표정에, 지율은 오늘도 혀를 내둘렀다.
왜 은재가 그렇게 혈청 커피에 집착하는지 지율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저 한숨 한 번 내쉬고 웃을 뿐이었다.
“지율아, 나 이제 일하러 가볼게~! 오늘도 수고해라~!”
“그래, 형도 수고하고.”
해일은 카운터 앞에 걸쳐 둔 팔을 때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뒤돌아섰다.
“아! 지율아! 혹시 배달 주문 들어오면 나한테 바로바로 알려줘야되~!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지율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은재의 혈청 커피에 대한 사랑 만큼 해일의 워커 홀릭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 지율은 ‘피식’하고 미소를 지으며 뱀파이어 손님들을 위한 카페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시작했다.
지율은 카페의 불빛을 밝히고 인간들을 위한 메뉴판을 뱀파이어 전용 메뉴판으로 번경하기 시작했다.
루비 아워의 조명이 천천히 붉게 빛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밤이,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지율은 밤의 카페 루비 아워가 완전히 깨어날 준비를 마쳤음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오며, 각기 다른 색의 혈청 팩들이 눈앞에 가지런히 빛났다 — 붉은색, 흑적색, 그리고 희미한 자주빛까지. 지율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혈청 팩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O형, AB형, RH-, 그리고 특별 제작된 ‘루비 블렌드’. 오늘 밤 어떤 손님들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모든 비율을 정확히 맞춰야 했다.
조용한 냉장고의 윙— 하는 소음 사이로, 카페의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재즈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지율이 혈청 팩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을 때, 카페 문 위의 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이어 들려온 건 익숙한 목소리였다.
“사장님~! 저희 출근했습니다!!”
지율은 고개를 들고, 재료들이 정리된 공간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어서 와, 얘들아!”
그의 입가엔 자연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카페 안에는 이미 은은한 재즈가 흐르고 있었고, 붉은 조명이 벽면을 따라 퍼져나가고 있었다.
밤의 루비 아워, 뱀파이어들의 시간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손님들 오실거야. 어서 준비하자~!”
지율의 말에 알바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혈청 잔을 닦고, 누군가는 조명 밝기를 조절했다.
뱀파이어 알바생들은 이미 카페 구석에 자리 잡고 노트북을 펼쳐 일하고 있는 은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뱀파이어 사회에서 꽤 유명한 존재였다.
강한 사냥 본능을 지녔지만, 그 본능을 인간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한 — 이례적인 뱀파이어로 알려져 있었다.
다른 뱀파이어들은 하은재를 보며 조만간 그 사냥 본능에 굴복해 인간들을 사냥하며 타락할 것이라 욕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하은재는 그 모든 편견들을 깨버리며 일상에 잘 스며들었다.
하은재라는 존재는 피를 갈망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했고, 본능과 타협하며 인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뱀파이어였다.
뱀파이어 알바생들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존경과 장난기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은재를 ‘변태 천재’라 부르기도 했지만, 그 별명 속에는 묘한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밤의 카페 루비 아워는 낮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변했다.
짙은 어둠 속, 루비 아워를 중심으로 한 안전 구역은 뱀파이어들이 인간들과 조용히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들은 결코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고, 대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이 밤을 함께 살아갔다.
알바생들의 손끝이 마지막 컵을 정리하자, 문 위의 종이 딸랑— 하고 울리며 뱀파이어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손님은 일을 시작하기 전, 하루의 첫 혈청 커피를 주문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은재처럼 노트북을 펼쳐 자신의 ‘밤 근무’를 시작했다.
낮의 루비 아워가 젊은 인간들이 사진을 찍고 웃는 인스타의 명소라면, 밤의 루비 아워는 뱀파이어들의 삶이자, 그들의 생명 그 자체였다.
루비 아워의 조용한 밤공기를 가르며, 은재의 스마트폰이 띠링 하고 울렸다.
화면에는 인간 동료 최도윤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는 은재가 속해 있는 회사, **블러드앤코드(㈜Blood & Code)**의 오전 근무자였다.
메시지 내용은 짧지만 급했다.
‘대리님, 오늘 우리 회사 게임 중 하나에서 버그가 발견돼서 문의글이 계속 올라온다고 합니다. 확인 좀 부탁해요.’오늘 우리 회사 게임 중 하나에서 버그가 발견돼서 문의글이 계속 올라온다고 합니다. 확인 좀 부탁해요.’
