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괜찮아졌으니까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야.’‘무진 씨 상황은 너무 이상해. 분명히 예민주의 흉계가 있을 거야.’예민주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무진의 손을 잡고서 밖으로 나갔다. ‘무진 오빠가 순순히 협조해서 할머니가 화가 치밀어 오르게 만들었어.’“성연아...”성연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성연에게 말을 하려던 안금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괜찮아요, 감정은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잖아요.” 성연은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성연은 여전히 무진의 안위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강운경은 할머니를 부축한 채 병원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성연은 즉시 병실로 돌아왔다.시간이 촉박했지만 어떤 실마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자세히 살펴보던 성연이 베개까지 들춰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성연은 결국 쓰레기통에 눈길을 돌렸다.쓰레기통 안에서 작은 유리병을 주웠는데, 안에는 아직 약간의 액체가 남아 있었다. 내일은 무진의 결혼식 날이니 성연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병을 가지고 회사로 온 성연은, 곧바로 병에 남아 있는 용액을 검사했다. 곧바로 결과가 나오면서 대략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병원에서 독을 넣을 수는 없어. 그렇다면 혐의가 있는 건 예민주뿐이야!’‘예민주는 정말 대담하게 행동했네.’‘게다가 이런 만성독은 신경과 골수에 극히 큰 손상을 입히지.’ ‘만약 복용 시간이 충분히 길다면, 그 손상은 돌이킬 수 없을 거야.’눈살을 찌푸린 성연은 조심스럽게 증거를 모두 정리해서 보존했다. 그리고 일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지금 사무는 이미 여동생을 재운 뒤 기특하게도 소파에 앉아서 성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철이 든 사무를 보자, 성연은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성연은 역시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했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사무야, 왜 아직 안
특별 병동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서 성연과 예민주만 들어갔다.예민주는 손에 든 독을 쥔 채 눈동자를 굴리면서 어떻게 순조롭게 약을 쓸 지 생각했다.무진은 허약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안색은 말할 수 없이 초췌했고, 퀭한 눈가에 턱수염도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평소 강력한 이미지의 무진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성연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무진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했다.그런데 옆에 있던 예민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무진 오빠의 손가락이 움직인 것 같아요. 성연 언니, 빨리 의사를 좀 불러주세요.”예민주가 무진의 손을 가리키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살펴보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꼼꼼하게 살필 새도 없이, 성연은 예민주에 의해 한쪽으로 밀려났다.“빨리요, 무진 오빠 시간이 늦으면 안 돼요.” 예민주가 급하게 지시했다.‘지금은 무진 씨 건강이 가장 중요해.’ 성연은 얼른 병실 문을 열고 나가서 의사를 찾았다. 그러자 주변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예민주는 재빨리 무진에게 독을 먹였다.이번 독은 더욱 강렬하지만,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진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그러나 성연의 동작은 너무 빨랐다. 미처 빈 병을 처리하기도 전에 의료진이 병실로 들어오자, 예민주는 재빨리 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성연이 들어왔을 때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빨리 와서 봐요.” 환자는 의사가 봐야 하는 법! 성연은 예민주를 한쪽으로 데려 가서 의사들이 검사하게 했다.의사들이 검사하는 중에 무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멍한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면서 순간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이상하네. 어떻게 모든 것이 정상이지?” 의사가 의아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1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하면서, 이렇게 희한한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침대에 앉은 무진은 성연을 발견하자, 왠지 익숙한 느낌에 바로 품에 안으려고 했다.“무진 오빠, 정말 걱정했어요.” 옆에 있던 예민
성연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를 위로하며 말했다.“바이탈 사인은 그런대로 안정적이네요.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조급해하지 마세요.”“제가 방법을 한번 생각해 볼게요.”무진은 이미 특별 병동으로 옮겨져서 시시각각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무진의 검사 항목을 살펴보면서 성연의 마음속 의혹은 갈수록 뚜렷해졌다.“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겠지.” 안금여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성연에게 더욱 미안함을 느꼈다.‘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상태라서 다행이야.’‘만약에 결혼식을 올린 뒤라면, 강씨 가문은 정말 성연이에게 도움을 청할 면목이 없었을 거야.’“요즘 무진 씨가 누구를 만났어요?”의혹이 깊어지면서, 성연은 더더욱 무진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독인지는 이제부터 잘 조사해야 해!’손건호가 곧바로 성연에게 보고했다.무진은 업무에 바빠서 며칠 전에 가족들을 만났을 뿐이다.“예민주도 있잖아? 내가 전화해서 물어볼게!” 어떤 의심스러운 정황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한 강운경이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강운경에게 무진의 소식을 듣자, 당황한 예민주가 곧바로 병원으로 왔다.가장 웃기는 건 약혼녀인 예민주가 결국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무진 오빠는 어떻게 됐어요?” 병원으로 달려온 예민주가 눈물을 글썽이며 세 사람에게 물었다.손건호는 코를 더듬으면서 핑계를 대고는 자리를 떴다. ‘결국 강씨 가문의 집안 일인데, 내가 계속 여기에 있는 것도 좋지 않아.’‘차라리 회사로 돌아가서 이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편이 나아.’성연을 본 예민주는 얼른 성연을 막아선 뒤, 안금여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히 얼마 전까지 건강이 괜찮았는데.”어두운 표정의 안금여는 예민주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고 바로 손을 뺐다.강운경도 다른 쪽만 바라보고 있어서 예민주는 아주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서 성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성연 언니...”“무진 씨하고 있을 때
