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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연회장 단상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5 19:00:00

『오늘 일정: 회장님 팔순 잔치, 손님 명부 전달』

나는 주원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지기를 기다렸다. 주원은 그대로 웃고 있었다. 복도 천장에 달린 등이 눈 밑을 비췄다.

“물었잖아요.”

이헌이 내 앞을 가리려다 멈췄다. 나는 한 발 옆으로 나왔다. 주원이 보려는 얼굴은 내 것이기도 했다.

“주원 씨.”

“응. 나경 씨.”

주원은 대답을 기다리면서 내 어깨 너머를 봤다. 연회장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접시를 든 직원이 나오자 주원이 몸을 비켜 줬다. 문이 닫히는 데 3초가 걸렸다.

“내가 설명할게.”

이헌의 말에 주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삼촌한테 물었으니까 삼촌이 하셔야죠.”

복도 안쪽에서 수레 바퀴 소리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없네.”

나는 주머니 안에서 손을 폈다. 조금 전 주워 넣은 손님 명찰의 모서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시간 피하지 말고, 지금 얘기해요.”

“나경 씨, 할아버지 기다리셔.”

주원이 연회장 문 옆의 시계를 올려다봤다. 행사가 시작되기까지 7분 남아 있었다.

“오늘 주인공은 할아버지잖아. 그치?”

주원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재킷 단추를 잠갔다. 단춧구멍에 손가락이 한 번 걸렸다. 2번째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둘이 따로 들어오면 사람들이 물어볼 테니까.”

구두 소리가 복도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이헌과 나 사이에 타일 한 칸이 남았다. 이헌이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나는 연회장 문에 난 유리를 봤다. 안에서는 직원들이 잔을 맞춰 놓고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요.”

“나경아.”

나는 고개만 돌렸다.

“혼자 대답할 필요 없어요.”

“제가 할 말은 제가 할게요. 실장님도 피하지 마세요.”

“안 피해요.”

이헌은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주머니에 든 명찰을 꺼냈다. 뒤집혀 들어간 옷핀을 펴고 이름이 적힌 면을 앞으로 돌렸다.

◈

입구에서 기다리던 주원은 직원에게 물잔을 받아 들고 있었다. 내가 나오자 잔을 내밀었다.

“입술 좀 마른 것 같아서.”

나는 받지 않았다.

주원은 잔을 옆 탁자에 내려놓고 내 팔꿈치 아래로 손을 내밀었다. 연회장 안에서 경란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팔을 얹는 대신 주원의 옆에 섰다.

“같이 걸어갈게요.”

주원이 손을 거뒀다.

“그래요. 그것도 괜찮지.”

입구의 명부 탁자 앞에 손님 한 명이 서 있었다. 직원이 이름표 상자를 살피는 동안 나는 들고 있던 명찰을 내밀었다.

“이거 찾으세요?”

손님이 가슴을 짚었다.

“어디 흘렸나 했더니.”

“뒤 복도에 떨어져 있었어요. 핀이 열려 있어서 잠가 뒀어요.”

직원이 명찰을 받아 옷에 달아 드렸다. 주원은 내가 명부의 접힌 귀퉁이를 펴는 동안 말없이 기다렸다.

표지를 열자 밤새 다시 찍었던 금박 글씨가 보였다. 틀린 글자가 없는지 또 읽으려다가 손을 뗐다.

“확인 다 했잖아요.”

주원이 말했다.

“이제 들어가요.”

테이블 사이로 걸어가자 아는 얼굴들이 인사를 건넸다. 나는 멈춰 서서 고개를 숙였다. 주원은 늘 하던 대로 내 작업실 이야기를 꺼냈다. 명부를 내가 만들었다고 하자 가까이 앉은 손님이 표지를 보러 몸을 돌렸다. 주원은 웃을 때도, 잔을 건네받을 때도 내 옆에서 자리를 바꾸지 않았다.

가족석 앞에 다다르자 경란이 내 옷깃을 살폈다.

“어디 갔다 이제 와.”

“명부 확인했어요.”

“머리는 왜 이래.”

나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경란의 시선이 내 손에 닿았다가 주원에게 옮겨 갔다.

“아버지 옆자리 비워 놓지 마. 두 번 부르셨다.”

“네, 지금 앉을게요.”

주원이 의자를 빼 주고 냅킨을 건넸다. 손가락은 닿지 않았다.

“웃는 게 좋겠어요.”

주원이 낮게 말했다.