은재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답장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 안으로 해결해 놓을게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전송 버튼을 누른 그는 노트북을 닫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그랬듯 ‘혈류 보충’이 먼저였다.
“블러드 라떼, 라지 사이즈로. 혈청 샷은... 세 펌핑.”
지갑을 꺼내며 덤덤히 말한 그는 금액을 지불했다. 알바생은 익숙한 표정으로 주문을 접수하며 웃었다.
“네, 은재 형~ 주문 받았습니다.”
은재는 팔짱을 끼며 장난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 커피 한 방울, 샷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예민하게 체크 하는거 알지?”
“예~ 예~ 아무렴요~! 알다마다요!!”
뱀파이어 직원은 하루 이틀 듣는 것이 아니었기에 흘려 들었지만 그의 까다로운 입맛을 알기에 제대로 해야 했다. 옆에서 은재의 주문을 듣고 있던 지율도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은재는 언제나 그렇듯 ‘루비 아워’의 밤을 진지하게, 그리고 우스꽝스럽게 살아내는 뱀파이어였다.
알림벨을 받아 든 은재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버그를 잡아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루비 아워 카페는 뱀파이어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처음 보는 뱀파이어 3명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뱀파이어들의 등장에 카페 안에 있던 다른 뱀파이어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안정되어 있지 않았고, 불안정한 기운을 뿜으며 날카롭고 사냥꾼의 그것을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한 직원은 순간 긴장감으로 온 몸을 굳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순식간에 긴장된 공기가 카페 안을 휩쓸자 루비 아워를 이용 중이던 뱀파이어들은 카운터를 주시하며 위험한 상황 발생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율은 커피 머신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손님들을 바라봤다. 루비빛 조명 아래에서 그들의 눈동자는 짐승처럼 빛났다.
“처음 보는 손님들 이네요? 주문 하실건가요?”
은재는 작게 욕을 읖조리며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가엔 피로 대신 냉기가 서렸다.
세 명의 낯선 뱀파이어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카운터 앞에 서서 말했다.
“블러드 라떼. 혈청이 아닌 찐짜 피로.”
진짜 피로 만든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을 보며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건... 메뉴에 없습니다.”
짧은 정적 뒤, 공기가 찢어질 듯 긴장감이 터졌다.
카페 안의 다른 뱀파이어 손님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주변으로 거리를 좁히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 명의 뱀파이어를 중심으로 공기가 묘하게 뒤틀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그들의 눈빛은 사라지고, 대신 사냥감 앞의 짐승 같은 본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율은 커피 잔을 내려놓고 카운터 위에 손을 얹었다.
그의 미세한 움직임에 카페 안의 뱀파이어들이 잠시 멈칫했다.
루비 아워 — 이 거리를 중심으로 한 이 작은 마을은 뱀파이어 정부에서 인정 받은 안전 구역이었다. 이곳의 변하지 않는 룰은 간단하지만 무거운 것이었다.
‘인간의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 규칙이 있었기에 인간 사회도 그들의 존재를 묵인하고, 인간과 뱀파이어 서로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규직이기에 절대 지켜야 했는데 지금 그 규칙을 깨려하고 있었다.
지율의 시선이 세 명의 낯선 뱀파이어를 향했다.
“여긴.... 피를 흘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에, 세 낯선 이들의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그래? 뱀파이어라면 인간의 피를 먹어야 정상 아닌가?”
그 말에 카페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지율은 그들의 목소리 속에서 서툰 떨림을 느꼈다.
경험 없는 냄새, 아직 피의 향에 취해 있는 신생(新生)들의 기운.
‘변한 지.... 얼마 안 됐군.’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낮게 중얼거렸다. 루비 아워의 공기가 점점 붉게 변했다.
조명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서 번지는 사냥 본능이 벽과 천장에 스며들고 있었다.
주문을 받던 직원들도 뒤로 물러나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는 모든 뱀파이어들은 평화적인 존재들로 절대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당당하게 루비 아워에 들어와 실제 인간의 피를 요구하는 이 신생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을 향한 적대적인 분위기와 날카로운 공기로 인해 몸을 떨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지율은 자신들을 무서워 하면서도 물러나지 않는 그들을 보며 경고했다.
