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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인간 사냥꾼 VS 심판자 VS 뱀파이어 헌터

Author: 초록 개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4 00:00:33

해일은 신생 뱀파이어들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그들은 뱀파이어로 변한지 10년 내외로 굉장히 어린 개채들이었다.

인간들의 시선으로 보면 나이는 꽤 있어 보였지만 뱀파이어로 변한 시간은 꽤 짧으니 사냥 본능이 강할 것이라는 것은 뻔했다.

해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수백년을 살아 온 뱀파이어들이 득실거리는 호랑이 굴로 알아서 들거온 것을 보며 코 웃음 쳤다.

‘어처구니 없군.’ 지율은 카운터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은재도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카페의 보호 시스템을 작동시킬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이미 뱀파이어 고위 장로에게 연락을 넣은 상태였다.

은재는 모니터의 코드창을 닫으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굳이 시스템을 돌릴 필요는 없지만, 혹시 모르니 헌터들한테 연락이나 할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몇 분 안에, 뱀파이어 헌터들이 이 곳으로 출동할 것이다. 은재는 지율, 해일과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시간을 벌어주지.’

‘그동안 내가 처리하지.’

해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온화했지만 차갑기 그지 없었다.

“어느 세계든 법이 있고, 규칙이 있지.”

그의 목소리가 카페 천장에 닿아 울렸다. 루비 아워의 불빛이 붉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규칙을 어기면....”

그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해일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본 지율은 ‘헉’하며 숨소리를 삼켰다.

인간 헌터들이 오기 전에 신생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율이 말리기도 전에 해일의 행동이 더 빨랐다.

공기가 흔들리고, 붉은 기운이 해일의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심판이 따른다.”

그 말과 동시에 — 문 위의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 듯, 세 명의 인간 헌터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검은 코트를 입은 그들의 눈동자는 이미 표적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신생 뱀파이어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본능적인 위험에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버렸다.

해일의 손끝에서 번개처럼 붉은 줄기가 뻗어 나갔다.

“심판 개시.”

신생 뱀파이어는 마지막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붉은 불꽃과 함께 훅— 하고 재로 흩어졌다. 바람 한 줄기만 스쳐 가도 날아갈 만큼 가벼운 재.

인간 헌터들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익숙한 표정으로 장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카페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작은 솔로 재를 긁어 모은 뒤 유리병에 담기 시작했다.

찰칵. 스마트패드로 사진도 몇 장 찍는다. 증거, 보고용, 처리 기록용.

“이봐,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심판하는 게 어디 있어?”

한 헌터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우리도 조금이라도 취조할 시간이라도 줘야지..... 엉? 진짜 이럴거야?”

인간 헌터들의 잔소리에 해일은 잠시 미간만 찌푸렸을 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서 뭐. 내가 늦장 부렸으면—”

그는 손가락으로 카페를 둘러 가리켰다.

“여기 루비 아워에 있는 뱀파이어들한테 그 신생 뱀파이어들 사지가 전부 찢겨서 죽었을걸?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면 루비 아워 피해는 어떻게 할건데?”

해일의 말에 헌터는 할 말을 잃었다. 입을 열다 다시 닫고, 결국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솔직히 해일 말이 정답이었다.

신생 셋이 폭주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루비 아워를 찾는 뱀파이어 손님들은 굉장히 노련하고 강했기에 해일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처리해야 할 일은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루비 아워가 한 번 무너지면, 이 지역의 ‘밤의 균형’도 함께 무너진다.

헌터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 반박할 수가 없네..... 어쨌든 양쪽 정부에 보고서를 올리는 게 먼저야.”

그는 카운터에 있는 지율을 향해 고개를 돌려 이야기 했다.

“지율 씨, CCTV 영상 좀 가져갈 수 있을까? 증거용으로 필요해. 보고서에 첨부해야 하거든.”

지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늘 그렇듯, 그는 침착했다.

“알겠어요. 편집 안 한 원본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사건 부분만 따로 잘라드릴까요?”

헌터는 지친 듯 이마를 문질렀다.

“둘 다. 우리 정부는 편집 본이 필요하고 뱀파이어 정부는 원본이 필요해.”

해일은 업무에 시달리는 헌터들을 위로했다.

“열심히 하라고~! 응? 직장인들~~~!!”

헌터는 해일을 째려 보았다.

“우리를 업무에 시달리게 한게 누군데~!!”

헌터는 머리를 세게 긁적였다. 이런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신생 뱀파이어 처리 → 재 수거 → 보고서 → 장로단 보고 → 왕실 보고 → 사건 경위 확인.... 그리고, 인간 정부에도 보고서를 올려야 했고, 자신들의 상사에게도 엄청 깨질 것이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고, 자신들의 상사에게 어떻게 보고를 올려야 좋을지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아찔했다.

인간 심판자는 해일을 째려보았다.

