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헌의 얼굴이 완전히 구겨졌다.모든 일이 너무나 공교롭다.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것이 우리 속의 원숭이처럼 놀아난 기분이다.강일헌이 차갑고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당장 가서 조사해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보라고.”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번에 그가 직접 왔다.만약 일이 더 망가지면 할아버지에게 욕 한 바가지 들을 게 뻔했다.그리고 강일헌도 자신의 실수를 허락하지 않았다.놈들이 함정을 파 놓고 자신을 유인했다는 사실을 그는 참을 수 없었다.이 일을 누가 훼방 놓고 있는지 알아낼 때까지 그는 절대 그만둘 수 없다.동시에 강일헌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음속으로 냉정하게 생각했다.‘설마 강무진이 한 건가?’‘강무진 외에 누가 자신들을 상대로 이 지경까지 죽기 살기로 덤빌까?’‘그런데, 강무진에게 저런 능력이 있을 수 있어?’이쪽의 행방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용병집단까지 동원할 수 있다?이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러나 이곳에 오기 전에 강무진이 모습을 생각하면, 또 무진 쪽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수하의 전화를 끊은 후, 강일헌은 이전부터 병원을 주시하고 있던 수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저편에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강일헌이 즉시 물었다.“병원 쪽은 아직 정상이야? 강무진 쪽의 이상한 점은 없어? 그 놈 정신 상태는 어때?”수하가 바로 대답했다.“강무진 쪽에서는 아무런 이상 행동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수상태에 빠져 지내는 것 같습니다”“확실해? 잘못 본 거 아니지?” 강일헌이 한번 더 확인하고자 했다.“네, 확실합니다. 한시도 여길 떠난 적이 없습니다. 잘못되었을 리 없습니다. 매일 의사가 들어갈 때마다 문 앞에 가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깨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부하가 더없이 확신하며 말했다.그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확신했다.그의 말을 들은 강일헌도 이 말을 믿었다.그럼 강무진의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이런 일들을 계획해서 자신
무진도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모처럼 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어서 꿈 같은 반나절의 여유를 누렸다. 하물며 자신은 진짜 다치기까지 하지 않았나.성연은 지금 병원 내 주방에 갔다.손건호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무진이 고개를 들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손건호의 눈빛을 보았다.무진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뭐 할 말 있어?”작은 사모님이 모처럼 옆에 없을 때 보스가 물어오자 손건호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보스, 사모님을 너무 방임하고 계신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앞으로 작은 사모님이 보스의 총애를 믿고 너무 마음대로 하면 어쩌려고요.”말하면서도 이 말이 썩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가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자기 머리를 쓸어내렸다.‘혹시라도 보스가 날 한 대 치지는 않을까?’그런데 보스 강무진이 화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웃기까지 했다.무진의 눈에 부드러운 기색마저 어렸다.“이렇게 아끼지 않으면 또 어쩌겠어? 그녀를 도망가게 그냥 둬?”그 말을 듣는 손건호는 할 말을 잃었다. 이는 보스가 처음으로 성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한 것이다.이미 벌써 넘어간 것 같다.손건호가 한숨을 쉬었다. ‘됐어, 보스의 감정을 내가 걱정할 필요가 뭐 있다고.’무진이 정말 대놓고 애정을 쏟겠다는데, 누가 감히 입을 열겠는가?병실에 들어오던 성연은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보기에 좀 이상했다. 아니 매우 기이한 느낌이다.손건호를 본 성연이 매우 경계했다.“두 사람, 또 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무진이 성연을 바라보았다. 작은 레이더를 켜놓은 채 하루 종일 자신만을 지켜보며 일을 할 틈을 주지 않는 그녀.이 귀여운 모습에 무진이 그만 웃어버렸다.“일 말고 다른 얘기들 좀 했어”성연이 콧방귀를 뀌며 경고를 잊지 않은 채 손건호를 돌아보았다.아주 무고하다는 듯한 얼굴.자신이야 그저 관례에 따른 공무를 본 것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하, 정말 어렵다.’성연이 받쳐들고 온 사골국을 그릇에 담고 식힌