“이곳은 안전 구역입니다. 인간의 희생 없이 피를 공급하는 곳이니 그냥 돌아가 주시길 부탁 합니다.”
그러나 세 명 중 하나가 낮게 웃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나?”
지율의 이마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지금 루비 아워에 있는 단골 뱀파이어들은 짧게는 50년에서 길게는 300년이라는 세월을 규칙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왔고, 뱀파이어 사회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 온 이들이었다.
이들이 신생 뱀파이어를 향해 뿜어내는 적대적인 기운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일텐데 이들은 그 기운을 버티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해일이 필요했다.
그라면 단 한마디로 이 광기를 눌러버릴 수 있었다.
마치 그 생각을 읽은 듯, 카페 문 위의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붉은 조명 아래, 항공 점퍼를 걸친 해일이 헬멧을 손에 든 채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율아. 나 늦었냐?”
지율은 안심한 듯 짧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딱 좋을 때 왔네.”
해일이 천천히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한 걸음마다 공기가 진동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단순한 위압감이 아니었다 —
수백 년을 피로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심판자의 기류’**였다.
신생 뱀파이어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심판자의 위압감 넘치는 그 기운은 저절로 숨이 턱 막히는 것이었다.
이 존재 앞에서는 숨을 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다는 것을 느끼며 신생 뱀파이어들은 긴강감에 몸을 굳히며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려 해일을 바라보았다.
해일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 헬멧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그가 미소 지을 때마다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신생이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묘하게 울렸다.
은재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루비 아워로 향했다.카페 앞에 도착한 은재는 잠시 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니 루비 아워에는 이미 여러 뱀파이어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은재는 잠시 주변을 살핀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지율은 바쁘게 움직이며 손님을 응대하다가 문 앞에 서있는 그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은재야~!”지율이 은재를 발견하고 반갑게 부르자 살짝 웃으며 다가섰다.“형. 나 오늘 루비 아워에서 일하려고 왔어.”“그래? 오늘은 재택 근무 날?”“응.”은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평소 자신이 앉는 자리로 향했다.노트북을 꺼내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하윤은 보이지 않았다.지율은 짐짓 모른척하며 혈청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은재의 옆으로 다가왔다.“자! 항상 먹는 거야. 이거 마시면서 일해.”“고마워.....”은재는 커피잔을 받아들며 자리에 앉아 일할 준비를 하며 매장 안을 다시 바라보다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근데, 형.”“응?”“오늘 송하윤 씨가 안 보이네?”하윤의 이름이 나오자 지율의 눈빛이 순간 묘하게 변했다.“아까 낮에 잠깐 들렀다가 돌아갔어.”“그래?”은재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처지는 모습을 지율은 놓치지 않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그런데 하윤 씨는 왜?”“아니.... 그냥.”은재는 빠르게
최근 은재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자신이 뱀파이어가 된 뒤 부인과 아이를 두고 떠나온 이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물론 뱀파이어 여성과 데이트를 해본 적도 있었고, 고백을 받아본 적도 있었다.하지만 진지한 만남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워낙 공격성이 강한 데다 사형 집행관 업무와 IT 개발자로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었다.그런데 이솔의 친구인 하윤이 나타난 이후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하이브리드 뱀파이어라는 특성상 느리게 뛰는 심장은 자신을 만나면 선명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그래서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날 좋아하는구나.....’은재는 하윤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하윤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남았다.‘왜 신경 쓰이지?’은재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겼다.하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그 마음을 알아버린 순간부터 자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미치겠네.....”하윤의 심장 소리부터 몸짓,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까지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졌다.하윤은 자신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문제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자신이 하윤을 예전처럼 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은재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려고 했다.하윤이 먼저 말을 걸어오면 웃으