다음 이틀 동안 무진은 결혼식 준비를 모두 부하들에게 맡겼고, 심지어 예민주가 찾아오는 것도 피했다. 또 결혼식의 세부사항도 일부러 예민주가 선택하도록 맡겼다.결혼의 기쁨에 사로잡힌 예민주는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결혼의 번거로운 일들을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하려고 무진이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밤낮없이 일하는 무진이 걱정이 된 손건호가 무진의 책상에 저녁을 가져왔다.“보스, 내일이 결혼식인데 오늘 밤은 푹 쉬세요.” 핏발이 선 무진의 눈을 쳐다보면서, 손건호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모르는 사람이 보스의 모습을 보면, 결혼을 강요당한 줄 알 거야.’손건호가 가져온 저녁을 한쪽으로 치운 무진이 끊임없이 계약서를 뒤적거리며 말했다.“나가 있어.”하지만 손건호는 무진이 먼저 밥을 먹으면 나가겠다고 고집하면서, 그 자리에 선 채 나가지 않았다. “나가 있어!” 무진은 끊임없이 일로 자신을 마비시키면 두통이 없어질 줄 알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자, 무진은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마저 느꼈다.손건호가 다가와서 재차 무진에게 좀 쉬라고 권하려고 했다. 무진의 몸도 무쇠가 아니기에.무진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섰지만, 순간 현기증을 느끼면서 쓰러졌다.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데다가,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감정마저 동요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보스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손건호는, 바짝 긴장해서 무진을 재빨리 병원으로 옮겼다.손건호의 연락을 받은 안금여는 강운경과 함께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예민주와의 혼사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무진은 아파선 안 되는 소중한 손자이기에.그날 저녁 우연히 할머니를 보러 왔던 성연도 같이 병원으로 와서 무진의 상황을 물었다.강씨 가문의 상황이 걱정이 된 성연은, 무진의 건강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송 회장님, 대표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안에서 검사를 하고 있어요.” 손건호가 간단명료하게 설
“오늘 밤, 무진 오빠가 같이 있어줄 거지요.” 눈을 깜빡이면서 기대에 부푼 예민주가 무진에게 물었다.무진은 오히려 머뭇거렸다. 내색하지 않고 팔장을 풀면서 좀 소원한 듯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두 사람의 관계가 전혀 이렇게 친밀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예민주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인내심을 잃었다.“무진 오빠,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예민주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무진 오빠가 거절한다면, 약의 복용량을 늘여서라도 반드시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해야 해.’“가장 아름다운 걸 첫날밤을 위해서 남기고 싶어.” 무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민주가 아무리 절박하다 해도, 여자인 이상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불만이 가득한 예민주는 무진의 팔을 박고서 서로 눈빛을 마주했다.비록 예민주에게 통제되었다 해도, 무진의 그윽한 눈동자에서 뿜어내는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기운에 예민주는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천천히 시선을 거둔 예민주가 무진의 가슴에 안긴 채 말했다.“그래요, 무진 오빠가 나와 결혼하기를 기다릴게요.”무진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예민주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예민주가 나가자, 곧바로 손건호에게 앞으로 예민주와 접촉하지 않게 조치하라고 지시했다.손건호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무진이 결혼 생각을 바꿀 걸로 기대했다. 그러나 무진은 그 지시만 하고, 결혼식을 취소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손건호는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비서인 자신은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예민주를 보낸 뒤, 무진은 아예 회사에서 생활했다. 지금 무진은 두 가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순히 예민주를 따른다는 감정과 예민주를 멀리해야 한다는 상반된 두 가지 감정.무진은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초조한 마음을 극력 자제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해서라도 절박하게 일이 필요했다.그리고 성연은 케이크를 아이 앞에 놓았다.사진은 눈을 반짝거렸지만 아쉽게도 가장 좋아하는
“죄송합니다, 이 케이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 종업원이 무진에게 케이크를 포장해 주었다.아쉬워하며 무진의 손에 든 케이크를 바라보던 성연은 결국 다른 케이크를 골랐다.무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좀 불편한 마음으로 묵묵히 케이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은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민주가 요구한 거지만, 무진은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성연의 모습을 보자, 왠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이거 받으세요.” 잠시 생각하던 무진이 입을 열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케이크를 성연에게 건네준 것이다.마치 무진의 잠재의식 속에서 성연은 예민주보다 훨씬 중요한 듯했다.“아니요.” 성연은 받고 싶지 않아서 곧바로 거절했다. 아이를 제외하면, 무진과 다른 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지금도 이미 충분히 슬픈데, 계속 슬픈 일을 회상할 필요는 없어.’무진은 눈썹을 더 깊게 찌푸리더니 성연의 손에 케이크를 전해주고 바로 나갔다.“그럼 이것도 드릴까요?” 종업원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성연에게 정중하게 물었다.고개를 저은 성연이 뒤에 고른 케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포장해 주세요. 그리고 그건 직원 분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결심을 굳힌 이상 질질 끌 필요 없어.’직원은 좀 난처했지만, 그래도 성연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무진이 빈손으로 강씨 가문으로 돌아오자, 입구에서 기다리던 예민주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했으니 강씨 가문의 할머니가 원하지 않더라도 예민주가 찾아 뵈러 방문해야 했다. 예민주는 원래 무진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 오라고 했는데, 무진이 뜻밖에도 빈 손으로 올 줄은 몰랐다.“무진 오빠, 케이크를 못 찾았어요?” 예민주는 무진의 팔장을 낀 채 온몸을 기댔다.무진이 어색하게 옆으로 피했지만, 예민주의 눈을 보자 뇌가 순간 마비되는 듯했다.“마지막 남은 걸 다른 사람이 사갔어.” 무진이 무심코 거짓말을 하며 얼버무렸지만, 예민주는 이상한 점을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