“해일 심판자~~님~~ 응? 다음에 또 이런 일 생기면 신생들만 따로 밖으로 불러내라고! 부탁 좀 하자!!”

헌터는 울분을 삼키듯 말했다. 하지만 해일은 정말 모르는 뱀파이어 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순한 눈, 느긋한 표정. 조금 전의 ‘심판자’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알지, 알지~~”

해일은 능청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근데 말이야, 상황이 워낙 급박했잖아?”

헌터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렸고, 그 모습을 보는 해일은 어깨를 으쓱하며 능글맞게 웃어보였다.

다른 이들이 보면 그의 잘생긴 모습에 반했을테지만 헌터들은 치를 떨었다.

“오늘 우리 왕 만나니까, 내가 잘 설명할게.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고요, 제가 아니었으면 참사가 일어날 뻔했어요’ 뭐 이런 느낌으로~~”

헌터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너 진짜... 왕한테도 그 톤으로 얘기할 거야?”

해일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왕이 나 좋아하잖아.”

헌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진짜.... 너네 왕이 널 너무 좋아해서 문제야.....”

지율은 뒤에서 조용히 커피잔을 닦으며 툭 내뱉었다.

“그래도 해일이형 아니었으면, 오늘 진짜 심각했을 거예요.”

헌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서 뭐라 하기도 어렵다니까.”

헌터들은 마지막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며 루비 아워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테이블마다 놓인 잔,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뱀파이어들, 아직 떨림이 가시지 않은 공기.

“여러분, 오늘 많이 놀라셨을 텐데... 괜찮을 겁니다.”

헌터가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걱정하지 마시고, 혹시 이상한 일 있으면 즉시 연락 주세요.”

그는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은재씨, 긴급 신고해줘서 고맙고— 지율씨, CCTV 자료도 고마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일을 향해 장난 섞인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우린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율씨, 누구씨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네요.”

해일은 피식하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그럴 수도 있지~”

지율은 정리하던 컵들을 내려 놓으며 헌터들에게 미소로 답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내일 김매니저한테 미리 말해 놓을테니 오전에 오시면 커피 무료로 드릴게요.”

헌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두 눈이 번쩍였다.

“진짜요? 아... 그럼... 음.... 내일 아침 일찍 들를게요!”

“네. 헌터님들 좋아하는 음료로 아주 맛있게 해서 드릴게요.”

지율이 웃자, 헌터도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그럼... 오늘 사건은 우리가 잘 정리해서 우리 정부랑 뱀파이어 쪽 정부에도 보고서 보내겠습니다. 루비 아워는... 언제나처럼 조용하길 바랍니다.”

그들은 그렇게 문을 열고 밤거리로 사라졌다.

헌터들이 사라지자마자 루비 아워는 폭풍이 지나간 뒤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율은 카페 안에 있는 뱀파이어 손님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지율은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 시켰다.

“오늘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정리가 잘 돼서 다행이네요. 루비 아워 다시 정상 영업 합니다!!”

지율의 말에 뱀파이어들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다시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주문을 마친 손님들은 빈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사징님! 저 주문서 다시 확인해 볼게요.”

“신생 뱀파이어들 흔적은 제가 지울게요.”

“저는 음료 만들겠습니다.”

은재도 다시 코딩 프로그램을 열어 일을 시작했다.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해 볼까?”

해일은 가죽 장갑을 벗으며 피식 웃었다.

“역시 우리 동네 뱀파이어들, 일상 회복 탄력성은 최고라니까....”

루비 빛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카페는 순식간에 ‘사고 현장’에서 다시 ‘밤의 쉼터’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루비 아워를 지키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아까의 소동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카페 안은 대화 소리와 노트북 타자 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바리스타들은 들어오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커피 머신 앞에서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은재형! 주문한 커퍼 나왔습니다!!”

은재는 자신이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픽업대로 걸음을 옮겼다.

은재는 픽업대에 있는 자신의 혈청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바리스타를 향해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형, 오늘은 커피 한 방울 흘려도 이해할게.”

바리스타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입 꼬리를 올렸다.

“와, 영광이네. 은재가 혈청 커피 한방울에 이렇게 아량을 베풀어주고 별일이네?”

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러 진지한 척했다.

“응. 오늘은 특별한 사건이 있었으니 아량 큰 내가 봐줄게~!”

그 말을 들은 다른 바리스타가 뒤에서 킥킥 웃었다.

“은재씨, 말은 이해한다고 해도 혈청 한 방울 차이에도 예민하게 다 느끼는거 다 알아요.”

은재는 커피를 입에 대며 피식 웃었다.

“오늘만. 진짜 오늘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율이 멀리서 두 뱀파이어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평소 같으면 까다롭게 맛을 따지는 은재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만으로 오늘이 얼마나 정신없는 하루였는지 충분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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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근 뱀파이어 : 밤의 연인, 낮의 비밀   33화. 지우의 폭발과 지율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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