하윤의 도움 덕분에 해일은 그동안 꽉 막혀 있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프로포즈의 방향도 정해졌고, 이솔에게 어떤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한결 가벼워진 표정의 해일은 하윤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하윤 양.”“네?”“내가 아주 큰 도움을 받았어.”해일은 팔짱을 낀 채 하윤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 내가 도움이 된다면..... 큰 소원 하나는 들어주지.”어찌나 당당한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뱀파이어처럼 보였다.하윤은 그런 해일을 바라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소원 하나를 들어준다고?’분명 고마운 말이었지만 해일의 거만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웃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소원이라......’자신은 지금 은재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 해일의 도움이 필요해질 수도 있었다.하윤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네.....”억지로 미소를 지은 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원권…… 잘 보관하겠습니다.”“그래.”해일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윤에게 꽤나 큰 결정을 내려준 사람처럼 어깨까지 으쓱한 모습에 한숨을 삼켰다.‘정말...... 저렇게까지 당당할 일인가?’하지만 앞으로 자신도 해일에게 부탁해야 할 일이 생길 수 있었다.특히 은재와 관련된
하윤은 루비 아워를 빠져나와 이솔의 집 앞으로 향했다.그리고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이솔에게 전화를 걸었다.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울린 뒤,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윤아~.”부드러운 이솔의 목소리를 들은 하윤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이솔아~! 뭐 해?”“그냥 TV 보고 있었어.”“그럼 이솔아. 지금 집 앞으로 내려올 수 있어?”하윤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나 지금 너희 집 앞이야. 우리 같이 차도현 카페에 가자~.”차도현의 카페 이야기가 나오자 이솔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하윤과 함께 아주 오랜만에 만났던 날 방문했던 이솔의 마음에 쏙 들었던 카페였다.“알았어. 나 옷만 갈아입고 나갈게.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어?”“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하윤은 씩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이솔은 집에서 입고 있던 편한 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 앞으로 내려왔다.건물 밖으로 나오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하윤이 보였다.이솔은 반가운 마음에 하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러자 하윤은 뒤를 돌아 이솔을 바라보며 반갑게 인사했다.“이솔아! 나왔어?”“응~!”하윤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솔의 손을 잡았다.“그럼 우리 카페로 가볼까? 이번에 차도현이 신메뉴를 개발했다고 하거든? 그거 먹어보자!”“정말? 어떤 메뉴인데?”차도현의 신메뉴라는 말에 이솔의 눈빛이 반짝였다.
해일은 그대로 오토바이를 몰아 루비 아워로 달리기 시작했다.처음 현목의 조언을 구하고자 궁으로 향할 때만 해도 가슴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지만, 지금은 한결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일단 이솔에게 프로포즈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녀의 허락을 받은 후의 일은 그때부터 하나씩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해일은 오토바이를 몰며 작게 웃었다.“잘될 거야..... 힘내자~!”잠시 후 루비 아워 앞에 도착한 해일은 오토바이에서 내렸다.헬멧을 벗어 들고는 곧장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지율아. 나왔어.”해일의 목소리에 지율과 하윤이 대화를 나누다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형! 왔어?”“오셨어요?”해일은 자리로 가서 앉은 뒤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일단 앉아봐. 나 할 말 있어.”해일의 진지한 말에 지율과 하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둘은 해일을 바라보다 지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형, 궁에 다녀오더니 뭔가 분위기가 좀 달라졌는데?”하윤 역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해일님, 어쩐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거예요?”해일은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폐하께 조언을 듣고 내 마음은 확실히 정해졌어. 그래서 하윤이 널 보자고 한 거고.”결심이 선 듯 해일의 눈빛이 반짝였다.그 모습을 본 지율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어 급하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형. 잠깐만...... 우리 조금 더 고민하자. 이렇게
해일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궁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보디가드 뱀파이어 앞에 섰다.“폐하를 만나러 왔네.”“해일 심판자님. 연락받았습니다. 들어가십시오.”보디가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궁의 문이 열렸다.해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궁 안으로 들어섰고 곧장 현목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승계식이 끝난 후 황제의 자리에 오른 현목은 가끔씩 해일에게 전화를 걸어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황제가 된 뒤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쉬는 시간조차 제대로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특히 황후 폐하와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예전 같으면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어 황후 폐하를 찾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황제라는 자리가 그마저도 마음대로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었다.해일은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황제의 자리에 오르시더니 신세 한탄이 느셨군...’하지만 그만큼 현목에게 황후 폐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오늘 자신이 현목을 만나러 온 목적은 분명했다.이솔에게 프로포즈하기 전에 현목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특히 인간이었던 황녀님께서 뱀파이어가 되기까지 어떤 고민과 결정을 했는지 듣고 싶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도움이 되는 조언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현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집무실 문 앞에 선 해일은 가볍게 노크했다.‘똑똑.’“폐하. 해일 심판자입니다.”“들어오게.”해일은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서 현목 앞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