나는 냅킨을 무릎에 폈다.

“누구를 위해서요.”

“오늘은 할아버지.”

그 말 뒤에 주원은 물을 마셨다. 잔이 입에서 떨어졌을 때 웃음은 없어져 있었다. 나는 냅킨의 접힌 선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 주원이 보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건 내가 정할게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되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주원은 잔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앞쪽에서 회장을 모시겠다는 안내가 나왔다.

나는 회장이 있는 쪽을 봤다. 강태수가 직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 위에 두었던 손이 조금 떨렸다. 석진이 다가가 팔을 받쳤다.

몇 자리 건너 이헌이 앉았다. 넓은 식탁과 꽃 장식 때문에 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보려다 앞을 향했다.

주원은 그 짧은 움직임도 봤다.

“삼촌 자리, 잘 보여요?”

나는 주원을 돌아봤다.

“여기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주원은 대답 없이 냅킨을 무릎에 올렸다.

◈

직원들이 케이크를 실은 수레를 단상 앞으로 밀었다. 흰 크림 위에 숫자 초 두 개가 꽂혀 있었다. 8과 0이었다.

회장이 단상에 오르는 동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통로를 비웠다. 경란이 내게 손짓했다.

“너도 올라와. 주원이 옆에 서.”

나는 냅킨을 내려놓았다. 의자를 뒤로 빼자 다리가 바닥의 선에 걸렸다. 주원이 의자 등받이를 잡아 옆으로 옮겼다.

“천천히.”

목소리는 복도에서와 똑같이 낮았다. 나는 주원의 손이 떨어진 뒤에 일어났다.

단상 계단은 세 칸이었다. 마지막 칸을 밟자 객석이 한꺼번에 보였다. 아버지는 앞쪽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병원에서보다 얼굴에 핏기가 돌아와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케이크를 옮기던 직원이 수레를 멈췄다. 그때 숫자 0이 옆으로 기울었다. 받침 끝이 크림 밖으로 드러났다.

경란이 눈썹을 모았다.

“저걸 저렇게 해 놓으면 어떡해.”

직원이 케이크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장갑 끝에 얼룩이 묻어 있었다.

주원이 먼저 수레 옆으로 가서 직원이 꺼낸 새 장갑을 받아 꼈다. 초 윗부분을 잡으려기에 나는 케이크 아래쪽을 가리켰다.

“위에서 밀면 부러져요. 받침을 조금 더 넣어야 해요.”

주원이 손을 멈췄다.

“이쪽으로?”

“네. 옆에 있는 8하고 높이 맞춰서요.”

주원은 허리를 숙였다. 숫자 0을 세운 뒤 받침을 천천히 눌렀다. 크림이 조금 밀렸다. 나는 직원이 건넨 종이 냅킨을 받아 수레 가장자리에 묻은 크림을 닦았다.

“이제 괜찮아요.”

주원이 손을 뗐다. 직원이 주걱으로 크림을 고르게 폈다.

주원은 벗은 장갑을 직원에게 건네고 회장 옆으로 갔다. 회장이 케이크를 내려다봤다.

“벌써 숫자를 눕히면 쓰나.”

“제가 바로 세웠잖아요.”

“네가 눕힌 건 아니고?”

주원이 웃었다.

“그랬으면 삼촌 시켰죠.”

객석에서 웃음이 났다. 나는 단상 아래를 봤다. 이헌도 회장 쪽을 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웃음이 없었다.

불을 붙이자 촛불 두 개가 켜졌다. 회장이 끄기 전에 사진을 찍겠다는 말이 나왔다. 경란은 내 어깨 뒤에서 자리를 한 번 더 고쳤다.

“주원이 쪽으로 좀 붙어.”

나는 반 발 움직였다. 주원이 내 허리 뒤로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손바닥이 재킷 솔기를 따라 펴졌다.

사진사가 웃어 달라고 했다.

나는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눈앞에서 빛이 여러 번 터졌다. 박수가 시작되자 회장이 몸을 숙였다. 두 촛불이 꺼졌다.

주원은 케이크 칼을 회장 손에 쥐여 드리고 손잡이 아래를 받쳤다. 회장이 칼을 빼는 동안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직원이 접시를 들고 오자 그제야 물러섰다.

나는 빈 냅킨을 접어 수레 가장자리에 내려놓았다. 주원이 세워 놓은 0은 더 기울지 않았다.