강일헌이 왔지만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나쁜 방향으로 만들어버렸다.이 때문에 강일헌도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당초 좀 즐기려 했던 마음도 싹 사라졌다.강일헌은 가능한 한 빨리 배후를 찾아낼 생각이었지만, 시종 조금의 단서도 찾지 못했다.지금, 부하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순간 확 짜증이 치밀었지만, 발신자에 ‘할아버지 강상철’이 뜨자 바로 자세를 낮추었다.전전긍긍하며 전화를 받으며 음성을 낮추어 먼저 할아버지께 안부부터 물었다.“할아버지.”강상철 쪽에서 두말도 없이 바로 호통이 날아왔다.“네가 나가서 정말 일을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넌 나를 너무 실망시켰다! 도대체 어떻게 일을 처리한 거냐? 조심하라고, 조심하라고 말했건만. 너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게야?”“할아버지, 배후가 정말 이상해요. 이, 이쪽에서는 전혀 방법이 없었어요.” 강일헌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억울함도 섞여 있었다.배후에 숨은 그 놈이 그렇게 교활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마치 저들과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전혀 잡아낼 수가 없었다.강일헌도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결국 자신의 유일한 손자이니, 할아버지가 진짜 심하게 말씀하시지는 않을 터.강상철이 큰 소리로 말했다.“너 지금 당장 돌아와. 더 이상 S 조직의 일에 관여하지 마. 때 되면 내가 처리할 테니.”강일헌이 외국에 있으면서 또 어떤 위험에 부딪힐지 모르기 때문.정말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강일헌은 알았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이튿날, 강일헌 바로 귀국하는 비행기표를 샀다.강일헌이 귀국한 후, 무진도 퇴원할 준비를 했다.요 며칠 날마다 병원에서 휴양 중이었다.더 이상 계속하면 사람이 폐인이 될 지경.나가서 바람을 좀 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의사도 무진이 퇴원해서 휴양하는 것에 동의했다.동의하던 주치의의 음성에 다소 아쉬워하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당신들은 제 경험 중에 가장 귀여운 환자와 가족이었습니다.” 주치의가 감탄했다.
마지막까지 대화를 나누며 손자가 괜찮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금여는 한숨을 내쉬었다.두 아이는 안금여가 집에서 가슴을 졸이며 자신들을 염려하고 있는 지 모를 것이다.이제 드디어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게 된 안금여.안금여가 얼굴을 활짝 펴며 말했다.“이건 정말 좋은 기회야. 너희 같이 젊은 애들은 둘이 손잡고 놀러도 다니고 하면서 이 기회에 감정도 좀 키우고 그래라.”안금여 생각에는, 시골에서 쭉 살아온 성연이 틀림없이 이번이 처음 해외 출국일 터였다.그러니 당연히 무진이 잘 해야지. 성연일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며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켜줘야지.요즘 젊은 애들은 모두 노는 걸 좋아하지 않나?무진의 성격이 너무 답답할까 걱정이다. 성연이 보다 나이가 많으니 두 사람 사이에 세대 차이도 있을 것이고.감정을 좀 더 키우는 게 당연히 좋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성연은 속으로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학업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해외에 나와 있는 시간이 꽤 길어지며 너무 시간을 지체했던 것이다.그러나 안금여는 자신의 학업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심지어 물어보지도 하지 않았다.안금여는 두 사람의 감정이 좋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뿐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무진이 정말 안금여의 분부를 아주 확실하게 따라 이행했다.아니, 다음날 아침 일찍 날이 밝자 마자 몸이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도 성연의 방문을 와서 두드렸다.성연은 아직도 혼곤한 상태로 자고 있다.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난 성연이 실눈을 뜬 채 문을 열었다.그리고 문입구에 서 있는 무진을 보았다.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여기에 서서 뭐 해요?”“할머니가 너랑 같이 나가서 좀 걷고 하라고 하셨잖아.” 무진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밖에 아직 운무가 끼어 있는 하늘을 본 성연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지금 몇 시인지 보지도 않았어요?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지금은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라고요”“같이 가 줘.”