◈

케이크를 나누는 사이 사회자가 가족의 인사를 청했다. 석진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회장의 건강을 빌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단상 끝에 서 있었다. 내려가도 되는지 경란을 봤지만, 경란은 내 앞의 자리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주원 옆에 있으라는 뜻이었다.

석진이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우리 주원이도 할아버지께 드릴 말이 있다고 합니다.”

주원은 마이크를 받기 전에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단상 아래의 아버지가 박수를 치려다 손을 모은 채 기다렸다.

주원은 마이크를 쥐었다.

“길게 하면 할아버지 케이크 못 드시니까 짧게 하겠습니다.”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났다. 주원의 말은 막히지 않았다. 쉬어야 할 데서 쉬면서 손님들을 차례로 봤다.

“오늘 오신 분들께 저희도 소식을 하나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은 손을 봤다. 흰 셔츠 소매가 재킷 끝에서 드러나 있었다. 주원은 손바닥을 나 쪽으로 폈다.

받으라는 손이었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고 옆으로 한 걸음 갔다. 구두 앞코가 단상 바닥에 그어진 선을 넘었다.

주원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윤나경 씨와 제가 결혼 날짜를 정했습니다.”

나는 주원이 아니라 객석을 봤다. 이헌은 의자에서 몸을 바로 세웠다. 테이블 위에 얹힌 손이 보였다. 손가락이 한 번 접혔다가 펴졌다.

“5월 17일입니다.”

주원이 날짜를 또박또박 말했다.

마이크에서 나온 말이 뒤쪽 스피커에서도 들렸다. 누군가 먼저 손뼉을 쳤다. 석진이 웃으며 회장 쪽으로 몸을 돌렸고, 경란은 내 등을 가볍게 눌렀다.

나는 웃었다.

사진을 찍을 때보다 입가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아버지도 손뼉을 치고 있었다.

주원은 마이크를 입에서 내렸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까지 웃으며 했다. 누군가 두 사람이 같이 인사하라고 외쳤다.

나는 허리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앞으로 내려왔다. 펴고 일어났을 때 이헌과 눈이 마주쳤다.

이헌 씨.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 이름에 «씨»를 붙여 속으로 불렀다. 실장님이나 삼촌으로는 저 자리에 앉은 사람을 부를 수 없었다.

이헌 씨, 일어나지 마세요.

나는 웃은 채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이헌은 나를 보고 있었다. 의자 팔걸이에 놓인 손이 떨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경란이 내 옆으로 다가와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 꽃다발을 건넸다. 나는 두 손으로 받았다. 포장지 끝이 약혼반지에 걸려 접혔다.

“좋은 날 두 개가 겹쳤네.”

회장이 말했다.

나는 꽃다발을 조금 내리고 회장을 봤다. 회장은 내 얼굴을 보다가 주원에게 시선을 옮겼다.

“잘 의논한 게냐.”

주원이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

나는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을 뺐다. 경란은 내 팔 바로 뒤에 있었고, 석진은 마이크를 받아 들고 있었다. 내가 고른 날짜는 아니었다. 그래도 저 마이크 앞에서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포장지에 걸린 반지를 빼냈다.

회장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할 말 있으면 해라.”

마이크는 석진의 손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생신 축하드려요.”

회장이 잠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은 손님들에게 식사를 권했다. 직원이 단상 옆으로 와서 꽃다발을 맡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꽃다발을 건넸다. 손바닥에 포장지 눌린 자국이 남았다. 문질러 없애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다.

주원이 먼저 내려가 아래에서 기다렸다. 이번에도 손을 내밀었다.

“계단 봐요.”

나는 난간을 잡고 내려갔다.

마지막 칸에서 멈추자 주원도 손을 거뒀다. 단상 옆은 객석에서 반쯤 가려져 있었다. 손님들이 의자를 끄는 소리가 겹쳤다.

“나경 씨.”

“여기서 말 안 하기로 한 거, 주원 씨였어요.”

“응. 그러니까 끝나고.”

주원은 웃으며 내 어깨 너머를 봤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이헌이 서 있었다. 직원이 지나갈 길을 비워 준 뒤 이쪽을 보고 있었다.

주원은 손을 들어 삼촌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손님들 쪽에서 보면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나는 주원과 나 사이에 발 하나 들어갈 자리를 남겨 두고 섰다. 주원은 몸을 숙였다. 진한 향수가 가까워졌다.

“끝나고 셋이 얘기 좀 해요. 22층.”

(4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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