다행히도 이렇게 마음대로 걸어 다녀도 무진의 상처에 큰 문제는 없었다.며칠 지난 뒤에야 성연은 무진이 가끔씩 좀 더 많이 걸을 수 있게 허락했다.물론 성연도 옆에 동반했다. 일종의 변형된 감독이라고나 할까.얼마 지나지 않아 성연은 무진의 몸을 보양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약선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이곳의 고용인들은 모두 X국 사람들이었다.자연히 성연이 하는 요리법을 알지 못했다.한가할 때 성연 스스로 만들거나 옆에서 주방장이 만들도록 지도했다.요리사가 다 배우게 되면 그녀 스스로 피곤하게 할 필요가 없을 테다.또 무진이 먹도록 직접 약선을 식탁에 올려 주기도 했다.약선은 전적으로 강무진을 위한 것이어서 자신은 먹지 않았다.외국에서 먹는 음식의 맛이 대체로 싱겁고 너무 담백하다.자연히 국내의 마라가재와 꼬치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을 정도.내일 혹은 언제든 자신이 직접 메뉴를 찾아서 주방장에게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하며 머리를 굴렸다.약선을 무진이 먹도록 식탁에 올려 준 후, 2층으로 올라가 핸드폰을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그런데 성연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무진이 물었다.“어디 가?”“위층에 올라가서 경치 볼 거야?” 성연은 무진의 이 문제이 정말 이상하게 여겨졌다.자신이 위층에 올라가면 놀든지, 아니면 잠을 자든지 하겠지. 그 외에 또 뭘 할 수 있다고?“오늘은 나 먹는 거 안 볼 거야?” 이 말을 하는 무진의 눈가에 약간의 웃음기가 돌았다.마치 성연의 행동을 놀리는 것처럼.그러나 다른 건 생각지 않는 성연이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무진 씨는 성인이니까 스스로 하는 법 좀 배워요. 매번 날더러 지켜보게 하고, 부끄럽지 않아요? 제발 혼자 알아서 좀 하세요. 이 약선들, 모두 먹어요. 모두 내가 정성껏 준비한 것들이니까. 하나도 남겨서는 안 돼요.”말하면서 또 무진을 위협하듯이 작은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그런데 성연의 그 동작이 무진의 눈에 담겼다.말랑말랑한 아기 고양이가 분홍색 앞발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
무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속에서 올라오는 의심을 참을 수 없었다.‘그래, 늘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연이 여기까지 오려고 왜 그처럼 적극적이었을까?’비록 그의 몸을 걱정하고 돌볼 생각이었겠지만, 무진이 보기에 성연의 목적은 이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무진은 깊은 생각에 잠기며 입을 열지 않았다.그러나 무진의 심복인 손건호는 무진이 성연에 대해 의심을 품었음을 똑똑히 알아차렸다.손건호가 물었다.“보스, 제가 조사해 볼까요?”하지만 무진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 이 일은 신경 쓰지 마.”무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그는 성연의 일들을 캐지 않을 것이다.본인이 자신에게 직접 알려주지 않는 한.지금 성연이 자신의 곁에 남기만 한다면, 그는 만족할 것이다.알면 알수록 성연이 더 멀리 밀어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성연을 절대 떠나게 둘 수 없다는 것.무진의 말에 손건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한쪽으로 물러났다.보스는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작은 사모님에게 가로막혀 줄곧 말하지 않았을 뿐.하지만 보스가 조사를 지시하지 않는 한, 함부로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자신이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며칠 지나면서 성연이 만든 약선 덕분에 무진의 몸은 계속 좋아졌다.무진이 잘 회복되자 얼굴의 혈색도 점차 좋아졌다.이미 초췌한 기색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붕대도 이미 풀었다.무리한 운동만 하지 않으면 그의 상처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태.그래서 무진은 귀국을 결정했다.성연 쪽도 일이 잘 처리되었으니 이제 여기에 남는 게 별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국내의 여러 가지들이 무척 그리웠다.그러니 아무런 의견이 없는 게 당연했다.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오후 내내 쉬면서 여행가방을 정리했다.그날 저녁, 안금여와 강운경이 엠파이어 하우스로 건너왔다.고모부 조승호도 같이 왔다.안금여는 곧장 무진을 붙잡고 위아래로 무진의 몸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무진이었다.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아니까.그러나 할머니의 걱정이 마음에 걸려 결국 동의했다.자신이 검사를 받지 않으면, 할머니와 고모는 또 자신이 속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무진이 몸을 기울여 조승호가 검사하기 편하게 했다.검사를 마친 조승호가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확실히 회복이 잘 됐네요. 좀 더 쉬면 문제없겠어요.”조승호가 입을 열자 안금여와 강운경 두 사람도 무진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그제야 걱정을 완전히 거둔 두 사람이다.무진이 이렇게 잘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성연 덕분일 터.성연이 따라간 덕분에 무진이 이전보다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 모르겠다.지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자상한 사람이 곁에 있으니 확실히 달랐다.운경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성연아, 네가 무진을 잘 돌봤구나. 얘가 사람을 돌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걸 못 알아봤어.”“고모, 과찬이세요. 무진 씨 회복력이 강해서 그런 걸요. 저는 남들처럼 돌봤을 뿐이에요.”자신이 사용한 약과 보양식에 대해 운경과 안금여에게는 말 수 없었다.운경과 안금여는 무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적어도 무진은 자신을 향할 것이다.그러나 강운경과 안금여가 이런 것들을 알게 된다면 끝까지 캐물을 것이다.어쩌면 자신의 정체가 불분명해서 무진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하지만 이것 역시 성연의 추측일 뿐.운경과 안금여의 보호본능에 따르면 당연히 강무진이 최우선이다.안금여도 성연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성연아, 너무 겸손할 필요 없어. 네가 온 이후로 내 보기에 무진의 기력이 아주 좋아졌어. 이번에도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아니면 무진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되었겠어?”안금여는 정말이지 점점 더 성연이 마음에 들었다.정말 입 댈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나이는 어리지만 분별력도 있고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무진을 대하는 태도 역시 전심전력이고.눈만 높고 손재주는 없는 소위 명문 규수들보다 몇 배나 더
다음날 아침, 성연은 학교에 갔다.휴가를 낸 지 거의 보름 만에 학교에 오는 거였다.그렇게 길지 않은 줄 알았는데 무진이 다치는 바람에 휴가를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은 모르지만 무진 쪽에서 그녀를 위해 미리 처리해 놓았었다.그녀가 오고 싶으면 바로 오면 되도록.성연이 책가방을 놓았다. 성연의 짝은 주연정이라는 이름으로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애였다.연정이 성연을 보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드디어 돌아왔구나.”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후, 아무도 이쪽을 주시하지 않는 걸 확인한 그녀가 소리를 낮추어 성연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네가 학교에 안 올 때, 이윤하가 그 기회에 널 몇 번이나 나쁘게 말했어.”“그녀 말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 그래도 고마워.” 성연은 주연정에게 악의가 없음을 알기에 웃어주었다.눈에 거슬리는 이윤하의 이런 행위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자신이 그렇게 오랜 시간 학교에 안 나오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 각색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테니까.그러나 성연은 이윤하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이윤하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만약 이윤하의 두세 마디 말에 괴로워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그런데 성연이 생각지도 못한 것은 첫 수업이 이윤하의 수업이라는 것.그것도 단원 고사였다.이윤하는 성연이 부정행위를 할까 봐 수업 내내 성연을 주시할 준비를 했다.성연이 편입하면 치른 시험 성적이 성연의 진짜 성적이라는 것을 이윤하는 지금까지도 믿지 않았다.분명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번에는 반드시 송성연의 약점을 잡아야 해.’시험지를 배부한 후 무대에서 내려온 이윤하는 줄곧 성연의 주위를 어슬렁거렸다.이게 무슨 뜻인지 성연이 모를 수가 있겠는가?시험을 칠 의욕도 없는 성연은 바로 엎드려 잤다.그냥 이윤하를 공기로 취급하면서.만약 열심히 시험을 보면 이윤하는 또 무슨 말을 내뱉을지 모른다.‘차라리 시험을 안 보는 게 낫지, 이 시간에 잠이나 더 자자.’이윤하는 화가 나서 미칠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